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13)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3장 승진과 애기동장③
대하소설 「신불산」(313)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3장 승진과 애기동장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1.22 07:00
  • 업데이트 2022.11.21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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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승진과 애기동장③

부임 이튿날 첫 관내순찰의 안내를 맡은 정광식이란 직원의 메마른 체형과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우수에 잠긴 눈빛이 마치 자신의 꿈은 크고 현실은 비참하여 날마다 술에 젖어 살던 젊은 날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며 취임 첫날 <젊은 날의 초상>으로 별명을 지어주었다.

고향이 경북 상주이기는 해도 가난한 농가의 차남이라는 점, 객지로 나와 힘들게 공부를 하고 당초의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차선책으로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온 점, 보리와 콩도 구별 못하는 순수한 도시처녀와 결혼을 했는데 장인어른이 이북에서 온 실향민이라는 점까지 빼닮아 단 하루 만에 별명이 굳어지고 말았는데 그 실없는 별명 하나로 열찬씨과 광식씨는 어느 새 상당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사무장을 비롯한 차상민, 장진익, 박덕현이라는 7급 주임 3명과 정광식씨에 복지요원 홍태희씨까지 함께한 술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마을의 속살과 흐름을 차례로 설명해주었다.

먼저 박철수 사무장의 이야기로 인구 1만5,000명이 넘고 하루 유동인구가 인구보다 많은 3만 명도 넘는 남부민1동은 동장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이 행정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80에 가까운 정모구의원을 축으로 선풍기공장, 양초공장,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동정자문위원 몇몇 노인들이 에워싸고 명목상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 아래로 안만종 동정자문위원장과 서수양 부위원장을 비롯한 7형제 계 멤버가 핵심조직으로 동사무소, 파출소의 감투를 독점하고 골목골목과 물론 마을전체의 일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중심축은 서수양씨인 것 같다고 했다. 또 그 주위로 몇 명의 통반장과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원이 에워싸고 그 아래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청년회 김창표 회장을 비롯한 청년회원 몇 몇이 받쳐주는 난공불락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축인 구의원을 비롯한 많은 멤버들이 새벽시장과 청과시장의 상인들과 작은 점포주와 노동자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라는 고리대금업으로 치부를 하고 저들끼리도 밑천의 다소에 따라 서로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 큰손과 수하로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조직이 있어 통장과 바르게살기위원 등 동 출입 단체원들의 상당수가 그 사채놀이의 피라미드에 속한다고 했다.

더욱 안만종 동정자문위원장과 서수양 부위원장을 비롯해 동정자문위원을 맡은 수산업자 최은주씨, 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내에 얹혀사는 이마가 반질반질하고 목소리가 커서 누구에게나 위압적인 인상의 방위협의회장 장형조씨, 같은 방위협의회워원인 회사원 최형근씨, 산복도로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신용정씨와 제약회사를 다니다 천식이 심해 집에서 쉬고 있는 백장현씨의 일곱 명이 <7형제회>라는 모임을 형성해 위로 정모 구의원, 아래로 김창표 청년회장으로 스크램을 짜 무불간섭,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는다는 것이며 전임 강경대 동장도 그들에 의해서 동장으로 추천된 한 일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마을의 행정책임자인 동장을 자기들 마음대로 붙이고 떼고, 오라 가라 불러대는 친구나 수하처럼 대하던 사람들이 자신보다 여남은 살 떨어지는 머리가 새까만 새 동장이 탐탁하거나 두려울 바가 전혀 없어 벌써 <애기동장>이라는 별명을 붙여 저들끼리 시시덕거린다는 것이었다.

순간 동장발령을 게기로 깔끔한 인상을 주기 위해 뒤통수가 허옇도록 제법 많은 새치머리를 일부러 염색한 것을 아차, 했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복지요원 홍태희씨의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건강이 좋지 못해 동장 직에서 물러난 강경대 전동장은 아침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목발을 짚고 그 비탈진 계단 길을 더듬어 내려와 동사무소입구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충무동의 2층 다방창가에 앉아 이미 은퇴한 원산 출신의 아바이 새마을지도자 한형춘 회장과 함께 젊은 동장의 출퇴근시간과 누구를 만나 무엇을 먹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종일 체크하면서 철없는 젊은 동장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단숨에 몰아낼 연구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다시 동장이 될 것도 아닌데도.

한 일주일 동안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 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사무실에 머물면서 동정현황을 파악한 열찬씨는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20년이 넘게 동사무소에만 근무한 연산동 지킴이 출신이 그 까짓 골목대장 몇몇을 이기지 못 해서는 자신의 자존심은 물론 민선시대를 맞은 형정혁신의 기수로 첫 행정직동장으로 임명한 김모구청장의 여망이나 시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동사무소에 관련된 각종 자생단체인 동정자문위원회와 방위협의회, 바르게살기위원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청년회, 새마을문고, 반공연맹이 이름을 바꾼 자유총연맹에 노인회가 있었고 다른 동에는 없는 천마장학회와 민족통일협의회에 산복도로주변의 달동네를 순찰하는 자율방범대라는 별도의 조직도 있었다. 거기에 통반장의 자리를 포함한 모든 조직원의 단체별 중복여부를 조사해 몇 개의 자리에 겹치기를 한 사람들의 명단을 따로 뽑았다.

혼자서 서너 개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 수두룩했는데 특히 서수양씨를 비롯한 <7형제 회>의 멤버들은 보통 두서너 개의 직책을 맡았고 동장의 수하이자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는 통장을 맡은 자가 동장의 자문기관이라 할 방위협의회나 바르게살기위원회의 위원을 맡고 새마을지도자를 겸임한 사례도 있었다.

