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68)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③
대하소설 「신불산」(268)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04 07:20
  • 업데이트 2022.10.04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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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승진 그리고 전출③

그런데 이번에 새로 부임하는 김세현 사무장은 열찬씨가 단 한번이라도 얼굴을 마주치거나 이름조차도 들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향은 대구 쪽이고 일찍 부산으로 내려와 공무원생활을 했지만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라 절대로 큰소리 한 번 내는 일 없이 그림자처럼 윗사람을 보필하며 지내온 전형적인 공무원스타일에 양반이라고 했다. 연말연초의 정기인사철이 아니라 아직도 7급 주사보로서 사무장직무대리라는 직책으로 부임한 김세현 사무장은 동사무소에 들어서자마자

“이열찬 주사님 어디 계십니까? 연산동 찌꾸미 이 주사님에게 신고부터 해야지요.”

다섯 자나 될지 모를 자그만 키에 몸피마저 살 한 점이 없이 새까맣고 반질반질한 얼굴, 그러니까 아프리카 대륙을 지도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검은 대륙의 곱슬머리가 착 달라붙은 짱구의 뒤통수에 유난히 눈이 크고 빛이 나는 그런 모습으로 찾아와 악수를 청했는데 힘껏 쥐다간 자칫 바스라질 것 같은 조그만 손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전입환영 술자리를 갖는 자리에서

“이형,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연산동끼꾸미 이열찬 주사에게도 뭔가 좋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연산1동 사무장 취임기념으로 오늘부터 이열찬 주사의 사무장 승진을 위한 첨병이 될 것입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발언을 쏟아냈다. 안 그래도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선임이 늘 눈에 거슬렸는데 새로 온 사무장의 특별한 관심까지 받자 동료 주임 둘이 고개를 외로 꼬는데

“지금 시청과 구청에는 올림픽이 끝나는 89년이나 90년에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의 첫 걸음으로 시군구별로 지방의회가 생기고 90년대 중반에는 지방자치단체인 광역시, 도와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의 단체장을 주민들의 선거로 직접 뽑는 민선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동사무소에만 처박혀있던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었다. 86아시안게임을 목전에 두고 부마항쟁을 비롯한 격렬한 민중의 저항에 부딪힌 군사정부, 그러니까 5.18광주항쟁을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군대를 투입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간신히 버티던 전두환 정부가 마침내 국민의 질책에 굴복, 당시의 2인자인 노태우 국무총리를 통해 발표한 6.10선언에 의거 우선 대통령선거를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이 간선으로 뽑는 체육관선거에서 전 국민이 투표하는 직선제로 바꾸겠다고 한 것이었다.

또 자유당시대에 잠깐 시행하다 군사혁명으로 헌법상의 명맥만 남고 그 시행이 보류된 지방자치제를 실시한다고 약속했다. 6.10사태로 사회질서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던 당시에 아무리 이름 없는 최말단의 동서기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과 전두환 정부의 계엄령을 비롯해 모든 정권의 포고문을 붙이고 반상회나 단체원회의를 통해 그 때마다 정부의 입장을 홍보하던 그는 이제 군사정부가 많이 부드러워지는 구나, 어서 나라가 잠잠하고, 예고 없는 비상근무나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당시에 사정없이 경찰서나 구청, 파출소로 몰려와 돌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던 대학생과 젊은이들로 뭉친 데모대를 저지하기 위해 경로당의 노인들을 인솔해 관할 파출소 앞에 스크럼을 짜고 관공서를 방호하는 일에 앞장을 서다 마침내 정부의 6.10선언을 듣고 데모대가 환호작약(歡呼雀躍)하며 해산하는 것을 지켜보았을망정 그 일련의 사태가 이런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와 일평생 동사무소 사무장도 못 되고 평직원으로 늙어죽을지도 모르는 자신과 그 신상에 이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부터 열찬씨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그렇게 영순씨가 열망하는 사무장이 되는 길에 매진을 해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늦게나마 사모님이 되는 길을 열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사실 열찬씨는 여태껏 자신의 직업이나 처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이 그저 막연하게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누가 혁명을 일으키고 누가 집권을 하고 또 어떤 모리배와 정경유착, 그러니까 한통속이 되어 재벌이 탄생하든 미운 털이 박혀 몰락을 하든지 그건 잘난 사람, 힘 있는 사람 그들 몇 명의 위정자와 주변인물의 일이지 나라가 유지되고 국민들이 불편 없는 생활을 영위하며 아이들을 낳아 키워 대대손손 살아가는 일은 오로지 말단 면사무소, 동사무소직원과 파출소의 순경, 자전거를 타고 3,4십리를 돌아다니는 우체국의 배달부와 등대지기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박봉의 말단에서 묵묵히 일하는 하급공무원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히 내세울 것 하나 없어도 봉급날 조금씩 적금을 넣고 월세 방을 전세로, 또 조그만 자기 집을 마련하려는 꿈을 갖고 열심히 아이들을 키워내는 자신이 바로 나라의 주춧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가난하게 자라나 공명심이나 자신감도 없는 데다 어린 나이에 정신적인 지주인 아버지를 잃고 낯선 객지를 떠돌며 일생의 희망이던 국어선생이 되고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휴학으로 날리고 첫사랑마저 실패한 채 가장 알차고 빛나는 시절이 되어야할 젊은 날의 대부분을 휴전선 철책을 잡고 ‘순영아, 순영아!’ 절망의 탄식으로 밤을 새거나 충무동 저 어두운 골목길을 윤정씨랑 비틀거리면서 보낸 자괴감과 좌절을 잊고 싶은 반사작용이었는지도 몰랐다.

