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4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③
대하소설 「신불산」(24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15 07:10
  • 업데이트 2022.09.15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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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③

그런 니 새이가 우째서 선생질 나가자 말자 자꼬 땅을 팔고 집을 팔아가노 말이다. 물론 영주에 집 한 채 살라카는 거야 돈이 들겠지만 무슨 고대광실을 산다고 그렇게 알뜰살뜰 다 팔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그 땅들이 다 어떤 땅들인데 나는 잘 모르지만 읍내에 상찬이형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작은 아부지가 넘의 집 머슴살이를 해서 산 땅들, 안 묵고 안 쓰고 한 푼 두 푼 모아서 산 땅인데 말이다.”

“그래도 우짜겠능교? 형님이 장남인데다가 임시조치법으로 집이고 땅이고 몽땅 형님명의로 등기했는데 죽을 쑤든지, 떡을 하든지...”

“그래서 말인데 내 동갑친구 구장 부뜰이아부지가 하는 말이 니 형수 우현이애미가 버든에만 오면 조일아재를 찾아가서 우짜든동 땅사겠다는 임자만 나오면 좀 헐터라도 무조건 팔아달라고 사정사정하고 간다는 거야.”

“거기사 우리도 대충 아는 사실 아잉교?”

“그 뿐이 아이다. 조일아재는 물론이고 마을에서 글이나 좀 알고 출입께나 하는 사람, 말하자면 부산서 이사 온 화옥이 형님이나 구장, 또 경지정리조합장을 하면서 요래조래 마실땅 다 팔아 묵는다고 소문난 둔터어른, 주택이나 천택이한테도 무조건 땅만 팔아주면 그냥 있지 않겠다고 땅 못 팔아서 환장을 한 모양이란 거야.”

“...”

“그래 마실사람들은 시건 없는 안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배울 만큼 배우고 선생질이나 하는 서방, 그러니까 일찬이가 왜 그렇게 마누라가 설치는데 가만 있느냐, 시동생들 도라카기 전에 단 한 평이라도 더 팔아 갈라 카는 걸 말리기는커녕 뒤에서 은근히 부추긴다는 거지. 말하자면 설치는 안들보다 가만 있는 사내가 더 욕심이 많은 시꺼먼 이까복지라는 거지.”

“거기사 지도 다 안다 아잉교? 단지 객지에 가서 말붙일 데도 없이 사는 우리 어무이 하고 동서도 없어진 큰 어무이, 하나는 찔뚝 없고 하나는 질정 없다고 소문난 동서간의 두 할마시가 큰일이지 말입니더.”

“아이지. 그래 생각하면 안 되지. 이라다가 차곡차곡 다 팔아묵고 더는 팔아묵을 기 없으면 작은 아부지산소나 남아나나 말이다.”

“형님. 그 기 무신 말잉교? 아무리 눈에 보이는 기 없어도 제 부모의 산소인데, 그라고 그 산소 터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집안의 시전재물로 팔아도 장손인 동찬이형님 몫인데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후제 조카 철우가 팔아야지요?”

열찬씨가 부인해도

“아이다. 내 말이 헛말이 아일 끼다. 우쨌기나 서른이 넘어서도 남의 집 셋방살이를 못 면하는 동생 니도 불쌍치만 나는 슬비엄마 제수씨가 제일 안 됐다. 천하에 고롷코롬 고운 각시를 데꼬 와서 요롷코롬 고생을 시키는 동생 니도 죄가 많다!”

“아이고, 형님. 그 기 어데 맘대로 되덩교? 우쨌기나 우리 슬비애미를 이쁘다카이 고맙네요. 와 부산에라도 한 분 안 오실랑교? 우리 내외가 또 형님 모시고 초밥 집에 가면 안 되겠능교?”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내 생전에 부산 초밥 집은 없다. 평생 처음 동생 니캉 묵는 회가 그렇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맵은 줄은 정말 몰랐다.”

