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5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5장 군식구④ 백찬이 장가
대하소설 「신불산」(25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5장 군식구④ 백찬이 장가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25 07:05
  • 업데이트 2022.09.25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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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백찬이 장가④

그렇게 밤을 샌 순찬씨와 백찬씨가 돌아가고 난 뒤로 영순씨는 동네 아낙들이나 월부화장품을 팔러 드나드는 외판원에게 자연스레 시동생의 중매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라는 직장이 좋아서인지 이야기가 나간 지 한 달도 안 되어 혼담이 들어왔다. 월부화장품아줌마가 열찬씨가 근무하는 동사무소관할의 만 원짜리 지폐를 떠내려 보낸 쌍미천 너머 쌍미맨션이라는 자그마한 연립주택에 마침한 처녀가 있다는 소식을 가져온 것이었다.

고향 청도에서 2남7녀 9남매의 네 째 딸로 부산에서 요꼬공장을 하는 둘째오빠집에서 먹고 자며 어느 섬유회사에 다니는데 아가씨가 키는 좀 작아도 야무치고 귀엽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주말오후에 바로 백찬이를 불러 연산로터리의 다방에서 아가씨를 만나게 했는데 중매장이 아줌마의 말로는 처녀가 들어서자 총각이 씨익 한 번 웃고 처녀는 고개를 숙이며 해쭉 한 번 웃고는 자리에 앉아 둘이 다 도무지 말이 없는 걸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커피만 마시고 왔다고 했다. 초면의 처녀는 그렇다 치더라도 총각이 그렇게 말이 없어서 일이 잘 성사가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저녁에 맞선을 보고 온 백찬이에게

“대름요, 아가씨는 맘에 들덩교?”

영순씨가 묻자

“아, 뭐...”

하고 벌쭉 웃는 것이었다.

“저녁은 대접했능교?”

“아, 뭐 안 할라카던데요.”

“에라이, 어느 처녀가 초면에 덥썩 저녁묵자 카겠노? 남자가 억지로라도 끌고 가서 밥도 묵고 이야기도 하고 그라다가 보면 부끄럼도 없어지고 정도 들고 하는 기지.”

기가 막힌 열찬씨가 나서는데 끔뻑 눈짓을 한 영순씨가

“그래 장개는 갈 거지요?”

“...”

여전히 속내를 비치지 않는 백찬이에게

“그래도 안 갈 꺼는 아이지요?”

“...”

“그럼 됐네요. 내일부터 혼사시작해도 되겠지요?”

“...”

이렇게 총각의 심중을 떠보고 이튿날 화장품아줌마를 만나 처녀의 반응을 묻자 거기 역시 그냥 배시시 웃기만 할 뿐 쓰다달다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녀 입에서 싫다 소리만 안 나오면 그게 좋다는 말이나 다름없다면서 마침내 처녀의 올케와 영순씨가 월부아줌마와 삼자대면을 하여 혼사를 확정했다. 영순씨가 다시 처녀총각을 불러 형식적이지만 궁합도 보고 같이 저녁도 먹게 하니 둘 다 별 말은 없어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고 했다. 그날 저녁 영순씨가 영주의 김해댁에게 전화를 하자

“아, 그렇나?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영순씨가 며칠을 기다려도 혼수는 어떻게 마련하고 결혼식장은 어디로 잡고 신혼여행은 어디로 보내고 신혼집은 어디에 어떻게 꾸리고 살림은 어떻게 내어줄지 도무지 연락이 없었다. 섣불리 전화를 다시 했다가는

“아, 작은 형님은 형님 아이가? 부산서 생긴 일은 부산에서 알아서 하문 되지.”

