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46)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⑥
대하소설 「신불산」(246)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12 11:09
  • 업데이트 2022.09.12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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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⑥

“아이구, 우리 친정 버든동네가 와 이 모양이고?. 그전에는 바람쟁이 오구장이 동네여자 꼬셔서 극장댕긴다고 동네 산 다 팔아묵고 저번에는 마실유지 둔터양반이 동네 산에 채비지 다 팔아묵고 자살하디마는 인자 우리 친정 명촌댁이 그 꼴이 났네.”

덕찬씨의 말에

“야야, 그기 무신 말이고? 내 오 구장이 동네 산 팔아묵은 거는 알아도 둔터양반이바구는 금시초문이다.”

금찬씨의 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카디마는 백리 넘는 김해에 사는 나는 아는데 10리 밖 명촌에 사는 니는 와 모리노?”

순찬씨가 나서더니

“고기는 씹어야 맛 말은 해야 맛이니 기왕 우리 친정 망하고 버든동네 망한 판에 둔터양반이나 한 번 씹어보까?”

하고는

“부산동생 니는 들었제?”

“아, 아임더.”

“그러나? 그러면 들어봐라.”

하니 모두들 귀를 쫑긋하는데 한참 기억을 더듬은 순찬씨가

“전에 오 구장이 동네사람들 도장을 몽땅 거두어놨다가 비료대금이니 농약대금이니 대여양곡이니 해서 몽땅 떼먹고 감당을 못해 농약을 죽은 거사 다들 알제?”

“알다마다. 새이야, 그 때 정신없는 우리 오빠가 묵으면 낫는다고 그 깨을받은 우리형부가 밤에 화장장에 뼈를 주우러 다 갔다 아이가?”

금찬씨의 말에

“아이고 언니야, 그 골 아픈 이야기를 말라꼬 또 끄잡아내노?”

덕찬씨가 가로막자

“가시나 니는 마 잔주코 있어라. 죄는 죄고 공은 공이라고 가시나 니 하고 천치 같은 큰 언니는 그저 주는 밥이나 묵고 고이 자랐지만 죄 없는 우리 순찬이언니하고 내 하고 또 불쌍한 우리 열찬이는 그 호랑이 같은 우리 아부지가 시키는 데로 논일이면 논일, 밭일이면 밭일, 나무를 하라카면 나무를 하고 공장에 가라카면 공장에 가고 식모를 가라카면 식고를 가면서 살았다 아이가?”

“지 팔자 지가 만든다고 새이 니도 내맨쿠로 안 하면 되지?”

“가시나 팔자 좋은 소리 하네. 당장 우리 엄마아부지 한테 맞아죽기도 하겠지만 그 때 우리 형제들은 우짜든동 원질인 공부 잘 하는 장남 일찬이오빠를 위해서면, 앞으로 큰 인물이 되어 집안을 일으킬 장남이지만 몸이 아픈 그 장남을 위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나 내었다 아이가?”

“...”

“그래 맞다. 그렇게 전 가족이 오다싸고 키운 내 동생, 머리 좋아 천재소리 듣던 일찬이가 저 욕심 많은 무당 딸을 만나서 눈에 비는 기 없다 아이가?”

다시 순찬씨가 입에 거품을 무는데

“꼭 오빠 잘못만은 아니지. 월깨가 나이는 내카 동갑이지만 가시나 못 된 거는 김해가시나고 크나 작으나 아 밴 거는 동래가시나라고 얼매나 못 되고 간짜바리가 크면 저녁마다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야시처럼 서방의 얼을 빼고 날만 새면 시누들 몰래 동생들 안 주고 부모재산 팔아갈라고 눈에 불을 켜고 말이다.”

하는 순간

“야, 박서방네야, 보자보자 카이 니가 너무 심하게 말을 하네. 내가 그 돈 가져다가 뭐 사치를 했나 춤바람이 났나? 다 몸 약한 너거 오빠, 성질이 더럽어서 술만 묵으면 교장선생 술상을 엎고 멱살을 잡는 너거 오빠 살릴라고 그랬지.”

