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67)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①
대하소설 「신불산」(367)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1.22 05:30
  • 업데이트 2023.01.24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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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①

“어이, 이 과장 거기 좀 앉아봐. 그리고 인사해. B대학교 음대에서 작곡을 가르치는 이일삼 교수님이야.”

청장실에서 문화관광과장을 찾는다는 비서실의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온 열찬씨에게 노란 금테안경 속으로 가는 웃음을 띠며 김모구청장이 인사를 시켰다.

“저 문화관광과장 가열찬입니다.”

“작곡하는 이일삼입니다.”

건성으로 악수를 하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일까 곰곰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누가 구청장에게 접근해서 지방자치시대의 민선구청장이 어떻게 문화예술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여야 한다면서 구청장을 부추겨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사업을 제안하는 걸까? 시도 때도 없는 자칭 문화예술인들의 방문이 늘 열찬씨를 힘들게 했다.

누구보다도 문화예술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예술인들에게 호감을 가져야할 명색 시인이면서 현실적으로는 또 얼마나 돈이 들어가고 어떻게 사업비를 확보할까 걱정되어 구청장실을 방문하는 예술인들을 가장 꺼리는 사람이 바로 문화담당과장인 열찬씨였다.

“교수님, 이 친구가 생긴 건 볼품없는 농촌 스타일이지만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아주 진국입니다. 국문과를 나온 시인으로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된 아주 제대로 된 문화예술 통입니다. 아마 교수님과도 마인드가 잘 맞을 테니 앞으로 서로 잘 상의하며 우리 구의 문화예술사업을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지만 열찬씨의 입장에서는 그 말 한 마디가 결코 웃어넘기거나 못들은 척 지나가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싫든 좋든 방문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웬 만큼의 돈이 들더라도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게 돌려보내야 된다는 것을, 문화관광과장으로 최적임자라고 소문난 시인과장이 어떻게 이 손님을 다루고 또 어떤 사업을 이끌어낼지 구청장이 그 번쩍이는 안경속의 차가운 눈길로 가늠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교수님은 우리 이 과장이랑 사업구상을 하고 계십시오. 저는 관내 경노당의 준공식에 참석하고 돌아와 같이 식사나 하십시다.”

구청장이 문밖에 대기하고 섰던 가정복지과장과 나가버리자

“저어 김모구청장님께 어제 만찬회장에서 대충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일삼 교수가 본격적으로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문화관광과장으로 부임한 며칠 뒤 구청장이 과장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행정수첩을 끼고 문을 나가는 순간

“저어, 과장님!”

고명석 문화계장이 머뭇거리며 불러 세우더니

“잠시 제 이야기 좀 듣고 가시지요.”

제 먼저 과장실의 원탁에 앉더니 눈길로 정병진 문화계주무와 셋이 둘러앉았다.

“거, 참, 뭐라고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정 주무가 한번 설명을 드려보세요.”

눈길로 정병진 주무를 채근하자 주무가 조심스레 입을 여는다.

지금 구청장실에 가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인사가 앉아있고 그 방문자와 서로 인사를 시키고 방문자가 좋은 문화사업의 아이템이 있다고 설명을 하면서 마지막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고 어느 구청장보다도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소문이 났다고 구청장을 잔뜩 추겨 세울 것이라고 했다.

그런 뒤 방문자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나 공예, 조각이나 소장품 같은 예술품을 구입해주기를 바라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여보자고 할 텐데 그게 단돈 몇 십만 원을 들여 무엇을 구입해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이이야기는 경청하되 그 요구사항은 좋은 말로 연기 또는 거부, 하다 못 해 확답은 피하고 오라는 이야기였다.

그날도 그렇게 한참이야기를 하는 동안 비서실에서 과장이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독촉전화가 왔다. 황급히 일어나는 열찬씨의 뒤통수에 대고

“과장님 건투를 빕니다. 잘못해서 덜컥 몇 백만 원하는 물건을 사기로 하고 예산계와 합의가 안 되면 과장님은 몰라도 우리 실무진은 총무과장이나 기획감사실장에게 불려가 반쯤 죽습니다. 좌우간 알아서 하이소.”