다음날부터 같이 밥을 먹거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김세현 사무장은 이 우직한 사내의 귀를 틔우기에 골몰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점은 무슨 승진브로커처럼 나선 그가 사실은 그 왜소한 체격보다도 더 취약한 체질을 가져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못 해 열찬씨가 억지로 권한 박카스 한 병을 마시고 얼굴이 새빨개지고 숨소리가 가빠져 숙직실에서 한참이나 안정을 취해야하는 풀잎처럼 연약한 식물성체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섬세하고 용의주도한 상관은 마치 단 한 번도 바람을 이기거나 거스르는 일이 없이 언제나 낮은 자세로 엎드리면서 단 한 번도 좌절이나 절망하는 법이 없이 가볍게 일어나는 저 들풀, 민초의 정신을 발휘하여 직원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라면 서슴없이 제 호주머니에 넣고 말 약간의 공적경비라도 생기면 돼지갈비나 아구찜을 먹는 직원회식을 베풀고 2차로 사비를 털어 새로 생긴 가라오께에 가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거기서 또 한 가지의 불가사의,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사람이 노래하나는 또 그렇게 신명나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상균

그 김세현 사무장이 열찬씨에게 주입시킨 첫 번째의 관념은 세상은 항상 변하고 그 세상이 변하는 이치 즉 세태에 따라 행정여건과 풍토가 바뀌고 정체된 세력이 물러나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고 낡은 조직을 도려내고 새로운 직제를 만들어 억눌리고 버림받은 민초들을 일어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굳이 4.19 학생의거가 도화선이 된 민주당 정권, 5.16이 몰고 온 군사정권이나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기화로 정권을 잡은 정치군인 전두환, 노태우의 무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1974년 월남전의 패배와 함께 파월장병을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향토예비군을 강화하고 민방위대를 창설하며 얼마나 많은 직제가 생겨 당시 민방위주사보라는 명칭으로 전국의 읍면동에 7급주사보 자리가 하나씩 생기지 않았냐고 설명했다.

당시 연산3동사무소에서 민방위창설요원으로 고생만 했지 아직 9급이라 승진을 하지 못 했던 일이 떠올랐다. 열찬씨는 자신이 윤정씨와 한창 방황하던 시절 구청의 총무과에서 약간의 인사만 하면 8급승진을 시켜준다는 것을 나는 돈 주고 승진하는 썩은 공무원이 아니라며 그냥 입대했는데 같은 제의를 받고 8급승진을 한 친구가 당당히 민방위주사보로 승진하는 것을 보고 땅을 쳤지만 이미 버스 지나가고 손들기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88올림픽 전에 개통한다고 한창 공사에 열을 올리는 부산지하철이 완공되면 서른 개도 넘는 지하철 역장자리에 행정6급주사로 보한다고 지금 시청의 7급 고참들 사이에 눈치싸움이 치열하고 어쩌면 8개 구청에도 한 자리씩이 돌아올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까짓 거야 새발에 피, 모기 발에 워커 격으로 지방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4급의 의회사무국장을 만들고 5급의 전문위원을 두고 서너 명의 6급 계장을 두면 네 자리의 6급 T.O와 4,5급 승진 둘을 포함해 당장 여섯 자리가 생기고 구청의 행정기구도 의회에 맞게 확대하여 적어도 열자리 이상은 생기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의 동래구를 두 개나 세 개의 구로 분구(分區)하면 한꺼번에 서른 자리도 더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로소 눈을 뜬 열찬씨는 이제 무언가의 긍정적인 변화가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끼고 한층 표정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7급 고참답게 젊은 직원을 보살피는 줄장노릇에도 힘썼다. 아침마다 머리라도 깨끗이 감아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쓰며 그 자그마한 체격의 상관을 지성으로 받들고 사무장역시 그런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언양촌놈 이열찬 주사, 연산동지킴이가 평생 처음으로 구청직원에게 인사를 하는 날이 왔다.

