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2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5장 꿈꾸는 율도국⑨
대하소설 「신불산」(32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5장 꿈꾸는 율도국⑨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2.10 15:13
  • 업데이트 2022.12.10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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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꿈꾸는 율도국⑨

이튿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거제도로 떠나는 해암선생을 환송하고 사무실에 돌아오는데

“아, 가동장님 오랜만입니다!”

너무 멀어 가물가물 감이 좋지 않은 전화목소리는 뜻밖에 얼마 전 동래구의 동장으로 나가있는 김태현씨였다.

“아이구, 사무장님, 아니 동장님, 우짠 일잉교? 그간 잘 지냈능교?”

반색을 하는데

“그런데 이 동장, 이거 또 축하를 해야 되는 건지, 안 해야 되는 건지...”

“예에, 와 무슨 일이 있능교?”

“내가 아니고, 바로 이 동장. 이 동장 당신 지금 발령이 났던데요.”

“발령이라니 웬 발령, 난데없이?”

“그러게 말입니다. 방금 본청에서 불었다는데 여기 팩스가 있어요. 중구로 발령이 났네.”

“어어, 그 참 나도 금시초문인데...”

“아무튼 축하합니다. 중구라면 더 시내고 서열 1번이라 영전이라고 봐야지. 축하합니다.”

“...”

이마가 띵하면서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쉼 호흡을 하며 한참이나 정신을 가다듬는데

“동장님, 아니 열찬이형님!”

누가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올라오는데 구청사회과의 마당발 정봉석씨였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중구로 발령이 났습니다!”

“아니, 발령이 났으면 가면 되지 큰일은 무슨 큰일?”

애써 진정시키며 정봉석씨가 들고 온 팩스를 바라보는데

“형님, 맨 밑에 보이소. 워터도 아니고 볼펜으로 쓴 글씨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사명령 맨 끝, 발령일자보다 더 밑에 볼펜으로 <서구 지방행정사무관 이열찬 중구로> 누가 장난처럼 갈겨쓴 글씨가 바로 인사발령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미 인사발령 시장결재가 끝난 뒤에 서구 측의 누군가가 로비를 해서 추가한 것이라고 정봉석씨가 분개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있어 이제 비로소 서구청장의 핍박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기도 했다. 사무장을 불러 발령사항을 알리고 퇴임식을 준비하게 했다.

 

오후 두시. 발령장을 받아 시청현관을 나오는 열찬씨의 눈앞에 코끼리처럼 엎드린 기다란 천마산의 줄기가 앞을 가로 막더니 코끼리의 이마처럼 뭉툭하게 뭉쳐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천마바위를 바라보니 가슴에 쿵 간이라도 떨어지는 느낌이 오며 아랫배가 싸르르 했다.

아아, 천마산! 처음 시청에서 서구로 가는 발령장을 받던 날 비록 그리 높지는 않지만 새파란 남항과 청명한 하늘을 인 덤덤한 능선과 천마바위의 낭떠러지가 새삼스레 가슴을 울리며 다가오지 않았던가? 비록 수많은 영세민들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지만 오손도손 어느 마을보다 인정이 많은 동네, 낮에는 언덕배기 울타리에 붉디붉은 줄장미가 되고 밤이면 달동네 판잣집의 백열등들이 채송화처럼 피어나 거대한 꽃밭이 되는 산기슭, 그 산기슭에 꽃을 심고 산토끼를 풀고 산수도의 저수조를 만들어 가난한 동민들을 보살피며 젊은 행정관의 꿈을 펼치려던 자신은 이제 저 정든 산기슭마저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시청을 나와 자갈치시장의 건어물골목과 조개골목, 곰장어골목을 지나 그물을 깁거나 미끼를 꿰는 물량장을 지나 새벽시장을 거쳐 동사무소로 걸어오는 내내 열찬씨는 내내 자신을 끝까지 믿고 따라주던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 몇몇 통장과 동직원에게 무슨 말로 퇴임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동장님!”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원, 몇몇의 통장들이 사무실입구에 기다리고 섰다가 우르르 동장실로 몰려왔다. 커피를 빼오는 홍태희여사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뒤따라온 사무장이 오후 다섯 시 반에 퇴임식이 결정되었다고 했다. 너무 빠른 것, 너무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냐니까 구청에서 되도록 빨리 퇴임식을 하고 오늘 중으로 떠나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오후 다섯 시 반. 급하게 잡힌 퇴임식 일정에도 2층 회의실에는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찼다. 너무 급해 각종 자생단체의 회장단과 통장들만 연락을 했다지만 대부분의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원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몰려들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선거 때 자기편이 아니라고 예고도 없이 사람을 내치는 것이, 그것도 서구가 아닌 타구로 말입니다.”

몇 명의 젊은 부녀회원들이 혀를 끌끌 찼지만 나이 든 부녀회원이나 통반장들은 뭔가 못마땅한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뭔가 기발하고 활기차며 의욕에 넘치던 젊은 동장, 그러나 시시때때 반대세력에 부딪혀 늘 고민에 휩싸이던 우울한 얼굴,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다가서던 인정이 많은 형제 같았지만 물가에 세워둔 아이처럼 어쩐지 불안하던 사람, 그렇지만 남부민1동이 생긴 이래 가장 산뜻하고 신명나는 사업들을 이끌어가던 정든 사람이 이제 떠나는데, 그것도 고약한 정치논리에 휘말러 떠나는 당사자나 바라보는 자신들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혀나 끌끌 차야 되는 것이었다.

“영전축하합니다. 중구청이면 서구보다 더 시내지. 앞으로 남포동 광복동에서 만나면 잘 부탁합니다.”

