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53)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⑦
대하소설 「신불산」(253)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⑦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19 07:00
  • 업데이트 2022.09.21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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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⑦

다시 축 늘어져 넋이 나간 너거 자형한테

“친구야, 일나라! 수진아, 이란다꼬 우짤끼고? 그만 일나 봐라!”

철봉씨가 어깨를 흔들자 한참 만에 눈을 뜨며

“친구야, 우짜꼬? 나는 그만 죽어뿌까?”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데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네. 하도 딱해 철봉씨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데 세상에나 손수건에 피가 묻어 나오더라네. 살아오면서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지 눈에 피가 난다.’ 또는 ‘피눈물이 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마흔이 넘은 사람이 피눈물이 나는 것은 평생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어.“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렇지만...”

차마 ‘내 돈은, 내 소는?’ 이란 말은 못 하고 열찬씨가 망연자실해 고개를 돌리는데

“그날부터 몇 며칠을 밥을 못 묵더라. 내가 아부지한테 들은 말이 있어 밥을 못 묵으면 물을 믹이고 물도 안 넘어가면 지렁장을 믹이라 캐서 찬물에 지렁장을 풀어서 억지로 믹이니까 그 제서야 미음을 넘구고 눈을 바로 뜨더라. 돈 잃고, 소 잃고, 사람 잃고, 신용 잃고, 동생 니 볼 낯도 없고 참 기가 차더구나. 내 이적지 살면서 놀랠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이 젂었지만 이렇게 기가 막히고 어기가 차고 하늘이 내려앉은 것 같기는 처음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그런 내 심사나 앞으로 살 걱정이 아니라 당장 너거 자영이 무슨 나쁜 마음이라도 묵을 까 봐 밤에 자다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께어나 식은땀을 줄줄 흘리거나 도무지 식욕이 없는지 밥상머리에서 숟가락도 잡을 생각을 않으면

“보소! 일식이아부지. 사람 나고 돈 났지, 어데 돈 나고 사람이 났능교? 돈이고 소고 설마 살다보면 어떻게든 해결이 나겠지요. 저 생떼 같은 다섯 아아들로 봐서 어서 밥이나 잡수소. 당신이 정신을 채리고 힘을 찾아야 우리 일곱 식구가 살지. 당신이 계속 이라고 있으면 우리 일곱 식구는 다 죽은 목심이요!”

하면서 애원을 하고 막내 현주가 애교를 부리며 억지로 밥을 떠먹이면서 겨우 고비를 넘겼네. 그런데 이제는 일요일만 되면 동상 니가 소 보러 오는가 싶어 열녀각 옆에 사람그림자만 번쩍하면 사람얼굴이 사색이 되더란 말이네. 그렇게 내내 열녀각만 쳐다보다가 괜히 내캉 시비를 걸고는 아아들을 데리고 내려갔지. 그라고는 집에 들어 오자말자 그만 슬금슬금 어디론가 내빼더란 말일세. 아마 지금 어디 대밭이나 산속에 숨어서 니 가기만 기다리고 있을 끼다.”

 

“그렁교?”

무심히 받아넘기던 열찬씨가 후우- 긴 한숨을 쉬자

“야야, 니 보기 미안코 채면이 없어서 내가 우야면 좋겠노? 생각 같아서는 저 시근 없는 인간, 너거 자영하고는 평생 살아도 날이 샌 것 같아서 인지라도 실건이나 살강에 목을 매고 죽을라 캐도 저 죄 없는 아아들 다섯 놈 때문에 죽을 수도 없다. 동상아, 나는 우짜면 좋겠노?”

“누부야, 그런 소리 하지 마소. 누부 니가 무슨 죄가 있고 무슨 잘못이 있노?”

“그래도 이기 다 내 때문에 생긴 일이다. 못난 누부가 없으면 니 한테 우째 이런 일이 있겠노?”

“아이다. 누부야, 인자 좀 그만 울어라. 아아들 본다.”

열찬씨가 손수건을 꺼내 금찬씨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그 손수건을 도로 뺏은 금찬씨가

“동상아, 미안하데이. 죽을 때까지 니 자영하고 내를 원망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동생아, 니도 울지마라!”

방금 굴러 내리기 직전의 눈물방울을 닦아주며 올려보다 마침내 남매가 서로 껴안고 한참이나 흐느끼다

“동상아, 내 팔자가 와 이렇노? 우리 칠 남매 중에 고생도 젤 많이 하고 시집도 젤 더럽게 가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단 하루도 내날 같은 적이 없었다. 그라고 공연히 동생 니까지 내 한테 붙어서 이 복 없는 누부랑 같이 생고생을 하는구나!”

“아이다. 누부야. 그런 소리 하지마소!”