그렇다고 거창한 봉투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연산동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상대는 구청의 총무과에서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같은 7급직원이었다. 김세현 사무장과 오래전부터 의기투합하여 지내온 경북 출신의 양반이었는데 희한하게도 키나 몸피, 깡마른 얼굴의 윤곽까지가 모조리 판박이였는데 단 피부가 눈부시게 희다 못해 창백할 정도로 어딘가 귀티 또는 선비기질이 흘렀다.

기관장이자 인사권자인 구청장의 빽으로도 국회의원의 힘에 밀린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정치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 그까짓 인사담당직원에게 밥 한 그릇을 사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랴만 김세현 사무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도 어쩌다 들어간 구청에서 오로지 성실과 복종으로 6급 승진을 했지만 그런 자신이나 열찬씨의 경우 거창한 줄을 잡기보다는 우선 실무진에게 자신의 이름이나 알리는 것이 선결요건이라고 했다. 실무자가 아무런 외부압력이나 선입견도 없이 인사고과를 할 때 그나마 같은 그룹,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이름 없는 7급 중에서 좀 나은 점수를 줄 수도 있고 그게 두어 번 반복되면 전체 8,90명의 승진대상자 중에서 그럭저럭 한 4,50번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보다 약간 일찍 구청 정문 앞에서 기다리다 서로 인사를 하자

“아, 당신이 바로 그 연산동찌꾸미 이열찬 주사로구나. 맨날 인사기록카드의 사진을 보아도 연산4동의 선복철주사보와 자꾸 얼굴이 헛갈려서 말이야.”

하면서 웃었다. 사실 연산동에는 밀양 출신으로 열찬씨보다 한 살 위인 선복철이란 또 하나의 동사무소만 전전하는 직원이 있고 키나 몸매, 얼굴과 성격이 두루뭉술한 것이 닮아 구청의 직원들이 도무지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고들 했다.

그 선복철 주사는 같이 연산동을 돌면서 한 두 번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데다 연산조기축구회에서 같이 공을 차는 회원이기도 해 누구보다도 친하면서 또 누가 먼저 진급을 하느냐가 회원들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평소 좌충우돌 덜렁거리는 열찬씨와 달리 소리 소문 없이 제 할 일만 하는 선복출씨는 그간 두 명이나 거쳐 간 전 동래구청장들이 모두 밀양 출신이라 열찬씨보다는 인사평정이 상당히 앞서 열찬씨보다는 적어도 2,3년은 앞질러 조만간 사무장승진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셋은 동래시장을 지나 다시 한참을 걸어 단위농협 앞의 어떤 복국집으로 갔다. 당시 복국이라면 제법 비싸고 귀한 음식이라 간밤에 술독에 빠졌던 구청이나 경찰서, 세무서의 간부들이나 그들을 접대하는 업자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서 말단공무원들이 자주 갈 집은 못 되었고 가격도 제법 비쌌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인사담당 김우진씨는 세상에 살다살다 연산동 가주사의 밥을 다 얻어먹는다고 웃었고 김세현 사무장은 그게 그 정도가 아니라 구청, 시청, 중앙청을 통틀어 우리 이 주사가 인사한다고 처음 밥을 사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받았다. 굳이 구차한 부탁을 늘어놓지 않아도 서로가 처지를 짐작하는 지라 그야말로 인사는 하지 못 하고 식사가 끝났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김우진씨가

“내 다른 사람하고 라면 절대로 직원들 밥을 얻어먹는 사람이 아니지요. 우리 김세현 사무장하고는 오랫동안 형님동생하고 지내서 허물이 없어서 그렇지. 좌우간 연말이라 속도 쓰린데 복국을 잘 먹었습니다. 내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가주사님이 인사평정에서 절대로 손해 보는 것이 없이 단 1 점이라도, 또 1번이라도 더 앞서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승진대상자로 이주사님과 경쟁자이긴 해도 말입니다.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겁니다. 앞으로 지하철개통과 분구, 지방자치제 시행 등 변수도 많고요.”

해맑게 웃어 보이고 헤어졌다.

 

연말의 인사평정이 끝난 1월말, 구정대목에 구청의 김우진씨로부터 열찬씨의 승진서열명부의 순위를 알아낸 김세현 사무장의 입이 귀까지 찢어지면서 열찬씨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잔 사라고 웃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