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70)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④
대하소설 「신불산」(370)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9장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1.25 07:35
  • 업데이트 2023.01.25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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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④

이제 무료해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며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다 전화로 시간을 끌고 직원들의 결재서류를 유난히 까다롭게 검토하며 딴청을 부리는데 조경만 교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방금 배달된 석간신문을 보면서 그저 느긋하기만 했다.

오후 다섯 시. 이제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 저 어른이 아직도 집에 갈 생각을 않으니 도대체 무슨 심산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차는데 비서실로 전화가 왔다. 외근에서 돌아온 구청장이 교수님을 모시고 과장, 계장은 물론 담당자까지 대동하고 청장실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아이구, 교수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죄송합니다.”

인사 한 마디를 던지고 김모구청장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조각공원의 필요성이나 우리 구에 미칠 긍정적 영향, 즉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전통주택가 서구에 예술의 향취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교수님에게 잘 들었을 것이고.”

조각공원유치가 얼마나 어렵고, 어마어마한 예산이 수반된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입을 달싹이는 고명석 문화계장의 속으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조각공원유치 자체를 단번에 기정사실로 만들어보이고는

“이제 교수님의 조언을 받아 암남공원에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입지선정의 절차나 전국유명 조각공원을 벤치마킹하는 일만 남았구먼. 내일이라도 당장 과장과 계장, 또는 셋이 몽땅이라도 출장명령을 내어 적어도 서너 곳은 돌아보고 오게.”

단숨에 결론을 내렸다.

고개를 푹 숙여 수첩에 무얼 끄적거리며 죽을상을 한 문화계장을 바라보는 열찬씨의 뇌리에 언뜻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자신이 기획계장을 하던 시절 일본이라면 유독 적대감이 강해, 집안에 순국을 하거나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라도 있는 것처럼 매월 정례조례 때마다 자신이 작성해준 계절의 변화, 국내외 정세, 당면업무, 직원단합과 사기앙양 등의 조례말씀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분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독설을 한 두 마디 기어이 끼어 넣던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구청장은 송도해수욕장이나 충무동의 시가지가 일제에 의해 개발된 사실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다 못 해 마루타로 악명이 높은 만주의 731부대처럼 일제가 동물검역을 핑계로 생체실험을 했을지도 모르는 혈청소, 즉 해방 이후의 명칭 동물검역소가 송도해수욕장에서 두송반도로 이어지는 장군산기슭의 천하절경에 자리 잡아 그 일부는 동물검역소로, 나머지는 향토사단의 예비군훈련장으로 쓰여 관광사업을 비롯한 지역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심히 안타깝게 생각하던 일이었다.

당시 김형호 구청장은 동물검역소와 예비군대대를 철거하고 암남공원과 장군산 일대를 구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여론을 조성하려고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하고 농수산부와 국방부의 관련기관을 수차례 방문하고 지역국회의원을 통한 압박을 가해 마침내 해안초소가 즐비한 장군반도 일부를 양도받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그러나 암남공원의 개장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의욕적인 출발과 달리 정작공원의 개장은 초대 민선구청장선거 이후에 보게 되어 엉뚱하게 전직구청장 변모청장이 시민들과 언론의 주목 아래 성대한 개장식을 치르고 일개 야인에 불과한 자신은 참석조차 못 한 아픔이 있었는데 이제 그 공원을 자신의 손으로 전국에 뜨르르하게 이름이 알려질 조각공원으로 확장한다는 데에 가슴이 부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구청장님이십니다. 타구청장이 추종을 불허할 예술적 소양을 갖춘 것만 해도 대단하신데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 또한 대단하십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기고만장의 구청장과 죽을상이 된 세 실무공무원의 뭔가 아귀가 맞지 않은 분위기를 깨고 천만갑 교수가 구청장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키더니

“조각공원의 입지조성이나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청장님의 행정력과 예술가인 담당과장의 열정으로 충분히 밀고나갈 것으로 보이고 단 하나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해서 국내외 유명조각가의 작품을 유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반인들이 봐서는 단순한 돌덩이나 녹슨 고철덩이에 불과한 조각품이 보통 수천만 원, 심지어 몇 억을 호가하니 자치구예산으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을 해결하는데 제가 구청장님에게 일조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네 분에게 드린 명함에서 일 수 있듯 제가 현재 세계적인 조각축제인 부산국제비엔날레의 실무책임자로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선 비엔날레라는 낯선 단어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열정적으로 설파하던 천 교수가 목이 타는지 이야기에 열중해 외면했던 식어가던 커피를 꿀꺽 들이켜고는 다시 설명에 들어가는데

“비엔날레는 올림픽이 4년에 한 번 개최되는 국제적인대축제인 것처럼 2년에 한번 씩 열리는 국제행사를 말하지요. 비록 올림픽뿐 아니라 국제 합창올림픽이라고 4년에 한번 열리는 행사도 있어 알고 보면 올림픽은 자체로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이처럼 2년에 한번 씩 열리는 행사를 비엔날레, 3년에 한번 씩 열리는 행사를 트리엔날레라 하고 매년 열리거나 부정기적으로 열리면 그냥 대회라고 하지요.

