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48)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②
대하소설 「신불산」(248)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14 07:00
  • 업데이트 2022.09.14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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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②

그런저런 일로 언양에 들리면 반드시 큰집에 들러 이제 귀도 어둡고 채 머리를 흔드는 큰어머니 상남댁을 보고 어떤 때 용돈 몇 푼을 주고 오게 되었는데 집도 어머니도 없어진 판국에 이제는 그나마 큰엄마가 자신을 반갑게 맞아줄 사람, 어머니대신 기댈 사람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큰집에 가는 길의 중간인 앞세메에 이르면 동쪽으로 뚫린 골목 끝으로 생가의 아랫 채 잿간의 뚫어진 담벼락이 눈에 들어와 열찬씨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그래서 한 번은 이제 일곱 살이 된 아들 정석이를 데리고 산소에 갔던 날 버든마을로 내려가 생가를 찾아가 이제 큰 채 아래채를 몽땅 뜯어내고 대밭도 갈아엎고 감나무, 밤나무도 모두 베고 길쭉한 축사를 세 동이나 짓고 새로 슬라브로 주택을 지은 주인내외에게 자신이 전에 이집에 살던 사람으로 아들에게 조상대대로 살던 뿌리를 보여주러 왔다고 좀 들어가 보자고 사정을 했다.

기껏 소나 키우는 시골사람이 당시에 전 세계를 풍미하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소설과 영화를 보고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 흑인들의 끈질긴 뿌리 찾기를 알 리는 없었겠지만 일단 순순히 들어오라고 승낙을 했다.

벌써 5년이나 지나는 사이 집터와 마당과 뒷밭은 곳곳이 파헤쳐지고 여기저기 시멘트로 덧칠해져 있었다. 그래도 한쪽 귀퉁이에 전에 가져가려다 무거워서 못 가져간 삼각형의 커다란 돌, 안반이 서 있어 가슴이 뭉클했는데 자세히 보니 경주댁의 담 밑에 아직도 우물이 남아있었다. 그 사이에 원통형 콘크리트 관을 위에 세우고 우물뚜껑을 단단히 닫았지만 아직도 남았다는 것이 너무 반가워 생가에 온 김에 물맛이나 좀 보자고 했다. 그러자 새 주인이 처음엔 자기들도 우물을 묻고 상수도를 넣으려고 했는데 우연히 맛본 물맛이 너무 달고 시원해 그냥 두었다며 모터스위치를 왜앵 돌려 바가지에 물을 받아주었다.

“...!”

여전히 달고 시원한 물맛에 열찬씨의 입이 헤벌레해지면서도 가슴에는 온갖 회한이 스쳐지나갔다. 마시다 멈추기를 몇 번이나 하며 조금 남은 바가지를 아들에게 건네며

“정석아, 이 기 아부지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조상들이 묵던 샘물이다. 니도 함 무 봐라. 억수로 달고 시원할 끼다.”

했는데 바가지를 입에 대던 아이가 금방 입을 때고 땅바닥에 주르르 쏟아버렸다. 찌푸린 얼굴로 보아 여태껏 수돗물만 먹던 아이의 입에 달고 시원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언양에 들리는 날이면 시간이 날 때는 맨 입구 웃각단에 있는 사촌형 종찬씨 집으로 들렸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지 7년, 허풍쟁이형님도 아이가 셋이나 되고 가방이 둘이나 되면서 제법 착실한 농사꾼이 되어 제 땅, 남의 땅 할 것 없이 1정보가 넘는 나락농사를 짓고 집안에 소와 돼지를 키우는 어엿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세살 아래의 일찬씨가 멀리 떠나 술친구가 될 만한 사촌도 없는 데다 무려 열네 살 아래이긴 해도 저도 이제 성인이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그야말로 같은 학부형에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열찬씨를 스스럼없는 술친구로 맞아주었다.

한번은 산소에도 들리고 돌아오다 종찬이형님과 마시려고 플라스틱 병에 든 여섯 병 짜리 고량주세트를 사들고 마구뜰 새 길을 걸어 웃각단을 지나던 열찬씨의 눈과 마침 쇠스랑을 들고 마구간을 치우던 종찬씨의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하는 수 없이 형부터 만나기로 하고 들어가 우선 고량주세트를 시원한 우물물 속에 넣어 냉각을 시키기로 했다. 이어 사촌형수가 열무김치 한 보시기를 가져와 우물가에 형제가 마주보고 앉아 산소에 쓸려던 새우깡과 맛동산까지 펼치고 우선 고량주 한 병을 까서 잔을 부딪치며

“형님, 건강하이소. 농사도 잘 되고.”

“그래, 고맙다 동생 니도 만사형통하고.”

