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50)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④
대하소설 「신불산」(250)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16 07:10
  • 업데이트 2022.09.17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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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④

수진씨가 아직도 빠끔하게 눈을 뜬 붕어대가리와 뼈를 두들겨 회색의 둥근 경단을 만들자 금찬씨가 싱싱한 깻잎과 상추에 마늘을 가져와 다시 술잔을 비우는데 어른들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대신 이젠 성식이와 현주 두 아이들이 붙어 부추전과 붕어골탕을 부지런히 먹어댔다. 이어 됫병 소주 반 을 비우고 처남남매는 대밭그림자가 시원하게 드리워진 큰 채의 마루에 목침을 베고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자 마당 한 가운데서 금찬씨가 아이 다섯과 한데 엉겨 부지런히 세 마리나 되는 닭털을 뽑고 있었다.

“누부야, 우째 살림 거덜낼 일이 있나? 웬 닭을 세 마리나 잡았노?”

“아아, 이거는 컬치못 우에 양계장에서 사온 폐계(廢鷄)다. 재랄을 다 뺀 늙은 닭은 고기가 찔기서 헐키 파는데 마실사람들한테는 또 더 헐키 판다. 닭 한 마리 값이 재랄 다섯 개 값도 채 안 되는데 좀 질기기는 해도 무쇠 솥에 푹 고면 구수한 기 옛날 닭 맛이 난다. 우리같이 공구가 많은 집에서 폐계 아이면 언제 닭고기 한 번 실컷 묵겠노? 그라고 폐계라카면 뭐라뭐라 케도 장촌에 고서방을 만한 사람이 없다. 세상에 이 찔긴 폐계를 고아서 한 자리에서 한 마리를 다 묵는다 아이가?”

“맞지요. 닭고기라 카문 장촌자영 덮을 사람이 없지요.”

 

이윽고 마당귀퉁이에 접시만큼 남았던 볕살이 사라지고 대밭그림자가 온 집안을 덮어버려 이제 시원하다 못해 써늘해진 공기로 팔꿈치에 닭살이 돋을 때쯤 저녁상이 들어왔다.

커다란 양푼이 두개에 가득히 무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빨갛게 고춧가루를 뿌린 닭기름이 둥둥 뜨는 닭볶음, 그야말로 버든마을에 소문난 명촌댁이 표 닭도리탕이 아이와 어른의 두 밥상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이 다섯과 어른 셋, 여덟 식구가 아무 소리도 없이 부지런히 그 질긴 닭고기, 특히 다리와 날개의 물렁뼈를 빤다고 입가와 손은 물론 눈빛까지 닭기름으로 번쩍번쩍 해 질 때쯤 어느 새 배가 불러 이제 천천히 수진씨와 술잔을 나누던 열찬씨가 문득 밥그릇에 수저가 가는 순간

“누부야, 요새 나락농사는 몇 마지기나 짓노?”

아무리 한여름이라 하지만 단 한 톨의 쌀도 없이 그야말로 보리쌀을 곱삶은 밥을 보며 짠한 생각이 든 열찬씨가 묻자

“뭐. 여전히 그대로지. 집앞 논 서마지기에 칼치못 우에 서 마지기 그라고 밭 쪼매 하고 그렇지 뭐. 인자 아아들이 커이 양식 드는 것도 장난이 아이다.”

무심히 말하다 문득 생각이 나는 듯

“그래 말이다. 그 때 우리 조모님이 무단이 강당에 가는 분란만 안 일으키고 여기 명촌 앞 고래들이나 길천 앞 바들들에 땅을 좀 사고 집이라도 좀 곤칬시먼 저 아아들 묵는 거도 자는 거도 다 숨을 좀 쉴 낀데 말이다...”

이제 덩치가 제 아비만 하고 먹성은 아비보다 더 센 열넷에서 열 살까지의 삼형제를 바라보는데

“마 시끄럽다! 그 골 아픈 이바구는 다시 하지 말라고 내가 귀에 못대가리가 앉도록 내가 말했다 아이가?”

수진씨가 덜컹 숟가락을 상에 놓으며 소리치자 온 집안이 얼어붙었다. 말 한마디도 없이 수저소리만 달그락거리던 저녁이 끝나고 아이들이 제 방으로 흩어지자 설거지를 마친 금찬씨가

“야야, 술만 자꼬 묵지 말고 이 참외 한 분 무 봐라. 일부러 심은 거도 아인데 거름 밭에 지절로 난 개똥참왼데 그래도 제법 크고 노랗게 잘 익었다이.”

어색한 분위기도 가라앉힐 겸 금찬씨가 참외를 깎아 닭볶음과 열무김치가 놓인 술상에 올렸다. 입가심 삼아 한 조각을 집어먹고

“야, 맛있네. 제북 달다!”

