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②
차를 마시고 일단 작품을 둘러보는데 재료만 다르지 분위기는 대체로 김영희의 닥종이공예와 비슷했다. 앞장서서 안내하던 천만혜씨가 유독 뜸을 들여 오래 설명하는 작품은 저녁 짓는 연기가 솟아나는 초가집마당에 딱지치기와 굴렁쇠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이를 쳐다보는 어미 개와 강아지 몇 마리가 있는 대작이었는데
“이 정도 작품이면 가격이 얼마나 하지요?”
“한 삼백. 말씀만 잘 하면 그저도 드리지요.”
순간 정병진씨의 당황한 눈빛이 열찬씨를 향하는데
“대 서구청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사야지요.”
사향아씨가 거들더니
“오늘 같이 좋은 날, 차 한 잔으로 때울 수야 있나요? 적어도 동동주 한두 잔은 해야 지요?”
전시장을 돌아 나오며 구팔칠씨가 마당 건너 아래채로 안내하는데 아마도 방문객에게 간단한 음식을 파는 모양으로 커피와 국산차, 파전과 동동주 등의 메뉴표가 붙어있었다.
“이직 일과 중인데 간단히 파전에 동동주나 한 잔 하지요.”
열찬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향아씨가 벌써 술잔과 밑반찬을 들고 와 세팅을 하더니 금방 파전과 동동주가 나왔다. 넷이 잔을 주고받으며 두 주전자를 비우고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던 열찬씨가 건너편 벽을 보더니
“아니, 이건?”
눈이 똥그래지더니
“어째서 내 시, 아니 시화(詩畵)가 여기 와 있지?”
<비오는 날>이라는 짧은 시가 화폭 가득 휘늘어진 버드나무가지 아래로 쓰여 진 걸 뚫어질 듯 바라보는데
“선배님, 제가 바로 <글 가열찬> 이라는 선배님 이름 밑에 쓰여 진 <그림 구팔칠> 아닙니까? 시인협회시화전 때 제가 그림을 그렸는데 전시회가 끝나고 선배님이 찾아가지 않아 여기로 가져와 거니 아주 운치가 있다고들 합니다.”
“아, 그랬구나?”
“예, 선배님 원하시면 나중에 사무실로 돌려 드릴 게요.”
“아니 그러지 말고 오늘 같은 날 한번 낭송을 해보지요?”
좌중을 훑어보던 사향아씨가
비오는 날
가열찬
비 그치자 일제히
풀잎사이 나비들 얼굴을 닦고
안개 속에 낮게 나는 제비 날개 끝
그리움이 이슬처럼 투명해지는
저 들 끝 바라보며 한 나절쯤
당신을 기다리며 서도 좋겠다.
달맞이꽃 발돋움한 긴 못 둑을
나 혼자 걸어갔다 와도 좋겠다.
부지런히 낭송을 하고 민망해진 열찬씨가 고개를 돌리는데 낭송이 끝나자 말자 천만혜씨과 구팔칠씨가 박수를 짝짝 치자 정병진씨도 화들짝 놀라 박수에 동참했다.
그렇게 대충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과장님, 아까 그 대작은 절대로 관심을 보이면 안 됩니다. 제가 마침한 소품, 물레질하는 여인을 보아놨는데 아마 백만 원 안쪽일 것입니다.”
“그리 하세.”
“그렇지만 청장님이 용납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퇴근시간이 넘은 여섯 시 반,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과장님, 출발하실까요?”
문화계장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정봉석씨가 당장이라도 출발할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걸
“이 사람아, 뭐 김일성이가 쳐들어오나?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나? 숨이라도 좀 돌리세.”
도로 자리에 앉히고 어디로, 무슨 선물이나 준비를 해서 만나면 좋으냐고 묻자 이기율 의원님은 성격이 소탈하면서도 깔끔한 외골수여서 접대를 받기위해 술집이나 식당, 다방에 나오는 성격도 아니고 양주 같은 선물도 절대로 안 받는 성격이라 잘못 하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차라리 열찬씨와 자신의 둘만이 조용히 자택으로 찾아가 무릎을 꿇되 선물은 간단히 사과나 몇 알 사 들고 가자는 것이었다.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지 무슨 힐책을 들을지 가슴이 콩닥거리는 열찬씨가 잠자코 정봉석씨를 따라 동대신동의 언덕길로 올라서는데
“잠깐, 여기서 과일이나 몇 알 사지요.”
정봉석씨가 과일가게주인과 정이 뚝뚝 흐르게 인사를 주고 받더니 조그만 박스에 사과, 배, 바나나, 딸기 등을 구색을 갖추어 담기 시작했다. 다시 골목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
“형님, 아니 과장님은 여기 잠깐 기다리십시오. 제가 집에 있는가도 보아야 되지만 잘못하면 문전박대를 당할 우려도 있지요.”
과일박스를 메고 혼자 어느 집 초인종을 누르더니 한참 만에 잔뜩 긴장한 열찬씨에게
“형님!”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나타났다. 아직 과일상자를 그냥 둘러맨 것을 보고 아무래도 일이 잘못 됐나싶어 가슴이 철렁해 되묻자
“와? 안계시더나?”
“그 기 아이고 일단 해결은 되었심더.”