ⓒ서상균

문화계장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문자인 작곡가는 바로 자신이 서구의 찬가를 작곡해보겠다는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지금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음악분야에는 각종 축제에 한물 간 삼류가수나 엉성한 악단이나 코미디언을 불러 형편없는 공연을 하거나 또 청중도 잘 모이지 않는 클래식 음악회를 열어 예산만 낭비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진정으로 전 자치구민의 관심을 받고 자긍심을 높일 구민의 노래를 제정해야 된다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구민의 노래, 구민의 노래라... )

불현듯 열찬씨의 뇌리에 옛날 부산시에서 아무리 시민에게 홍보해도 도무지 파급이 되지 않아 국내외에 알려진 널리 알려진 당대의 일류가수이자 부산출신인 <안개>의 정훈희에게 취입을 시킨 <부산찬가>가 떠올랐다. 청소부들이 새벽부터 골목골목을 누비며 노란 구리요롱을 짤랑짤랑 울리는 대신 녹음테이프로 방송하게 했지만 시민들은 그 거금이 들어간 노래를 단지 청소차가 오는 신호로만 생각했지 청순한 여가수의 목소리나 시민의 긍지를 드높이는 찬가라는 점에는 도무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단지 청소차노래로 전락하고 말았던 기억이었다.

이에 시청에서 다시 새로운 부산찬가의 가사를 공모해 작곡한 세 곡을 서정쇄신 특별교육을 실시한 시민회관에서 3천명의 공무원들에게 차례로 듣게 하고 박수소리가 제일 많은 곡으로 다시 제정했지만 ‘나는야 씩씩한 부산사나이, 너는야 상냥한 부산아가씨, 태평양 푸른 물결...’의 새 노래도 실패였다. ‘찬란한 아침 해가 오륙도를 비치면 희망이 넘치네...’의 청소차노래, 정훈의의 청순한 목소리에도 도무지 못 미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글쎄요, 좋긴 좋지요. 멋지고 훌륭한 사업이기는 하지만...”

열찬씨가 일단 기분은 맞추되 확답은 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데 비서실 여직원이 송도의 어느 횟집에서 교수님과 열찬씨를 기다린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오너인 교수의 승용차로 송도곡각지를 넘어가는데

“송도바다는 참 아름답지요? 저는 언제 보아도 가슴이 확 트입니다.”

“예 표현하기 나름이지만 저도 마음속의 갈등이나 그늘이 마치 오래 된 체증처럼 뻥 뚫리는 느낌이지요.”

건성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열찬씨의 뇌리에 순간 섬광처럼 뭔가가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 떠오르는 느낌의 실체를 잡느라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동안 차가 목적지에 닿았는지

“야, 이 사람 이 과장, 지금 무슨 생각하노? 시상(詩想)이라도 떠올랐나?”

운전자가 내린 차에 멍하니 앉은 열찬씨를 구청장이 툭 쳤다.

아직 대낮이라 매취순이란 순한 술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회를 먹고 마침내 매운탕과 밥이 들어오는 순간 마침내 열찬씨의 눈이 반짝 빛나면서

“저어, 청장님 그건 말입니다.”

운을 떼자

“옳지. 이 제서야 우리 시인님의 아이디어가 나왔구먼!”

청장이 반색을 하고 교수도 뚫어질 듯 바라보는데

“그 서구찬가라는 것은 민선시대가 되기 전에 한 번 제정된 일이 있지요. 구민들의 인기가 없어 지금은 거의 잊어졌지만 말입니다.”

가사공모로 당선된 열찬씨와 황지연이란 직원의 작시를 시인인 백창호 문화관광과장이 적당히 버무려 엉뚱하게 변모구청장작시로 작곡된 사장된 노래를 떠올리며

“이건 제가 아까 송도곡각지 넘어오다 한없이 푸른 바다를 보며 떠오를 생각인데 동양의 나폴리라는 우리 송도해수욕장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이탈리아의 <돌아와요. 소랜토로>나 꿈꾸는 카사블랑카가 나오는 <하얀 집>처럼, 아 또 있지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이나 조미미의 <서산 갯마을>에 <서귀포를 아시나요?> 또 그 뭐 <삼천포 내 고향으로> 같은...”