“아이다. 내가 참 재수 없는 년이다. 니캉내캉 이래 마주보고 울다보니 옛날에 일찬이오빠 정신나갔을 때 생각이 나구나. 나는 맨날 그 반찬도 없는 꽁보리밥을 소쿠리에 담아서 병원에 이고가고 니는 맨날 천지를 돌아댕기는 오빠를 따라댕기다가 얼어 죽을 뿐 하고.”

“누부야, 골치 아픈 이야기 좀 하지마라!”

“그래 말이다. 그래도 우리 칠 남매 중에서 유독 니캉 내캉 고생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우짜겠노?”

“...”

이미 기가 빠진 남매는 멍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다 일식이가 떠다놓은 냉수사발을 차례로 들이켰다. 이윽고

“누부야, 나는 고만 갈란다.”

열찬씨가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는데

“야야, 이래 가면 우짜노?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났는데.”

말을 던지고 또 무안해 하는 금찬씨를 보며

“이기 하루이틀에 해결이 날 일이가? 살다보면 우째 해결이 나겠지. 그라고 내가 가야 자영이 집에 올 꺼 아이가? 이따 자영 오면 나는 마 개안타 카고 자영이나 열심히 밥도 묵고 있는 농사라도 잘 지어서 아아들 하고 묵고 살고 후제 살림이 피면 그 돈이든 큰 소를 갚아라 카소.”

손을 탁탁 트는데

“동상아, 참말로 그래도 되겠나? 그런데 부산에 동상아댁 슬비엄마한테는 뭐라 칼끼고?”

“소가 참 좋더라고, 잘 커더라 카께요. 그라고 당분간은 명촌에 안 데꼬오께요.”

“고맙다이. 내 정말 동상 니 볼 낯이 없데이.”

“뭐 우짜겠능교?”

마침내 열찬씨가 삽짝을 나서 논길을 걸어가는데 주춤주춤 따라오던 금찬씨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야야, 동상아!”

황급히 부르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자

“엄마나 영주에 이야기 하면 안된데이.”

“야.”

“그라고 김해에 순찬이새이 알면 큰 일 난다이. 너거 자영 죽는 날이다이.”

“야.”

비로소 애 많은 남매의 작별이 이루어졌다.

ⓒ서상균

그해 추석에 열찬씨가족은 산소가 있는 언양이 아닌 영주의 큰집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모처럼의 가족나들이에 집에서 사온 김밥과 찐 달걀, 요구르트를 먹으며 두 아이가 신이 나고 영순씨도 모처럼의 기차여행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열찬씨만은 동해남부선변의 새파랗게 펼쳐진 바다와 드문드문 점처럼 떠있는 배나 등대에 황홀하게 부서지는 햇살도 경주, 영천을 지나가며 펼쳐지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언양에 가면 큰 소를 사준 명촌에 가봐야 하는데 영순씨와 아이들이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는 새로운 재산이자 희망인 소가 없는 것이었다. 여차여차해서 큰 소는 당분간 보기 힘들고 적금대출까지 낸 60만 원의 거금은 사실상 날아 가버린 셈이라고 영순씨에게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모처럼 어머니를 만난다는 명분으로 이렇게 사건의 본질을 피해가는 것이 옳으냐를 계속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월급을 타서 적금을 넣고 다시 일부를 대출금으로 갚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이미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과 유치원생이 된 아들의 학비를 쓰고 나면 먹고사는 일은 그냥저냥 최하의 상태로 그저 굶지 않은 정도로 유지될 뿐이었다.

서른다섯 살의 열찬씨는 아직 단 한 번도 구청에 근무한 일이 없는 동사무소직원이었다. 그것도 아무 실속 없이 구청이나 상관에게 가장 많이 부대끼고 남보다 일찍 새벽에 출근하고 남보다 늦게 밤중에 들어오기가 일쑤인 새마을담당이었다. 당시에는 <내 집 앞 내가 쓸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일, 누구나 당연히 그래야만 할 일을 굳이 <새마을조기청소>라고 포장을 해서 매주 월요일 아침 6시에 동사무소직원이 새마을지도자, 부녀회, 통반장과 청년회원을 동원해 동사무소입구를 비롯한 관내의 상습불결지를 청소해야했는데 나중에 이 단순한 행사를 동별로 평가를 하여 상을 주는 바람에 하수구가 범람해 악취가 풍기거나 부서진 가구조각에 음식물쓰레기에 고양이나 쥐의 시체가 뒹구는 진짜 불결지는 두고 구청직원의 눈에 잘 띄는 연산로터리 같은 간선도로를 쓸면서 인원수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동원한 사람들에게 새마을모자를 씌워서 점검에 대비하기도 하고 구청새마을계의 담당공무원들이 나오면 박봉을 털어 해장국을 사 먹이고 어떤 때는 차비(?)까지 주어 보내야 했다.