열찬씨가 감탄을 하는데

“그래 말이다. 인자 너거 자영도 있고 아아들도 커서 농사일을 도우니 손이 갖추어져 지 농사가 좀 더 있거나 넘의 땅이라도 소나 한 마리 있으면 도지로 부쳐서 저 소떼 같이 퍼묵는 아아들 양식도 하고 학비도 댈 낀데 말이다. 이적지는 국민학교라 그럭저럭 시켰는데 내년에 일식이 중학교 가면 우째 월사금을 당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그것도 그러네. 아아 너이서 포도송이를 하나썩 들고 동서남북을 뛰던 기 어제 같은데 벌씨러 중학교에 다 가는구나?”

무심히 맞장구를 치던 열찬씨가

“참 소가 있으면 넘의 땅을 부친다꼬?”

“그래. 요새는 젊고 농사가 적은 사람들이 농사를 접고 삼성전관이나 삼도물산에 댕긴다꼬 남는 땅이 더러 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인자는 마실마다 농사 안 짓고 회사 댕기고 나무 한 하고 연탄이나 석유곤로로 밥 해묵는 집이 여러 집 있다.”

“그라문 배내기 송아지를 얻어 키우지. 한 해만 고생하면 금방 중소가 되고 중소 때 훌쩡써리질을 가르쳐 송아지 빼고 그 송아지가 중소가 될 때까지 한 2년만 고생하면 소 한마리가 안 생기나?”

ⓒ서상균

그랬다. 금찬씨와 열찬씨 남매가 버든에서 자랄 때 이제 갓 젖을 뗀 남의 집 송아지를 얻어와 새끼를 빼고 어미를 반납하면 송아지가 한 마리 생기는 그 배내기소를 해마다 기르면서 중소가 될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쟁기질을 가르치느라 열찬씨가 늘 소이까리를 잡곤 했다. 그렇지만 열찬씨네 집은 형님의 학비와 빚에 몰려 그 배내기 송아지마저 낳자말자 팔아야하는 처지라 단 한 번도 커다란 제 소를 길러보지 못 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최소 중소는 되야 너거 자영이 훌찌질을 가르치든지 말든지 하지 저 깨끄랍은 사람이 훌찌를 잡을라 카겠나? 괜히 속에 천불난다꼬 술이나 퍼마시지.”

“요새 송아지 값은 우째 되능교?”

그 사이 열찬씨는 새마을 금고에 맡긴 얼마간의 저축과 만기가 다 되어가는 적금을 가늠하고 있었다.

“몰라, 한 15만 원이나 할랑가?”

“그라문 중소는?”

“한 20만 원은 넘겠지. 그래도 훌찌질 가르칠 정도면 근 30만 원을 되야 안 되겠나?”

“그래요? 그라면 배내기소 한 번 키아볼랑교? 내가 중소 한 마리 살 돈이 될랑가 부산 가서 함 알아보지요.”

하면서 열찬씨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치는데

“처남! 잘 생각해라이. 원래 형제간에는 돈거래 하는 기 아이라 안 카더나?”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꾸벅거리던 수진씨가 어느 새 대화에 끼어들며

“낸주게 후회랄 끼면 함부로 맘도 묵지 마라. 배내기 소라커는 기 커다가 병을 하는 수도 있고 부리끼가 되서 새끼를 못 놓는 수도 있고.”

“아이구, 자영은 별 걱정도 다 하십니더. 천지강산이 다 풀이고 소 먹일 아아들이 다섯이나 있는 이 등말리에서 안 될 끼 뭐 있능교? 내 다음 주에 올라올 테니까 자영은 소전에 가서 송아지 금이나 한번 알아보이소.”

“처남, 니 정말로 나중에 딴말 안 할 끼제?”

“야.”

 

이렇게 의논을 하고 다음 일요일 열찬씨가 돈 30만 원을 들고 등말리로 올라오자

“어이, 동상아, 니 인지라도 단디 생각해라. 너거 자영 너무 믿는 거 아이다.”

마침 수진씨가 외출중이라 금찬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사 너거 자영이랑 열찬이 니캉 남자들이 하는 일에 간섭은 안 하겠지만 인지라도 맘에 걸리면 니 자영 오기 전에 그냥 부산에 내려가거라.”

“아이구, 아입니더.”

해가 지고 시꺼먼 논배미에서 수캐구리들이 청승스럽게 울기 시작하는 여덟 시경에 친구 철봉씨와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온 수진씨는 이미 술이 만취상태였다.

