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⑥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삽짝문을 들어서던 열찬씨의 눈이 동글해졌다. 마닥자리에 분명히 있어야할 큰 소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큰애 일식기가 산에 풀을 먹이러 갔더라도 분명히 마닥자리에는 소똥이 더덕더덕한 짚과 소죽을 먹던 구유가 있고 소를 매는 쇠말뚝에 이까리로 긁힌 자국이 있고 노란 소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야 되는데 도무지 소를 매었다는 흔적이 없는 것이었다.
전과 달리 집안에 활기나 온기도 없고 집에 남은 아이들도 반색하며 달려오지 않았다. 열찬씨가 의아스럽게 안채를 바라보는데 한참 만에 부엌문이 삐꺽 열리면서 금찬씨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누님, 소는 요?”
이거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에 수진씨를 돌아보는데 이미 흔적도 없었다.
“그, 그 그기 말이다...”
“그래 소가 우째 됐단 말잉교? 그라고 자영은 또 어데로 새고? 어서 속 시원히 말을 좀 해보소.”
“그래, 그 소가 참 큰일이다. 그, 그러니까 그놈의 소 때문에 너거 자영이 죽게 생겼다. 사람이 죽게...”
분위기가 무거워서 그런지 둘러섰던 아이들도 슬금슬금 물러나고 마당 한 가운데에 남매만이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야, 일식아! 정지에 가서 물 한 바가지 퍼오너라. 내도 속이 터져 죽을 판이지만 너거 엄마 숨 넘어 가겠다.”
하여 열찬씨와 교대로 물을 마시고 비로소 조금 안색이 돌아온 금찬씨가
“그래, 동상 니도 알기는 알아야제. 그렇지만 내 무슨 낯짝으로 니 한테 말을 하겠노?”
하면서 한숨을 푹 쉬더니 눈짓으로 열찬씨를 이끌고 마루에 앉았다.
“그래, 동상 니가 소 값 60만 원을 주고 간 다음 장날 말이다. 너거 자영은 신이 나서 아침 댓바람에 친구 철봉씨 하고 열녀각을 돌아갔다. 대문간을 나가면서 둘이 하는 소리를 들으니 소 값이 비싸 60만 원으로 맘에 드는 소를 사기가 힘들겠지만 두 친구가 살 듯 말 듯 소 값을 후려쳐 다믄 2,3만 원 이라도 깎아지면 아이들 난닝구나 과자도 사고 둘이 코가 비뚤어지게 술도 실컨 마시자고 신이 났더구나.
그런데 아무리 늦어도 해 떨어지기 전에는 와야 되는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나서 천지가 깜깜해지도록 오지를 않는 거야. 소를 샀는지 안 샀는지는 몰라도 큰돈을 들고나간 사람이 들어오지를 않으니 애가 타서 죽겠더란 말이야.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세고 해가 돋아도 두 사람은 오지 않고 아이들이 머뭇거리며 마지 못 해 학교로 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열시쯤이나 되었을까. 저 아래 열녀각 옆으로 비틀거리는 두 남자가 보였어. 보나마나 너거 자영과 철봉씨였겠지만 다시 자세히 보아도 허리가 약간 꺼꾸정하고 키가 좀 큰 사람이 철봉씨고 일봉씨에게 매달려 비틀거리는 사람이 바로 일식이아부지였어. 그런데 두 사람이 술이 취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소가 보이지 않더란 말이야. 만약 소 값이 안 맞아 안 샀더라면 돈뭉치를 들고 있어야 되는데 두 사람 다 빈손이었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
한참을 지나 사개이 못과 대밭을 돌아 두 사람이 논길을 들어섰는데 이거 뭐 사람의 몰골이 아니라 완전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낸 형국이었어. 술이 덜 취한 철봉씨는 눈이 멀뚱멀뚱했지만 너거 자영은 온몸이 흙과 물에 젖고 얼굴이라고는 배가 퉁퉁 부은 황달환자가 마침내 흑달(黑疸)에 걸려 숨넘어가지 직전의 새까만 얼굴에 눈에 초점이 없고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했어.”
