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14)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3장 승진과 애기동장④
대하소설 「신불산」(314)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3장 승진과 애기동장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1.23 07:25
  • 업데이트 2022.11.21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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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승진과 애기동장④

동사무소를 나와 강경대 전임총장이 하루 종일 새 동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충무쇼핑 맞은편의 수정다방을 바라보면서 송도아랫길을 걸어 충무로타리를 건넌 일행은 다시 보수천을 타고 삼보예식장을 지나 부평동의 한 양 곱창 집에 도착해 술판을 벌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버릇이 없단 말야. 동네어른도 모르고 아래 위도 모르고 말이야.”

“쥐꼬리만 한 벼슬만 해도 아주 안하무인격이 되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안단 말이야.”

“남부민1동의 어떤 동네야? 주민이 절반이 고기의 배를 따거나 무, 배추를 쓸거나 칼을 들고 사는 동네야. 천하의 마도로스도, 깡패도, 완월동을 주름잡는 똥치 년의 기둥서방들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사는 동네에 웬 천둥벌거숭이가 하나 들어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고 지랄이야.”

“그렇게 설치다 한번 식겁잔치를 해 봐야 알지. 남부민동에 와서 내가 내라고 큰소리치다 신세조진 인간이 어디 한 둘인가?”

아직 곱창이 익기도 전에 소주와 맥주를 탄 유리컵을 부딪치면서 누구라 할 것 없이 한 마디씩을 던지며 열찬씨를 바라보았다. 말하는 자는 눈을 흘겼고 옆에서 바라보는 자는 히죽거리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는 열찬씨를 자극하더니

“저러다가 큰 코를 다치고 말지!”

“계속 저러다간 연말이 되기 전에 쫓겨 가고 말지!”

“그러면 강경대 동장이 다시 부임하는 거야? 아니면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잔을 잡은 열찬씨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본 박철수 사무장이 허벅지를 꾹 찌르면서 눈을 끔뻑했다. 몇 차례 술이 돌고

“비싼 술 마시면서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맙시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철없는 젊은 사람으로 앉아있는 것이 아니고 남부민1동장으로 동의 단체원들과 앉아있는 겁니다. 서로 예의를 지킵시다.”

열찬씨가 천천히 말하며 좌중을 둘러보는데

“어라, 이 친구 봐라. 지금 당신이 우리한테 교육시키는 거요?”

성질 급한 정현조 회장이 삿대질을 하자

“그 젊은 놈이 더럽게도 버르장머리가 없네?”

음력 섣달이 환갑이라는 고깃배선장 최은주씨가 냅다 고함을 지르자

“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야!”

고함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맥주병이 날아오더니 열찬씨의 등 뒤에서 퍽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겁을 주려 일부러 뒤쪽으로 던진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열찬씨가 부들부들 떨며 좌중을 바라보는데

“동장님, 택시 도착했습니다!”

박철수 사무장이 눈을 찡끗하며 팔짱을 끼는데

“동장님, 우리 친구들이 술이 좀 취한 모양인데 내일 이야기하십시다.”

그중에서 가장 차분한 성격의 최형근씨가 등을 떠밀어 문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일단 갑니다. 그렇지만 제가 오늘 말씀드린 자생단체 정비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택시를 타며 열찬씨가 최형근씨의 눈을 똑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튿날 통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관할 통 밖으로 이사 간 사람 셋을 불렀다. 먼저 새벽시장이 있는 2통장으로서 방위협의회 부위원장과 새벽시장번영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큰길 건너 6통으로 이사한 오창표씨는

“내가 비록 2통에서 이사 갔지만 새벽시장지역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소. 동장님이 반장들이나 주민들에게 이 오창표가 통장 일을 더 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아보고 나서 결정하시면 내 두 말 않고 따르지요.”

하고 반쯤 물러섰는데

공동어시장 맞은 편 냉동어를 판매하는 상가와 식당과 다방들이 즐비한 요지인 24통장을 맡은 김재호 통장은 일수놀이로 상당한 치부를 하여 이미 관내를 벗어난 10통지역의 번듯한 양옥집을 사서 살고 있었다.