간단한 한 마디로 모든 걸 뒤집어 쓸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영순씨가 마침내 김해의 순찬씨에게로 전화를 하자 당장 반응이 나타났다. 명촌과 장촌의 두 누님에게서 부산올케가 욕본다는 인사가 왔을 뿐 아니라 영주의 김해댁에서 결혼비용 백만 원을 보낼 테니 나머지는 부산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근 십 년 전 열찬씨가 장가갈 때 준 돈 10만 원에 비하면 엄청 큰돈이었지만 물가가 많이 올라 그 때 돈 4,50만 원 정도로 그저 패물과 옷감 등 신부 밑에 들어갈 돈이나 될 지 의문이었다. 이미 백찬이 몫의 웃각단 한 마지기를 팔아먹은 지가 십 년이 넘는 판에 그나마 크게 마음먹고 내어준 돈이었는데 아마도 김해의 순찬씨가 죽기 살기로 윽박질러 받아낸 엄청난 입씰레기, 즉 말싸움의 전리품이었다. 그야말로 할렐루야였던 것이었다.

ⓒ서상균

결혼식 날을 잡자 영순씨와 처녀가 같이 다니며 패물과 신부 옷을 맞추고 이불을 사 대충 준비를 하고 봉채라고 부르는 함도 열찬씨가 친구하나를 데리고 직접 지고 가며 서로 간에 허례허식을 않기로 약속했다. 결혼식장은 연산로터리에 새로 생긴 번듯한 7층 건물의 강남예식장으로 잡았다. 꽤 비싼 곳이었지만 토박이직원 윤주사가 중간에 들어 반값으로 해주기로하고 대신 동사무소에서 이런저런 행사 때 강남예식장을 선전해주기로 했다.

형식적이지만 청첩장을 찍어 백찬이의 직장과 친구에게 여남은 장, 열찬씨의 친한 동료 여남은 명에게 돌렸다. 이제 결혼식이 닷새쯤 남은 날 영주의 김해댁에게서 영순씨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식날 영주에서는 간단하게 일찬씨와 김해댁 두 내외만 내려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열찬씨는 기가 막혔다. 물론 자신이 장가들던 날은 본가인 버든에서 따로 동네잔치를 치르느라, 또 신식결혼식을 어떻게 하는 건지 시골사람들은 잘 모르기도 해서 어머니를 못 모셨지만 세상에 살아있는 어머니를 빼고 하는 결혼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백찬이야말로 마흔 다섯의 노산으로 산모 명촌댁이 거의 저승의 입구까지 갔다 온 아이로 아편쟁이 김종률씨가 아이어른이 동시에 죽을 수도 있다던 귀한 자식이요, 이제 70이 넘은 노구에 마지막 숙제요, 마지막 잔치인 큰 경사가 아닌가, 그런 어머니를 빼고 예식을 올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고심 끝에 열찬씨가 영주로 전화를 걸어 일찬씨와 어머니가 안 내려오면, 그러니까 어머니가 없는 결혼식을 부산에서 치를 수가 없으니 영주에서 치르든 말든 알아서 하든지 아니면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꼭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자 니가 형님 말을 우습게 알구나, 기가 그렇게 잘 났으면 자신과 아내도 안 내려갈 테니 만사 알아서 하라고 하고 전화가 끊겼다.

기가 막힌 열찬씨가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워버리자 영순씨가 너무 걱정을 말라고 하며 김해 순찬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복잡하고 성가실 때가 있기는 하지만 형제가 많다는 것, 더욱이 순찬씨처럼 곧이곧대로 원리원칙을 따지는 목소리큰 형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금방 증명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물론 우현이, 숙현이까지 다 데리고 또 김해와 부산의 사돈, 즉 김해댁의 형제들까지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결혼식 하루 전날 열찬씨의 좁은 두 칸 방에 일찬씨 3형제와 어머니와 아이어른이 다 모였다. 몇 년 째 낯선 영주에서 별 친구도 없이 숙현이와 아랫방을 쓰며 외롭게 살아서 기가 많이 빠진 어머니 명촌댁은

“내가 뭐로 아나? 저거 알아서 하지.”

