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75) 데드맨, 워킹
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75) 데드맨, 워킹
  • 손현숙 손현숙
  • 승인 2022.11.19 09:05
  • 업데이트 2022.11.21 19: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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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필자
아버지와 딸(필자)

데드맨, 워킹
                               손현숙

 

벼랑을 등지고 허공이 허공을 받아내는 일

마른번개 끓이던 소리는 잠깐, 
눈 한번 질끈 감았을 뿐인데
 
당신이 멈춰 선 동안은 나도 멈춰 선 사람     
슬쩍, 등 떠다밀고 싶은 야릇한 진심으로 왼발에 몰두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때부터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벼락나무

빛이 태워버린 나이테의 방향을 따라
산 채로 죽은 나를 나는 어떻게 증거 해야 할까요

당신은 나를 당겼다, 풀었다, 돌아서기를 반복합니다
너럭바위 아래 깎아질러 절벽 
알 수 없는 저 입구가 미혹입니까

당신은 내일의 메아리를 기다리는 동안,
소리 끝에 쟁강쟁강 맺힐 이름이 또 있습니까?

가족
아버지와 딸(필자)

시작메모:  

오늘은 아버지 기일. 초 한 자루, 맑은 물 떠다 놓고 서쪽을 밝힌다. 아버지 살아생전 한 장의 엽서 “아빠야는 현숙이가 꼴등을 해도 무조건 손현숙이를 사랑합니다.” 무너질 때마다 떠오르는 그 “무조건”이라는 말씀. 가끔은 나를 살게도 죽게도 만드는 그 ‘몰애’의 한 장면. 철없이 살아도 용서가 되던, 죄와 벌이 사라진 내 아버지의 땅. 나는 참 거기서 거침이 없었는데. 아버지.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