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부산 과학 인사이드】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양자론 오디세이 (14)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1) '변형 이중슬릿 사고실험'
【CBS부산 과학 인사이드】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양자론 오디세이 (14)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1) '변형 이중슬릿 사고실험'
  • 조송현 기자 조송현 기자
  • 승인 2022.11.09 07:30
  • 업데이트 2022.11.18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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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6(화) 양자론 오딧세이(14)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1) '변형 이중슬릿 사고실험'
220816(화) 양자론 오딧세이(14)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1) '변형 이중슬릿 사고실험'

자, 계속해서 과학 인사이드 이어갑니다. 
과학스토리텔러, 
웹진 인저리타임의 조송현 대표와 함께 하죠.
대표님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Q1. 이 시간에는 
현대과학의 정수, 양자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고 있습니다. 
상식과 직관을 뛰어넘는 양자론 오디세이.
지난주는 양자론의 표준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의 대안 가운데 
오늘날 다중우주론의 원천이 된 
다세계 해석을 함께 만나봤구요. 
오늘은 다시 코펜하겐 해석으로 
돌아가보자.

지난번 코펜하겐 해석 얘기를 해 주실 때  
보어가 주도한 코펜하겐 해석에 
아인슈타인이 정면에서 
반기를 들었다, 말씀을 해 주셨는데, 
자, 오늘의 주제.
바로 이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입니다. 
왜 아인슈타인은 
코펜하겐 해석에 동의를 하지 않았나?
논쟁의 배경부터 
먼저 짚어주시죠. 
 

-> 배경이라 하면,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에 대한 문제의식이지요.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을 완전한 이론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완전히 엉터리’는 아닐지언정 분명 문제가 있다,  불완전한 이론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1927년 9월 코모회의에서 보어가 코펜하겐 해석을 제안해 대부분의 물리학자들로부터 승인을 받았거든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의 허점을 이론적으로 공격해 오류임을 확인받으려고 결심했어요. 그러니까 이 논쟁의 성격은 학문적 논쟁이고 구체적으로 양자론의 완성시점에 양자론의 완전성 여부를 놓고 양자론의 대부 닐스 보어와 상대론의 창안자 아인슈타인 사이에 학술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Q2. 오늘 주제를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1>으로 

꼽아주셨는데, 이게 3라운드까지 이어진다구요? 
생각보다 논쟁이 꽤 길게 이어졌어요. 

-> 네. 논쟁의 시작은 코페하겐 해석이 공식 제안된 코모회의(1927년 9월) 한 달 뒤에 열린 제5차 솔베이회의에서입니다. 이게 라운드 1이고요, 제2 라운드는 3년 뒤에 열린 제6차 솔베이회의, 마지막 제3라운드는 아인슈타인이 미국에 망명한 193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1, 2 라운드는 며칠 안에 승부가 판가름 났는데, 공격을 가한 아인슈타인이 보어의 완벽한 방어와 역공으로 패했죠. 근데 제3차 논쟁은 아인슈타인이 타계한 1955년까지 승부가 가려지지 않다가 논쟁이 시작된 지 49년 만인 1982년에야 승부가 가려졌는데, 역시 아인슈타인의 패배였어요.  

Q3. 천하의 아인슈타인이 
완패를 한 거네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체면을 구겼다거나
명성에 타격을 입었다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라..
물리학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논쟁으로 
기록이 된다구요?


-> 네. 우선 논쟁의 성격을 보면, 
1, 2 라운드는 아인슈타인인 양자론의 핵심인 
불확정성 원리의 허점을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공격하고 
보어가 이를 해명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어요. 
근데 제3차 논쟁은 아인슈타인이 
제자 2명과 공동저술한 
이른바 ‘EPR 논문’을 
피지컬 리뷰 레터스라는 
유력 물리학 저널에 게재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여기서도 공격 포인트는 불확정성 원리인데, 
간단한 사고실험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논문으로 구성해 공격한 것이죠. 
보어도 반박 논문을 같은 저널에 게재했고요. 

이 논쟁의 의미를 보면, 
학술 논쟁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관적 견해로 비판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허점을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지적했고, 
또 방어자는 지적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답안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EPR 논문 이후 
이 논쟁은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을 넘어 
범 물리학계의 화두가 되었어요. 
최근까지 EPR 관련 논문이 2만 편이 훨씬 넘게 발표되었다고 하니까요.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두 세기를 걸친 
위대한 논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Q3. 앞서 논쟁의 전개과정을 짧게 짚어주셨는데..
아인슈타인은 도대체 어떤 부분을 걸고 넘어진걸까요?
논쟁의 내용으로 한 발 더 들어가볼까요?
라운드 원부터 가 보죠. 

