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이다. 아이에게 삶의 지평을 넓힐 기회가 주어졌다. 방학은 학교생활에 풀려나 다양한 일을 겪어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아이는 방학이면 학원 과외로 더 바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자그만 소읍인데도 하교 때면 학원 차량으로 혼잡하다. 보충수업을 하는 중․고등학생 못지않다. 학교 공부를 믿지 못한다는 듯이 여느 아이나 학원 가방을 멘다. 골목에 아이 목소리가 사라졌다.
아이는 잘 놀아야 잘 큰다. 그런데도 부모는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더 나은 직장을 얻고, 편하게 산다는 생각이 먼저다. 교육의 근본 목적이 바람직한 인간상 구현인데, 과열 교육에 몸서리쳤던 부모 세대조차 암울한 우리 교육의 병폐를 뜯어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번 방학에 우리 학교는 의례적인 방학 과제를 내지 않았다. 다만, 책 읽고, 동시 몇 편 감상하는 걸로 만족한다. 욕심 같아서는 캠프 활동에 참여하고, 여행하며, 친척 집을 방문하고, 문화유적을 답사했으면 한다[근데 코로나19에 발목 잡혀 이도 저도 안 된다]. 자연과 친화 교감하는 일만큼 아이의 심성을 도야하고, 바른 그릇이 되게 하는 깨우침은 또 없다. 그러나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마땅찮다.
방학 중 아이가 학원 과외로 감당해야 하는 공부는 새 학기를 준비하는 ‘선수-선행학습’이어서 문제다. 방학 동안 새 학기 학습을 준비하는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제 학습상황에서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움이 전체 학습을 그르친다. 그런 아이의 경우, 실제 학습에서 자칫 주의가 산만하거나 학습활동을 등한시한다.
어쨌거나 아이는 잘 놀아야 잘 크고, 생각도 많아진다. 애써 문제 하나 더 풀기보다 자유롭게 풀려나서 제 생각을 밝히는 힘을 기르는 게 낫다. 적어도 이번 방학만큼은 아이가 제 하고 싶은 일 실컷 하도록 배려했으면 좋겠다. 동화책을 가까이하고, 개별체험활동을 권장한다. 홈스테이, 자연 생태체험, 도시 농산어촌체험, 우리의 전통문화나 악기연주도 좋다.
아이의 올바른 성장의 바탕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칭찬과 격려, 이해와 배려가 가득한 사랑이다. 더불어 똑같이 대하기보다 다 다른 걸 찾는 힘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아이가 공부에만 묻어두어서는 안 된다. 아이 스스로 서는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 아이가 제 하고픈 대로 풀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방학만큼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당찬 소리가 컸으면 좋겠다.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낸 아이의 건강한 얼굴을 만나고 싶다. 다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가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하늘 가득 그려본다. 아이는 맨살을 내놓고 키워야 한다. 하여 방학, 의례적인 생활보다 다 다른 생각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방학을 맞은 아이의 바람은 하나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공부, 학원 과외에서 풀려났으면 한다. 하여 실컷 놀아보고, 잠도 푹 잤으면 좋겠단다. 컴퓨터도 자유롭게 만나고, 텔레비전, 만화책도 맘껏 보았으면 한다. 손전화기 만지작거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상황인데도 학원 과외가 바짝 목을 빼고 기다린단다. 그래서 방학 동안 무엇 하겠느냐며 물었더니 그만 기가 죽는다. 방학은 말 그대로 기분 좋게 풀려나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아이들 볼멘소리 따갑다. 한껏 방학을 기다렸던 아이의 기대와는 달리 방학 생활은 벌써 생각만 해도 힘겹다. 방학 동안 적게는 서너 군데, 많게는 예닐곱 군데의 학원에 다녀야 한다며 한껏 풀이 죽었다.
방학을 빼앗긴 아이를 살려낼 수 없을까.
아이가 ‘즐겁게 좋았던 때가 언제였나?’라고 물으면 야영 수련이나 견학, 현장 체험학습을 꼽는다. 그만큼 아이는 판에 박은 듯한 교과서, 꿈이 말라버린 학교 울타리가 지겹다. 적어도 아이는 방학 동안만이라도 평소 짓눌렸던 학원 과외의 족쇄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야 한다. 노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제 맘에 드는 일을 하며, 건강한 삶의 의미를 부추겨야 한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엇보다도 평소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일을 직접 체험하고, 탐구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힘겨운 일을 견뎌내며, 진취적인 의지를 체득하는 시간을 챙겨주어야 한다.
심성이 메마른 아이를 살려내는 데는 자연과 친화 교감하는 일이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무리 차가운 날씨라도 모래밭을 뒹굴어보고, 살진 흙을 밟아보는 농촌체험도 좋다. 소외된 사람과 더불어 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독서를 통하여 마음의 살을 찌우고, 등산이나 여행을 통해서 견문을 넓혔으면 좋겠다.
인내심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도 장차 아이의 성장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일이다. 체험학습을 통해서 여러모로 다양한 삶을 느껴보게 하고, 노동의 신성한 가치와 고마움을 맛보는 과제를 실제 삶 속에서 찾아보게 하면 좋겠다. 그게 방학을 통하여 아이가 스스로 줏대를 세워 자신을 찾아보는 소중한 선물이다.