“그러니까 유행가, 즉 대중가요로 보급하자는 말이구나?”

“그럼요.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공무원의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신선한 발상이 나오는지 역시 시인입니다. 굿 아이디어!”

구청장과 음대교수가 순간적으로 찬성하면서 단번에 자연스럽게 송도나 서구의 다른 지명이 들어가는 대중가요를 서구의 노래로 제정하기로 하고 건배가 오갔다.

순간 절대로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찬성을 하지마라는 문화계장의 당부와 담당자의 걱정스런 눈빛이 떠올라 수많은 단계와 엄청난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을 어떻게 추진하고 또 당장 실무직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눈앞이 캄캄해진 열찬씨가

“그렇지만 구청장님, 이 사업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의회의 설득과 구민의 찬성도 획득하고 적지 않은 예산도 소요되는 만큼...”
신중히 결정하자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도 전에

“이 사람아, 구청에서 하는 일에 이 구청장이 밀어주고 음악에는 명성이 자자한 이일삼 교수님이 계시는데 걱정은 무슨 걱정이야? 어서 구체적 주진계획이나 세워 다음 주쯤 다시 교수님과 만나기로 하세.”

망설일 틈도 없이 사업이 확정되었다.

공무원이 낮술을 마셔도 되느냐, 그렇지만 이렇게 신선한 생선회를 두고 반주조차 않는 것은 공무원을 떠나 너무나 무심하고 꽉 막힌 사람이 아니겠느냐면서 마신 술기운으로 차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열찬씨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과장님, 설마 별일은 없었겠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계장과 주임이 수첩을 들고 원탁에 둘러앉았다.

“그, 그 게 말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열찬씨가

“우선 차나 한 잔 하며 숨이나 좀 돌립시다.”

서무 진미덕씨에게 커피 석 잔에 냉수까지 시 키고 그 동안의 경위를 설명하자

“아이구, 죽었구나!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대형사고를 치고 오셨구나!”

차마 말을 못 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담당을 보며 장 탄식을 하는 계장의 눈길을 피해 열찬씨가 이일삼 교수의 명함을 탁자에 놓으며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하자

“과장님, 이건 사고도 보통이 아닌 아주 대형사고입니다. 우선 노래가사를 공모하고 작곡가와 가수를 선임하여 서울의 오케스트란가 뭔가가 있는 레코드사에 취입을 하고 보급을 하는 절차도 복잡하지만 무엇보다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것입니다. 또 그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의회의 승인을 득하는 일, 그러니까 의원들에게 엄청 시달릴 것이란 말입니다.”

고생길이 눈앞에 선 한 듯 후우, 한숨을 쉬던 문화계장이

“기왕에 터진 일이니 우리 정주무랑 같이 헤져나가기로 하고 우선 앞으로 이런 일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나 들어보시지요.”

하며 운을 떼는데 한번은 아미동에 사는 민속품수집가 장두성이란 분이 청장실을 찾아와 말 몇 마디를 던지는 바람에 엄청난 일거리가 터진 일이 있다고 했다.

구청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이 소장한 오래 된 도자기든 고서화를 몇 점을 기부할 의사가 있다는 예기를 듣고 갑자기 고미술품에 흠뻑 빠진 청장이 아미동의 전시장에 자신이 직접방문을 한 뒤였다.

담당과장과 실무진도 곧바로 방문해 소장가의 애로사항이나 희망사항을 청취하고 지원해주라는 말과 함께 다음 월요일 간부회의에서 소장가에 대한 지원대책은 물론 그 귀한 소장품들을 구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전시하여 근대사의 발상지인 우리 서구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고미술품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마침내 구덕운동장에서 구덕터널로 빠지는 넓은 인도에 매주 토, 일요일에 민속품을 전시하다 마침내는 민속품을 판매하는 <문화장터>가 개설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산에서도 서울의 인사동과 유사한 고풍스런 고미술품시장이 열렸다는 것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는 기사가 지방지와 TV의 내 고향소식에 대서특필되고 자신의 사진과 인터뷰가 자주 등장하자 기분이 한껏 고무된 구청장이 과장과 문화장터 팀을 불러 저녁을 사며 격려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다시 일이 커졌다고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