하고 천천히 마시다

“형님, 부산에 한 번 내려 오이소. 회라카면 그래도 부산인데 내 좋은 초밥집에 한 번 모시지요.”

“뭐라꼬?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형의 얼굴이 벌개지고 아우의 입가가 배시시 했다. 둘 다 초밥집의 동그란 와사비덩어리를 상기하는 모양이었다. 또 몇 순배가 돈 뒤에

“형님, 그 멋쟁이 마비스 라이번은 우쨌능교?”

“몰라. 맨날 술 묵고 댕기다가 어데서 흘맀는지.”

이러고 또 술을 마시다

“야, 동생아, 우리 한 병만 더 마시고 산소에 가면 안 될까? 나도 오랜만에 할매랑 울아부지, 잔아부지 산소에도 가보고. 니 얼른 한 병만 더 꺼내오너라.”

하여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어느 새 딱 하나만 남아있었다.

“형님, 이기 담더. 고량주 한 세트 시마이고동 불었심더.”

“그래. 그라면 마자 묵고 새 술 사서 산소에 가자.”

이렇게 어울리며 가끔은 읍내의 술집에도 가곤 했는데 하루는

“어이, 열찬아, 내 이 말은 안 할라캤는데 언젠가 니도 알기는 알아야 할 끼고...”

평소와 달리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형님, 무슨 말인지 속 시원히 해보소. 우리 사이에 뭐 몬 할 말이 있겠능교?”

“그래 그렇키는 해도 말이다...”

하면서 꺼낸 말은 뜻밖에도 종찬씨가 가장 좋아했던 일찬씨에 관한 이야기였다.

“니 생이 일찬이가 누고? 사촌이지만 내 보다 겨우 세살 작은 아시동생이 아이가? 같이 클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교도 안 댕겼고 지는 언양바닥에 소문난 천재라 명절이나 제사 때 한 번씩 만나면 그냥 형님, 동생하고 지냈지만 나는 그 공부 잘하는 동생이 참 자랑스럽고 내가 낯선 데로 일을 가거나 남의집살이를 할 때에도 버든에 사는 가열찬이가 내 동생이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이 ‘아, 그 머리 좋다는 버든에 가일찬이가 바로 사촌동생이라고요?’ 놀라면서 알아주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하다 못 해 산소에 가다가 알밤을 줍거나 깨곰하나만 따도 옆에 가가 있으면 내가 묵을 생각을 안 하고 무조건 니 새이를 주었고 내가 준 깨곰을 가가 맛있게 묵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형님, 깨곰이 아니고 개암임더.”

“마 시끄럽다. 그래 알아들으면 될 거 아이가?”

“...”

“그런 가가 서울체신고등학교에 갈 때는 마실사람들 모두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좋아들 학고 나도 가슴이 뿌듯했지.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위장병이 나서 학교를 휴학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져 밤낮 없이 헛소리를 하면서 온 천지를 돌아댕길 때는 마 기가 차더마는. 그런 그 사람이 다시 정신이 돌아와서 언양농고를 졸업하고 농업협동조합 창설요원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우리 일찬이도 또 우리 집안도 다시 피고 우리 작은 아부지, 작은 엄마도 인자 고생이 끝이 난 줄 알았다 아이가.

ⓒ서상균

그래서 언양국민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새로 생긴 농협건물 담벼락에 와 그 ‘농협은 농민의 것, 농민을 위한 농협, 농민의 힘으로’라고 써놓은 것만 보아도 내 동생얼굴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금방이라도 내 동생이 언양농협의 지부장이 되어서 올 것만 같은 생각이 다 들었지. 그래서 한글도 겨우 알 똥 말 똥 한 내 짜린 재주로 와 학생들이 밭침을 빼고 읽는다는 ‘노혀노미 거노미 이하지하 노미히, 를 얼마나 중얼거렸는지 모리고 또 니 새이가 갖다주던 그 공제숟가락이라고 깊고 쫍시리하게 생긴 숟가락만 봐도 이기 내 동생이 댕기는 농협의 공제숟가락이라고 강숙이엄마한테 자랑이 늘어졌지.