라는 말로 모든 걸 대신하고 그냥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소고기국도 끓이고 두부도 굽고 잡채도 하고 제법 그럴 듯한 상차림으로 저녁을 먹으며 반주까지 곁들인 일찬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두릿두릿 사방을 살피자 그만 김해댁과 아이들은 가슴이 콩알만 해졌다. 뭔가 마음에 불만이 가득할 때 무엇을 던지고 부수거나 불을 지를 직전의 찍어 누르는 공포의 분위기를 느낀 것이었다. 늙고 무딘 어머니명촌댁도 자꾸만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 열찬이니는 부산에서 공무원쯤 한다고 형님이고 뭐고 눈에 비는기 없나?”

마침내 선전포고가 터졌다.

“형님, 와 이라능교? 내일 백찬이 장개가는데 좋은 일을 두고. 그만 참고 주무시소.”

열찬이 황급히 방금 집어던지기 직전의 술잔을 빼앗으며 일찬씨의 손을 잡는데

“놔라! 그까짓 형이 돼서 동생 학원 좀 보내 취직시키고 중신해서 장개 좀 보내면 되지. 거기 뭐 자랑거리가?”

“아니, 형님, 제가 뭐라 캅디까? 단지 어무이 없이 결혼식을 치르지는 못 한다고 꼭 모시고 오라고 한 거지요.”

“치아뿌라! 내 니 속을 모를 줄 알고. 니가 니 동생 장개가는데 뭐 좀 거든다고 이 형은 사람같이도 안 보는 거지. 어무이를 모시든 안 모시든 장남인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니가 이 형을 얼마나 씨뿌게 보고 되니, 마니 니 맘데로 한단 말이고?”

“형님, 거기 아이라 세상이치도 그렇고 또 남의 눈도 그렇고...”

“마, 치아라. 세상이치, 남의 눈치를 그렇게 살피는 놈이 이 형의 복장이 터져죽는 심사는 와 모른단 말이고?”

“아이고, 그라면 나는 할 말이 없심니더. 인자 형님이 다 알아서 하이소?”

열찬씨가 한숨을 쉬며 물러서는데

“이적지 지 맘대로 하고 할 말이 없다니? 만사 지 맘대로 다 하고 뭐 쪼깨 했다카면 온 데 이바구를 다 해서 형님을 망가시키고!”

아마도 김해의 순찬씨를 통하여 들어가는 차마 무시도 못하면서 못 견디게 귀에 거슬리는 온갖 이야기의 장본인으로 열찬씨를 지목하는 모양이었다. 열찬이 잠자코 눈을 내려까는데

“지가 형제간에 동생을 좀 도우면 도운 기지 생색은 무슨 생색이고!”

꽝, 술잔이 상에 떨어지는 소리가 온 방안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형님, 그건 생색이 아니라 형님이 형님의 책임을 안 하니까 그렇지요!”

이번에는 열찬씨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책임은 무슨 책임?”

“형님, 형님은 논 팔고 집 팔아간 권리는 독점하고 골치 아픈 일은 꼭 형제간에 나누자는 것 아잉교?”

“뭐라꼬! 이. 이...”

순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열찬씨가 방금 상을 뒤집으려는 일찬씨의 손을 떼어내며

“에이 씨, 차라리 내가 죽고말지!”

꽝, 옆구리로 여닫이문을 치는데 쨍강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이 튀고 방문이 나뒹굴었다.

“어, 피다. 피!”