그 조기청소가 끝나면 주요간선도로에서 홍보 어깨띠를 매거나 전단을 나눠주며 교통질서캠패인을 하기도 했는데 그 모든 활동은 지프차로 관내를 한 바퀴 도는 구청장의 순찰차가 지나가 눈도장을 찍어야 끝이 나는 것이었다.

또 주말이면 빠짐없이 범어사계곡이나 금강공원에 자연보호캠페인을 나가야했는데 처음 한두 번은 공무원이나 단체원이나 모처럼 일상에 벗어나 맑은 공기 속에서 기분이 전환되니 즐겁게 참여하지만 문제는 그게 주말마다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밀린 집안일이나 가족나들이 하다 못 해 푸근한 휴식이 아쉬운 도시인이나 공무원들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거기다 분기 1회 정도는 자연정화경진대회라는 이름으로 방송국의 촬영 팀까지 불러 동별로 유원지의 쓰레기를 수거해 그 양을 재어 시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연말의 동장의 능력이나 새마을단체나 회원의 시상기준이 되는 이 행사에 대한 수상욕심이랄까 공명심에 사로잡혀 아침부터 인력을 동원해 미리 쓰레기를 모으거나 마을의 생활쓰레기를 차에 싣고 와 입상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비교적 큰 동에 속하는 연산4동으로서는 가끔은 1,2등에 들어야 체면이 서는 일이라 열찬씨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그러나 담당자인 열찬씨에게 그렇게 동장, 사무장이 참석하는 행사는 약과요, 동별로 3명이나 5명 정도 인원을 배정해서 조용히 치르는 행사가 오히려 문제였다. 담당자인 자신을 비롯해 평소에 열성적인 새마을지도자, 통반장, 부녀회원 중 몇 명을 연락해서 동행하면 되는데 문제는 비용이었다. 우선 오고가는 버스비, 급할 때는 택시비가 들고 행사를 마치면 식사를 겸해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 되는데 행사장에서 계곡을 타고 버스정류소로 오는 길가의 모든 건물이 닭이나 오리 백숙을 파는 집이요, 길모퉁이마다 파전, 정구지전을 부쳐 막걸리를 파는 노점으로 굽고 튀기는 연기와 고소한 냄새로 진동하니 가뜩이나 출출한 사람들이

“어이, 이주사 우째 배가 출출 안 하나?”

“야. 나는 아까 올라갈 때부터 헐출했지요.”

“헐출하다니? 언양사투리로 배고프다 말이가?”

“야, 그냥 배가 고프다는 것이 아니라 뱃속이 아주 허전할 정도로 배가 고파 방금 숨넘어갈 것 같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헐출하네.”

그러고는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잘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별 여유가 없이 그냥 성실하기만 한 사람들이라 만만하게 닭 한 마리 먹을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비상금을 털어 백숙을 먹는 날도 있지만 그냥 정구지찌짐 하나 구워서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시고 돌아서면 무언가 빠뜨리고 오는 것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어느 주말에는 수중에 돈이 떨어져 아내 영순씨에게 돈이 좀 있느냐고 물어보니

“이것뿐인데요.”

하며 전 재산을 손바닥에 올려놓는데 겨우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였다.

“그렇구나? 월급날이 다 됐제? 마 됐다.”

돌아서는 열찬씨나 보내는 영순씨가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마당발인 토박이 윤인관씨에게 통사정을 하니 주말마다 동네의 젊은 유지들과 벌이는 노름판의 밑천이라고 두둑이 넣어둔 지갑에서 빨간 5천 원짜리 하나를 꺼내주면서

“아이구, 우리 이주사가 고생이 많구나! 그까짓 마이다시 한 판 당길 돈도 안 되는 액수를 가지고.”

아직도 단간셋방살이를 못 면하는 형편에 어쩌다 푼돈이라도 생기고 점심이라도 얻어먹는 민방위나 병무, 세무, 민원업무를 피해 죽도록 고생하고 생돈만 들어가는 새마을담당 열찬씨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음날 직원회의에서 동갑인 동장에게 건의하여 공식적으로 닭백숙이나 막걸리 값은 못 주더라도 교통비는 주어야 된다면서 사무실에 월별로 토큰을 10개씩 사놓고 그때그때 뽑아서 쓰라고 했다.

 

계급사회인 공무원사회에서는 동사무소보다는 구청, 구청보다는 시청, 시청보다는 내무부 같은 중앙청에 근무하는 것이 업무의 중요도도 높고 승진고과점수도 높아 출세를 하는 지름길이었지만 그냥 하루하루의 일과와 그렇게 번 한 달치의 월급으로 한 달을 살기에도 급급한 열찬씨는 자신이 상급부서로 전근하거나 남보다 앞질러 승진을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