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계속해서 과학 인사이드 이어갑니다.
과학스토리텔러,
웹진 인저리타임의 조송현 대표와 함께 하죠.
대표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Q1. 이 시간에는
현대과학의 정수, 양자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고 있습니다.
상식과 직관을 뛰어넘는 양자론 오딧세이..
지지난 시간부터
3회에 걸쳐
물리학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논쟁,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을
함께 살펴보고 있는데요.
1, 2라운드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완패를 했고..
오늘은 그 마지막 대결,
3라운드로 넘어왔습니다.
EPR 논쟁이라는 별도의 이름도
붙어 있던데..
마지막 승부인만큼
보어 아인슈타인 논쟁의
백미로 꼽힌다구요?
-> 네.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의 하이라이트인 EPR 논쟁은
앞선 두 번의 논쟁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앞선 두 개의 사고실험이 일종의 퀴즈였다면
이것은 학술적으로 치밀하게 논증한 논문이니까요.
천재 물리학자들이 당대의 첨단이론,
그것도 매우 철학적인 이론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다툰
EPR 논쟁의 핵심을 일반인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EPR 논쟁의 개요와 물리학사적 의미,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 논쟁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한
기초지식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Q2. 예, 기대가 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생소한 용어입니다.
EPR이 뭔지부터 짚고 갈까요?
엄청나게 심오한 뭔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사람 이름을 모아놓은 거라구요?
-> 네. E, P, R은 각각 Einstein, Podolsky, Rosen의 앞 글자입니다.
포돌스키와 로젠은 아인슈타인이 미국에서 만난 제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독일 나찌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었지요.
EPR 논증이란 이들 저자 세 사람의 이름을 딴 논문의 별칭입니다.
물리학 저널 『Physical Review』(47호)에 실린 논문 제목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은 완전한가
(Can Quantum 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입니다.
‘논증’이란 옳고 그름을 근거를 들어 밝힌다는 뜻이잖아요?
이 논문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양자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근거를 들어 밝히는 논문이자 논증이고,
저자 이름을 따 ‘EPR 논문’ ‘EPR 논증’이라고 불리죠.
‘EPR 논쟁’은 앞선 두 번의 논쟁과 구별하고,
특히 EPR 논증으로 촉발된
범 물리학계의 논쟁 전체 과정을 의미할 때 주로 사용하죠.
또 ‘EPR 역설(패러독스)’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EPR 논증이 본래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는 데서
한참 후에 붙여진 별칭입니다.
Q3. 의도와 전혀 다른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이번에도 아인슈타인이 지는 건가요?
자.. 승부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뒤에서 살펴보고..
그 전에 이 논쟁이 갖는 의미와 파장이
엄청났다구요?
->현대 물리학의 기둥인 양자론이 정립될 즈음에 제기된 이 논증은
범 물리학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처음엔 어느 쪽인 옳은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철학논쟁처럼 여겨졌다가
40년 후 물리학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는
‘수학적 판별법(벨 부등식)’이 나왔고,
그로부터 약 20년 후 실험을 통해 EPR 논증의 진위가 드디어 가려졌습니다.
지금도 실험은 업그레이드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관련 논문이 2만 편이 넘게 나왔습니다.
현대 물리학사의 최대 논쟁임에 틀림없습니다.
00. 그러니까 앞선 두 번의 대결처럼
하룻밤새 결론이 난 게 아니라..
거대한 질문을 던진 셈이네요.
물리학계 전체가 수십년에 걸쳐
머리를 싸매고 골몰해야 할만큼
어려운 질문을요.
-> 그렇습니다. 오랜시가 열심히 궁리한 끝에 얻어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공간은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고,
따라서 우주도 그랬습니다.
공간은 알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된 ‘얽힘(entanglement)’ 구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양자론이 완전하지 않음을 논증했다고
야심차게 내놓은 EPR 논증은
‘양자론에는 문제가 없고 다만,
이 우주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EPR 역설로도 불립니다.
마치 ‘양자론은 말이 안 돼’라는 주장을 담은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이
오늘날은 양자 현상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처럼 여겨지듯이.
정리하면 EPR 논쟁으로 인해 우리는
‘양자론은 문제가 없고,
우주가 예전의 우주가 아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죠.
우주의 모든 사물은 연결되어 있고,
관계망을 이루고 있다는 이른바
‘관계론적 우주관’을 갖게 된 것이죠.
Q4. 결국 기존의 우주관을 뒤집어 놓는
그야말로 거대한 전환의 출발점이 된 건데요.
문제의 EPR 논문..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살짝이라도 맛을 좀 볼 수 있을까요?
-> 예, 먼저 간단한 문제를 내보겠습니다.
‘상자 안의 전자’ 사고실험인데요,
자, 라면박스 안에 전자가 하나 들어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전자는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으로 존재합니다.
이 상태에서 문제 들어갑니다.
그 라면박스를 절반으로 나눠 A, B 두 개로 만들면
전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반으로 쪼개져 A, B에 각각 반씩 나뉘어 있을까요?
아니면 어느 한쪽에만 있을까요?
Q5. 파동은 나뉘어질 수 있겠는데,
전자는 또 입자니까요.