우현이가 소리치며 열찬씨를 껴안고 분이 안 풀려 펄쩍펄쩍 뛰는 일찬씨를 새신랑 백찬이가 잡고 늘어지고 그 백찬이의 어깨를 잡고 김해댁이 울먹이고 있었고 타월로 열찬씨의 팔에 피를 닦아내는 영순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제 저도 스무 살이 넘어 당당한 청년이 된 우현이가 피를 대충 닦아내고 팔꿈치 바로 아래 핏줄이 끊어져 계속 뿜어 나오는 피를 지혈하기 위해 수건으로 단단히 묶더니 열찬씨를 업었다. 길가에 나와 택시를 잡는 사이 일찬씨가 좀 진정이 되었는지 분위기가 가라앉고 백찬이가 달려 나와 영순씨를 돌려보낸 뒤 연산로터리의 중앙병원으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김해의 순찬씨를 비롯한 신평의 갑찬씨, 명촌, 장촌의 금찬, 순찬씨의 가족과 큰집의 상찬, 동찬형제도 동부인해서 결혼식장을 찾아오고 백찬이의 친구와 동료 몇 동사무소의 동료 몇이 신랑측의 자리를 겨우 채웠는데 신부 측도 형제가 많아 결혼식장은 그럭저럭 어울리고 어머니 명촌댁도 혹시 뜬금없는 소리라도 할까봐 걱정하던 김해댁의 걱정을 불식하고 조용히 잘 앉았다가 폐백 때 점잖게 절도 받고 덕담도 잘 했다.

누가 봐도 화기애애한 결혼식이었는데 한 가지 옥에 티는 간밤에 오른쪽 팔의 혈관과 신경의 봉합수술을 받은 열찬씨가 가끔씩 아려오기 시작하는 팔 때문에 가족사진을 찌고 폐백을 하는 동안 자주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결혼식이 끝나자 신랑측의 부조를 받아 적으며 돈을 세어보는 동사무소직원에게 김해댁이 다가가

“수고합니다. 지가 큰 형수가 됩니다.”

하고 인사를 하더니

“바쁜데 일일이 적고 세고 할 것이 뭐 있습니까? 나중에 정리하면 되지.”

하면서 가방을 열고 돈과 장부와 봉투를 통째로 넣어버리니 직원이 입을 헤벌리고 물러섰다. 신혼신부를 경주로 신혼여행을 보내고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자 말자

“신랑각시는 번거롭게 영주로 오지 말고 나중에 명절에 오라캤심더. 우리는 그만 올라갈랍니더.”

김해댁이 명촌댁과 식구들을 챙겨 택시를 잡아타고 시외버스정류소로 떠났다. 누님들, 사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직원에게 다가간 열찬씨가 부조봉투를 챙기자 큰 형수란 분이 가져갔다고 했다. 열찬씨는 또 후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사흘간의 신혼여행을 마친 백찬씨내외는 청도의 처가에서 하루를 묵고 부산 둘째오빠의 좁은 연립주택서 하루를 묵고 열찬씨의 집에 잠깐 들려 울산의 신혼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수인사만 하고 열찬씨가 사무실로 출근한 뒤 그나마 몇 안 되는 수저랑, 식기들, 자신도 대부분 잘 사는 장촌의 덕찬씨에게서 얻어온 약간의 간장과 된장과 고추장에 김장김치를 담은 영순씨가 신혼부부와 같이 택시를 탔다. 자신이 살림을 나던 날 그 허전하고 섭섭하던 일이 떠올라 뭔가 조금이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열찬씨가 퇴근하자 밥상을 차려오는 영순씨의 눈이 빨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던 영순씨는 밥상을 물린 열찬씨가 재차 묻자

“세상에 연탄 50장을, 1000 장도 아닌 연탄 50장을 사주고 오다니, 명색 손위동서가 되어서 그깟 돈도 없어서...”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새로 얻은 신혼집에 가서 방이야 비록 단간 셋방이라도 그 때는 오히려 방 좁은 것이 나쁠 것도 없고 또 직장이 든든하니 금방 벌어 모아 넓히겠지만 하도 살림살이가 없어 시장에 가서 냄비 몇 개랑 빗자루, 쓰레받기, 쓰레기통, 연탄집게 등 별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고 쌀 한 말을 배달시키고 물 좋은 꽃게를 사서 꽃게탕을 끓여 셋이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탄을 넣어주려는데 수중의 돈을 세어보니 100장을 사다가는 돌아올 차비가 없어 50장만 사준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린다며 영순씨의 눈이 다시 또 새빨개졌다.

“마 됐다. 그만 하면. 누구는 바리바리 살림을 타서 나왔나?”

일부러 맘에 없는 말을 하는 열찬씨의 마음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였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