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④
김해댁이 묵묵히 숟가락질을 하는데
“봐라, 올케야, 니는 시방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나? 아니, 몬 팔아 처묵어서 안달이 나던 집을 팔고나니 밥맛이 꿀맛이가?”
“...”
“바린 말해라! 니가 어무이고 조일아재고 다 조정했제? 사기든 공갈이든 우쨌기나 동생들 도라카기 전에 집 팔아묵을라꼬?”
“내가 뭐로 아능교? 거기사 어무이가 지장을 찍어조서 그렇지.”
“뭐라꼬? 니 정 그라면 조일아재고 니고 영주에 니 서방이고 모조리 콩밥 묵는다. 내 이번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가만히 안 있는다. 세상에 진장골짝논만 해도 내캉 아부지캉 옆에 있는 산이고 웅덩이고 되는 데로 띠지 여서 그만큼 넓어지고 해마다 남창에 응진이 외삼촌이 도지를 받으러 와서 아부지는 닭을 잡고 어무이는 주개떡을 해서 그 체체거리는 잔소리와 심술을 다 달개고 다리에는 거무리가 붙고 등더리에는 새파리가 침을 쏘는 한여름에 아직 중학생이던 열찬이가 나락패기가 눈을 찌르는 망시논을 맨다고 등더리가 다 끄실리서 흑국 놈이 되던 그 땅을 너거는 단지 장남이라는 골리로 그렇게도 모질게 팔아묵었으면 됐지, 우째 아부지어무이가 평생을 살며 우리 칠남매를 키운 집대가리를 냉큼 팔아 인자 아부지가 제삿밥을 얻어묵으러 올 집도 없이 맨들었단 말이고?”
“...”
“그러면 인자 어무이가 말해보소.”
“내사 뭐로 아나? 조일떡 아주바님이 알지.”
“...”
이번에는 순찬씨가 기가 막히는지 한참이나 한숨을 쉬다 마지막엔
“주여...!”
길게 뽑고는
“그라면 새이 니는 우째 생각하노? 집안에 맏이로서.”
“출가외인인 내가 뭐로 아나? 똑똑은 김 서방네 니가 알지?”
“이런 난리를 봤나? 그라면 명촌에 박 서방네 니는?”
“새이야, 큰 새이가 모리는 일을 나는 우째 아노?”
“...”
굳이 장촌의 막내딸까지 물어볼 일도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순찬씨가
“내 저 무당의 딸년을 가만히 두면 사람새끼가 아이다. 차남 열찬이 하고는 아까 이바구를 했지만 정지에 작은올케야, 니도 둘오너라. 니도 인자 알 거는 알아야 평생을 두고 니 서방 원망을 안 하제. 그라고 백찬아, 니는 어서 조일땍에 가서 아재 좀 오시라 캐라. 만약에 안 오시면 우리가 고발을 해서 나중에 콩밥을 묵어도 원망하지 말라 캐라!”
하고는 백찬이를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는데
“얄궂다. 지장은 어무이가 찍었는데 조일아재는 와요?”
죽은 듯이 눈을 감았던 김해댁이 남의 말처럼 심드렁하게 던지자 마침내 순찬씨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이, 이, 이 못된 년이!”
머리채라도 잡을 듯이 일어나는 서슬에 밥상이 기울면서 국그릇이 쏟아지고 난장판이 되는데
“보소!”
이번에는 열찬씨가 고함을 치며 일어났다.
“아부지 제삿날에 이기 다 무슨 꼴잉교? 김해누님도 좀 앉으소. 그라고 내 말을 좀 들어보소.”
운을 떼고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
“마음 같으면 집도 무루고 조일아재도 잡아넣으면 얼매나 좋겠능교?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되는 기 첫째는 지금 형님형수가 욕심이 똥끝에 차서 눈에 비는 기 없으니까 요번에 집을 물러도 그 집 팔아묵기 전까지는 속에 병이 나서 허패가 디비질 판이니 우짤 낑교? 세상에 묵고지비를 이길 항우장사가 없다 안 카등교?
그라고 만약에 조일아재를 사기죄로 잡아 넣을라카면 형님형수는 물론 어무이까지 경찰서에 불려가고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우째 늙은 어무이를 경찰서에 보낸단 말잉교?”