이야기를 하면서 새삼 기가 막히는지 후유! 한숨을 몰아쉬고는
“일식이아부지 이적지 뭐 하고 인자 오능교? 그라고 소는 요? 하고 내가 묻자 눈을 흘낏 뜨는데 세상에 그렇게 막막한 눈빛을 십오 년도 더 부부로 산 내가 처음 보았지. 누가 후 불기만 하면 금방 무너질 볏가리나 챙그랑 하고 산산조각이 될 유리로 된 파리통처럼 뭔가 한없이 막막하고 세상을 다 산 듯이 절망과 한탄이 가득한 눈빛이었지. 그렇게 한참이나 날 쳐다보던 너거 자영이 뭐라 캤는 줄 아나? ‘소, 소, 뭐 소라꼬? 나는 모린다. 나는 마 콱 죽어뿔 끼다!’ 그렇게 소리치고는 맨땅에 스르르 무너져버리더란 말이야. 그 제서야 옆에 섰던 철봉씨가 ‘제수씨, 소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이 사람을 좀 씻겨서 눕힙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어데 돈 나고 사람이 났겠능교?’ 하더란 말이야. 그래서 둘이 너거 자영을 씻겨서 눕히고 나서 물을 한 바가지나 들이마신 철봉씨가 하는 말이...”

말을 끊은 금찬씨는 새삼 설움이 복받치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철봉씨의 말에 의하면 소전에 가서 소를 둘러보고 소 값을 알아보는 수진씨의 태도가 어쩐지 선뜻 맘에 드는 소를 고르기 보다는 중개인이 권하는 소마다 어느 건 뿔이 잘못 생겼다, 어느 건 엉덩이가 좁고 등뼈가 비뚤어져 힘을 못 쓰겠다 또 어느 건 먹는 양이 적고 새끼를 못 낳을 것 같다며 자꾸 흠집만 찾더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점심때가 되자 서부에 있는 개장국집에 가서 그냥 국밥도 아닌 수육까지 한 접시 시키고
“자, 친구야. 걸뱅이 떡 본 짐에 제사라고 없는 놈들이 손에 돈 있을 때 한 잔 묵자! 설마 우리 둘이 점심 묵고 술 한 잔 했다고 큰 소가 어데 중소가 되겠나? 실컨 한 분 묵어보자.”
하면서 둘이 소주를 네 병이나 비우고 나와서 오후에는 핑뎅이 불 끄듯이 소전을 휭하니 한 번 둘러보고 사지도 않고 나와서는 원숭이를 놀리는 약장수와 작두 위를 걷는 차력사를 한참이나 구경하고 어물전 귀퉁이에 있는 대폿집에서 해삼의 배를 따고 군소와 오징어를 삶아 막걸리를 두 되나 마시고는 해가 기울자 소는 다음 장날에 사자면서 아이들 지져 먹일 까지매기를 한 아름 사서 서부극장 앞을 지나 송대성당쪽으로 길을 잡았단다.
그런데 서부마을이 끝나고 성당으로 향하는 길 옆 물 방간집 앞에 외딴 술집이 하나 있는 거를 니도 알제? 그 술집은 벌써 백년도 더 전부터 있던 거로 일식이 저거 증조부도 젊을 시절 출입을 했고 우리 시아부지도 수중에 돈이 넉넉하면 가끔 들려 외지에서 온 작부랑 며칠을 묵고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곤 했지. 좋게 말해서 상북 장꾼들이 오가면서 목을 축이는 주막집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가을 추수를 하고 쌀을 내거나 송아지를 팔아 허리춤에 전대를 찬 촌사람들을 부산의 작부나 왈패를 끌어들여 술도 먹이고 노름판도 붙여 알거지가 될 때까지 벗겨먹는 집이라고 소문이 났지.
그런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뻘죽, 아니 뻘좆이나 시북보다도 더 깊고 아득한 도둑놈의 소굴에 너거 자영이 지 발로 걸어 들어간 거란 말이다. 하기사 수중에 돈만 있으면 ‘날아가는 까마구야, 내 술 한잔 묵고가라.’ 카는 너거 자영이 수중에 돈이 있는데 간이 안 붓고 전디겠나? 첨에는 간단하게 막걸리 한 주전자만 묵고 간다는 것이 입수부리에 쥐 잡아묵은 것처럼 새빨갛게 구찌뱅이 칠한 논다니 가시나들이 살살거리고 권하자 어느 새 고추망태가 되고 세상이 동전 만 하게 쪼깬하게 보이면서 전부 지 장단에 놀고 지 수중에 있는 것만 같았겠제?
