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6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③
대하소설 「신불산」(36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1.24 07:25
  • 업데이트 2023.01.23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③

그렇게 피치 못 해 승낙하고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실무진을 달래느라고 2차까지 술을 산 사업이었지만 공연 날이 턱밑에 다가와도 도무지 구민들의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연극표를 사겠다는 사람은커녕 동장을 통해 무료로 나누어주는 표도 단체원들이 서로 사양하는 판이었다.

그 넓은 <석당홀>을 메울 걱정에 하는 수 없이 각동장이 10명씩의 동민을 인솔하고 구청의 각 실과에서도 과장을 포함해 5명 이상, 구 단위 각종 단체의 단체장과 구의원등 그럭저럭 300명 정도의 관객을 거의 강제동원으로 자리를 채우고 간단한 구청장의 인사와 함께 연극의 막이 올랐다.

대학의 철학과에 다니던 한 젊은이가 가식과 위선에 가득 찬 도시생활과 학문에 회의를 느끼고 깊은 고뇌에 빠져 인생의 의미, 참 된 삶의 길을 모색하다 마침내 일말의 가식도 없는 원초적 차원의 맑고 깨끗하고 푸르른 숲속 사찰에서 온종일 사색과 명상에 빠져 우주의 시원과 인간의 존재, 내부의 갈등을 용맹정진의 수도로 영원한 구도의 길을 탐색하는 승려가 되기로 작정하고 삭발, 입산하였으나 아무리 염불을 하고 경전을 읽고 면벽수도를 하여도 좀체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득도성불이나 해탈은커녕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사찰의 일상과 구조, 매순간 가슴을 에는 끝없는 회의와 갈등과 허무를 벗어나지 못 해 마침내 환속하여 젊은 여인과 애욕에 휩싸이다 다시 존재의 허무를 느끼고 입산과 환속을 반복한다는 아기자기한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줄거리였다.

전개와 너무나 현학적이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긴 독백에 질려 오랜만의 순수예술이나 문화적인 향기보다는 졸음과 하품에 빠진 관객들이 한둘씩 시나브로 빠져나가 어느 듯 홀이 버짐 걸린 시골아이의 머리처럼 드문드문 이가 빠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어느 새 상체가 왔다갔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던 구청장이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보더니 벌써 내빈인 구의회의장과 경찰서장, 교육구청장, 세무서장들이 다들 빠져나간 것을 보고 수행자로 옆자리에 앉은 열찬씨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내 가도 되겠나? 간밤에 과음을 해서...”

씩 웃더니

“마무리 잘 하고 오게. 내 과장만 믿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다시 대신공원 진달래꽃, 벚꽃이 만개하면서 그 해도 봄은 반 고흐의 유화처럼 어질어질 현란하게 번져나가 구봉산, 엄광산기슭을 가득 채우더니 마침내 구덕령의 꽃마을을 지나 구덕산 기상관측대 송신탑을 넘어 시약산과 승학산으로 이어지며 분홍에서 연분홍으로 다시 하얀 눈빛, 아니 눈물 빛으로 탈색해 바람에 나리면서 남도의 봄이 서럽도록 찬란하게 저물어갔다.

초봄에는 동아대병원의 환자나 대학생, 대신동의 주민들이 학교 뒤 작은 저수지와 여기저기 흩어진 약수터를 느긋이 산책하는 틈에 끼어 구덕민속예술관에 들러 <구덕망께터다지기노래>의 전수자로 인간문화재인 김한순 명인을 만나 한 해 한 번 있는 발표회를 준비하는 여러 연구생들의 동당거리는 장고소리를 한참이나 듣다 내려오기도 했지만 사무실에만 들어오면 마치 시인 문화관광과장이 부임하기를 오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날마다 한 두 명의 방문객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자신은 민선시대의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할 지식과 예술성과 열정과 향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대단한 사람으로 자부하지만 실무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소 문화예술에 관심조차 없었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이 된 지금에는 상당한 관심과 조예가 있는 것처럼 이런 저런 문화행사나 전시장, 공연장, 조각품이나 시비(詩碑)설치 같은 가시적인 사업을 벌이고 싶은 구청장을 설득해 몇 점의 작품을 팔거나 별 알맹이도 없는 행사나 사업을 벌여 약간의 이득을 챙기려는 마치 청부업자처럼 보일뿐이었다.