순간 내려감았던 김해댁의 눈이 반짝하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솟구친 순찬씨가
“니는 그라면 우짜자는 말이고?”
다급히 묻고 좌중의 시선이 모두 열찬씨의 입으로 향하는데
“다 포기하고 다 잊어뿌자 말입니더. 아부지가 남의 집 머슴을 살고 어무이가 복숭장사, 꼬칫가루장사를 하고 우리 형제들이 태어나서 자란 집이지만 어무이를 욕보이지 않으려면 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요. 차남인 내가 먼저 포기할 테니 누님들도 다 마음을 비우고 백찬이 니도 그마 다 잊어뿌고 군에나 잘 댕기오너라.”
“자알 한다. 니가 그래 앙금이 없으니까 이적까지 셋방살이 못 면하고 처자식을 고생시키는 거지. 니가 뭐 부처새끼가, 예수님이가? 세상에는 용서할 일이 있고 못할 일도 따로 있지, 여북하면 창녀를 보고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사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한 예수님도 성전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세리와 엉터리 성직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채찍으로 처라면서 탁자를 다 엎었겠노? 아이구, 세상에 같은 형제면서도 우째 하나는 욕심이 하늘 끝을 찌르고 하나는 물항대복 호박단지고? 아이구, 세상에, 나는 인자 모린다이!”
마침내 순찬씨도 뒤로 물러앉아 중얼중얼 기도를 시작했다.
“다들 알았지요?”
좌중을 둘러본 열찬씨가 플래시를 챙겨들고 아래채와 큰 채 마구간과 변소가 있는 재 깐, 소를 매던 마닥자리와 우물가와 장독간을 돌아 뒤란의 작은 정지와 독들을 쓰다듬고 커다란 대봉감나무를 플래시로 비쳐보더니 깜깜한 대밭 속으로 들어 가버렸다.
명촌댁과 세 딸도 넋이 빠졌고 죄 없는 영순씨만 엎질러진 국그릇과 상을 치우고 방바닥을 닦았다. 짐승조차 침울한 집안분위기를 아는지 닭도 염소도 개도 기척이 없었고 아이 둘도 겁먹은 얼굴로 정지에서 불을 때는 제 어미의 치마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막내 백찬이도 제사지내기 전에는 오겠다며 동갑친구 인도네 집으로 가고 무얼 잘 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김해댁은 큰 채의 안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 훌쩍거렸다. 하현달이 떠오를 때쯤 ‘주여, 주여!’를 반복하는 순찬씨의 기도가 절정에 달했는지
“저 죄 많은 딸을 용서하시옵고 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늙은 딸도 그 죄를 사하여주시옵고 객지에서 몸 붙일 데 하나 없이 남의 처마 밑으로 전전하는 저 어리석은 아들과 그 아내와 어린 아이들도 긍휼히 여기시사...”
순찬씨의 목소리가 조금씩 고조되면서 울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저녁 열시쯤에 백찬이가 돌아오자 남매들이 비잉 둘러앉아 제사준비를 시작했다. 백찬이가 차분하게 오징어몸통에 칼집을 넣고 삶은 달걀을 까서 도라지꽃처럼 칼금으로 장식하는데 본래부터 손재주가 없는 데다 기분이 엉망인 열찬씨가 밤 껍질을 벗기고 속껍질 보네를 긁어내고 밤을 치는 모습이 너무나 엉성했는지
“보자, 동생아. 니 그라다가 손 비겠다. 인 도.”