안심을 시키면서 들려준 이야기로 이기율 의원이
“내 근 이십년을 호형호제한 자네의 낯을 봐서도 그렇지만 담당 가열찬 과장도 나름 젊은 사무관으로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이 산꼭대기까지 찾아오는 것이 빤 한지라 일단 그 찾아오는 성의를 보아 그 사정을 들어주기로 하니 그리 알고 돌아가라.”
하면서 단 자신이 소신으로서 결코 <서구의 노래> 따위를 제정하는 딴따라놀음에 찬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산안심의회에서 찬성을 하기보다는 몸살을 핑계로 불참할 테니 그리 알고 이 과일상자는 오히려 우리의 돈독한 사이를 더럽힐 우려가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 만약 억지로 과일상자를 두고 가면 <서구의 노래> 제정은 절대로 어려울 것이라는 엄포에 도로 들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럼 잘 됐네. 이따 저녁 먹고 나서 자네 집에 들고 가서 아이들이랑 제수씨랑 나눠먹게.”
하면서 자신이 입원한 동산병원의 문병에 따라와서 동향친구 김남규씨의 아이인 탁용이, 탁번이가 잡아온 매미를 뺏으려고 싸우던 생각이나
“참, 아아들이 많이 컸제? 인자 이름도 생각이 안 나노.”
하며 골목길을 내려오는데
“아이구, 형님!”
과일가게로 들어간 정봉석씨가 몇 마디 수군대더니 돈 몇 푼을 들고 나왔다. 과일을 도로 반품한 모양이었다.
“형님, 우리 이 돈으로 맥주나 몇 병 합시다. 형님이나 내나 무슨 돈이 있습니까?”
둘이 마주보고 웃으며 큰길을 건너 동대신골목 시장통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힘든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7월 1일. 부산의 해수욕장이 일제히 개장되는 이 날은 공무원들에겐 하반기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요, 의원들에겐 하반기 임시의회가 개회되는 날로 서구청과 송도해수욕장은 아연 활기를 띠고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전 8시 간부회의, 오전 10시 의회개원, 정오에 의원초청 오찬, 오후2시 해수욕장개장식, 오후7시 송도번영회간부만찬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김모구청장이 해수욕장개장식이 끝나자 말자
“어이 이 과장! 개장식분위기가 왜 이래 썰렁해? 문화장터 걸립패공연으로는 충분히 내방객을 끌어 모으기가 힘든 것 같아. 차라리 전문 각설이타령꾼이라도 불러 올 걸 그랬지. 괜히 우리 문화관광과장만 믿다가...”
참석인원이 미흡해 개장식분위기가 붕붕 뜨지 못 한 것을 애민 문화관광과로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였다.
강제로 인원을 동원하든 각설이패를 부르던 주무부서인 총무과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업무권한도 예산도 없는 문화관광과를 지목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열찬씨가 문화관광과장이 된 이후 그 종잡을 수도 없이 수시로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메모지에 적어 담당 과장을 불러 업무를 지시하는 그 구청장오더라는 종이쪽지 하나가 관계법규조항을 확인하거나 도로나 공원, 공사현장을 확인해 현장에서 간단히 조치되는 사항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많은 인력과 예산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머리를 쥐어짜는 아이디어와 법규검토 ,의회와 관계기관의 의견조회 및 협조가 요구되어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리는 엄청난 사업일 수도 있는데 맨 처음 비서실에서 오더쪽지를 나누어줄 때 업무소관이 분명하지 않으면 모조리 일단 문화관광과로 보내는 것이었다. 고명석 문화계장이 질색을 하면서 항의해도 요즘은 구청의 전 부서가 구청장의 오더에 초긴장이 되어있는 판에 누가 보아도 분명한 자기부서소관의 업무가 아니면 의례히 문화관광과로 돌려버린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사업이 단순히 1개 과나 계의 분장으로 간단히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단위사업일수록 수개의 과나 국이 연결되는데 시대의 추세가 모든 업무의 꼬리에 <문화>자만 붙이면 그럴듯하게 문화관광과의 업무처럼 보여 심지어는 그 업무분야가 명백한 청소나, 위생 같은 업무도 괜히 청소문화, 위생문화로 몰아붙여 비로 쓸거나 업소를 단속하는 일 말고 시민을 계몽하거나 홍보하는 일들을 모조리 문화로 몰아붙여 문화관광과로 미루는 판이었다.
또 가열찬, 고명석, 정병진으로 이루어진 문화라인이 일단 손에만 잡으면 무슨 일이든 무난히 처리해 내자 그전 같으면 업무분장 상 <타에 속하지 않는 구정업무일체>를 담당하는 총무과나 구정의 기획과 조직, 심사분석을 관장하는 기획감사실에서 처리할 오더가 판판히 문화관광과로 내려오고 구청장마저도 그 잡다한 오더를 어떻게든 처리해내는 열찬씨의 문화관광팀을 은근히 즐기듯 바라보는 눈치였다.
그렇게 고생한다고 타부서 직원들이 문화관광과에서 수고가 많다고 치사를 하기보다는 승진대상에 포함되는 과계장을 중심으로 아직 초임과장인 이 과장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남의 업무를 가로채 자신의 고과점수만 따려한다고 오히려 앙앙불락 불만을 토로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고생만 실컷 한 문화관광과 직원들이 동료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