매일 영세 상인들이 사는 관내를 돌며 일수 돈을 수금하는 한편으로 또 돈을 빌려주며 관할 통주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하게 꿰뚫어 다방과 식당을 주름잡고 제왕처럼 군림하는 통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에 혼비백산이 되어 자신이 살던 옛집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다시 이사를 오겠다며 한 달만 여유를 달라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 산복도로 13통의 윤달식통장은 나이 이미 80이 다 되어 그 경사가 심한 비탈길의 몇 백 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이 든 데다 이사도 인근 5통으로 한 지라 이제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젊은 사람에게 통장 직을 넘기고 편안하게 살라는 열찬씨의 말에

“동장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저를 계속 통장으로 근무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 나이에 이만큼 버티는 것도 통장을 하는 것이 낙이고 운동이 되어 하루하루를 버티기 때문이지요. 또 얼마 안 되는 통장수당이지만 우리 영감할마이한테는 너무나 큰돈이지요. 그 돈이면 두 내외가 먹을 쌀도 팔고 연탄도 넣고 명절에 손자들 줄 용돈도 모를 수 있지요. 제발 한 3년만 더 할 수 있도록 도아주세요.”

애원하는 눈가가 젖었다. 무려 3남 4녀를 두었지만 누구하나 부모를 모실 처지가 안 되어 아직도 스스로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데 새벽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부인이 이제 무릎관절이 너무 닳아 아예 바깥출입을 못 하니 통장수당이 유일한 수입이라고 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동장을 맡고 있으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차별을 할 수 없으니 안 되면 13통에 방을 얻어 이사라도 하라면서 돌아섰지만 그 윤통장의 장남은 벌써 쉰이 넘었지만 젊어 어선을 타다 몸을 다쳐 지금 오양식품에서 명태 배를 따는 아내에 얹혀 무위도식하는 것을 비롯해 일곱 자식이 하나 같이 못 배우고 못 벌어 누구하나 부모를 도울 수 없다는 동행한 5통장 김복연씨의 말을 들은 열찬씨의 마음도 편하지 못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조직정비는 막이 올랐고 동민들의 눈에 뭔가 확연히 마을이 변해간다는 사업을 하나 쯤 전개하여야겠다고 직원들과 머리를 싸매고 구상 중인데 더 급한 당면사항이 생겼다.

11월 말에 구덕운동장에서 구민축제를 여는데 그 내용이 동별 가장행렬로 입장식을 하고 기념식과 <자랑스런 구민표창>을 하고 동별 윷놀이와 2인3각 달리기 대회등 약간의 게임을 하면서 운동장에 18개 동의 천막을 치고 점심을 먹으며 하루 동안 구민이 화합을 다지는 행사였다.

말이 구민축제지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느라 동별로 쇠고기 국을 끓이고 파전을 붙이느라 고소한 음식냄새가 멀리 구덕산까지 풍긴다는 먹자판이 되고 행사가 끝나는 해질 녘에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고 더러 우격다짐이 벌어지는 소비적 행사였다.

그런데 올해는 두 가지로 그 의미가 달랐다. 첫째는 내년 봄에 처음 실시하는 초대 민선구청장의 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김모구청장이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행사로 많은 인파를 모아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동별로 준비예산 30만 원씩을 지원한 것이었다.

또 동별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사람을 동원시키기 위해 가장행렬의 점수를 매겨 1, 2, 3등에게 각각 100만 원, 50만 원, 30만 원씩을 시상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작년까지도 가장행렬을 하고 1등 30만 원의 시상도 했지만 올해는 상금액수도 올랐지만 동별이 경쟁이 엄청나게 심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지금 일반적인 예상으로는 이변이 없는 한 내년의 민선에 현 구청장이 당선이 확실시되는데 임명직이던 시절과 달리 작은 고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하다 못 해 도로를 내고 하수구를 설치하는 지역개발과 5급사무관 승진시험대상자선발을 비롯한 무소불위의 인사권을 쥘 민선구청장의 눈 밖에 나면 큰일인지라 별정직 동장을 비롯한 모든 구청의 직원들이 구청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그 눈빛과 말 한마디에 목을 맬 판이었다.

그 위에다 열찬씨와 아미2동의 박주영 동장을 비롯한 신임 사무관출신의 동장들이 패기에 찬 열정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얼마나 동을 잘 이끌는지도 관심일 뿐더러 나이든 별정직 동장들도 결코 애송이 젊은 동장들에게 밀릴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장행렬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열찬씨는 전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다 몇 가지의 패턴을 정해 단체장들의 의견을 들어 최종결정하기로 했다.

