대하소설 「신불산」(243)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③
대하소설 「신불산」(243)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07 07:10
  • 업데이트 2022.09.08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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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③

순찬씨로부터 들은 내막은 이랬다.

 

지지난 해부터 조일아재를 내세워 여기저기 부지런히 전답을 팔아가면서 김해댁이 섭섭잖게 구전을 주는 바람에 김해댁이나 일찬씨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예, 당연합지요.’ 사또 앞에 굽실거리는 이방처럼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따랐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조일김손은 큰님이, 작은님이, 이노, 인선이, 늠선이, 끝선이, 판수라는 아명을 가진 정구, 철구, 구 자 앞에 글자가 없어 바로 성을 붙인 김구가 백범(白凡) 김구가 아닌 깅구가 되어버린 3남 6녀가 있었는데 위에 세 딸은 출가를 하고 네 째 인선이는 서울서 달력 만드는 정판(整版)사를 크게 하는 제 사촌오빠 영구, 말구형제를 찾아 올라가고는 서울깍쟁이랑 연애를 잘못 했는지 이내 행방불명이 되고 예순이 다 된 지금도 늠선이, 끝선이, 철구, 깅구 네 아이의 잔챙이들 속에서 해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더욱 큰일은 어릴 때부터 다부지지도 못 하면서 허풍이 심하고 견딜 심이 없어 무슨 일이든지 시작만 하고는 끝을 맺지 못 해 대궁이가 미끄러워 아무리 잘 쌓아도 이내 무너지는 <보릿집빼까리>와 콘크리트가 아닌 유리로 만든 다리처럼 약간 손만 되기만 해도 금방 산산조각이 난다는 <유리공굴>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남 판수가 문제였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공고를 다닌다면서 동네의 고장 난 라디오는 모두 고쳐주겠다고 일곱 개를 몽땅 가져와서 뚜껑을 열기만 하고 고치기는커녕 재결합도 못 해서 욕을 먹는 것도 모자라 몽포(夢浦)라는 그럴 듯한 필명을 짓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과수원에서 뽀뽀도 하고 또 무엇도 하는 <복숭아밭의 첫사랑>이란 소설을 써 온 동네에 회람을 시킨 장본인이었다.

ⓒ서상균

연산동 2공구 철거민촌에서 덩치가 태산 같고 술이라면 지고는 못 가도 먹고는 간다는 목공과 미장을 겸한 허 서방에게 시집간 큰님이누나의 집에 얹혀 학교를 다니던 그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계집애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다 마침내 연애에 성공한 것이 3공구의 사촌 화옥씨, 원구씨의 이웃에서 조그만 꽃집을 하는 언니에게 얹혀살던 처녀였다. 하필이면 키도 조그맣고 얼굴이 새까맣고 빡빡 얽어 열찬씨가 볼 때마다 어째 저렇게 훈이엄마랑 꼭 빼닮았을까 할 정도였다. 눈이 맞자말자 다짜고짜 월세 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해 배가 부르자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큰 조일댁이 맏며느리를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처녀를 데려왔다고 몇 며칠이나 악을 쓰다 마침내 결혼을 시켜 아이를 줄줄이 셋이나 낳았는데 공무원이나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니 글이 부족해 시험이 안 되고 그렇다고 공사판이나 공장에 들어가려니 힘든 일을 하기 싫어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고 버든의 본가에서 양식을 얻어오고 부산의 처형 집에서 반찬을 얻어먹으며 월부책이나 팔고 제약사외판사원을 전전했지만 그마저 견딜 심이 없어 고비를 못 넘겼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사진관의 초상화와 가족사진촬영의 외판원이 되어 돌아다니다 목이 마르면 동사무소의 열찬씨를 찾아와 ‘동생 잘 있나?’ 한 마디를 던지고 술이든 밥이든 열찬씨의 처분대로 얻어먹고 가다 어느 날 자는 잠결에 죽어버려 며느리와 세 손자까지 버든에 데려와 무려 열 식구가 복닥거려 단돈 한 푼이 그리운 판국이었다. 아무래 그래도 이건 영 아니다 싶은 열찬씨가

