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호사(鵝湖寺) 논쟁(1175)이란 당시 남송(南宋) 학계의 두 거봉인 주희와 상산 육구연이 여조겸의 주선으로 신저우(信州)의 아호사에서 만나, 교육 방법에 관해 토론한 것을 말한다(이 당시의 ‘사寺’는 사찰이 아니라, 오늘날의 ‘호텔’을 뜻했다).
논쟁은 『중용』에서 말한 ‘덕성을 닦는 것(尊德性존덕성)’과 ‘물어 배우는 것(道問學도문학)’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토론한 것이다. 이것은 공부 방법론 내지 수양론에 대한 논쟁이었다. 또한 이것은 ‘지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넓은 의미의 인식론에 대한 초보적 토론이었다.
군자는 타고난 덕성을 높이고(尊德性)
묻고 배움으로 인도하여(道問學)
넓고 크게 이르되, 정미한 것까지 다한다.
지극히 높고 밝아 중용으로 인도하고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며(溫故而知新)
돈후함으로써 예를 숭상한다. -중용/27장-
주희는 ‘도문학’을, 육구연은 ‘존덕성’을 더 중시했다.
주희의 인성론(人性論)은 ‘성즉리(性卽理)’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하늘에서 품부한 본성이 곧 천리天理라는 것이다. ‘이기론理氣論’ 등으로 깊이 들어가면 매우 난해하지만, 거칠게 요약하면 우리 본성이 천하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 성이 발현되면 정情이다. 이 정을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인에게 물어 인도함(도문학)’으로써, 성 속에 내재한 천리를 아는 것이 ‘성을 보존하는(尊德性)’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희는 주장한 것이다.
물론 주희의 ‘도문학’도 최종 목표인 ‘존덕성’을 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는 데 있다는 점에서는 육구연과 바를 바 없다. 다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물의 뜻을 아는 궁리(격물치지)가 급선무라고 말한 것뿐이다.
사람이 배우려고 하는 까닭은, 나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 마음이 천지 성인의 마음과 다름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배우려 하겠는가?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반드시 저 통달한 이의 말에서 성인의 뜻을 구하고, 성인의 뜻으로 천지 이치에 통해야 하는 것이다. -주자대전/권42/답석자중-
반면 육구연의 인성론은 ‘심즉리心卽理’이다. 심心이 곧 천리天理이므로, 마음 밖에 이理가 없다는 것이다(心外無理). 따라서 그는 ‘격물치지’나 ‘도문학’처럼 밖에서 이理를 구하는 것은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문자에 매이지 않고, 곧 배울 필요 없이 안으로 마음을 수양하여 곧바로 양지良志에 이르는(致良知) 것이 ‘존덕성’의 바른 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없으랴?
도를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병통은 마음을 잃어버리고 해치는 데 있다.
옛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심心을 간직하고 길러, 잃어버린 심을 찾는 것뿐이다. -상산선생문집/권5/여서서미-
두 학자의 논쟁 결과는 어땠을까?
아호사 모임에서는 교육에 대해 논의했다.
주자의 뜻은 사람들이 넓게 관찰하고 살피게 하고,
그 후에야 간략한 데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육자(육구연)의 뜻은
먼저 사람의 본심을 밝게 발현시키고,
그 후에야 널리 살피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자는 육자의 교육 방법이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했고,
육자는 주자의 교육 방법이 곁가지로 이탈했다고 생각했다.
둘의 차이는 합치되지 못했다. -상산선생전집/권36-
이러한 주희와 육구연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주희는 공자에 충실한 입장이고, 육구연은 불교의 마음공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육구연은 당시(12세기)의 ‘공부하는 불교’에 대항하여, ‘깨달음의 불교’로 개혁한 선종禪宗의 발흥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선비 중심의 공부 유학을 민중 중심의 실천 유학으로 개혁하려 했다. 이 점은 크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주희는 선왕의 말씀과 더불어 일용日用과 사물에 대한 공부를 강조했다. 이 점은 의리와義理와 실공實功을 병행하자는 것이므로, 유교의 세속화라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계속>
*이 글은 묵점 기세춘 선생의 『성리학개론上』에 크게 의존하였음을 밝힙니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