한데 아이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려면 먼저 부모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내 아이가 남보다 뒤진다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데만 치우친다면 더 많은 걸 잃고 만다. 자식을 사랑할수록 스스로 생활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게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다. 자연을 통해서 배우는 삶은 아이의 평생을 안온하게 챙겨준다. 보다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아이의 심성을 살려내는 방학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뭇사람이 도시의 편리함 쫓아가는 이때, 나는 그러한 쏠림을 훌훌 털어버리고 시골에서 사는 요즘 행복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일 심각한 지금, 그 등살에 다소 비켜서서 한숨을 돌린다. 그 덕분인지 나는 아직 ‘네버 코비드 족’이다.
시골에서는 그 존재 의미를 따지지 않아도 자잘한 물상 하나하나 그대로 아름답다. 그래서 제각기 다 다른 향기를 지녔어도 정답게 어우러져 산다. 그 삶의 빛깔이 따스하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고약스러운 분뇨지만, 제법 시골살이 맛을 알면 농가 뜰 안에 쌓아둔 한 무더기 거름 냄새가 향긋하다. 그러나 시골 사는 맛은 무엇보다 생활의 여유고, 자연과 친화 교감하며 노니는 단출함이다.
아이도 그러하다. 매번 방학 때면 아이를 떠나보기가 섭섭했다. 하지만, 한껏 기가 살아서 방방 내달아가는 아이를 보면 흡족했다. 그동안 학교생활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더구나 코로나19로 뛰놀고 싶어도 맘껏 놀지 못하고, 교실 안에 붙잡혀서 책 읽으라는 소리가 귀에 못이 박혔을 테다. 아이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냅다 뛰놀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작 방학을 하고 나면 아이는 더 바쁘다. 바람 같은 아이가 제 하고픈 일로 자유롭게 풀려났으면 좋으련만, 정작 아이는 방학이 그리 달갑지 않다.
아무래도 좋다. 방학에 대해서 왈가불가하는 자체가 그 의미를 새롭게 북돋우는 기회다. 평소 아이가 모습을 지켜보면 말없이 그냥 노는 아이보다 무언가 하겠다고 왕왕대는 녀석이 훨씬 행동이 도드라지고, 창의적이다. 또래와 곧잘 어울리고 딴짓을 많이 하는 아이가 돋보인다. 대개 창의성이 강하고, 자율적인 심성을 가진 아이는 그저 가만히 머물지 못한다. 힘이 넘친다. 다리에 근육이 부어서 근질근질하다. 그런 아이는 방학이라고 집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 하고픈 일을 챙겨야 한다. 그게 바로 놀이다.
교육혁명을 일으킨 핀란드 사람은 추위에도 아이가 땀을 흠뻑 쏟을 만큼 놀게 한 후에 공부를 시작한다. 충분하게 놀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산만하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실상은 더 차분해지고, 창의적으로 공부한다. 아이는 잘 놀아야 삶의 에너지가 분출한다. 또한 아이는 자연과 가깝다. 그만큼 마음을 한곳에 두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어른[부모]의 잣대로 묶어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연 화딱지가 돋게 마련이다. 아이도 어른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몇몇 어머님의 말씀에 따르면 방학이라고 그냥 뒹구는 아이를 보면 속이 상한다고 한다. 부모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아이가 아이다워야지 어디 어른처럼, 아니 애늙은이처럼 제 할 일 꼬박꼬박 챙겨서 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융통성이라고는 손가락만큼도 없는 아이를 만나면 곤혹스럽다.
부모가 시키는 일 잘한다고 해서 아이가 방학을 잘 보내는 게 아니다. 다소 마음이 헤헤 풀어지고 느슨해진다고 해도, 조금은 게으름을 피우고, 딴전을 핀다고 해도 나는 그런 아이가 훨씬 발전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무렇게나 빈둥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제 속을 단단히 챙긴다. 그런데도 애써 닦달하며 학원 과외로 내몰고, 다그치며 학습지에다 예능 교습까지 맞물리고 나면 아이들 그 쪼그만 어깨 짓눌려서 견뎌내겠는가.
아이들, 공부를 조금 못해도 건강하게 자라는 게 최고다. 말은 빤하지만 그게 잘 용납이 안 된다. 당장에 내 아이만 빈둥빈둥 놀아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만큼 애착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란 걸 안다면 그저 얼굴 붉혀가며 닦달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든 자유롭게 풀려나서 하고픈 일에 흠뻑 빠지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게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최선의 방책이다.
일례로 유명한 대학을 나와 사람 구실 제대로 못 하는 얼치기가 얼마나 많은가. 달달 외우고, 점수 따는 귀재인 줄 모르나, 훈훈한 인간 정리가 완전 메말랐다. 인간성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판검사면 뭣하고, 떵떵거리는 관직을 차지하면 뭣하겠는가. 머릿속이 똥통이고, 만사 도루묵인데. 길든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제 앞가림을 못한다.
언제까지 부모가 아이의 길잡이가 되고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사람은 제 하고픈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자립심을 갖는다는 그 자체, 스스로 선다는 자긍심, 그것은 아이가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려났을 때 가능해진다. 아이를 바르게 자라게 하려면 성급하게 조이기보다 느긋하게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 조급하게 다그치기보다 참고 인내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게 부모의 참된 도리다.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그릇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아이는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발현한다.
그렇기에 이번 방학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하면서 아이의 자발성을 계발하는 여지를 넓히고,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제 하고픈 일 맘껏 하게.

◇박종국 교감 : ▷동포초등학교 교감,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 수필가 ▷한국작가회의, 경남민예총, 경부울문화연대 회원 ▷[펴낸책] 교육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은 아름답다』(2002, 도서출판 두엄), 『하심』(에세이출판사), 『감성지휘자, 우리 선생님』(2016,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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