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1-꽁트】 라이더 씨의 일일
【시민시대11-꽁트】 라이더 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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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23 11:20
  • 업데이트 2022.11.2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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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휘 소설가

아스팔트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다. 타이어는 안에 들어찬 공기로 빵하고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다. 뉴스에선 낮 최고기온이 35.6도까지 올랐다고 하였다.

“아이고메, 날씨가 이렇게 더바서 우찌합니까?”

그늘조차 타서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낮 더위를 피해 그림자 쪽으로 다가온 동료 라이더 김 씨가 기도 안차다는 듯 건넨 말이다.

오토바이 받침쇠를 내리자 아스콘이 노루 발굽처럼 꺼졌다. 하필 배달 물량이 가장 많은 점심때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만구의 첫 배달 주문은 서면 전포시장 내 ‘존맛아구찜’이다. 배달지는 송상현광장 옆 파리앙스 상가 내 한 점포. 만구는 아귀찜을 배달용 배낭에 넣고 어깨에 멨다. 호기롭게 가게 밖을 나오는 만구를 기다렸다는 듯 열기는 훅하고 온몸을 덮쳤다. 배달용 배낭을 메고 한 걸음 내딛자 등 전체로 땀이 번져 오른다. 땀 빠지라고 안에 받쳐 입은 등산용 발수 러닝셔츠조차 귀찮을 정도다. 흐르는 땀이 염전 바닥의 까끌한 소금으로 변해 돌돌 구르며 타고 내리는 것 같다.

가게에서 배달지까지의 거리는 약 500m. 평소 같았으면 운동 삼아 걸을 만한 거리였지만, 무더위 탓에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천천히 걸어갈 수도 없다. 음식을 전달하는 마감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만구는 헬멧의 캡을 들어 앱을 확인했다. 도보로는 10분으로 찍혔다. 겨울철이어도 따뜻한 음식이 식지 않고 바로 배달할 시간으론 충분하다지만 이 더위엔 음식이 식긴커녕 더 푹푹 찔 거 같았다.

그러나 한낮 찌는 더위임에도 전포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썩은 사체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개미 떼 같았고, 살 속에 쉬 스는 구더기들의 꼬물거림 같았다. 대체 이 무지막지한 더위 속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들을 나오게 하는 건 뭘까? 저렇게 점령군처럼 물밀듯 밀려오는 인파는 도대체 이곳에서 구할 게 무엇이 있다고 저다지도 꾸역꾸역 밀고 나오려는 걸까? 만구는 그런 인파를 뚫고 목적한 곳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때 한 사내가 만구의 어깨를 툭 쳤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정전기인 것처럼 만구한테로 쑥 다가왔다. 그 남자의 고개가 잠시 젖혀지는가 싶더니 머리카락 끝으로 모인 땀방울이 만구에게로 튀었다. 그의 모습과 닮은 불결함이 잔뜩 묻은 땀방울에선 지하의 음습함과 식당 수챗구멍 같은 축축함이 전해져 왔고, 바지는 막걸리와 오줌에 버무린 지린내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만구는 피할 겨를도 없이 자신 목덜미에 착 달라붙어 즉시 용해되어 제 피부로 스며들어 가려는 땀방울을 훔쳐내려 했다. 그러나 시커먼 때로 범벅된 그것을 씻어내는 건 고작 때 절은 장갑이다.

만구는 시장 한가운데를 돌파하는 대신 인파를 피해 부전역 앞을 지나고자 마음먹었다. 둘러 가더라도 그게 더 빠르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배달 도착 시각을 약 3분 정도 남기고서야 가까스로 상가 건물에 도착했다. 늦지 않게 건물까지 도착했지만 이미 몸은 오뉴월 땡볕에 뽑힌 상춧잎처럼 축 늘어졌다.

상가의 복잡한 구조는 인생에 있어서 종착지를 찾지 못하는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자구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배달을 더디게 하려는 것을 끊고 서둘렀다.

1분 1초를 기다리지 못하는 성마른 자의 까탈스러움이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배달 시간이 늦어 항의 전화까지는 그렇다 쳐도 어떤 억하심정이 들었는지 음식점 평가를 낮게 하려는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 플랫폼 본사에서 앱을 통해 라이더에게 ‘지연 사유 입력’이라는 창을 띄워 지시를 내린다. 그것은 노동자로 말하자면 해고라는 기요틴의 칼날 받이에 자기 목을 들이민 것 같은 공포와 다름없다. 해고에서 느끼는 압박감이란 피 말리는 것이다. 그때마다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새기고 다짐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은 가족이란 두 글자다.

두 글자를 부적처럼 가슴에 넣고 다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수양하는 자세로 유지하긴 힘들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이미 전에 겪어서인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초저녁에 배우고 늦은 저녁에 맘 돌려 깨친 만구다. 다행히 참는 법을 배운 것이다.

제시간에 도착해서 물건을 전했다. 배달이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긴장했던 몸이 깨나른해지며 풀어 헤쳐졌다. 쉴 틈이 없다. 다음 배달을 잡았다. 서면 1번가의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 남았다. 어찌 보면 그들이 이렇게 다른 음식을 시켜 먹는 것보다는 매장에서 만든 매장의 음식을 먹는 것이 시간을 아껴 쓸 수 있고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질음식 선호현상’이라고나 할까, 다른 맛을 내는 유사 업종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그들이 느낄 점심 한 끼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리라.