실무진에서는 예, 예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사정으로 어떻게든 또 돈을 짜내는 일이 없도록 잔뜩 움츠리지만 그들은 악착같이 자신이 시인이면서 문화예술을 맡은 이열찬 과장을 기어이 만나고 간다며 죽치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방문객이 서화나 서책, 조각이나 소장품 같은 자신의 물품을 구입하라고 조르거나 엄청난 돈이 드는 사업프로젝트를 제시할까봐 열찬씨는 방문객과 대화 도중에 수시로 문화계장이나 담당 정병진씨 쪽을 흘낏거리면 자신들도 과장실 응접세트에서 방금 또 얼마나 돈이 드는 작품을 구매하고 엄청나게 힘든 사업에 말려들게 될까 조마조마해 귀를 쫑긋 세운 그들과 쉽사리 눈빛을 교환하며 손님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눈빛교환으로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없는 끈질기다 못 해 지끈지끈 머리가 터질 듯 골치 아픈 방문객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신공원의 숲에서 토, 일요일 주말마다 시회(詩會)를 연다는 구덕시우회의 회장이라는 명함을 들고 온 안모 노인이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 힘든 운율을 맞추는 한시(漢詩)를 쓰는 사람들이 다 있냐는 열찬시의 말에

“아니, 당신은 명색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과장으로서, 또 시인으로 신문에도 여러 번 난 사람이 그래 관할에 주말마다 시회를 여는 동우회가 있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요? 또 명색 시인이면서 당시(唐詩), 아니 당음(唐音)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았단 말이요?”

삿대질을 하며 마지막으로 꺼낸 용건은 역시 돈 문제였다.

마침 관활 서구에 누구보다도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김모구청장과 시인 문화과장이 있는 이 시점에 동우회가 생긴 지 수십 년간 써온 한시들을 모아 동인문집을 낸다는 것이었다. 열찬씨더러 한 4,5백이면 그런대로 구색은 갖춘다며 적어도 올 가을까지는 책을 모아야하니 어찌 하든 이번 추경(追更)때 자신들의 지원금을 책정하거나 아니면 구청장의 판공비나 예비비로서 꼭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열찬씨가 서구같이 예산사정이 좋지 않은 구청에서 정상적인 문화사업비로서 그렇게 지원해줄 돈도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구청장의 판공비로, 그것도 아니면 예비비에서라도 지원해달라고 했다.

구청장의 판공비, 즉 업무추진비는 원래 시청을 비롯한 관련기관의 업무적 연관을 가진 사람을 접대하거나 관할구민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여론을 듣거나 극히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1,2십만 원을 들여 우선 급한 고비를 넘기거나 길흉사에 부조를 하는 정도지 어떤 특정사업에 수백 만 원씩 지원하는 것도 아니며 더더욱 예비비란 태풍이나 해일 같은 풍수해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예산이라 한가롭게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시회에 지원할 성격이 아니라고 잘랐다.

그러나 이미 추경이라는 예산체계와 언제 추경을 의회에 올린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는 전직 경찰관 출신의 안모 회장은 열찬씨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금테안경을 고쳐 쓰면서

“아니, 음풍농월이라니? 이봐요, 가과장 당신은 명색 시인이고 사무관과장이면서 전쟁과 흉년, 혁명과 혼란의 그 어려운 난세를 헤쳐 나온 우리 노인세대, 즉 지금의 풍요한 시대가 오도록 온몸을 바쳐 일해 온 세대가 비로소 한가한 노후를 맞아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미래세대의 가치관과 인성을 개발하고 호연지기의 시상을 불어넣을 귀감이 될 절구를 짜내느라 절차탁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율을 맞춘 주옥같은 시를 감히 음풍농월로 몰아붙이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감히 시인이라고 할 수 있소?”