해서 잠시 모두들 멈칫하는 사이

“아이구, 내가 없는 집에 시집을 와서 평생 책만 읽고 훌쩡써리질도 못 하는 서방하고 자식에 죄없는 시동생 백찬이 안 굶길라고 언양 장바닥에 안 해본 장사가 없는 거, 그래서 묵고 산 공은 어데 가고...”

기회를 잡은 김해 댁이 단번에 눈물을 글썽이며 전세를 역전 시키려는데

“마, 시끄럽다. 월깨 니는 입이 남천내공굴 물문만 해도 그런 말 할 자격 없다. 내가 하느님 안 믿는 무당딸년이라고 우리 월깨 안 본다고 할 때는 당장이라도 교회에 나갈 끼라고 말하고는 끝끝내 교회 문 앞에도 안 가고 장구치고 북치고 굿이나 하고.”

순찬씨가 눈을 딱 부라리자 그만 김해댁이 눈을 내리깔았다.

“좌우간 그 오구장사건 때 둔터어른 그 양반이 반천인가 반연인가 동네 산을 팔아서 뒤 설거지를 한 일은 다들 알 끼고. 좌우간 그 일만 해도 나중에 마실사람들이 뒤를 캐보니 오 구장 저지른 빚 갚는 데 천원을 썼으면 나머지 자기가 띠묵은 돈이 5천만원 택은 된다카더마는.”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카디마는 진짜가?”

“그 점잖은 6촌 선동신손이 알고 땅을 쳤다 카더마는.”

“아, 그 점잖은 신근수씨가?”

ⓒ서상균

3.1절, 광복절기념식은 물론 언양바닥의 모든 학교 졸업식에 참석해서 언양에서는 보기 드문 대머리를 번뜩이며 가끔 인삿말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순사들의 서슬이 시퍼런 일제시절부터 언양청년회장을 맡아 겉으로는 생활개선운동, 속으로는 독립운동을 하던 기세를 살려 단골로 <만세3창>을 선창하는데 그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고 기백이 대단한지 언양사람 모두가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자기 증조부 석암선생이 버든마실에 전장을 마련하고 후학을 가르치며 언양바닥 제일의 선비이자 문장으로 향교와 작천정에 현판과 시가 걸릴 정도였는데 자손이 늘어나 부산 같은 객지로 여남은 집이 나가고도 버든에만 해도 다섯 집이 남았는데 그 중 한 집이 저렇게 동네를 말아먹으니 나머지 네 집이 얼굴을 못 들겠다고 말이지.”

“아, 그건 그렇고 그 둔터어른이 우째 동네를 말아묵었는데? 새이 니는 짜린 밤에 미영만 짜지 말고 어서 이약을 좀 하소.”

“그래. 참 그렇제? 그래 나는 잘 모리지만 열찬이 니는 알 끼다 마는 경지정리를 하면 채비지라는 공짜 땅이 생긴다면서?”

“그렇지요. 구불구불한 논두렁도 정리하고 반듯하게 길을 닦고 수로를 내면 논밭이 반듯해져 농사도 짓기 쉽고 땅도 늘어나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처음 자기 땅이 들어간 비율만큼 땅을 떼어주고도 좀 남는 땅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채비지, 그러니까 마을회관 같은 공공시설을 짓거나 팔아서 비용을 댄다는 땅이라고 하지요.”

“그렇지. 그라이 말이 되네. 그러니까 마구뜰이고 밤살매고 어데고 길가에 붙어 나중에 집을 짓고 땅값이 올라갈 만 한 자리는 몽땅 채비지로 만들고 그걸 부산의 땅장사한테 몽땅 팔아서 챙겼다더라.”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네.”

열찬씨의 말에 모두들 수긍하는데

“그 뿐이 아니란다. 옛날에 우리 갱빈밭 같은 장부에 없는 땅들이 있제?”