시간에 맞춰 도착해 배달번호를 확인했는데 아직 음식이 준비되지 않았다. 이 시간이 라이더들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을 보장해주는 시간이다. 지연 사유가 배달 때문이 아니니 책임에서 자유롭고, 무엇보다 실내에서 에어컨을 쐴 수 있으니, 이보다 달콤한 시간이 따로 있으랴 싶다. 따지고 보면 더워도 이런 날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만구지만 겨울철 배달은 목숨을 길바닥에 내놓고 해야 한다. 땡전 한 푼 보상 받을 길 없는 길바닥 생명보험에 자동 가입한 라이더들이 겨울철 배달로 죽지 않으면 하느님 굽어살피사 일 정도로 극 고난도 일이 겨울철 배달이다.

그날따라 유독 차가운 날씨에 진눈깨비까지 내렸다. 살짝 언 길바닥은 아무렇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보였다. 만구는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는 녹슨 머플러 아래 받침쇠를 젖히는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오른쪽 액셀러레이터를 손등이 접히도록 당겼다. 오토바이 바퀴가 팽하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미끄럽다는 걸 직감했다. 녹지 않은 도로였다. 10년째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한 만구였지만 영 께름칙했다.

방금 주방에서 내놓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자장면을 랩핑하자 바로 철가방에 집어넣었다. 자장면이 눅진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전달해야 했다. 그러려면 좀 더 빨리라는 얼토당토않은 사명감이 이때 드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빌라 앞에 세웠다.

만구는 철가방을 오토바이 짐받이에서 들어 올려 빌라 계단을 올랐다. 벨을 누르자 주문한 사람들이 나왔다. 손에 익은 대로 철가방에서 자장면 세 그릇을 꺼냈다. 손님들이 2만 원을 꺼내자 허리에 차고 있던 빨간 가방에서 오천 원짜리 1장과 천 원짜리 3장을 거슬러줬다. 또 서둘러 오토바이를 타고 같은 동에 있던 한 원룸으로 갔다. 앞서 배달한 집 현관에 그릇이 나와 있었다. 그릇을 수거한 후 오토바이에 있던 파란색 플라스틱 통에 남은 음식물을 쏟은 뒤 빈 그릇을 철가방에 넣었다.

일단 목적한 일을 안전하게 마치자 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내쉬어졌다. 그늘진 곳이라 녹지 않은 눈이 이랑처럼 한 곳에 밀려있었다. 해가 지는 오후 5시가 되면 이 길은 필경 빙판길로 바뀔 것이다. 이럴 때 방심했다간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숱해 봐왔다.

만구가 조심스레 오토바이를 길가로 몰았다. 저 앞에 나서면 큰 도로다. 염화칼륨을 뿌리고 대형차들이 오가는 바퀴로 길바닥은 얼 틈이 없는 큰 도로였다. 좀 더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다. 기역 자로 꺾인 도로를 오른쪽으로 무게 중심을 주고 돌았다. 오토바이를 일반도로처럼 뉘면 안 된다는 것을 찰나에 안 순간 오토바이는 만구를 모로 태운 채 덤프트럭 아래로 쑥 빨려 들어갔다. 시커먼 헬멧 방호 유리 안이 하얗게 번쩍 들뜨면서 마치 전구가 갑자기 나간 느낌이 들었다. 이어진 영상엔 가족이란 두 글자가 서럽게 눈앞에 박히는 것이었다. 죽는 것이란 죽음에 따라오는 두려움과 고통도 가져가는 것이란 생각에 아무런 아픔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 문턱에 다가간 줄 알았다. 다행히 트럭은 오토바이를 깔아뭉개며 멈춰 섰고, 만구는 기적적으로 트럭 밖으로 튕겨 나왔다. 헬멧 안 만구는 아연실색한 얼굴에 영혼이 빠져나간 멍한 모습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죽음 앞에까지 갔던 만구였다. 그날의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나아진 편이다. 여러 안전 장비를 몸에 걸치고 오토바이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는 순간 천직이라는 직업정신이 살아난다.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행진곡처럼 들릴 때도 있고, 푸드득하고 꺼지면 초크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필터에 오물이 껴 오토바이가 기름을 제대로 못 받아먹어서 그렇다는 진단까지 내릴 정도로 오토바이의 증상까지 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한참 오후, 드디어 태양은 빌딩 숲으로 사라지고 그림도 그릴 줄 모르면서 그림자란 명사로 호칭이 붙은 그림자가 스멀 도시를 점령해 들어온다. 한결 쉴만하다. 목덜미를 한 바퀴 돌아 가슴팍에 닿은 서늘한 기운이 좋다.<끝>

 

백승휘
백승휘

◇ 소설가 백승휘

▷고용노동부 주관 제39회 근로자문학제 단편소설 <땅개> 금상 수상.

▷방송통신대학교 주관 제43회, 44회 방송대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그녀와 미숙이>, <명암 방죽> 입선.

▷사단법인 인본사회연구소 <인본세상> 편집위원(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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