그런데 그 사람이 또 그 좋은 직장을 팽개치고 농사라고는 농자도 모르면서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왔을 때 비단 내 뿐이 아니라 버든동내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랬지. 그런데 정작 내가 더 놀랜 것은 같이 예비군훈련을 가면서 ‘동생 니는 도대체 그 좋은 직장을 와 그만 두었냐?’ 묻자 ‘대부계로 자리를 옮기니 사람들이 자꾸 돈 봉투를 갖다조서 양심상 절대로 받을 수가 없어 고민만 하다가 조합에 대부가 막히니 온 동네가 시끄러워 사표를 냈다.’ 는 것이었어. 야, 열찬아 니도 들어봐라. 요즘세상이 돈 없고 빽 없고 힘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라 내남 할 것 없이 우짜든동 사돈에 팔촌이라도 기댈 언덕을 찾고 돈 한 푼에 목을 매는 판국에 그래 그저 주는 와이로 봉투를 안 받는단 말인가? 그 기 눈이 바로 박힌 기가? 아이면 옛날 아래 윗동네 연애사건이 터져 처녀가 배가 부르자 총각은 내 빼고 처녀 어마시가 술을 먹고 총각집 앞에 가서 ‘가만 있는 내 딸 와 건디리노? 정 근질근질 하면 돌까리바닥에 소금을 뿌리고 문때든지.’ 하고 밤새 소리치자 이튿날 총각의 어마시가 ‘사내자식이 벌리주는 ㅆ도 못 하나? 벌리주는 ㅆ도 못 하나?’ 하고 난리굿을 빼듯이 그래 그저 주는 돈도 못 받는단 말이가 세상에?“

이미 전설이 된 사건까지 들먹이면서 흥분을 했다.

“형님의 대꼬쟁이 같은 성질에 그럴 수도 있지요? 차라리 뿌아지지 절대로 후아지지는 못 하는 그 외골수 성질 말입니더.”

“그래. 그래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렇게 니 새이가 돌아와서 폐인이 되다시피 들어앉아 국어선생시험 공부를 하던 3년간이 내 한테는, 아니 지캉내캉 사촌끼리 제일 좋았다. 우쨌기나 온천지가 다 알아주는 유식한 내 동생하고 어깨를 나란히 예비군훈련을 나가면 그렇게도 신이 나고 어깨가 으쓱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나는 그 때가 좋았다이.”

그건 열찬씨도 들어서 잘 아는 이야기였는데 버든에서 중남지서까지 10리길을 걸어서 예비군훈련을 가면 사촌형 종찬씨가 일찬씨를 암탉이 병아리 돌보듯이 그렇게 잘 챙길 수가 없었고 둘이 같은 조로 보초를 서면 어쨌거나 몸이 약한 일찬씨를 쉬게 하고 기어이 자신이 근무시간을 다 때웠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치고 오면서 가게에서 막걸리라도 마시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히 뭘 좀 아는 척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일찬씨에게 누가 시비라도 걸면 불문곡직 멱살을 잡고 치고받고 가로막았다는 것 또 한 버든마을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둘이 술을 마시다 일찬씨가 조금 이라도 술이 취한 표시가 나면 종찬씨가 그 때부터 술을 일절 안마시고 또 종찬씨가 취한다 싶으면 일찬씨가 술잔을 놓아 절대로 둘이 동시에 술이 취하는 법이 없이 술 취한 하나를 덜 취한 하나가 어깨동무를 하고 10리 밤길을 걸어오면서 <유정천리> 나 <목포의 설움>을 부르면서 마을로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보기 좋고 또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그 아가 말이다. 지는 우쨌는지 몰라도 같이 예비군을 댕기는 동안 나는 아무 용맹도 없는 우에 두 형님이나 그저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내만 보면 ‘우짜든동 여물기 해라.”소리로 귀에 못을 박는 언양에 상찬이형님도 정이 안 가고 동생이나 형제는 그저 사촌 일찬이하나뿐인 것 같았단 내가 말이다, 니 새이 일찬이가 다시 선생이 되어 나가자 우리 작은집도 우리집안도 인자는 정말로 형편이 피겠구나 선생월급이 많다카이 논도 사고 집도 고치고 버든바닥에서 잘 산다고 행세께나 하는 집안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기 아이더란 말이지.

도대체 무얼 하는데 돈이 들어가는지 선생들 한 달 월급이면 쌀 두 가마니 값이 넘는다는데, 그렇다면 일 년 치 월급이면 쌀이 스무 네 가마이가 넘는데 그렇다면 옛날 마구뜰이나 밤살매 일등답 스물두 마지기가 넘는다는 건데, 한 마지기에 쌀 두 가마이가 나는 상답을 스물 마지기 이상 가진 부자가 빈촌인 버든에는 없었지. 물론 경지정리가 된 지금도 없고. 하기사 밥맛 생각 안하고 통일벼만 심으면 배도 더 나지만 그 기사 말도 아이고.

그런 니 새이가 우째서 선생질 나가자 말자 자꼬 땅을 팔고 집을 팔아가노 말이다. 물론 영주에 집 한 채 살라카는 거야 돈이 들겠지만 무슨 고대광실을 산다고 그렇게 알뜰살뜰 다 팔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계속>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