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45)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⑤
대하소설 「신불산」(245)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09 07:30
  • 업데이트 2022.09.14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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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⑤

그랬다. 열찬이와 덕찬이와 금찬이의 삼남매는 겨울만 되면 짚북데기를 벗기는 짚을 간출리고 새끼를 꼬고 명촌댁이 짜주는 가마니의 귀를 베고 꿰매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처녀티가 나던 금찬씨가 마을의 친구집에 갈 때도 언제나 막내 백찬이를 업고 짚을 들고 가 기어이 내일 가마니를 앉힐 새끼를 꼬아 와야 했고 그나마 사내라고 열찬씨는 큰물이 지던 해 큰 산에서 떠내려 온 넓고 커다란 돌을 남천내에서 주워온 떡을 치는 안반에 덕찬이누나가 잡고 뒤집게 하며 짚을 치고 가마니의 귀를 베고 꿰매는 일을 했는데 날씨가 추워 방안에 가마니꿰매는 틀을 놓고 아버지 명촌이손이 간월이나 신불산 장자꼴, 금강골에서 베어온 아주 야문 물푸레나무나 노각나무로 깎은 나무바늘로 가마니를 꿰매면

“아이구, 이 일로 우짜노? 우째 솜씨도 꼭 지 어마이를 빼 닮아서 재주가 메주고? 너무 속에 글도 잘만 배우면서 니는 우째 뻔히 비는 손재주는 그렇키도 몬 배우노? 그래서 후제 커서 뭐해 묵고 살겠노? 하기는 굼벵이 구부는 재주 있다고 그래도 속에 든 글로 묵고 살랑가?”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장날마다 하루장 딴 5일간에 친 스무 장 정도의 가마니를 지고 열찬이가 가마니를 팔러 가면 다른 사람들의 가마니는 우선 겉이 매초롬하고 노란 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들어간 것처럼 모양이 좋았는데 솜씨가 없는 명촌댁의 가마니는 삽살개의 머리통처럼 짚북데기가 부풀부풀하며 매끈하지를 못 했고 열찬이의 바느질 솜씨도 엉성해 좀 채로 손님들의 눈길을 끌지 못해 일부러 두꺼운 가마니를 찾거나 학생이 장사를 하는 것이 딱하다고 사주는 사람을 기다리다 장날마다 맨 뒤에 떨이를 했다.

또 한 달에 한 두 번 있는 정부의 매상에도 단 한 번도 1등급의 빨간 도장을 받지 못 하고 매번 2등급 파란 도장을 받아 검사원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래저래 아픈 기억을 더듬던 열찬씨가

“참, 누부야! 새끼 꼬는 짚을 찧던 돌, 안반이 안 있나? 우리 집 안반이 버든동네서 제일 크고 잘 생깄다 카던데 그거는 누가 가갈 끼고?”

6남매가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 유년의 기억이 서린 떡을 치고 짚을 치던 삼각형의 널따란 돌을 떠올리는데

“거기사 무거버서 누가 가가겠노? 말이 난 김에 그 짚 찧던 메하고 삽, 곡괭이, 도끼, 소시래이, 호매이도 내가 가가도 되겠제?”

금찬씨의 말에 순찬씨가

“가시나가 보기보다 욕심도 많네. 그런데 낫은 와 안 가가노?”

“호매이하고 깨이는 뭐로 끍어 오는 기라 살림이 붓고 낫하고 칼하고는 뭐로 삦어낸다고 안 가간다 안 하더나?”

“긇나?”

또 한참 침묵이 흐르는데

“그까짓 얌생이 한 마리나 가마이틀은 아무것도 아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돈 되는 거는 감나무하고 밤나무 아이가? 특히 뒤양깐에 도감나무는 온 마실사람들이 다 탐을 내던 거 아이가?”

순찬씨의 말에 열찬씨는 삽짝 옆에 있던 납딱감, 반시나무와 엉게나무 하나, 상천댁 담에 붙었던 고염나무, 그리고 한여름에 그늘에 멍석을 펴고 점심밥을 먹던 잎이 무성하고 키가 크던 대봉감나무를 떠올리고 있었다.

