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39) 스콧 & 헬렌 니어링에게 배우는 ‘조화로운 삶’
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39) 스콧 & 헬렌 니어링에게 배우는 ‘조화로운 삶’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22.10.19 08:55
  • 업데이트 2022.10.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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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 표지

내 나이 어느덧 예순을 넘었다. 코흘리개 철부지였던 아이들이 벌써 서른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내와 함께 독후감을 깊이 있게 나눈 몇 안 되는 책이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사랑, 삶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in the Good Life)』(1997)와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2000)이다. 

이들 책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과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1904-1995) 부부의 삶과 생각을 오롯이 담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반전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였던 남편 스콧 니어링은 1930년대 초 대학 교수직에서 해고된 뒤 한 때 바이얼린 연주자를 꿈꿨던 부인 헬렌 니어링과 함께 뉴욕을 떠나 메인주의 버몬트 숲에 들어가 5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스콧은 그곳에서 평생 집필과 자립적인 농경생활을 했고, 100살 되던 해 생일을 맞은 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과 이별함으로써 ‘조화로운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20세기를 지배한 문명과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고 대지에 뿌리를 내리며 당당하게 새로운 생태적 삶,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스콧의 죽음은 준비된 것이었다. 여든 살이 되던 해 그는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남겼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어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런 만큼 ‘지금, 여기’에 충실했고, 이들 부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았다. 스콧은 예수, 부처, 노자, 소크라테스, 톨스토이, 마르크스·엥겔스, 소로, 간디, 빅토르 위고, 로맹 롤랑 등 동서고금 현인들의 사상을 몸으로 받아들여 실천한 것으로 평가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인 E.F.슈마허(Schumacher)는 『굿 워크(Good Work)』(1979)에서 ‘미래에 자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비록 규모가 작고 스콧 니어링 같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뭔가를 해볼 수 있으며, 효과가 있을 경우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스콧 니어링 부부의 삶을 새로운 대안으로 높이 평가한다.

『아름다운 사랑, 삶 그리고 마무리』에서 특히 내게 와 닿은 이들 부부의 삶의 지혜는 이러하다. ‘땅과 가까이 살고, 명상을 할 때는 마음 깊숙이 들어가라. 다른 사람과 사귈 때는 온유하고 친절하라. 진실되게 말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라. 일처리에 유능하되, 행동으로 옮길 때는 때를 살펴라.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한다.’ 

젊은 시절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조화로운 삶』에서는 이들 부부가 버몬트의 작은 시골에서 조화로운 삶을 사는 원칙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적어도 절반 넘게는 자급자족한다. 스스로 땀 흘려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양식을 장만한다. 그리하여 이윤만 추구하는 경제에서 가능한 한 벗어난다. 되도록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일을 해낸다. 집짐승을 기르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스콧과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의 고갱이는 결국 ‘소유는 적게, 삶은 충만하게’인 것 같다. 공동선을 강조하며, 편리함을 포기하는 대신 지혜와 영성을 택한 이들 부부의 삶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인생 안내서이기도 하다.

밀레니엄 기대에 모두가 들떠있던 2000년 전후에 나와 아내는 니어링 부부의 삶을 동경했다. 그래서 부산 근교의 시골집을 구하러 찾아 다녀봤지만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환갑을 지난 나이에 대도시를 벗어날 꿈은 한번씩 꾸지만 아직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담한 텃밭 정도를 가꿔가며 이웃과 정을 나누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겠다 다짐은 하건만 도시를 떠나기가 참 힘들고, 도시에 살면서 비우고 살기도 참 어렵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