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72)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라?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72)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라?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2.11.08 09:40
  • 업데이트 2022.11.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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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壬寅年.2022년) 시제時祭를 지냈다. 선영 앞에 친족들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늘어섰다. 서너 줄이 올해는 한 줄로 줄었다. 재종숙이 축문을 읽었다. “維歲次……敢昭告于……顯十代祖考……顯五代祖考……氣序流易霜露旣降……不勝感慕……尙饗”

10여 년 전 시제를 지내려 갈 때 여느 축문과 함께 필자가 번역한 ‘한글본’ 축문을 함께 준비해 갔다.

‘0000년 00월 00일 00세손 00는 <5대 할아버지 할머님~10대 할아버지 할머님> 묘에 삼가 고하나이다. 절후가 바뀌어 이슬과 서리가 이미 내린 때에 봉분을 어루만지니, 추모의 정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이에 맑은 술과 간소한 제수를 올리오니 강림하시와 흠향하시옵소서’

“아직 때가 아니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고 나면, 조카가 언문으로 읽으시게” 재종숙의 뜻을 확인하고 다음 해부터는 아예 축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절후가 바뀌듯 시절이 변함도 10년이면 족한 것일까. 시제 준비하는 노고와 비용, 멀리서 수송해 와야 하는 번거로움, 그 수고와 비용에 값하지 못하는 제사음식의 효용 등을 이유로 시제 차림상을 간소화하자고 제안했다. 재종숙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조카 말이 맞네. 시대에 따라야지. 제수를 예전처럼 갖추는 것도 낭비네. 시제 떡 얻으러 오는 아이들도 없어. 조율이시(棗栗梨柿 대추·밤·배·감)만 진설하고 술잔을 올리는 것으로 간소화함세. 그리고 점심은 식당에서 먹으면 될 일이네.”

제수를 실용적으로 준비하니, 시제일이 소풍날 같다. 맑은 술과 글자 그대로 ‘간소한’ 제수를 올리고, 선영을 둘러봤다. 친족들과 오랜만의 담소를 즐겼다. 점심 메뉴를 의논해, 하동이니 아무렴 ‘섬진강 재첩국’으로 합의를 봤다.

예전 이발관에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듯이,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 ‘이태원 참사’ 뉴스가 화면에 가득 찼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끌끌 혀를 찼다. 나고 모르게 된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재종숙이 나를 가만히 보더니 안타까운 듯 조용히 타일렀다.

“자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뭔질 아는가? 바로 남을 비판하는 일이네. 남의 잘못을 들춰내는 일.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질 아는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네.

공자님께서는 ‘부재기위하면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이라’고 하셨다네. ‘그런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네. 위에서 하는 일인데, 밑에서 우리가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네.”

바로 이것이다! 성현聖賢의 인간사에 대한 가르침은 한 덩어리(monolith)가 아니라, 부분과 부분으로 구성된다. 어떤 가르침은 과학적 진리처럼 시대와는 관계없이 불사조이다. 그러나 어떤 사상은 ‘시대환경’이란 벽을 결코 뛰어넘지 못한다. 물론 공자의 가르침과 그 내용인 『논어』 중 많은 부분은 인류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세월을 뛰어넘어 고금을 막론한 가치를 지닌다. 필자 또한 많은 부분, 공자의 가르침 중 일부를 삶의 푯대로 삼는다. 마는…….

여자와 민중은 교화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 논어/양화25 -

이건 단순히 잘못이 아니라 죄악이다. 유교의 가장 큰 죄악이 바로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이다. 그러나 공자의 잘못이라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다. 왜냐하면, 공자가 활동하던 기원전 535년경의 사회구성체는 귀족과 평민과 노예로서, 신분계급 사회요 노예제 사회였다. 공자는 그 체제 유지를 수긍한 바탕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따라서 오늘날 자유민주시대에 『논어』를 읽을 때는 이 시대상황의 이해가 전제된다.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 2,500년 전 봉건농노시대의 문서를 오늘날의 글로 착각하고 읽으면, 광인의 헛소리를 듣게 되고 공자까지 욕 먹이는 꼴이 된다.

조송원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나, 특히 역사 드라마 볼 때, 이 ‘시대상황’의 인식이 무엇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왕조시대와 신분사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는 현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의 공직문화나 기업문화에서 왜곡된 주·종관계, 서열의식에 찌들어 있는 것은 유교나 유교 경전의 ‘몰시대적’ 이해 탓이 크다. 그 몰시대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 드라마의 해악은 말할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하여 ‘손님이 왕이다’처럼 아직 왕이란 용어가 일상생활어로 쓰인다. 세상에, 그럼 손님이 왕이니 판매 여사원에게 성추행에서도 자유롭단 뜻인가. 정말 무식한 말이다.

근대 이전 국가가 독재권력을 가지고 민중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을 때의 국가와 개인, 근대 이후 민주화가 완성된 시점에의 국가와 개인, 그 관계는 어떠한가. 다음 편에서, 먼저 독재권력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아래 두 예문을 통해 알아보고 나서, 자유민주시대의 국가와 개인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할 수는 없다” - 조조 -

“내가 세상을 잊기는 쉬우나, 세상이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다” - 장자/천운 -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