그래서 제가 맡고 있는 국제비엔날레에 출품되는 작품 중에는 세계적인 대가의 작품들이 많지요. 문제는 행사가 끝난 뒤의 그 대단한 작품의 처리인데 이를 그냥 시립미술관의 마당 또는 시청사의 화단에 설치하기에는 그 예술적가치가 매몰되고 시민들의 관심을 받기에도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암남공원같은 천하의 절경에 조각공원을 설치해 개별 조각품의 예술적 가치도 드높이고 시민들의 관심이나 접근성도 높이는 것입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장이신 구청장님과 서구의 성가(聲價)도 높이고요.”

“좋습니다. 조각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천만갑 교수님만 믿겠습니다.”

애로사항을 늘어놓을 것이 빤한 실무진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어이, 비서실장 차 대기시켜. 오늘 같은 날 내가 저녁을 성대하게 사야지. 자, 교수님 나가십시다.”

구청장과 천 교수는 1호차로 불리는 구청장승용차로, 열찬씨 일행은 3호차로 불리는 국장용 승용차로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옹기종기 크고 작은 선박들이 머리를 맞대고 잠을 청하는 묘박(錨泊)지와 오도카니 석양에 물들어가는 동섬, 그리고 그 옆의 문제의 암남공원의 절경을 바라보며 그들이 생선회를 안주로 권커니 잣거니 먹고 마시는데 비서실장이 관할 국회의원의 전화가 왔다고 휴대전화를 귀에 대어주자

“예, 위원장님, 저 구청장입니다.”

공손하기보다 황송한 느낌으로 통화를 끝낸 구청장이

“교수님, 이거 죄송해서 어쩔까요? 마침 지역구 국회의원이 개인적인 일로 내려왔다가 잠깐 만나자고 하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저는 다음에 한번 코가 비뚤어지게 모시기로 하고 우리 이 과장님에게 접대를 부탁하겠습니다. 자, 그럼 갑니다. 이 과장, 교수님 잘 모시게!”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갔다. 비로소 화색이 돌아온 문화과장과 정병진씨도 편안하게 회를 집고 술을 마시며 천만갑 교수에게 조각공원의 어려움을 토로하려고 입을 떼는데

“거, 실무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우리끼리 하십시다. 오늘은 서구청장님이 암남조각공원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발의한 날로만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천만갑 교수가 말을 자르며 열찬씨를 시작으로 차례로 술잔을 돌렸다. 식사를 끝내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과장님, 청장님 지시로 노래방에 입가심준비를 시켜놨습니다. 기분 상하지 않게 잘 모시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청장님을 모시러가고 이쪽 계산은 정주사에게 카드를 맡겼으니 마무리할 겁니다. 수고하십시오.”

비서실장이 떠나고 남은 넷은 국장차로 노래방으로 향했다. 미리 세팅된 양주한 병과 맥주 다섯 병이 거의 빌 때쯤 노래가사를 찾아줄 도우미 한 명이 도착하자

“자, 이렇게 맨숭맨숭하게 술만 마실 것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좀 추어봅시다. 자, 과장님 노래하시죠.”

도우미의 손을 주무르며 천교수가 일어났다. 돌아가며 노래 한 곡씩을 해도 신명이 안 나는 셋이 테이블로 돌아와 찔끔거리며 남은 술을 마시는데 도우미아가씨를 독차지하고 한창 블루스를 추던 천만갑교수가 흥이 절정에 달했는지

“내가 나이 든 교수라고 어데 요즘 노래를 못 할 줄 아나? 자, 이번에는 설운도의 상하이트위스트로 돌려주세요!”

커다랗게 소리치더니 육중한 거구로 신통하게도 트위스트를 추며 열찬씨도 나오라고 손짓을 하자 아가씨도 흉내를 내었다.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온 동네를 주름잡았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잊지 못 할 상하이 트위스트

마치 심심산골의 머슴처럼 얼굴이 시꺼먼 장한이 춤과 노래를 반복하며 도우미를 밀었다 당기다 떼었다 품에 안기를 반복하다 슬쩍슬쩍 가슴을 더듬기도 사양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무료하게 바라보던 셋은 마침내 자리가 파해 천만갑 교수를 승용차에 태워 떠나보낸 후에 비로소 한숨을 쉬며 가까운 포장마차를 찾아갔다.

 

반 고흐의 유화처럼 어지럽게 번지던 대신공원 산기슭의 벚꽃과 진달래의 꽃무리들이 어느새 조금씩 퇴색해 아담한 구덕수원지의 수면에 흩날리더니 서대신동 구청별관 2층 문화관광과의 좁은 발코니에서 바라보면 이제 그 화려한 번쩍거림과 어지러운 번짐이 사라진 파스텔화처럼 다가오면 사람의 마음을 애련하게 만들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