“누부야, 암만 그래도 조일아재가 우리한테 이라면 안 되지. 아부지 살았을 때 조일아재하고 아부지가 얼매나 친했노? 논을 매고 보리타작을 하고 도리깨로 콩 타작을 하고 큰 산에 나무를 하러가도 노상 둘이 붙어 댕겨 다른 마실사람들이 두 사람이 사촌간이 아이라 친형젠 줄 알았다 아이가? 풍물을 쳐도 아부지가 상쇠로서 깽깨미를 깨갱깨갱 치면 아재는 징잽이로 징을 지잉지잉 따라 치면서 신명을 돋우고 아부지가 병이 났을 땐 농사일도 도와주고 돌아가셨을 때는 염을 하면서

“형님, 와 이라능교? 인자 맘을 풀고 세상에 포원진 거 다 용서하이소. 어서 이 뻑뻑한 다리 좀 푸이소. 그래야 염을 하고 염을 해야 저승에 가지요. 옳지, 우리 형님 착하다. 옳지!’ 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을 내가 봤는데 말입니다. 우째 아부지가 돌아가시자 말자 이렇게 야박하게 아부지의 흔적인 땅을 다 팔아치우도록 한단 말잉교?”

“야야, 지 코가 석 잔데 돈이 좋겠나, 죽은 사촌형님이 좋겠나? 사촌보다 더 한 삼촌이라도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촌간이 아이가? 그런데 문제는 조일아재가 글도 모르고 세상물정도 모르는 형수 우리 엄마를 속였다 아이가? 아니 남도 아닌 사촌형수한테 사기를 치는 사람이 어딨겠노?”

“사기라니요?”

“세상에 촌놈이 서울 가면 등치고 간 빼묵는다 카디마는 촌사람 조일아재사기에 비하면 새발에 피, 그라고 뭐 모기 발에 워카라 카던가, 침 기가 차서 그것도 열찬이 니 이름을 팔아서 사기를 쳐서 그래서 니 따문에 우리 집이 날라갔다 말이다.”

“가만히 있는 내가 와요?”

“지난번에 니 새이가 지붕에 불을 지르고 그 점잖은 상천엄손한테 시껍잔치, 혼쭐이 나고는 다시 버든땅에 올 용기도 양심도 없었겠지. 그래도 좀 헐키 팔더라도 빨리만 팔아주면 구전을 넉넉히 준다고 안 꼬샀겠나? 거기사 척 하면 알고 툭 하면 담 너머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그래서 조일아재가 버든은 물론이고 언양의 거간꾼들한테까지 동네방네, 삼이부제에 소문을 내서 마침내 살라카는 작자가 나타났겠지. 그래서 부랴사랴 어무이한테 와서 일찬이가 자기한테 집을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인감도장을 내어달라고 하니 자기는 잘 모른다고 후제 아들이 오면 도장을 찍어 가라고 했겠지.

그런데 그 이튿날 형수님 큰 일이 났다고 다시 찾아왔단 말이다. 지금 면사무소에서 고속도로변 환경정비를 하는 데 큰아들이 선생이고 작은 아들이 공무원인 형수가 이렇게 불에 끄슬리고 다 무너져가는 헌집을 그대로 두면 큰일이 난다고 말이다.

특히 행정공무원인 열찬이는 잘못하면 사무실에서 모가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었단다. 언양의 거간꾼 하나를 면서기처럼 데리고 와서 말이지. 그래도 나는 도장이 어디 있는지, 누구 도장인지도 모른다고 하자 도장이 없으면 지장을 찍어도 된다면서 재빨리 계약서를 쓰고 어무이의 손도장을 찍어 갔단다.”

“그거는 틀림없이 사기가 맞네요. 허, 그 참 전국체전을 하는 부산구덕운동장 옆에도 다 찌그러진 판잣집, 루핑 덮은 골탕집을 다 그냥 두는 판에, 허어 그거 참 조일아재가 돈에 충독이 들었나, 간에 바람이 들었나, 눈에 명태껍데기를 발랐나?”

“야야, 그 기 아이다. 지금 우리가 조일아재를 원망하고 한숨이나 쉬고 있을 때가 아이다. 내 신평언니하고 명촌에 박서방네, 장촌에 고서방네를 일찌감치 오라고 연락을 해놨다. 저녁에 영주에 너거 새이랑 형수가 오면 조일아재를 불러 어무이하고 삼자대면을 시키고 집을 무르거나 안 되면 조일아재를 사기죄로 잡아넣자!”

