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54)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⑧
대하소설 「신불산」(254)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4장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⑧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20 10:13
  • 업데이트 2022.09.21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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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말리별곡3 타락하는 박수진⑧

계급사회인 공무원사회에서는 동사무소보다는 구청, 구청보다는 시청, 시청보다는 내무부 같은 중앙청에 근무하는 것이 업무의 중요도도 높고 승진고과점수도 높아 출세를 하는 지름길이었지만 그냥 하루하루의 일과와 그렇게 번 한 달치의 월급으로 한 달을 살기에도 급급한 열찬씨는 자신이 상급부서로 전근하거나 남보다 앞질러 승진을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또 싱거운 소리나 남의 말은 잘 하면서도 정작 상급부서나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피력이나 부탁을 하는 체질도 아니었다. 그건 비단 열찬씨 뿐 아니라 형 일찬씨나 선대조상들도 마찬가지로 속에는 육두(六頭品 신라시정의 관직, 성골, 진골 혈통이 아닌 일반백성의 최고위직)벼슬을 해도 남에게 내보이기를 망설이고 혼자 속이 상해 술이나 마시다 애먼 마누라나 혼을 내는 경주이씨 사내들의 천성이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다 있었다.

황령산 마하사 계곡에서 연산동 주택가를 지나 온천천에 합류되는 쌍미천이라는 제법 큰 하천이 있었는데 아직 복개하기 전이라 상류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악취와 함께 주민들이 무단으로 버린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문제였다. 빵과 라면봉지를 비롯하여 연탄재, 채소와 과일찌꺼기, 소와 닭 뼈에다 개와 고양이의 사체, 걸레조각 등 별의 별 게 다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깨끗한 물길을 틔우는 것이 새마을담당자의 주요임무이기도 했다.

당시 안모구청장이 어떻게나 현장확인을 좋아하고 시시콜콜 따지면서 동장이나 담당자가 마음에 안 들면 불호령을 놓는지 동래구관내 동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동장과 열찬씨는 새마을지도자, 통반장, 새마을부녀회원과 청년회를 동원해 장화를 신고 도랑바닥에 들어가 삽과 갈퀴로 쓰레기를 긁어 바께스에 담아 2미터가 넘는 둑 위로 끌어올려 말린 뒤에 구청청소차에 인계해야만 했다. 그래서 토요일오후에 귀신처럼 둘러보는 구청장에게 청소검사가 통과되어야했고 만약 청소상태가 맘에 안 들면 동장과 담당자는 밤중이나 새벽이라도 다시 불려 나와야 하는 지경이었어.

그날 오후에 동장인솔로 새마을지도자를 비롯한 전 봉사단체원이 부곡온천에 단합대회를 가는 날이라 오전 일찍 청소를 마치고 인근 기업체에서 찬조 받은 통근버스로 다들 떠나간 후였다. 혹시나 싶어 나만 담당자인 열찬씨만 사무실에 남겨놓고.

그런데 너무 일찍 청소를 마쳐서인지 점심시간 전후로 너무 많은 쓰레기가 버려졌는지 그는 그만 그 표범처럼 표독한 구청장에게 불려갔다. 동장, 사무장의 행선지를 묻다 새마을지도자를 위로하러 부곡온천에 갔다니까 그럼 담장자인 당신이 내일 아침 6시에 확인을 하러 나올 테니까 어떻게든 다시 깨끗이 정비하라는 지시를 하고 돌아갔다.

그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동장과 전직원, 전단체원이 단합대회를 떠나버려 연락할 길도 없었고 구청장의 지시를 이행 않으면 자신과 동장이 혼나는 것은 물론 7급고참인 근무평정은 물론 동행정 업무평가와 새마을지도자협의회의 평가가 모조리 결단이 나는 것이었어.

할 수 없이 우선 저 혼자라도 도랑에 들어가 아주 보기흉한 쓰레기만 대충 건져내기로 했다. 자신은 도랑바닥에 내려가고 집이 도랑가라 마침 아이들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아내 영순씨를 불러 바께스로 끌어올리려는 참이었다.

“형님, 여서 뭐하능교?”