이게 반으로 잘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느 쪽에 있는지는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맞습니다. 양자론의 핵심을 이해한 것 같네요.
이 문제는 우리가 앞에서 다뤘던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과 많이 닮았습니다.
고양이의 상태는 ‘산 고양이’ 상태와
‘죽은 고양이’ 상태가 겹쳐져 있다.
이게 양자론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중첩의 원리죠.
그런데 측정(관측)을 하는 순간 중첩된 상태 중 하나가 나타나죠.
다른 하나는 순간적으로 붕괴되어 사라진다,
이게 ‘측정의 원리’입니다.
관측하기 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말이죠.
->‘상자 안의 전자’로 돌아가면,
전자가 들어 있는 상자가 반으로 나뉘었으니
전자의 상태는 A에 든 전자파동과
B에 든 전자파동이 겹쳐진 상태로 존재할 것이죠.
양쪽 파동의 상태는 전자가 존재할 확률을 나타냅니다.
확률이 어떻든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가는
측정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게
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죠.
어디에 있는지는 직접 확인하면 알 수 있는데,
A상자에서 전자를 확인했다면
B상자는 텅 빈 것으로 확인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요.
Q6.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전자가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고..
한쪽에서 전자가 확인이 되면
다른 한쪽은 비어 있다..
굳이 중첩의 원리, 측정의 원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여기까지는 상식적이예요.
그런데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 자, 이번엔 상자 B를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에 갖다두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지구에 있는 A상자를 열어 전자를 확인했다면
안드로메다은하의 B상자의 상태는 어떨까요?
Q7. 당연히 A에 들어 있는 게 관측되었다면 B에는 없겠죠.
-> 맞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전자가 든 상자를 반으로 나눠
B상자를 안드로메다은하에 가져가 먼저 열어보니 전자가 들어 있어요.
그렇다면 지구의 상자 A에는 전자가 없겠죠.
이 사고실험의 핵심은 이겁니다.
지구에 있는 상자 A는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의 상자 B에
전자가 들어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것이죠.
그것도 즉각적으로.
Q8. 열기 전에 몰랐을 뿐이지 가져갈 때부터
상자 B에 전자가 들어 있었던 거 아닌가요?
->그게 아인슈타인의 생각이고, 상식적이죠.
근데 양자론에 의하면 한 쪽에서 발견되면
다른 곳은 그 영향을 받아 순간적으로 사라집니다.
원래 들었거나 텅 빈 게 아니라 한 쪽의 관측 결과에 따라
다른 쪽이 정해진다는 것이죠.
심지어 250만 광년이나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도 말입니다.
Q9. 그러니까 상자B가 상자A의 관측 결과를 알고 처신한다는 거네요.
전자가 원래 1개였으니 A에서 전자가 발견되면
B는 “A에서 확인됐으니 나는 텅 빈 채로 있어야 겠다”라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요.
결국 이게 말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맞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실험을 1922년 독일의 물리학자 슈테른-게를라흐가
한 적이 있는데요.
아마 아인슈타인이 그 실험을 몰랐던 것 같아요.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실험 중 하나라 평가받는 실험인데요.
약간 응용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 앞에서 다룬 ‘상자 안의 전자’ 실험을 조금 바꿉니다.
상자 안에 입자가 두 개 들어 있는데,
두 입자의 스핀 합이 0이 되어야 합니다.
각각의 스핀은 수시로 바뀌는데 스핀 합은 언제나 0(보존됨)이라는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자, 아까처럼 입자 A를 집어 스핀을 확인해보니 –1이었다,
그렇다면 입자 B의 스핀은 무엇일까요?
Q10. 합이 0이어야 하니까요. 당연히 +1이겠네요.
->맞습니다. 이번엔 입자 B를 안드로메다은하에 갖다두었습니다.
250만 광년 떨어진.
A 입자의 스핀을 확인해보니 +1이었어요.
안드로메드은하의 입자 스핀은 무엇일까요?
Q11. 역시 -1이겠죠?
-> 너무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실텐데요,
원래 가져갈 때부터 –1의 스핀을 가진 입자였다고요.
근데 스핀은 수시로 바뀐다고 했잖아요?
반복적으로 측정하면 각각의 입자 스핀은
–1과 +1일 확률이 정확하게 50%입니다.
따라서 원래 –1의 스핀을 가진 입자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Q12. 그럼 결국, A 입자의 스핀 정보가 확인된 뒤
그 결과를 B가 알고 합이 0이어야 한다는 법칙에
자신을 맞춘다는 얘긴가요?
믿기 힘든 얘긴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현재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EPR 논증을 내놓을 때만해도
이런 결론이 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될 확률도 만만찮거든요.
다음 시간에는 EPR 논증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00. 참, 점입가경인데..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전개'입니다.
바로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한계에
부딪히게 된 건데..
자..
이야기가 마침내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갔어요.
EPR 논쟁..
오늘 끝까지 마무리하긴 힘들 것 같고..
다음 시간에 한 차례 더 이어가죠.
양자론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상식을 바꿔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패배와 함께
우주관의 지각변동을 예고하셨는데..
자.. 이후의 전개가
정말 궁금합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해 주시고..
자,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까지 과학인사이드
조송현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대표님, 오늘도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pinepines@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