“누님요, 그 기 쉽겠능교?”

“마 시끄럽다. 니는 글 배우고 대학교 댕겨서 이럴 때 안 쓰고 뭐할 끼고? 또 니 이름을 팔아서 사기를 쳤는데 분하지도 안 하나?”
“...”

 

남매가 설왕설래 분통이 터져도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찬바람이 생생 부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이제 중개가 된 <독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꼬리를 잡거나 마구간에 매어둔 염소의 수염을 만져보려고 열심히 콩깍지를 먹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열 마리도 넘었지만 언제부턴가 다시 늘리지는 않고 차례차례 잡아먹어 이제 딱 한 마리 남은 씨암탉을 쫓다 ‘야, 달걀이다!’ 방금 낳은 노란 달걀 하나를 쥐고는 차례로 볼에 비비며 따뜻하다고 신기해하고 아이어미는 혼자 산적을 꿰고 생선을 찌면서 지짐을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신평과 명촌과 장촌의 세 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하고 4월이면 입대를 하라고 영장을 받은 백찬이도 친구들과 술을 마셨는지 벌건 얼굴로 들어왔다. 순찬씨가 점호하듯 일일이 묻는 말에 신평의 큰 사위는 이미 환갑이 지나 힘이 들어 안 오고 명촌의 술고래 박서방은 술이 취해 골치 아픈 집안싸움에 끼어들어 난동이라도 부릴까 걱정되어 금찬씨가 집에서 아이들과 짐승들이나 돌보라고 막았다고 했다. 막내 고서방은 골치 아픈 일에 안 끼려고 스스로 빠졌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김해의 김서방도 안 온 셈이었는데 구시골의 큰집으로부터 버든의 처가가 팔렸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듣고 흥분하는 것을 역시 아이들과 소를 돌보라고 김해댁이 떨어뜨리고 온 것이었다.

해가 져 전깃불을 켜고 명촌과 장촌의 딸들이 가세해 저녁상을 차릴 때쯤 영주의 김해댁이 도착하자

“맏며느리 꼬라지 좋다! 와 제사 다 지내고 음복도 끝나고 이웃에 음식도 다 돌린 파젯날에 오지 우째 제사 전에 다 왔노?”

순찬씨가 단번에 가시 돋친 한방을 날리자

“형님요, 기차시간이 그런 데 우짜능교? 나는 뭐 늦게 오고 싶어서 늦능교?”

“뭐라꼬? 뚫린 궁가리라고 말은 잘도 한다. 맏며느리가 한 차 앞이나 하루 일찍 오면 와 입에 솔이 난다 카더나, 궁디에 치질이 난다 카더나? 에라이 이 깨을받은 인종아, 니가 맏며느리가 하는 짓이 영판 청깨구린 기라. 부지런해야 할 제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손아래동서가 일 다 해놓으면 오고 깨알받아도 될 논밭 없애고 집 팔아묵는 것은 눈에 불을 켜고 덤비고. 에라이, 이 물에 빠지면 욕심만 동동 뜰 인간아, 내가 진작 하느님 안 믿는 무당의 딸년을 올케로 안 볼라캤는데 저 야시 같은 년이 시집가면 틀림없이 교회에 댕기며 하느님의 딸이 된다고 맹세하고는 이적까지 교회문턱도 한번 밟은 일이 없으니 공연히 사람 같잖은 무당딸을 믿은 내가 내 눈까리 내손으로 찔렀지. 아이고 원통해라. 주여...!”

눈에서 불꽃이 튀더니

“그거는 그렇고 동생은 와 안 왔노?”

“숙직이라 카대요.”

“뭐, 숙직이라? 그 노무 학교는 어데 선생이 지 호문찬가? 우째 명절이고 아부지제사고 지 골 아풀 때마다 숙직이고? 그 노무 못된 인종, 논 팔아 묵고 집 팔아 묵고 지붕만디 불지를 때나 숙직을 하지.”

“...”

김해댁이 묵묵히 숟가락질을 하는데

“봐라, 올케야, 니는 시방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나? 아니, 몬 팔아 처묵어서 안달이 나던 집을 팔고나니 밥맛이 꿀맛이가?”

<계속>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