버럭 역정을 내더니

“내 이런 앞뒤가 꽉 막힌 철 밥통 공무원을 시인이라고 찾아온 것이 미친 짓이지, 저런 사람을 문화과장으로 앉힌 구청장도 바보고. 에이, 빌어먹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걸 간신히 만류해서 곰탕 한 그릇을 대접하면서 예술단체를 비롯한 민간에 대한 지원은 연말에 익년도 예산을 책정할 때 일괄 신청하여 심의를 거쳐 지원하느니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지원을 받으려면 우선 시회라는 민간단체의 회원명부, 정관, 사무실을 비롯한 실체를 갖추고 그에 합당한 사업계획을 제출하여야 된다는 이야기로 우선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시우회의 노인회장정도는 약과, 엄청나게 압박을 주는 방문객이 있었으니 부산 어느 사립대학교의 조소과 주임교수 조경만 교수였다.

전국 최고의 권위와 명성을 가진 S대 미대의 조소과를 나온 엘리트에다 전국미전에 입선한 경험을 가진 그는 전국적인 중견조각가로서 부산바닥에선 조각계를 좌지우지하는 몇 명 안 되는 대가로 꼽히며 조각이 개입된 각종행사에 개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예술인이라는 선입관처럼 가녀린 체격에 창백한 피부와 번쩍이는 눈빛과 잘 어울리는 베레모를 쓴 조각가라기보다는 마치 방금 시골 5일 장터에서 소라도 팔고 온 사람처럼 어깨가 딱 벌어지고 거무튀튀한 얼굴의 그는 대단한 권위를 가진 자신의 말 한마디면 무엇이라도 금방 이루어지고야 말 것처럼 황소처럼, 아니 부산말로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이미 구청장실에 들러 상당한 공감을 얻었지만 청장의 행사일정이 바빠 담당과장과 실무협의를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구청장의 허락이 떨어진 만큼 당장 착수해야 된다는 사업은 엄청나게 범위가 크면서 그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 한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로는 지금 문화관광부에서 조각문화의 대중화를 위해서 광역자치단체별로 한 곳씩의 조각공원을 조성하는데 부산에서는 구청장의 예술적 소양이 가장 높으면서도 조각공원을 설치하기에 가장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 즉 암남공원을 가진 서구가 최적임지라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해진 열찬씨가 흘낏 문화계장을 쳐다보자 아까부터 조경만 교수의 명함을 골똘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계장이 찡끗 눈짓을 보내며 문밖으로 나섰다. 화장실이나 흡연실로 따라 나오라는 눈치 같았다.

“과장님, 안 됩니다. 이건 <서구의 노래>하고는 비교도 안 디는 엄청난 사업, 만약 사업이 책정되면 수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고 국비예산을 따려고 날마다 서울에 살아야 될 난공사, 절대로 안 되는 대형사곱니다.”

하면서 근래 대형건축물에 조각품 1% 의무설치가 시행되면서 권위 있는 몇 명의 조각가들이 일거에 돈방석에 앉았고 이미 돈맛을 들인 조각과 교수들이 관공서나 지자체를 출입하며 엄청난 일들을 벌여 돈만 챙기고 빠져도 그들의 유명세나 권위에 대항하지도, 차마 당했다는 티를 내지도 못 해 전전긍긍 속만 태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제물에 지친 교수가 굳이 송도가 아니라도 부산의 바닷가는 다 천혜의 절경이니 다른 자치구를 찾아가기를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이제 무료해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며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다 전화로 시간을 끌고 직원들의 결재서류를 유난히 까다롭게 검토하며 딴청을 부리는데 조경만 교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방금 배달된 석간신문을 보면서 그저 느긋하기만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