마침 군에 간 백찬이가 휴가를 나온 것이었다. 불문곡직 군복 입은 아우를 장화를 신겨 도랑에 집어넣었다. 도랑위에서 구경하던 여섯 살짜리 딸애는 삼촌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네 살짜리 아들은

“아빠, 도랑에는 왜 빠졌지? 어서 올라와!”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나중에 영순씨까지 붙어서 바께스로 쓰레기를 올릴 때쯤 백찬이는 형님이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침 지나가던 딸애의 유치원원장이 고생한다며 막걸리와 사이다를 사다주어 마시는 참이었다. 마침 이웃의 집에 들렀다가 현장으로 나가던, 당시 돈방석이라는 교통순찰차의 운전사로 근무하던 송경중이란 고등학교동창이, 학창시절 수석이라고 재학 중에 공무원합격한 친구가 이게 무슨 꼴이냐면서 경찰마크가 선명한 어깨를 으쓱하고 지나갔다.

ⓒ서상균

그 후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와 함께 매사의욕이 없고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처리가 건성이라 구청으로 부터 질책이 심해지자 하루는 동장과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과 간부 몇 명이 퇴근 후에 그를 불렀다. 당시 유행하던 식육식당에서 삼겹살을 넉넉히 구워서 일부러 그에게 돌아가며 빈 소주잔을 건넸다.

“이 주사, 힘내 무슨 일이든 우리가 힘껏 도울 테니 다시 한 번 힘내봐. 사실 우리 동사무소에서 이 주사만큼 무난하게 관내 주민과 어울리며 새마을운동을 추진할 직원이 누가 있겠어?”

열찬씨보다 다섯 살이 많은 ROTC 장교로 전역해 예비군중대장을 지낸 젊은 동장이 말하자

“그럼, 이 주사가 아니고 새마을담당을 맡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이구동성으로 격려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당시에 유행한 맥주홀에 대형 슈퍼를 경영하며 용돈이 넉넉하여 새마을지도자와 동직원에게 씀씀이가 좋고 연말에 새마을훈장수상과 구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당선이 유력한 사람 좋고 담대한 박구만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이

“가주사, 오늘 허리끈 풀고 한 잔 합시다. 푼돈 한 푼 아낀다고 재벌이 되겠나, 천년만년을 살겠나?”

맥주홀로 데리고 가더니 거금을 풀어 새마을지도자총무와 열찬씨 세 사람당 한명씩 아가씨를 불러 적잖은 배추 잎을 가슴팍과 무르팍에 집어넣으며 거나하게 한잔을 할 때였다. 문득 열찬씨의 머리에 번개처럼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호박을 심자고....)

연산4동 관할인 배산기슭의 감천암 암자를 지나 스물도 넘는 판잣집이 덕지덕지한 골짜기를 한참 올라가면 그 윗부분엔 꼭 야구장처럼 생긴 비스듬한 부채꼴의 한 5천 평쯤 되는 평평한 산기슭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란 그 산기슭에 새마을지도자를 비롯한 관변단체원들과 호박을 심는 것이었다.

도시 출신 새마을지도자나 부녀회원들이 더러 반대하기는 했지만 자신처럼 농사에 대한 향수가 아련한 농촌출신 단체원들의 절대적인 호응덕분에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마침내 사업이 확정되었다. 당시 지도자와 부녀회가 전재정의 1/3에 가까운 백만 원을 부담하고 통장연합회등의 단체도 일부부담을 하고 개발위원회에서도 지원금을 보내왔다. 튀김용 마디호박 200구덩이에, 조선호박 300구덩이를 심어 마디호박, 애호박, 늦가을의 누렁호박에 이르기까지 구덩이 당 만 원씩, 전체 5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려 경로잔치도 열고 새마을기금도 확보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애호박 고명의 국수와 호박전으로 관내 노인정에 국수파티도 열어주고...

이어 주말마다 산기슭의 풀을 베고 구덩이를 파고 시골양계장에서 닭똥을 사다 지게에 담아 날랐다. 대부분이 낫질, 지게질이 서툴었지만 보람찬 사업을 한다는 열정과 과연 이 산비탈에서 그렇게 초록빛 호박순이 벋어나가 덩그런 호박들이 열까 호기심들이 가득해 부녀회원과 여자 통반장들은 마치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재재거렸다.

“어라! 저게 누구야?”