심심하면 나무에 올라가 튼튼한 가지사이에 앉거나 기대어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가을이 되어 어른의 주먹이나 웬만한 주발만큼 큰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며 속에 새까만 심이 박히면 엄청 단맛이 강했는데 누나들은 그 새까만 심에 꿀이 들어있다고도 했다.

한겨울이 되어 집집이 홍시를 장에 내어다팔 때 열찬씨의 도감홍시는 다른 집의 창감이나 반시보다는 서너 배나 더 비싼 값을 불러도 부산서 온 도매상에게 짐을 부리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또 제사에 쓸려고 어머니가 그 홍시를 자기키보다도 더 높고 큰 독에 넣어놓은 것을 까치발을 든 열찬씨가 겨우 뚜껑을 열고 꺼내려다 독 속으로 거꾸로 빠질 번 한 일도 있었지만 설날이 되기 전에 대부분의 홍시가 사라져도 명촌댁은

“허허, 우리 집에 참 희한한 쥐가 있네. 그 두꺼운 독도 뚫고 쥐똥도 하나 안 남구고 홍시를 말케 다 묵고가는 기라.”

하고 혀를 끌끌 차면 아버지는 넌지시 열찬씨를 바라보며 웃고는 했다.

그리고 대밭에는 커다란 밤나무 두 주가 있어 추석전후 아침에 일어난 열찬씨가 제집 안에서 느긋이 알밤을 주우면 울타리 밖의 무밭을 뒤지던 동네아이들이 엄청 부러워하곤 했다. 그 밖에도 집안에는 상천댁의 대밭사이에 놓인 돌담위에 좀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매는 잘 안 열지만 해마다 봄이 오면 자주색의 엄청난 예쁜 꽃을 피우는 돌복숭아나무가 있어 마을사람들은 저 음기가 강해 귀신도 범접을 못 한다는 요망한 나무를 딸이 넷이나 있는 집안에 심는다고 흉을 보았지만 아버지 명촌이손은 개의치 않았다. 또 대울타리를 자세히 보면 대나무와 밤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등칠기라고 부르는 등나무넝쿨이 있어 소코뚜레를 만드는데 썼고 잎의 뒷면이 하얀 닥나무와 뽕나무도 하나씩 있어 줄기를 벗기거나 빨간 뿌리를 캐서 팽이채로 쓰기도 했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또 직접 가서 만져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집안과 기물들, 제각기 20 년 이상을 살아온 집안의 구석구석, 심지어 뒤양깐을 돌아가는 모서리 커다란 여물 섬 옆에 놓였던 오줌단지까지 일일이 떠올리면서 모두 상념에 잠겼는데

“참, 새이야, 다른 사람은 다 갈라주고 새이 니는 아무꺼도 안 가갈 끼가?”

문득 생각난 듯 금찬씨가 순찬씨를 쳐다보는데

“내사 마 아무것도 가갈 생각이 없다. 구질구질한 거를 뻐스깐에 실고가면 운전사가 구신나온다 칼 끼고...”

말을 흐리던 순찬씨가

“아, 맞다! 나는 새미에 두레박하고 빨랫줄 바치는 간지깨이 가주갈 끼다.”

그 제서야 생각난 듯 순찬씨의 눈이 반짝했다.

“와, 그거는 뭐할라꼬? 집집이 수도가 들어오고 빨래건조대가 나오는 판에.”

“아이다. 그기 그래도 우리 아부지가 장에서 미군철모 화이바를 사와가주고 뒷밭에 대나무를 비서 만든 거로 나이로 치면 열찬이하고 비슷할 끼다. 우리 열찬이가 새미에 두 번이나 빠졌을 때 멀뚱멀뚱 쳐다보던 놈이란 말이다. 그 30년도 더 된 바가치나 장대가 맨질맨질 닳은 거로 보면 우리 아부지, 어무이가 생각날 꺼 아이가? 간주깨이도 그렇고.”

순찬씨의 눈길에 오만 추억과 감정이 서린 것 같았다.

ⓒ서상균

그렇게 대충 분배를 마치고 김해댁과 영순씨와 두 아이는 큰 채에서, 나머지는 아래채에서 가로세로로 대충 누워 잠을 자고 다들 일어나 세수를 하거나 집안을 돌아보는데 금찬씨가

“새이야, 그라고 보이 달구새끼가 빠졌네. 우째 우리가 그 생각을 못 했을꼬?”