“아, 그거사 큰물이 한 분 지면 있던 땅도 파묻히거나 날아가고 없던 땅도 생기는 판국이라...”

“그런데 그 기 아이라는 거야. 왜정시대 처음 측량을 할 때 그 때도 갱빈에 쪼맨하게 밭을 부치는 집이 있어 그 중에 일부는 면이나 군의 장부에 따로 주인이 있다는 거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따로 주인이 없는 하천부지는 국유지나 공유지로 관리하지만 그 가운데 장부가 있는 땅은 매매, 그러니까 누가 팔아묵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장부에 있는 사유지는 몽땅 그 양반이 팔아묵은 기라. 우리 갱빈밭이사 없이 산 우리 조상이 옛날부터 장부가 있었을 택이 없고 어느 해 수해가 지고 그냥 모래땅 여남은 평이 생길만 하면 우리 아부지가 밭을 쪼아 정구지를 심고 보리를 심고 그렇게 넓힌 기 한 200평 됐나? 그렇지만 이조이손 같은 집은 번듯한 돌다무락 안에 뽕나무까지 심긴 갱빈 밭이 500평도 넘었다 아이가? 그 밭이 근 100년 전에 김아무개, 박아무개로 되어있으니 농지위원장인 둔터어른이 몽땅 팔아챙긴 거지.”
“아니, 그러면 농지위원장이면 동네 땅을 함부로 팔아 묵어도 되나?”

“개인이름으로 된 땅은 몰라도 마실공동재산이나 주인이 분명찮은 땅. 채비지 같은 거는 농지위원들 도장만 받으면 된다더라.”

“그라면 그 농지위원은 누구누군데?”

“원래 버든마실 농지위원은 선동어른 신근수씨 부친 곽남어른에 기와집에 종석이아부지, 그라고 웃각단에 대동아잰가 누가 맡았다가 중간에 기와집종석이 아부지하고 대동어른이 죽고 우리 조일아재하고 상천엄손 같은 당시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갔는데 오구장사건이 나고 돌아가신 위원장 곽남신손 몫은 자동으로 수습을 맡은 둔터어른이 맡고 조일아재하고 상천엄손은 자기들 책임이 없는지 또 앞으로는 무슨 책임을 져야될지 겁이 나서 그만 둔 거라고 하네.”

“그라면 새로 된 사람은 누군데?”

“그 기 말이다. 앞새매 살다가 봉당골에 올라가 박주택이 하고 동사에 사는 천택이란다.”

“저런? 주택는 배도 숭구고 면사무소출입도 좀 하고 하지만 속에 뭐가 들었는지 사람들이 다 만만하게 대하지 못 하는 사람 아이가?”

“그래서 무슨 속셈이 있어서 남들 다 겁내는 그 자리 둔터어른 밑에 들어간 거고. 둔터어른도 본동 사람인데다 덩치 크고 목소리 크고 누구도 무시 못 할 주택씨를 잡은 거고.”

“그거사 그렇다 치고 동사에 얹혀사는 뜨네기 천택씨는 우째?”

“지가 동사에 앉혀살고 동네머슴 비슷하니까 함부로 나서지도 못 하고 둔터어른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니까 시킸겠지.”

“주택씨가 언양국민학교 나온 거야 다 알지만 천택씨는 순무식군 아이가?”

“그러니까 시켰겠지. 아무데고 찍으라고 손가락으로 짚어만 주면 찍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그 농지위원들은 무슨 영검이 있었나? 콩고물이라도 좀 떨어졌다 카더나?”

“농지위원이 되면 면사무소고 군청이고 나들어야 된다면서 둔터어른이 양복을 맞춰 입히고 언양장날 금하장이란 요정에서 큰상을 들이고 술도 먹이고 기집도 붙이주고...”

“저런?”

“눈 먼 송아지 요롱소리 듣고 장에 간다고 뭐 시키는 대로 했겠지.”

