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계속해서 과학 인사이드 이어갑니다.
과학스토리텔러,
웹진 인저리타임의 조송현 대표와 함께 하죠.
대표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Q1. 이 시간에는
현대과학의 정수, 양자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고 있습니다.
상식과 직관을 뛰어넘는 양자론 오디세이..
몇주 전부터
물리학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논쟁,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을
함께 살펴보고 있는데요.
보어의 승리로 끝난
1, 2 라운드는
가볍게 지나왔는데..
3라운드는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진검승부..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포돌스키, 로젠.
EPR 삼총사도 총력을 쏟아붓는데..
지난주까지 이들의 공세에 대해
짚어봤고.. 오늘은
보어의 대응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지난 시간까지의
전개.. 간략히 요약을 좀 해볼까요?
->예, EPR 세 사람의 공격 목적는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궁극적인 이론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불완전한 이론이다’고 논증하는 것이고요,
그 타겟은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인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논증은 실재성과 국소성을 공리로 삼아 삼단논법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논증에 사용된 사고실험은
한 입자가 두 개의 쌍입자로 붕괴(decay)하는 경우를 상정했습니다.
Q2. 네. 기억납니다. 두 개의 쌍입자가 같은 속력으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갈 때
쌍입자의 특성 상
둘 중 하나의 위치를 포착하면
다른 입자의 위치와 속도도 알 수 있다..
-> 네. 맞습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우리가 관측하기 전에는
‘정확한 값(물리량)’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위치를 측정하는 행위가 운동량에 영향을 주게 되니까
정확한 운동량을 알 수 없게 됩니다.
불확정성 원리는 한층 구체적으로
‘어떤 입자의 상보적인 물리량인 위치와
운동량(혹은 시간과 에너지)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한 입자에서 쪼개진(붕괴된)
쌍입자들은 운동량 보존법칙에 따라 운동량의 절대값이 꼭 같습니다.
운동량 절대값이 같다는 건 질량이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져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간다는 것이죠.
이제 EPR 논증을 따라가볼까요.
쌍둥이 입자 S₁의 운동량을 측정하면
쌍둥이 입자 S₂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S₂의 운동량의 정확한 값을 알 수 있다.
위치도 마찬가지로 S₁을 통해 S₂의 위치 값을 알게 된다.
국소성의 원리에 따라 S₁을 측정하는 행위가
S₂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S₂의 위치와 운동량 값은
S₁의 측정 행위 이전에
이미 고유한 값으로 정해져 있었다.
고로 [관측하기 전에는 ‘정확한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코펜하겐 해석은 틀렸고,
[위치와 운동량 값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도 오류다.
결론적으로 양자론은 불완전한 이론이다.
이게 EPR의 결론입니다.
Q3. 네. 여기까지
EPR 삼총사가 아주 득의양양했던 것 같은데..
이제 보어의 대응으로 넘어가 볼까요?
일단은
쌍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걸 뒤집는 게
포인트가 아닐까 싶어요.
->네. 보어는 EPR 논문이 실린 물리학 저널 『Physical Review』의 48호에
반박논문을 실어서 대응을 했습니다.
보어는 먼저, EPR이 논증의 전제로 내세운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란 용어를
양자역학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어요.
즉 ‘물리적 실재’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운동량과 위치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EPR이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지 못하는 이론은
완전한 이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데 대해
보어는 ‘그렇다면 물리적 실재란 무엇인가.’하고
반박한 셈입니다.
Q4. 지난 번에도 얘기했지만
논쟁이 철학의 영역까지
확대되는 분위기예요.
->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물리학계도 이후 30년 가까이 철학 논쟁만 하다
1960년대 들어 물리학 논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니까요.
그래도 보어의 주장을 제대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보어는 “우리는 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적 현상은
특정 물리량의 값을 알 수 없다는 문제를 넘어
이들 물리량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논문에 적었습니다.
양자역학의 완전성 여부를 논하면서
개념의 적용성이 불투명한 ‘물리적 실재’를 전제로
한 EPR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Q5. EPR이 자명한 진리,
즉 공리로 내세운 실재성을
먼저 공격한 거네요.
그 다음은 국소성인가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두 물체는
절대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
이것도 물리학의 공리로
받아들여져왔는데..
기존의 과학적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주장을
거침없이 펼칩니다.
-> 그렇습니다. EPR이 논증의 공리로 내세운 실재성과 국소성을 공격함으로써
EPR의 전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역공을 가한 것이죠.
보어는 EPR이 입자 S₁에 대한 측정 행위가
입자 S₂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국소성(locality)’의 공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보어는 “입자 S₁에 대한 측정 행위가
S₂에 ‘역학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S₁에 대한 측정은 S₁, S₂ 두 입자로 구성된
물리계의 미래 행태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어의 이 말은 양자역학적 현상에
국소성을 전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죠.
Q6. 그러니까 양자역학의 세계는
기존의 공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다.
실재성과 국소성을 전제로 한
EPR 논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요?
-> 맞습니다. 보어의 반박 논리는
사실상 자신의 주도로 정리한 ‘코펜하겐 해석’을 강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EPR 공리 중 하나인 ‘실재성’에 대해선,
전통적 의미의 실재성 개념 자체가
양자역학 상황에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죠.