어딘가 허전하고 맥이 빠지는 마음을 실없는 우스개로 때우고 형제는 헤어졌다.

ⓒ서상균

그럭저럭 또 세월은 흘러가고 영순씨는 이제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혈색도 발그랗게 핏기가 돌았다. 오전에 집안의 사내들이 다 모여 코스별로 조를 짜 합동으로 하는 하잠리와 둔터를 수몰시켜 만든 거대한 댐, 대암댐주변에 띄엄띄엄 흩어진 선대 벌초를 마친 열찬씨가 오후에 등말리의 금찬씨 집을 방문하였을 때였다.

“야아, 삼촌이다. 부산에 외삼촌 열찬이삼촌!”

이번에는 다섯 살 난 계집애 현주가 논길을 달려 나오고 열한 살 난 성식이가 주춤주춤 따라오고 있었다.

“어서 온나, 처남. 되기 덥제?”

마침 등목을 하던 매형 수진씨가 타월로 등을 닦으며 반가워하는데

“야야, 니도 웃통 벗고 이리 오너라. 못 사는 누부집에 달리 줄 것도 없고 시원하게 등물이나 한 번 치구로.”

눈과 코와 입이 다닥다닥 붙은 조그맣고 새까만 얼굴의 금찬씨가 자세히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겨우 일곱 살 차이지만 날 때부터 업어 키우고 날마다 붙어 지내다시피 했지만 벌써 결혼한 지가 16년이 되어 열일 곱 살의 아이가 있는 남매가 참으로 오랜만에 등을 내어주고 밀어주다가

“야야, 니도 술 좀 언간이 묵어라. 젊은 기 등더리에 이 빨간 고춧가루 점이 다 뭐꼬? 등더리 붉은 점이 많아지면 간장이 나빠져 간암이 온다 캐서 내가 너거 자형 등더리 밀 때 마다 깜짝깜짝 놀래는 판에 동상 니까지 이 모양이니 기가 차구나.”

하는데

“오랜만에 온 처남한테 별 희한한 소리를 하구나. 우리 장인어른이 그렇게 골골하면서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하루에 소주 한 되씩을 자셔도 간 나뿌단 소리는 없었지. 그렇게 하루 종일 기침을 하고 가래단지를 옆구리에 끼고 살아도 삼시세끼 반주를 하셨는데 우리 처남이 그 소주를 깨뚜배이에 얻어 마시면서 컸다 아이가? 마 처남도 한 칠십 될 때까지는 까딱없을 끼다.”

출출하던 판에 모처럼 술 마실 명분이 생겨 너무 좋은 지

“야, 성식아. 니는 얼른 구판장에 가서 소주 한 되 사오고 공주야, 니는 칼치못에 가서 니 오래비들 송애 잡아 논 거 털어 오너라.”

신명을 내는데

“아따, 좋기도 하겠다. 술 잘 묵는 이태백이 술 묵자고 날 불렀나 커디마는 그래 술 잘 묵는 처남남매가 만내서 좋기도 하겠다.”

피식 웃으면서도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뒤집고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따, 우리 누부, 소두뱅이 뒤집는 거 보니 오늘도 뭐 맛있는 거 해줄랑가베. 하기사 우리 누부가 덩치가 조막만 해서 그렇지 버든동네서 손끝 야문 소두뱅이운전사로서야 최고 아니었나?”

“그래 마침 정구지 김치를 담을라꼬 씻꺼 놨는데 니가 와서 술안주도 할 겸 정구지 찌짐을 좀 꿉을라 칸다.”

하면서 참기름을 두르더니 어느새 치직치직 맛있는 소리를 내며 새파란 정구지와 하얀 밀가루반죽이 노릇노릇 익어가기 시작했다.