그 하나는 농악단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아미농악이나 부산농악 같은 전통 있는 농악단의 장비를 빌려 상쇠가 치는 꽹과리와 징, 북, 장고의 사물 외에 소고와 포수, 양반, 각시와 무동을 한 서른 명쯤 동원하는 대규모 농악 단으로 참석하는 모든 단체원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행진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피그미족이나 마사이족 같은 아프리카 원주민으로 분장해 온몸을 검은 티셔츠와 스타킹에 볏짚치마로 분장한 참여자들이 끼이끼이 괴성을 지르고 이상한 춤을 추면서 창을 던져 짐승을 잡아 환성을 지르는 <인디안맘보 차차차>란 행렬로 열찬씨가 중학교운동회 때 농업고등학교 형들의 가장행렬을 상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아이디어는 바로 전국 최대의 공동어시장이 있는 마을의 특징을 살려 모든 참석자가 물고기로 분장해 입장을 하는 방법이었다. 어시장의 대표어종인 고등어와 갈치는 물론 상어와 오징어, 고등어와 꼴뚜기나 복어 같은 흔한 생선들은 물론 부산의 명물인 아나고 즉 붕장어에다 꽃게와 소라 고동, 심지어 수궁가에 나오는 용궁의 모습, 즉 용왕과 자라, 토끼까지 등장시키는 한마디로 거대한 물고기축제를 여는 것이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단체장회의는 제안 설명이 끝난 뒤 별다른 토론도 없이 바로 참여자전체가 물고기로 분장하는 마지막 안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분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많은 의문점이 생겼다. 공동어시장의 대표어종인 고등어를 비롯하여 대중성이 높은 오징어, 문어, 상어, 갈치, 가자미, 붕장어, 꽃게에 복어, 물메기, 개복치처럼 조금은 낯설고 기괴한 모양을 가진 생선에다 돌고래와 고래까지 포함시킨 여러 가지 물고기의 모양에 판소리 <수궁가>를 연상시키는 용왕과 거북과 토끼에 새벽시장을 상징하는 채소 무, 배추, 시금치, 마늘, 양파모형도 만들어 사람이 착용하게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는 걱정이 나왔다.

그럼 소라나 조개는 어떻게 만들고 또 어떻게 그걸 사람이 착용하고 걸을 수 있는가의 반론도 나왔다. 설왕설래 끝에 사람이 착용하는 모형대신 모든 참석자가 각 어종의 모형이나 그림을 부착한 피켓을 들고 우줄우줄 걷거나 뛰는 시늉, 헤엄치는 시늉을 하고 중간중간에 길게 늘어뜨린 형형색색의 깃발에 <전국최대의 수산물집하장 공동어시장!>, <푸른 산, 푸른 바다 남부민1동>, <국민건강, 생선에게 물어보세요!>등을 써 분위기를 띄우고 예쁜 고깔에 상모를 쓴 사물놀이패도 가세 깨갱깨갱, 타당타당, 민족의 핏줄에 오랫동안 흘러온 가락과 숨결, 심장의 박동과 같은 울림을 맞추기로 했다.

그건 열찬씨 어린 시절에 늘 보아오던 마을농악대의 가락과 정초에 지신을 밟던 상쇠 아버지가 읊던 사설의 여운에서, 또 이제 마악 봄이 돌아온다는 입춘이 지나고 마지막 찬바람 영등할미가 지나가 머슴들이 다시 새해 농사를 짓기 위해 쟁기와 길마를 손질한다는 음력 2월 초하루고비를 못 넘겨 노인들의 상여가 나갈 때 그 선연히도 곱고 눈물겨운 화려한 꽃상여의 아롱거림과 길게 줄을 지어 앞장서던 붉고 푸른 만장들과 딸랑딸랑 요롱을 흔들며 <어화홍 어화홍 어허넘차 어화홍> 상두소리를 선창하던 아버지의 걸쭉한 목소리에서 연상된 것이었다.

 

물고기의 모형과 그림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아 관내의 간판 집에 부탁을 하되 눈에 잘 띠면서도 예쁜 디자인을 위해 혹시 미대에 다니는 대학생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니까 즉석에서 두 명이나 추천되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