금찬씨가 칼을 받아들고 능숙하게 벗겨나갔다. 방금 큰 채에서 나온 김해댁이 언제 울었냐는 듯이 빙긋 웃으며 부엌으로 나와 제삿밥을 앉히는 영순씨를 도와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자 막내딸 덕찬씨도 쪼그려 앉아 불을 땠다. 방안에는 갑작스런 북새통에 얼이 빠진 명촌댁이 눈을 뜬 건지, 자는 건지도 모르는 얼굴로 벽에 기대앉았고 사람 좋은 큰 딸 갑찬씨도 그림처럼 조용히 노모의 곁을 지키다가
“세상에 구신이 어딨노? 우리 아부지 구신이 있으면 우리 형제가 이 분란이 일어나고 갈배기논, 진장밭이 팔리고 평생 살던 집이 넘어가는 거를 보고만 있겠나? 무단히 우상이나 숭배하고 난리야. 주여, 부처님이여, 삼심할매여, 이 어리석은 아들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중얼거리며 큰 채로 건너가 버렸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장남마저 빠져 김이 샌 제사를 그럭저럭 마치고 식구들이 비잉 둘러앉아 음복을 할 때였다. 친구 인도와 같이 읍내로 나가 술을 먹고 왔는지 백찬이는 그 좋아하는 생선이나 달걀도 거들떠보지 않고 고개만 끄떡끄떡 잠이 오는 모양이었고 열찬씨 혼자 부지런히 퇴주잔의 막걸리를 마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동생 니는 무신 술을 그래 많이 마시노? 술 잘 묵는 이태백이 술 묵자고 날 불렀나? 하는 우리 아부지 명촌이손 아들이 아이라칼까 봐서 그렇나?”
하면서 순찬씨가 잔을 뺏으려 하고 열찬씨는 기어이 한 잔을 더 마시는데
“참, 새이야. 마구깐에 저 얌생이하고 강생이를 우리 집에 가져가서 키우면 안 되까?”
주인인 어머니나 백찬이가 번연히 있음에도 명촌의 금찬씨가 가장 입김이 센 순찬씨를 바라보는데
“내가 아나? 엄마한테 말해봐라.”
순찬씨가 바통을 넘기다가
“박서방네 니도 그렇다. 친정집이 넘어가고 부모형제가 풍비박산이 나는데 니는 지금 기껏 얌생이 한 마리, 똥개 강생이 한 마리나 챙기나?”
가시 돋친 한 마디를 던지는데
“그라면 저 염소를 우짤끼고? 장날이 아니라 팔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우 어불리서 잡아묵을 수도 없고. 마침 우리 집 뒤가 전신만신 밭이고 산이나 내가 돌라는 거지.”
금찬씨가 멋쩍어하는데
“참, 우리 아부지가 손재주가 좋아서 도리깨, 밀게, 곡식 까부리는 채이, 술 거리는 채, 똥바가지, 남바가지 덕시기, 질매, 소 호오리와 코꾼지 만들어 놓은 거 이런 기 정말 야물고 쓰기 좋다고 우리 고서방이 혹시 가가는 사람이 없으면 챙기오라 카던데.”
막내 덕찬씨가 나서자
“그거사 뭐 그라든지.”
수긍하면서
“그라면 새이 니는 뭐 가갈래”
언니 갑찬씨를 바라보는데
“몰라, 내사 마. 너거들 가가고 남는 기나 있으면 몰라도.”
“새이 니는 그기 탈이다. 사람이 우째 그래 욕심도 없고 달기도 없노? 그라니까 만날 시어마시한테 당하고 전처자식한테 속고 그렇지. 그래도 명색 큰 딸에 우리 7남매 세상에 나오도록 엄마배를 열고 나온 문 여린데 뭐를 달라고 당당하게 말을 좀 해봐라, 말을.”
“모리겠다. 내사 마 됐다.”
이러고서 한참 침묵이 흐르다가
“참, 엄마하고 우리 딸네들이 열심히 짜던 가마이틀이 안 있나? 박 서방네야, 니가 손끝이 젤 야무니까 니가 가주갈래?”
“으언제. 내는 안 할 끼다. 요새 가마이 치기나 싸가는 사람도 없지만 겨울만 되면 천 날 만 날 짚 뚜디리서 새끼를 꼬고 가마이를 친다고 손이 말캐 트던 일로 생각하면 마 엉성시럽다. 세상에 짚 만지는 거만큼 손이 잘 트는 기 어디 있을까? 얼매나 손이 텄시면 엄마가 새벽마다 요강에 손을 씻고 소기름 육초를 발랐을까? 내사 마 엉성시럽다.”
금찬씨가 단호하게 잘랐다.
그랬다. 열찬이와 덕찬이와 금찬이의 삼남매는 겨울만 되면 짚북데기를 벗기는 짚을 간출리고 새끼를 꼬고 명촌댁이 짜주는 가마니의 귀를 베고 꿰매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계속>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