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68)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②
대하소설 「신불산」(368)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1.23 19:02
  • 업데이트 2023.01.23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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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②

우리 부산에서도 서울의 인사동과 유사한 고풍스런 고미술품시장이 열렸다는 것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는 기사가 지방지와 TV의 내 고향소식에 대서특필되고 자신의 사진과 인터뷰가 자주 등장하자 기분이 한껏 고무된 구청장이 과장과 문화장터 팀을 불러 저녁을 사며 격려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다시 일이 커졌다고 했다.

앞으로 문화장터에 나오는 상인들을 조합으로 구성해 필요한 지원을 하면서 개설의 동기에 맞게 행정지시를 잘 따르게 하고 가능하면 문화장터 맞은 편 동대신동 2가의 소방도로 골목에 부산일대의 고미술품상들을 유치해 고미술품상가를 조성하라는 엄청난 추가사업을 떠안긴 것이었다.

그렇게 문화장터가 널리 알려지자 이번에는 보수동에서 헌책방을 하는 어느 노인의 딸인 역시 B대학 출신의 사향아라는 노처녀가 자기 집의 고서적을 문화장터에 내다파는 것은 물론 기왕 벌여놓은 사업을 조금 확장해 미니 박물관, 하다 못 해 작은 고미술품 전시실을 개설하면 상당한 고서를 기증하겠다며 접근해 자주 식사를 하며 기어이 몇 점의 고서를 사게 만들었다.

이어 대구에 사는 오육삼이라는 전직교사가 자신의 개인수집소에 해방이후 초중고 전 과정의 교과서와 교복, 가방과 필기구, 도시락에 이르도록 수많은 수집품이 있어 교육박물관을 개설하면 좋겠는데 서구에서 전국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채택하면 좋겠다고 방문해 단번에 십년지기처럼 친해져 서로가 대구와 부산을 방문하며 술과 밥과 차를 마시며 의기투합해 이번에는 문화팀과 구청간부들에게 대구의 수집소를 방문하기를 조르고 교육박물관건립부지를 물색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부산서구청장이 고미술품을 비롯한 문화예술전반에 관심이 많아 각종 예술품을 대량 구입하여 장차 서구를 전국적인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면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구청장실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로 다음선거에서 표로 직결되는 관내에 거주하는 늙은 서예가나 시인, 화가들의 글씨나 시화, 동양화나 서양화를 사서 구청장실과 사무실, 회의실이나 식당에 거는 일이 잦아졌다. 많으면 몇 백 만원 적으면 5,60만 원 정도의 비용을 구청장의 업무추진비에서 내느냐, 기획삼사실 예산계에서 별도의 예산을 추진하느냐, 아니면 외상으로 구입하고 나중에 추경에 반영하느냐, 그것저것도 아니면 담당부서인 문화관광과에서 알아서 하느냐로 매일 부서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몇 십 만 원 사소한 일은 문화과장이나 담당이 울며 겨자 먹기로 덤터기를 쓰기가 예사였다고 했다.

또 요즘은 고서점 딸 사향아의 동급생인 역시 B대학 미술과를 나온 구팔칠이란 젊은 서양화가도 출입하며 두 미술학도와 구청장이 같이 저녁을 먹고 찻집이나 주점에서 어울리기도 한다고 했다.

거기다 요즘은 역대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의 포스터 전체 수십 장과 한국의 오래 된 포스터 수백 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백천만이란 사람도 드나들며 서구청에서 전시회를 열어줄 것을 종용하고 있기도 하고 지점토공예를 하는 하춘혜라는 중년공예가와 조소(彫塑), 그러니까 조각입시학원을 경영하는 역시 B대출신의 김달희라는 노처녀도 자주 접촉을 하고 그럴 때마다 적잖은 구입비가 들어간다고 했다.

아무튼 다시는 그런 덜컥 수를 두지 않기로 단단히 다짐한 열찬씨가 이미 면전에서 약속한 일이니까 아니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다음 월요일 간부회의에서 <서구노래> 제창의 건은 지시할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차라리 미리 대체적인 추진계획과 일정을 작성하여 주간업무보고 때에 선수를 치는 방향으로 나가기로 하고 열찬씨가 문화계직원 다섯을 대동 그날 저녁을 사기로 했다.

 

다음 월요일 간부회의에서 미리 담당과장이 사업의 개요와 추진일정을 보고하자 기분이 한껏 고조된 김형호 구청장은 앞으로 이 <서구의 노래>사업을 구정의 주요항목으로 삼고 담당 총무국장을 비롯한 전 간부공무원들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고 빈틈없이 추진하라는 특별지시를 했다.

그렇게 한껏 기분이 고조된 구청장과 달리 총무국장은 국장실에 과장들을 모아서 하는 회의석상에서 아무리 좋은 사업이지만 국장도 모르게 보고를 하면 어쩌나 볼멘소리를 내었다.

오후의 석간신문에 기사가 보도되자 부구청장이 과장, 계장, 담당자를 불러 총무국장까지 배석시킨 자리에서

“이열찬 시인과장, 아니 부산시공무원문인회장께서는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기사를 내는 기술도 참 좋습니다. 그 까다롭고 콧대 높고 비판정신, 아니 비비꼬기에 이골 난 기자들로부터 구정의 홍보나 띄워주기 기사를 한번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아니 그보다도 구정실패의 부정적인 비판이나 단체장이나 간부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막는 일만 해도 급급한 판에 말입니다.