그 중 가장 희한한 것은 새벽시장운영위원장이라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오창표 회장이란 사람은 시장이 자리 잡은 2통장직을 맡으면서 방위협의회부회장까지 맡았으니 낮에는 통장회의장에서 꼼짝 못 하고 동장의 지시를 받고 밤에는 방위협의회의 부회장으로 점잖은 유지행세를 하며 동장과 너나 돌이를 하는 형국이었다.

 

이튿날 새 동장의 취임인사 및 동정운영계획을 밝히는 전 단체원의 회의를 소집하고 2층 회의실 가득히 100개도 넘는 의자를 놓고 약간의 다과도 준비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만난 것은 매우 반갑고도 뜻 깊은 일이며 소중한 인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자리의 여러분들과 늘 이마를 맞대고 의논하고 함께 손을 잡고 저 푸른 천마산도 가꾸고 마을도 깨끗이 청소하고 산복도로의 가난한 독거노인들도 돌 볼 업무계획을 연말 전에 수립하여 내년부터 차근차근 시행할 계획이며 그전에 우선 그런 사업들을 추진할 조직정비가 우선되어야 하므로...”

이렇게 차근차근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다 조직정비라는 말이 나오자 회의실 안은 일시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제가 우리 동의 단체원명부를 검토한 결과 한 사람이 통반장 같은 임명직과 동정자문, 방위협의, 바르게살기를 비롯한 위촉직을 2중으로 맡고 심지어 서너 개의 직책이 중복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 중복된 조직을 정비하여...”

순간

“여보시오. 가열찬동장! 지금까지 우리 남부민1동은 정주언 구의원님을 비롯한 마을유지들이 단결하여 아무 문제도 없는 모범마을로 잘 지내왔는데 새파란 동장 당신이 와서 벌써부터 이 무슨 소동이요? 당신이 이 동네 돌아가는 판세를 알기나 하는 것이요?”

이마가 반질반질한 정현조 방위협의회 회장이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자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면서 장내가 시장바닥처럼 되고 말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잘 해왔겠지요. 그러나 지금 중복된 자리를 정리해서 더 많고 더 젊은 동민들이 동정에 참여하면 마을이 더 젊어지고 밝아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보소. 동장! 시방 당신은 지금껏 마을을 지켜온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데 당신이 무엇을 알기나 하는 것이요? 아니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젊은 혈기로 아무데나 천방지축으로 찔러보다 큰 코를 다쳐 보아야 알겠다는 것이요?”

오창조 2통장겸 방위협의회부회장이 입에 거품을 물자

“때리 치워! 남부민1동이 어데 새파란 동장의 놀이터가! 우째서 지 마음대로 한단 말이고?”

 

체격이 당당한 동정자문위원회 서수양 부위원장이 시뻘개진 얼굴로 고함을 지르자 김창표 청년회장이 벌떡 일어나는 순간

“조용히들 하시오! 내 생각에는 동장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네요. 우리가 저 젊은 가열찬 동장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과거의 악습을 반복한다면 앞으로 우리 마을의 발전은 없습니다. 한번 들어보기로 합시다.”

도회수라는 동정자문위원이 눈에 독기를 품고 일어섰다. 그동안 <7형제 회>에 눌려 크게 숨소리도 한번 못 내고 번번이 좌절되어온 아웃사이더였다. 동정자문위원회의 나이든 영감들과 부녀회원, 통반장들이 수긍하는 분위기로 돌아서며 회의실의 분위기가 차차 갈아 앉기 시작했다.

“어차피 논란의 여지도 많고 시간도 촉박해 요점만 말씀드리지요. 동사무소와 관련된 모든 위원직은 동장이 직접 임명하는 통반장과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와 청년회원, 동정자문위원회, 방위협의회, 바르게살기위원회 등의 위촉직이 있고 이는 동장에게 고유권한으로 부여함으로서 동전체가 동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중요한 제안 하나를 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서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자리를 겸직한 분이 계신다면 올해 연말, 그러니까 12월 31일까지 제일 애착이 가는 하나의 자리만 선택하고 나머지 자리를 사퇴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아무런 의사표시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알고 해촉하겠습니다.”

“보소, 가열찬 동장! 당신이 깡패요? 대통령이요?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것이 죽어봐야 저승을 알겠다는 것이요?”

정현조방위협의회장을 비롯한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이상 오늘 회의를 마칩니다. 안녕히 들 돌아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열찬이 단상에서 물러나자 몇 명의 직원이 에워싸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마음을 갈아 앉히며 사람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리는데 맨 마지막에 <7형제계>의 멤버들이 내려오며 그중 나이가 들고 점잔한 편인 안만종 동정자문위원장이

“동장님, 수고했습니다. 우리 같은 민초들이야 하라면 하는 시늉이라도 내어야지 우짜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마음도 풀 겸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하며 이끄는데 눈치 빠른 사무장이

“동장님, 가시긴 가시되 조심하시고 분위기가 안 좋으면 일단 튀세요. 무사귀환하시기 바랍니다.”

속삭이며 눈을 찡긋했다.

 

동사무소를 나와 강경대 전임총장이 하루 종일 새 동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충무쇼핑 맞은편의 수정다방을 바라보면서 송도아랫길을 걸어 충무로타리를 건넌 일행은 다시 보수천을 타고 삼보예식장을 지나 부평동의 한 양 곱창 집에 도착해 술판을 벌였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