“자, 우선 찌짐하고 한 잔썩 묵어보자. 내가 니 누부한테 장개 가서 제일 재미 보는 기 이 정구지찌짐하고 호박떡 얻어묵을 때다. 밤톨 같은 새끼들 다섯 마리는 두고라도 이 찌짐만으로 본전은 뽑는 것 같다.”

하면서 부추전과 열무김치와 찬물이 놓인 소박하다 못 해 정갈한 술상에서 잔을 주고받는데 마침 넷째 성식이가

“아부지, 송애 가주 왔심더.”

하고 주전자에 담아온 송어를 수돗가에 붓는데 제법 큰놈도 있는지 은비늘이 번쩍번쩍 했다.

“어이, 처남아, 저 아 뒤 꼭지하고 이망빼기를 좀 봐라. 영판 처남 니를 뺐제. 아아들이 다 내를 닮아서 공부가 시언찮은데 셋째 준식이, 아니 원래는 외가에서 낳았다고 외식이라카는 아는 공부 잘 하는 외갓집의 기를 받았는지 좀 하는 편이고 또 저 망내이는 처남을 빼서 공부를 잘 할 줄 알았는데 그저 그렇다. 최소한 그 중 한 놈은 천재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전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우째 아아 다섯 중에 공부 좀 하는 놈이 하나밖에 없는 줄 모리겠다.”

“차차 나아지겠지요.”

“몰라. 처남들은 국민학교 가기 전부터 공부 잘 한다 소리를 들었다는데 자들이 인지 늦 머리 틔면 얼마나 틸 끼라고?”

하면서도 연신 소주를 들이켜던 수진씨가

“일식이어마이, 대가리 하고 빼가지는 내가 나중에 골탕을 칠라카이 어서 양쪽 등더리 살만 볼라 오너라. 오랜만에 송애 회 좀 묵어보자.”

하며 침을 삼켰다.

“그런데 자영요, 이 정구지를 서울사람들은 부추라 카고 또 서부경남이나 전라도쪽에서는 소풀이라고 하는데 경상도에서는 와 정구지라 카는지 아능교?”

“몰라. 똑똑한 니가 알지 티미한 내가 우예 아노? 어서 이바구를 해 봐라.”

“예, 정구지가 얼마나 사람한테 이(利)한지 특히 남자한테 좋아서 초봄에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정구지는 사우가 와도 안 주고 장인영감이 혼자 묵는다 안 카등교? 자, 자영도 어서 찌짐 한 쪼가리 더 잡수소. 그래서 정구지를 한자로 무슨 자를 쓰는지 살펴보면 우선 정은 그 정력이라는 정(精)자고 구는 오래간다는, 와 그 영구하다는 구(久)자요, 지는 그 받힌다, 지탱한다는 지(持)자랍니다. 말하자면 정력이 오래간다는 거지요.”

“아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아를 다섯이나 놓고 천 날 만 날 술만 묵어도 니 누부가 깜빡 넘어가는구나. 천상 올 가실에는 정구지를 좀 더 심어야겠다.”

하는데 금찬씨가 맵시 있게 썬 붕어회접시를 상위에 놓으면서

“그래서 정구지 더 숭구고 아들 한 댓이 더 놓으면 뭐할 낑교? 뭐 아 많이 놨다고 나라서 상이라도 준다카등교? 내사 마 너거 자영 엉성시러버서 있는 정구지밭도 파디비뿌야 되겠다!”

하면서 벌써 마흔이 가까워 불구죽죽하게 시들어가는 남편의 얼굴을 찬찬이 쳐다보고 있었다.

 

수진씨가 아직도 빠끔하게 눈을 뜬 붕어대가리와 뼈를 두들겨 회색의 둥근 경단을 만들자 금찬씨가 싱싱한 깻잎과 상추에 마늘을 가져와 다시 술잔을 비우는데 어른들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대신 이젠 성식이와 현주 두 아이들이 붙어 부추전과 붕어골탕을 부지런히 먹어댔다.

<계속>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