순찬씨를 부르자

“글키 말이다. 저걸 우짜지?”

하는데 지나가는 김해댁이 들었는지

“형님, 지금이라도 열찬이대름 보고 잡아라 캐서 무시 넣고 벌겋게 볶을까요?”

역시 순찬씨를 바라보는데

“마, 치아라. 니는 논밭 팔고 집 팔아갔으면 됐지. 마지막 달구새끼 한 마리까지 니 뱃속에 처넣을라고 지랄이가?”

일단 무안부터 주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래 됐다. 신평새이가 아무것도 안 가주갈라카는데 달구새끼라도 가가서 형부 고아자시라 카자. 형부도 지금 나가 환갑진갑이 다 지낸 노인이 아이가.”

하고는 열찬씨를 불러 암탉을 잡아 날개를 꺾고 다리를 단단히 묶으라고 했다.

암탉을 묶어놓은 뒤 열찬씨는 측간에 들러 거름 밭과 훌쩡서리를 비롯한 농기구들을 쓰윽 한 번 둘러보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간의 반시나무와 엉개나무를 쓰다듬고 염소가 매인 마닥자리의 쇠말뚝도 두어 번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어 우물가로 가서 우선 두레박으로 물을 떠 한 모금 마시고는 순찬씨가 말하던 그 미출미출 손때가 배어 마알간 화이바와 장대를 바라보다 어릴 적에 자신이 두 번이나 빠졌다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잘 자라지도 않고 새끼도 낳지 않고 늘 고만고만한 크기로 헤엄치는 미꾸라지가 서너 마리 있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그 옛날 유년시절과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물에 비친 얼굴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이어 작은방에 들어가 큰방과 사이에 뚫린 봉창문과 그 위에 놓여 두 방을 동시에 비추는 알전구를 만져보고 큰 방의 낡은 옷장과 이불을 얹는 시렁인 실건도 쓰다듬고 정지문 앞에 놓인 둘레판과 아비지의 독상도 만져보았다. 다시 부엌에 들러 노란 불개미가 줄을 지어 기어가는 부뚜막이 작은 솥, 큰 솥의 소두뱅이를 쓰다듬어보고 씻은 그릇을 얹어놓는 살강과 씻기 전의 그릇을 불리고 씻는 기명(器皿)통, 커다란 물통과 사구, 놋그릇과 사기그릇과 수저통을 일별하고 제사 때 쓰려고 나무 밑에 묻어둔 알밤을 불 때는 척 하면서 부지깽이로 파먹던 정지바닥도 한 번 손으로 훑어보았다.

이어 부엌과 경주댁담 사이의 좁은 골미창을 지나 뒤란의 도감나무를 잡고 이윽히 나뭇가지 사이의 하늘을 응시하는 눈동자에 물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또 대밭의 등칡과 닥나무와 뽕나무, 돌복숭나무를 둘러보고 상천댁의 큰 감나무 가지가 넘어와 그늘을 지우던 돌담 아래 해마다 여름이면 섬뜩하도록 빨간 닭 벼슬처럼 생긴 찰남생이(天南星)열매를 떠올리며 소죽을 끓이던 작은 정지, 그 역시 자신이 불붙은 부지깽이로 나무다발을 찔러 불을 냈다는 아궁이를 더듬어보고 어머니가 숨겨놓은 홍시를 꺼내먹던 커다란 옹기독을 보고는 그만 억장이 무너져 마당으로 돌아 나오다 아직도 놓여있는 오줌독에다 시원하게 오줌을 누고 허허 웃었다.

가마니틀이 놓인 움막과 소를 키우던 여물통이 놓인 마구깐을 돌아 다시 쇠똥과 재 같은 부드러운 거름을 저장하고 농기구를 보관하는 측간에 들러 자신은 물론 아버지의 손때가 반질반질한 쟁기와 써레를 비롯해 삽과 괭이 같은 농기구와 덕찬이누나가 탐을 내던 도리깨와 채이라고 부르는 키와 술 그르는 채와 밀게, 떡메와 봉태기라 부르는 멱둥구리, 싸리채반 산대미, 나무함지 반티와 거름소쿠리까지 꺼내어 마당에 진열하기 시작하자 백찬이도 돕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열찬씨가

“자, 마당에 다 내놨으니까 알아서들 들고 가이소!”