“봐라, 친구야, 이 사람이 니도 알다시피 공부도 잘하고 사람도 착한 내 작은 처남 열찬이다. 버든에 이일찬, 이열찬이 형제라고 니도 들어봤제? 이번에 이 처남이 내한테 중소 한 마리 사주기로 했다. 넘의 땅이라도 부쳐서 저 생때같은 지조카들 밥이라도 안 굶기라고 말이다.”

하면서 중얼중얼하다가

“어이, 평천땍이 이금찬씨, 친구 왔는데 술상 안 보고 뭐하노?”

빼액 고함을 지르더니 마루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고 철봉씨도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 다섯 과 한 덩어리가 되어 수진씨의 발을 씻기고 옷을 벗겨 자리에 눕히고

“세상에 술도, 술도, 무신 술로 저래 퍼묵능고? 내사 마 동상 니 보기도 미안코 같이 살기도 엉성시럽다. 아이구 내 팔자야!”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침 다섯 시에 눈을 뜬 열찬씨가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데 매형 수진씨는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기척을 느낀 금찬씨가 금방 열무김치국물에 만 보리밥 한 보시기를 들고 와서

“야야, 이거라도 좀 묵고 내러가거라. 언양차부까지 걸어갈라 카면 한 시간 넘기 걸릴 낀데.”

괜히 미안한 표정으로 수진씨가 잠든 방을 흘낏거렸다.

“누부야, 꼭 옛날에 새벽밥 묵고 밭에 가는 기분이네. 참 오랜만에 김칫국에 밥을 말아 묵는구나. 가실에는 시락국에 콩이 드문드문 들어간 밥을 말아 막걸리까지 한 잔 쭈욱 마시고 들에 나가면 속이 든든했는데.”

열찬씨가 30만 원이 든 신문지로 싼 돈뭉치를 금찬씨에게 건내며

“누부야, 30만 원이다. 이따가 자영 깨면 디리라. 나는 다음주에 올라오께. 자영이 알아서 중소를 사라캐라.”

하면서 논길로 나섰다. 한번 술에 취하면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수진씨를 기다리다가는 출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언양차부까지 거의 뛰다시피 근근이 출근시간을 맞출 수 있는 첫차를 탔다.

그렇게 한 주일이 지나고 영순씨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열찬씨가 등말리에 도착해 맨 처음 중소가 매여 있을 마구간을 살폈지만 중소는커녕 송아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남 왔나? 아이고, 처수씨도 아아들 데리고 오싰네. 덥어서 걸어온다고 욕 받지요?”

수진씨가 빙긋 웃으며

“처남 소는 마춤한 기 없어서 다음 장에 사기로 했다.”

우선 궁금증을 풀어주더니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을 번쩍번쩍 들어보았다. 저녁상에는 역시 푹 고은 폐계 닭볶음이 올라왔는데 두 아이들이 닭장수의 아들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빼박았는지 다섯 명의 고종사촌 틈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닭고기를 뜯어댔다. 이윽고 밥상을 물리고 아이들이 자러 가고 어른 넷이 남았는데

“처남, 암만 해도 중소는 내 성이 안 차. 저거를 언제 키아서 호오리 채우고 훌찌 매어서 논밭 갈겠능가 생각하면 마 시장시러번 기라. 그래서 기왕 사주는 김에 쪼깨 무리를 해서라도 큰 소를 사주면 올가실에라도 당장 남의 도지를 빌려 보리나 밀을 좀 심어볼 낀데 말이다.”

수진씨가 넌지시 떠보는데

“자영, 큰 소는 얼매나 하능교?”

“소도 소 나름이지만 대충 한 60만 원.”

“돈이 될랑가?”

혼자 중얼대던 열찬씨가 문득 영순씨를 쳐다보자 영순씨가 눈을 내려 깔았다. 남자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것 같았다. 이어 금찬씨와 눈이 마주치자 역시 금방 눈길을 피했다.

“알았심더. 내 부산 가서 함 마차보지요.”

하는데

“보소, 일식이아부지! 배내기 소는 송아지를 키워서 새끼를 빼고 큰 소를 돌리주는 긴데 미리 큰 소를 사면 우짠단 말이요?”

갑자기 생각난 듯 묻는데

“그렇구나. 그라면 뭐 일단 큰 소로 농사를 짓다가 송아지를 낳아서 중소가 되어 논일 가르칠 때 큰 소를 주고 나중에 그 중소가 송아지를 낳아 중소가 되면 또 큰 소를 한 마리 주지. 한 3,4년 걸려도 그것도 괜찮겠네. 처남 니 생각은 어떻노?”

“글키요. 그럴 듯도 하네요. 마 그라면 그렇게 하든지요.”

 

부산으로 돌아온 열찬씨는 얼마간의 저축과 새마을금고에 붓고 있던 적금을 담보로 얼마간의 대출을 받아 30만 원의 목돈을 더 만들어 등말리로 가져다주고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내려왔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