안만종 동정자문위원장의 무난한 인사에 이어

“이거 시원섭섭하구먼. 앞으로 싸울 사람이 없어서 어쩌나?”

서수양 위부원장은 비교적 솔직한 인사와 함께 씩 웃으면서 어깨를 쳤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아무튼 그동안 고생했고 지난 일은 다 잊고 원망은 마이소.”

정현조 방위협의회장은 여전히 삐딱했다.

“동장님, 우짭니까, 이 일로 우짭니까? 가시는 동장님이야 그렇다 캐도 우리 새마을지도자들은 앞으로 우짭니까? 동장님이 벌여놓은 일이 천진데...”

박상택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은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얼굴로 차마 잡은 손을 놓지 못 하고

“그래도 동장님 계실 때가 우리 남부민1동이 제일 활기차고 신명났습니다. 우리 부녀회원들도 뭔가 황홀한 꿈을 꾸는 것 같고. 중구에 가서는 정치바람에 휩싸이지 말고 그저 좋은 시나 많이 쓰세요.”

이민자 부녀회장은 마치 김해눈님 순찬씨처럼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하는데

“마 잘 됐다. 가동장에겐 호랑이굴 같은 우리 동네나 서구를 떠나 중구로 가면 팔자 고친 기다. 큰 고기는 큰물에 놀아야지.”

회원이 몇 안 되는 단체지만 새마을문고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원홍 회장도 밝게 웃으며 전별금봉투를 내밀었다.

머리가 허옇게 센 남부민국민학교 심순옥 교장선생과 대원사주지, 진상귀 냉동어상조합장과 청과조합장도 놀라움이 가득한 똥그란 눈으로 참석했는데 이병진 파출소장은 본서에 바쁜 일이 있다고 불참했고 무엇보다도 동장과 함께 동행정의 두 축을 이루는 도회수 구의원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변이었다. 집안일로 김천으로 간다는 전화가 왔지만 두 사람 공히 차마 얼굴보기도 낯간지럽고 전별금 몇 푼이 아까워서 그런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박철수 사무장이

“오늘 우리 동을 떠나는 가열찬 제 14대동장님의 그간 주요업적을 소개하면...”

자생조직정비와 구민축제우승, 천마산꽃길사업, 산토끼복원사업, 고지대식수난해결과 독거노인 제사상차례주기 등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문득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띠거나 간간이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있었고 열찬씨도 울고 웃고 싸우고 환호하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어 퇴임사 순서가 되자

“여러분, 이 황망한 퇴임식에 바쁜 시간을 내어 직접 참석해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건데 제가 남부민1동에 부임한 것이 아직 채 2년이 되지 않는데 그간 여러분과 함께 웃고 울고 지내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며 참으로 긴 세월이 흐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구민축제에서 1등을 하고 천마산에 산토끼를 풀던 즐겁고 아름다운 기억도 있지만 서로 갈등하고 원망하던 안타까운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지나간 날의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잊고 오직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과 활짝 웃는 여러분의 얼굴만 기억하며 이 자리를 떠날까 합니다.

여러분,

이제서야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늘 가난에 시달리던 언양촌놈으로서 대학생이 되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청운의 꿈을 품고 부산에 왔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멀고 아득하여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공무원으로서 일생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심한 인사적체로 어차피 평생 동서기로 지내면서 동사무장이 되는 것이 소원이던 제가 민선이 시작되면서 사무장을 넘어 행정사무관이 되어 동장으로 여러분들과 같이 몇 가지 사업을 벌이며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한 사내로서, 한 젊은 사무관으로서 꿈을 펼치며 젊은 한 때를 보낸 것은 너무나 감사하고도 황홀한 기억이자 보람이 될 것입니다.

그간 부족한 저를 늘 따뜻이 보살펴준 여러분의 정을, 또 황당하고 기상천외한 낯선 사업을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따라주며 혼신의 힘을 다한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원, 통반장여러분들의 협조와 믿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시 태어나도 여러분들은 저의 부모형제요, 따뜻한 동행으로 남을 것입니다.”

순간 어디선가 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부녀회원 몇이 눈물을 훔치거나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있는데 그들을 말리는 홍태희씨의 눈도 빨갰다.

좌중이 진정되도록 한참 뜸을 들인 뒤에

“여러분들 중에는 왜 제가 오자말자 말썽도 많고 반발도 심한 자생단체조직정비에 매달리고 실현가능성이 의심되는 천마산산토끼 복원사업 같은 황홀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뜬구름잡기의 허황한 사업을 벌인지 궁금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자면 그 모든 일들은 젊음을 일선 동사무소에서 소진한 한 젊은 행정관이 무언가 새롭게 바꾸고 밝고 희망찬 꿈을 제시하고 싶은 그간의 열망이었고 또 한 시인의 몽상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실패한 것 같기도 한 그 절반의 성공에 대하여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단지 여러분들의 뜨거운 협조와 믿음 그리고 함께 일하던 날의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만 기억할 것입니다.

또 어디선가 훅, 하는 소리가 들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부녀회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여러분, <떠날 때는 말없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어떻게 또 무어라고 말을 한들 여러분들과 저의 이야기가 끝이 나겠습니까? 아무쪼록 우리 남부민1동의 무궁한 발전과 여러 분들의 건강을 빌며 이만 퇴임사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간략히 인사말을 마무리하고 왼쪽 가슴에 꽂힌 코사지를 빼면서 회의실을 내려오는데 산토끼처럼 맑고 커다란 눈동자의 안선화양의 눈에도 눈물이 그득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