자, 기왕에 이렇게 된 일, 총무국장께서도 마음을 푸시고 우리 문화업무라인끼리 똘똘 뭉쳐 차질 없이 사업을 추진해 구청장님의 재선의 입지를 강화합시다. 내 언제 총무계장과 일정을 잡아서 문화관광과직원들과 저녁 겸 단합대회나 한 번 하기로 하지.”

하고 분위기를 다독거렸다.

그렇게 해서 <서구의 노래>사업의 첫 단계가 되는 노랫말 공모계획을 세우고 한 때 송도에 살며 <벽속의 여자>라는 우수에 흠뻑 젖은 연작시를 남기고 다대포로 이사 간 코스모스처럼 가녀린 <사랑법>의 시인 강은교 교수를 어렵게 심사위원으로 승낙 받았다.

케이블방송과 서구소식지에 모집광고를 내고 가사수집과 가수섭외, 레코드취입에 소요되는 예산 2천만 원을 추경으로 확보하기로 하자 몇 명의 구의원들이 열찬씨에게 전화를 걸어

“가과장님! 우리 서구청이 무슨 딴따라패도 아니고 구민들 생활불편을 해소할 하수구나 도로포장을 추진하고 방역 소독할 약품도 모자라는 판에 그래 기껏 대중가요를 제정한다면서 수천만 원의 예산을 쓰겠다고요?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사업을 접으세요. 누가 뭐래도 내가 있는 한은 예산통과가 힘들 것입니다. 아니지,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가 이야기지요.”

미리 제지를 하는 바람에 우선 그간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남부민1동의 서수양 의원을 찾아갔는데

“아이고! 우리 천하무적 돌격대장 이열찬 동장님, 아니 이제 문화관광과장님이 날 다 찾아오다니요? 아무튼 지나간 일은 다 잊고 서로 협조합시다. 그래도 맥주병 던지며 쌓아온 우리의 미운 정, 고운 정이 어데 가겠습니까?”

하며 손을 내밀었다.

도회수 의원과 리턴매치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후 서구청으로 돌아온 열찬씨를 아무 타박도 않고 맞아준 것으로 보아 성격은 우직해도 잔정도 없지 않아 역시 덩치 크고 사람 좋은 경상도 사내임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 서수양 의원의 협조를 받아 열네 명의 구의원 중 절반 이상의 찬성을 얻기 위해 같은 울주군인 삼동면 출신인 신명렬 구의장을 비롯하여 평소에 너그럽고 긍정적인 구의원 8명 정도를 확보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담당 상임위원회의 총무위원회의 두 의원, 동업으로 노래주점을 운영하는 초장동의 이모의원과 예비군중대장 출신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못 해 지나치게 깐깐하다고 소문난 동대신1동의 또 다른 이모의원을 설득하는 일이 문제였다.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논리로 설득할까 실무진과 고민을 거듭하는 와중에 어느 날 오후 또 구청장실로 문화관광과장이 급히 들어오라는 비서실의 전화가 왔다.

“과장님...”

고명석 문화계장이 차마 ‘단디 하이소.’ 말끝을 맺지 못 했고 정병진 주무의 눈빛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근래에 돈이 들어가는 일을 시키면 고 계장과 정 주임은 아예 두 눈을 내려 깔고 죽여줍시사 침묵으로 일관하는 판이라 눈치 빠른 구청장이 아직 신임과장인 열찬씨를 주로 부르는 것을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국악을 전문하는 음대교수였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서구에서 원초적인 생명력과 현실적인 일상생활, 먹고살기와 종교적인 갈등과 자신이 존재에 대한 탐구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연극을 공연하자는 것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으로 부터 전혀 관심도 없던 분야의 제의를 받은 구청장이 그래도 연극에 문외한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은지 좋은 말씀이라며 열찬씨를 이윽히 바라보는지라

“연극이라, 연극! 그게 좀체 쉽지 않은 일인데 공연장도 그렇고 연극배우와 스텝에 들어가는 비용도 그렇고 또 어렵게 공연을 유치해도 관객이 없거나 관객의 수준도 그렇고...”

완곡하게 반대의사를 표했지만 방문자는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공연장은 동아대학교 석당홀을 제가 아는 사람을 통해 무료로 임대하면 되고 출연배우 대부분이 대학교의 동아리에 속한 사람들이라 개별적인 출연료가 아닌 문화사업 후원차원에서 당일 식비와 경비를 포함해 한 몇 백만 후원해주시면 포스터부착과 연극무대의 소품에 이르기까지 저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겠습니다.”

하고 조르는 바람에

“허어, 참! 그래 시인이자 예술가인 가과장님의 생각은 어떻소?”

구청장의 질문에 문득 민선1기 선거직전 남부민1동사무소로 찾아와 <황소>라는 식당에서 출마여부를 물어보던 간절한 눈빛이 생각나

“뭐, 그렇다면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지요. 아직 자치구 단위에서는 어디에서도 시도해보지 않던 연극부문을 말입니다.”

그렇게 피치 못 해 승낙하고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실무진을 달래느라고 2차까지 술을 산 사업이었지만 공연 날이 턱밑에 다가와도 도무지 구민들의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