그런데 철봉씨 말로는 그 때 안방에서 왁자지껄 섯다판을 벌리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두 사람이 흘낏흘낏 쳐다보니 아무리 보아도 촌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아래 우가 다 허여멀쑥 멀끔한, 아니 개가 죽사발이 핥아놓은 것 같은 반질반질한 사내 다섯이 돈 천 원씩을 찌르고 화투 패 두 장씩을 돌려 끗발이 높은 사람이 먹는 화닥띠기라는 노름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데 어떤 때는 땡이나 삥을 진 사람이 묵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2.8망통을 쥐고도 배짱으로 자꾸 찔러 마침내 삥이나 땡을 물리치는 묘기가 여간 아니라는 것이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 너거 자영이 슬며시 노름판에 끼어들더니 금새 수인사를 하고 패를 받기 시작하더란 것이었어. 비단 명촌동네 뿐 아니라 상북바닥에서 눈치 빠르고 깡아리 있기로 소문난 사람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갔으면 갔지 그 재미있는 노름판을 그냥 지나쳤겠나 말이지. 처음에는 너거 자영도 크게 잃지도 않고 오히려 조금씩 따기도 했는데 밤이 깊어지자 자꾸만 끗발이 죽고 오기를 부리다 점점 크게 잃어 전대의 돈뭉치가 자꾸만 축이 나더란 말이지.
그래서 일봉씨가 제발 그만하라고 옆구리를 푹 지르자 쳐다보는 눈길이 사람의 눈길이 아니라 마치 늑대나 갈가지, 그라이 호랑이새끼 눈빛으로 시퍼런 불똥이 치르륵 흐르더란다. 철봉씨가 보니 그 멀끔한 사람들이 같은 패거리로 서로 짜고 치는 눈치였다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너거 자영은 잃으면 잃은 만큼 자꾸 돈을 찌르고 그래서 지고나면 성이 나서 벌컥벌컥 술을 마시고 힘에 부쳐서 콜록콜록 기침까지 하면서 자꾸만 돈을 찔러 마침내 방문 앞이 부옇게 밝아올 때쯤 수중의 돈이 바닥나고 말았다네. 그러자 그 다섯 사내들이 돈을 긁어모아 가방에 넣고 그중 나이 많은 사내에게
“형님, 끝났습니다. 촌놈들 큰 소 한 마리 우리 가방에 다 들어왔습니다.”
하고는 손을 탈탈 털면서 일어서더란 것이었네. 그 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너거 자영이
“이 사기꾼들아! 너거가 짜고 내 돈을 뺏었지? 이 도동놈들아!”
하고 눈앞의 사내에게 엉겨 붙었지만 술이 취하고 맥이 빠져 아랫도리가 휘청거렸는데
“어라? 이 바보같은 촌놈이!”
하면서 매섭게 정강이를 걷어차자 너거 자형은 바람 빠진 불티 꼴로 엎어지고 철봉씨는 간이 떨려 말 한 마디도 하지 못 했다네. 이윽고 그 중 한 명이
“그래도 술값은 우리가 내야지. 주모 저 촌놈들 마신 거까지 술값이 전부 얼마요?”
하고는 계산을 치르고 지나가던 아가씨의 엉덩이를 탁 치면서
“가시나야, 이렇게 언양장이 물 좋은 줄은 몰랐다. 우리 다음 장날에 또 올 테니까 니는 치마 밑이나 깨끗이 씻고 기다리거라!”
하고 신발들을 찾아 신는데
“저, 어르신요, 지는 이 돈 없으문 우리 아아들 다섯이 하고 우리 식구 일곱이 다 죽심더. 이 돈에 일곱 식구 목숨이 달렸심니더.”
어느 새 벌떡 일어난 너거 자영이 형님이라는 사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는데
“어라? 이 촌놈이 또 지랄이네!‘
아까의 강팍하게 생긴 사내가 또 여지없이 구둣발로 옆구리를 지르자
“헉!”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너거 자영이 걸레처럼 너부러지고 사내들은 손을 탈탈 털며 떠나버렸다네. 그렇게 너거 자영은 뻗고 철봉씨는 망연자실하고 섰는데 술집주인여자가 바가지에 찬물을 들고 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쓰러진 사람의 머리에 사정없이 씌웠다네. 그러자 쓰러진 사람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자
“아저씨, 어서 데꼬 가이소. 아침부터 넘의 가겟집 앞에 이 무신 거지꼴이요? 너무 술집 망하는 꼴 볼라꼬 그라요?”
하면서 눈을 부라리더니 철봉씨가 사람을 부축하는 것을 보고
“자야, 어서 소금바가지 가 오너라! 에이, 재수 없다. 퇘퇘!”
침을 뱉으며 돌아섰다네.
다시 축 늘어져 넋이 나간 너거 자형한테
“친구야, 일나라! 수진아, 이란다꼬 우짤끼고? 그만 일나 봐라!”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