“가주사 아닌가?”

“아니, 저 사람이 지게는 어떻게 질 줄 아나?”

“아니, 잘만 지네. 지게가 어깨에 딱 붙구만. 저 X자로 지게작대기 쥔 자세 좀 봐.”

산허리에서 풀을 베고 구덩이를 파던 사람들이 일제히 저 아래 마을 뒤에서 지게로 거름을 지고 오는 열찬씨를 보면서 쑥덕거렸다. 대학교까지 다녔다는 사람이 지게를 지는 것이 신기한지 몇몇 부녀회원은 손뼉을 치기까지 했다.

“아이고, 우리 가주사가 촌놈 표티내고 있네. 인자 임무교대합시다.”

세탁소 새마을협의회 총무 민춘식지도자가 지게를 지고 내려갔는데 한참 뒤

“안 되겠다. 어서 지게 벗으소. 뭐 지게질은 하무나 하는 줄 알고.”

술 취한 사람처럼 와들와들 떨며 비틀대는 민춘식총무를 세우고 슈퍼마켓을 하는 19통 최희담통장이 지게를 받아 지고 가뿐이 올라오더니

“아니, 가주사는 일찍이 부산에 왔다더니 지게질은 언제 배웠소? 그 정도면 상머슴은 아니더라도 머슴을 살아도 밥은 먹겠네.”

하는데

“바닷가 아이는 눈 뜨면 수영을 배우고 촌놈이 젖 떨어지면 지게부터 배운다 아잉교? 나는 어릴 때 우리 어른이 몸이 아파서 어지간한 농사일은 내가 다 했지요. 지게질, 낫질, 훌쩡서리질, 보리밭에 똥물주기, 콩 끌붙이기와 콩골서기...”

하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갈배기논과 골짝논, 진장밭 두 떼기와 오롱골 천수답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것도 이제 남의 손에 넘어가 이상화(李相和)의 시처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되어버린...

연신 땀을 흘려도 아직 소매 끝으로 찬바람이 스치는 지라 부녀회총무가 오뎅탕을 넉넉히 끓여 새참을 먹고 나서였다. 부산에서 나서 자란 새마을협의회 박구만회장이 낫질을 하는데 너무 서툴러 풀을 베는 것이 아니고 뜯는 것만 같아 열찬씨가 낫을 받아들고

“회장님, 낫질도 다 요령이 있지요. 그냥 힘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낫날을 아래에서 위로 한 15도 정도의 각도로 긁어 올린다는 기분으로 하면 되지요. 그리고 먼저 낫 끄트머리로 작은 나뭇가지나 풀대를 콕콕 쪼고 이렇게 휙 한 바퀴 돌리면 단번에 많이 벨 수 있지요.”

아버지 기출씨의 낫질을 흉내 내며 단번에 한 아름 마른 풀잎을 베어내자

“그 낫질하나는 제대로 배웠구만. 언양농고 낫질과를 나왔나?”

박구만 회장과 김영호 동장이 마주보고 빙그레 웃는데

“예, 농고에서는 해마다 풀베기대회를 하는데 저는 매회 등수에 들었다 아잉교, 상으로 바께스도 타고 수금포도 타고.”

“뭐, 삽이 아니라 수금포라고? 하하하, 그 참 오랜만에 듣는구먼.”

경북 어디선가 스무 마지기도 넘는 대농이었다는 14통 쌀집 유해철통장이 껄껄 웃는데

“저도 오늘 모처럼 낫질, 지게질 복습을 하는군요. 언젠가 내 고향 언양땅 신불산아래 논 사고 밭 사고 집 짓고 가야지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안 되면 정년퇴직 후에라도 말입니다.”

하던 열찬씨가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땅 한 평 없어 모조리 팔아버린 논밭과 집, 다 늙어 먼 객지 영주로 떠나가던 머리 허연 어머니 명촌댁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 색다른 사업계획이 구청, 시청을 거쳐 내무부와 새마을본부에 까지 보고되어 정말 참신한 소득사업이라고 호평을 받고 지방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간단한 사업내용과 함께 열찬씨와 몇 명의 새마을지도자가 땅을 파고 지게를 지고 거름을 퍼다 나르는 장면이 소개되자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빠진 사람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