-> 네 첫번째 라운드는
변형 이중슬릿 사고실험이 핵심인데요. 
아인슈타인의 공격 포인트는 
불확정성 원리였습니다. 
이중슬릿 실험은 불확정성 원리를 반영하는 장치임이 확인됐는데, 
아인슈타인은 이 실험을 약간 변형해 
불확정성 원리가 오류임을 입증하는 
사고실험을 고안해 제시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상보적인 두 물리량을 
동시에 관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들 물리량을 
확정적인 속성으로 갖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보어(양자론자)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했던 것이죠.


Q5. 그래서 이중슬릿 실험을 어떻게 변형 한 건가요?
아인슈타인이 파고든 
불확정성 원리의 오류는 또 뭐구요?  

-> 앞에서 ‘파동-입자 이중성’을 소개할 때 
광자나 전자가 이중슬릿을 통과해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만든다고 했잖아요. 
이때 입자는 슬릿 둘 중 어느 것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고요. 
근데, 만약 입자가 어떤 슬릿을 통과했는지를 
관측자가 알아버리면 
입자는 간섭무늬를 만들지 않아요. 
‘슬릿통과 정보’와 ‘간섭무늬 만들기’ 라는 
두 개의 물리량이 상보적이며 
이 둘을 동시에 다 알(이룰) 수 없다는 게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실험으로도 확인된 사실이고요.

아인슈타인은 이 사고실험을 통해 
두 개의 물리량을 다 알 수 있고,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오류다, 라고 
논증을 시도합니다. 

그의 목표는 서로 상보적인 두 물리량, 
즉 입자의 경로와 간섭무늬를 관찰하는 실험이 가능함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기발한 사고실험을 고안했죠. 
실험장치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쉬운데요. 

(스프링이 달린 입구 판을 추가한 변형 이중슬릿 사고실험 개요도. 
1927년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문제를 풀기 위해 보어가 그렸다)

Q6. 그러니까 기존의 이중슬릿 실험 장치에다가
입구 판을 추가한 게 핵심이네요. 
이 판이 어떤 역할을 하길래..
불확정성 원리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만했을까요?

-> 네. 말씀하신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이중슬릿 판’ 앞에 
빛이나 입자가 먼저 통과해야 할 ‘입구 판’을 추가했어요. 
빛이 통과하는 작은 가로 구멍(슬릿)을 만들어놓은 
‘입구 판’에는 민감한 스프링에 매달려 있고요.  

이 사고실험의 목적은 
실험장치를 통해 경로 정보와 간섭무늬 두 가지를 물리량을 
다 알 수 있음을 입증하려는 것인데요. 
우선 사고실험 과정을 보면 
첫째, 스프링에 매달린 입구 판이 움직이지 않도록 합니다. 
둘째, 입자를 쏩니다. 
셋째 입자는 입구 판을 통과하면서 위로 아니면 아래로 굴절(경로)합니다. 
넷째, 근데 어떤 입자가 어떻게 굴절하는지는(경로가 위인지 아래인지는) 
입구 판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섯째 이렇게 입구 판을 통과한 입자들도 결국 간섭무늬를 만든다. 
이 실험을 통해 경로 정보도 알면서 간섭무늬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두 가지를 동시아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는 오류다.

이런 식으로 논증을 전개합니다. 

Q9. 세기의 천재가 설계한 사고실험인만큼.. 
꽤나 치밀해 보이는데..
결론은 앞서 짚은 것처럼 
보어의 승리였어요.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냈나요? 

-> 핵심을 무엇이었을까요?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공격했는데, 
보어의 방어 무기도 불확정성 원리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논증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결정적인 오류를 발견했죠. 
아인슈타인은 사고실험 장치에서 스프링이 달린 입구 판을 
‘정확히 멈추어’ 있도록 만든다고 전제했는데요, 
그러나 이것은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이건 불가능하거든요. 
즉 입구 판이 완전히 멈추어 있으면서, 
즉 속도가 0이면서 
동시에 정확히 고정된 위치에 있을 수 없어요. 
운동량(질량×속도) 불확정성과 운동량 불확정성이 
동시에 0일 수 없다는 게 불확정성 원리이니까요.


Q10. 아인슈타인이 타켓으로 삼았던
불확정성 원리를 오히려 방어무기로 삼았다..
재밌네요. 
여기서 밀리면
아인슈타인으로서는 
더 뼈아픈 패배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아인슈타인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방어 논증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죠. 
깨끗이 승복하면서 2차 전투 준비에 들어갔어요. 
2차 공격은 3년 뒤 제6차 솔베이회의에서 벌어졌습니다. 


Q10. 전투에서의 패배는 인정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거네요.
무려 3년동안이나 칼을 갈아서 
꺼내놓은 일격.. 
2차전의 전개도 궁금한데.. 
역시 시간이 아쉽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두번째 라운드로 넘어가보죠. 

자. 지금까지 과학인사이드!
조송현 대표였습니다. 
다음주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pinepines@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