소리를 지르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물건이 아니요, 달이면 달마다 오는 물건도 아니요. 이 봉태기와 개똥망태만 해도 저 신불산아래서 제일 솜씨 좋은 명촌이손이...”

약장사흉내를 내다 멋쩍어 그만두고 금찬이, 덕찬이 두 누님이 장보러 온 사람들처럼 물건들을 살피는데

“자, 이 놋그릇하고 숟가락과 사기그릇도 누가 가갈 사람이 있으면 다 가가소. 이불하고 담요도 마찬기지요!”

김해댁이 부엌의 기물들을 들고 나오며 비죽이 웃었다. 내일이면 이 지겨운 버든집을 떠나는 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 놋그륵 하고 옹추발이는 아부지가 쓰던 건데 가주가서 제사 때나 쓰지?”

순찬씨의 말에

“그륵은 스덴세트로 몽땅 사놨심더.”

김해댁이 의기양양한데

“자알 한다. 새빠지게 모아놓은 시아부지 재산을 못 된 며느리가 솔랑솔랑 빼가디마는 논밭전지 다 팔아서 기껏 스덴세트 밥그륵이나 샀나?”

하고 뜸을 들이더니

“그라면 어무이 덮던 이불하고 옷가지는 다 우짤 끼고?”

“그것도 카시미롱 이불 다 사놨심더. 새집 사서 이사가면서 저 구신 나올라카는 걸레쪼가리는 말라꼬 가갈 낑교? 괜히 송신해서 마음만 심란하구로.”

“...”

 

남남으로 김해 한림면에 금음리 빈촌에서 만나서 어찌어찌 우여곡절끝에 시누이올캐가 된 두 여자 중의 하나는 하늘로 올라갈 것 같고 하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자, 아무도 안 가가면 고물장사 불러서 다 팔아치울 겁니더. 뭐든지 아무라도 가주가이소!”

김해댁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던 열찬씨가 삽을 들더니

“백찬아, 니 여 좀 와봐라!‘

부르고는

“오늘이 우리가 대대로 살던 집에 마지막으로 있는 날이다. 인자 이 집에 올 수도 없고 저 달고 시원한 새미 물도 물 수가 없다. 우리 3형제가 농사꾼자식으로 태어나 농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우리가 살던 집에 있던 나무라도 하나씩 캐 가자. 그래서 후제 우리 땅이 생기면 그 뿌리에 붙은 고향의 흙으로 다시 나무를 심자. 크고 좋기야 도감나무하고 빰나무가 최고지만 버스에 실을 수도 없으니 저 화단에 박태기 콩나무나 황매화나 장독간에 난초, 논또라도 한 뿌리씩 캐가자.”

열심히 생각하는데

“새야, 내 안주 내 집도 없지만 곧 군에 갈 낀데 나무가 다 뭐꼬? 나는 소용없다. 새이 니나 캐가소.”

심드렁한 백찬이를 보고

“그라면 니 꺼 하고 형님 꺼 하고 두 개 캐서 영주형님집에라도 숭가라.”

“아임더. 영주형님집에 내 가봤는데 우째 된 판인지 엉뚝우에 들은치기 집을 사서 집 전체가 방구돌 우에 놓인 기라 나무는 고사하고 정구지나 풀 한 포기 아니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심더.”

도무지 방법이 없어 열찬씨가 혼자 박태기콩나무 하나를 캐서 가지를 자르고 헌 양철바께스에 담았다.

“자, 인자 가입시더. 누부들은 안 갈랑교?”

열찬씨가 영순씨에게 가자는 눈짓을 하고 영순씨가 아이들의 옷을 챙겨 입히는데

“너거는 먼저 가거라. 나는 우리 엄마가 고향에서 마지막 자는 오늘 밤에 엄마하고 같이 잘 끼다. 생각 같으면 저 야시같은 올캐 하고 단둘이서 죽고살기로 끝장을 내고 싶지만 너거가 가자말자 지는 또 지대로 어데 마실이나 댕기면서 자랑이 늘어지겠지.”

하면서 또

“주여...!”

를 길게 뽑았다.

<계속>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