“그건 그렇고 둔터어른은 그 많은 돈 다 우쨌는고? 부산에 빌딩이라도 샀는가?”

“그기 아이고 술 묵고 밥 묵고 계집질하고 다 없앴단다.”

“계집질은? 인물 좋은 둔터댁에다 마음 좋은 첩사이 착한 네가 있다 아이가?”

“둔터댁이고 <착한네>고 눈먼 새도 안 쳐다본다는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사내가 수중에 돈 있으면 당연히 계집질을 하겠지.”

“암만 기집질을 해도 그 많은 돈을 언양바닥에서 우째 다 씨노?”

“언양이 아니라 울산군청 앞 옥교동인가 하는 기생집하고 경주 쪽샘이라는 동네에서 돈을 물 뿌리듯 뿌렸다더군. 날아가는 까마구야 내 술 한 잔 묵고가라고 하면서 말이야.”

“암만 그래도?”

“뭐 이건 말도 안 되지만 울산 요정에 서울서 내려온 대학생기생이 있어 이건 뭐 화초첩(花草妾)도 아닌 학생첩을 얻는다고 말이야.”

“저런? 대학 보낸 자기 자식은 가만있는 동네처녀 신세를 조져놓더니만 애비는 그래 학생첩을 다 얻고 지랄이야.”

하고 모두들 혀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그래서 주택이하고 천택이는 뭐 생기는 기 좀 있었나?”

“경지정리가 다 끝나고 정산을 할 때 감당이 안 되니까 둔터어른이 또 농약을 묵고 죽었다 아이가? 그래서 사람들이 그 밑에 농지위원을 하던 주택씨와 천택씨를 찾아갔는데...”

“옳다!. 그래서?”

“주택씨는 어데로 잠깐 집을 비우고 떠나서 몇 달이 지나서 동네가 숙지막하니까 돌아왔고 천택씨는...”

“그래 천택씨는?”

“원래 이동네 사람도 아인지라 누구하나 편을 들거나 기댈 데도 없어 그길로 야반도주를 했다는구먼.”

“가기는 어데로?”

“그걸 누가 아나? 원래 뜨내긴 거로.”

“...”

“묵고 죽은 귀신이 화색이 좋다더니 결국 오구장, 둔터어른이 물물이 묵고 죽었구먼.”

“그래도 우리 형제처럼 이래 손 털고 일어나는 거 보다는 묵고라도 죽는 기 낫지.”

“씰 데 없는 소리!”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자

“어무이, 영주 가서 몸 조심하이소. 내 팔월 추석 때 아아들 데꼬 가 께요. 그라고 백찬이 니도 군에 잘 갔다 와라.”

열찬씨의 하직을 신호로 신평, 명촌, 장촌의 세 딸들이 제각기 어머니와 막내 동생과 손을 잡고 작별을 고하며

“가자!”

마침내 박태기콩나무가 든 바께스를 들고 열찬씨가 삽짝문을 나서자 모두들 뒤를 따랐다.

“데름 잘 갑시데이! 큰 형님하고 박서방네, 고서방네도 잘 가거래이!”

손을 흔드는 김해댁의 목청이 낭낭했다. 옆집 경주댁 앞을 지나 구장 부뜰네 집을 거쳐 대밭뒤의 좁은 들을 지나 사남매는 갱빈으로 들어섰다. 언양장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누님들, 뚝다리 조심하소. 오랜만에 건느니까 돌이 꼰들꼰들 흔들려서 시껍하겠심더.”

커다랗게 소리치는데 보자기에 산 암탉을 든 큰 누님과 염소를 몬 명촌누님, 도리깨와 밀게를 든 장촌누님의 모습이 무슨 영화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했다. 또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황급히 고개를 돌린 열찬씨는 징검다리를 다 건너 장터입구 백손댁에 닿을 때까지 절대로 돌아보지 않았다.

<끝>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