코펜하겐 해석의 ‘양자계는 관측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조항에 해당하죠.
즉 측정과 상관없이 양자계가 원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물리량 값이란 경험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며,
물리량 값이란 적절한 실험장치를 통해 드러나는
일정한 값으로 정의된다고 강조한 것이죠.
그러니까 실재성,
사물이 우리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고전적인 실재성의 개념에 대한
이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국소성의 경우 코펜하겐 해석의
‘양자계의 상태는 파동함수로 기술되며,
확률적 특성을 갖는다’는 조항과 배치되죠.
파동함수가 바로 중첩의 원리에 의해
전 우주에 퍼져 있을 확률이 있고,
측정에 의해 즉각적인 반응이 전달된다고 가정하거든요.
이건 EPR의 국소성 공리와 정면 배치되는 거죠.
결과론적으로,
50년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우주는 국소적이지 않았으며,
보어의 주장대로 EPR의 국소성 가정은 잘못된 것이었죠.
Q7. 자.. 결국은 보어가 승리를 했는데..
이게 확정적으로 밝혀진 건
논쟁 이후 50년이 지나서였구요.
자.. 당대에는 어땠을까요?
보어의 반박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논리적 설명과 근거가 필요할텐데..
이 부분도 좀 짚어볼까요?
-> 네. 보어의 반박을 EPR 사고실험에
적용해볼 수 있는데요.
EPR은 쌍둥이 입자 S₁의 측정을 통해
자동적으로 S₂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건 S₂가 본래 그런 고유한 물리량 값을 갖고 있었던 거다,
따라서 그런게 아니라고 전제한 양자론은 잘못됐다,
고 주장한 것이었는데요,
여기에 보어는 국소성 전제가 잘못됐다,
S₁과 S₂의 파동함수는 온 우주에 걸쳐 존재하므로
S₁ 측정 행위가 S₂ 측정에 영향을 준다.
이는 S₁ 측정을 통해 S₂의 물리량 값을 안다는 전제는 잘못됐다,
따라서 EPR의 논증은 인정될 수 없다..
이런 반박을 펼칩니다.
Q8. 보어의 반박을 들어보니
역시 일리가 있는데,
앞서 말씀해주신대로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구요.
자.. 당대에는 EPR 논쟁
어떻게 결론을 맺게 되나요?
판정이 나오긴 하나요?
->네. EPR논쟁의 이후 전개과정을
짚어보면요.
먼저 물리학자 데이비드 보옴의
‘EPR 논증 각색본’이 등장합니다.
EPR의 논문은 강력하면서도 원리적으로 간단하지만,
막상 이 논증을 실험에 적용할 경우 기술적인 난점이 예상됐습니다.
그중 하나는 쌍둥이 입자 S₁, S₂의 운동량 고유함수l (운동량을 나타내는 파동함수)가
원리적으로 온 우주에 퍼져 있게 되므로
EPR의 국소성 공리와 상충된다는 것이죠.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보옴이 EPR 논증을 위치와 운동량 대신에
스핀을 도입해 각색했습니다.
‘EPR 논증 각색본’을
쌍둥이 입자에 적용하면
스핀이 0인 입자가 스핀 -1/2, 1/2인 두 입자 S₁, S₂로 붕괴해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 사고실험으로 대체됩니다.
원본에서는 운동량 보존법칙에 따라 속도의 방향이 반대였는데,
각색본에 의하면 각운동량 보존법칙에 따라
스핀 값의 부호가 반대가 됩니다.
쌍둥이 입자 S₁의 z방향의 스핀 성분을 측정한 값이
1/2이었다면 S₂의 z방향 스핀은 –1/2이라는 식입니다.
보옴의 각색본은 물리적으로 원본과 등가인데 훨씬 간편합니다.
아인슈타인도 각색본을 검토한 후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했고요,
그래서 물리학계에서는 이 각색본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Q9. 여기서는 일단 EPR 논증을 옹호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우는 것 같네요.
하지만 이 역시 사고 실험에 불과하고..
승패를 뚜렷이 가리지 못한 채
한동안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쟁을
지리하게 이어가게 되는데..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돌파구를 찾게 된다구요?
-> 네. 철학 논쟁에 머물 뻔한 이 논쟁은
29년 후인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벨이
EPR 논증을 확인 가능한 물리학적 방법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또 이로부터 18년 후 프랑스 실험물리학자
알랭 아스페가 벨의 방법론을 써서 실험에 성공,
마침내 EPR 논증의 진위를 판가름합니다.
그 과정과 결과는
다음 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Q10. 네.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결국 살아생전 승부를 매듭짓지 못하고..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는데..
두 사람의 사후에도 이어진 논쟁..
자. 세기의 대결의 결말..
다음 주 함께 확인을 해 보죠.
자.. 오늘도 아주 먼 길을
걸어온 느낌인데요.
그만큼 뿌듯합니다.
지금까지 과학인사이드
조송현 대표였습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pinepines@injurytime.kr>
<pinepines@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