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0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4장 축제와 길놀이⑧
대하소설 「신불산」(40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4장 축제와 길놀이⑧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3.08 06:30
  • 업데이트 2023.03.07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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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축제와 길놀이⑧

2층 계단 앞에서 황급히 열찬씨를 불러 세운 고 계장이

“부탁입니다만 정 주무하고 저하고 대충 밑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직원들이고 누구고 절대로 이야기하지 마이소. 만약 청장님한테 이야기하면 그날부로 우리는 일에 쪼들려서 죽습니다. 아셨지요?”

신신당부를 했다.

마침내 <서구의 노래>가 취입되어 음반이 나왔다며 이일삼 교수가 구청장실로 왔다는 연락이 왔다. 가뜩이나 별 특색이 없이 밋밋한 가락이라 요행으로 음색이나 창법이 특이하거나 대중적 인기가 있는 가수라야 히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열찬씨와 문화 팀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헐레벌떡 구청장실로 뛰어가

“가수가 누군데요?”

동시에 질문이 나왔다.

“아, 예 상당한 대중적 인기가 있는 가수지요. 원래 그 정도 개런티로 교섭할 정도의 가수는 아니지만 다행히 잘 아는 지인과 선이 닿아 성사가 되었지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이 느긋한 미소를 짓는지라 현철정도는 아니라도 꽤 유명한 가수, 특히 우수에 가득차거나 애조 띤 목소리의 여가수라도 되는가 싶어 기대가 가득 찬 열찬씨가

“아이구 교수님, 성질 급한 사람 숨넘어가겠습니다. 혹시 문주란이나 주현미, 아니면 하춘화라도 되는가요?”

“아니지요. 아주 개성 있는 남자가수지요.”

“그럼 설운도나 송대관 쯤 되는가요?”

되는 데로 이름난 트로트가수를 거명하는데

“아니지요. 그 보다는 아주 독특한 창법을 가진 가수지요. 거기다 복장이나 소품도 특이하고.”

“아니, 그럼 강병철과 삼태기라도?”

“아니, 과장님. 그 사람들 해체, 아니 강병철이란 가수가 교통사고로 죽은지가 언젠데요?”
고명석 과장의 이야기에 머쓱해진 열찬씨가 한참이나 생각에 잠기다

“그럼 혹시 그 두루마기차림에 꽹과리 들고 나오는?”

“맞습니다. 바로 그 사람 김태곤이지요.”

“아하!”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나왔다.

“그런 가수가 있었나? 아니 도대체 어떤 가수이기에 우리 가과장 표정이 그렇노?”

“청장님, 그 왜 ‘간밤에 울던 제비 날이 세어 날이 세어 찾아보니 처마 밑에 빈 둥지하나 구구만리 머나먼 길 다시오마 어쩌구’ 하는 그 노래 말입니다. 두루마기차림으로 꽹과리를 깨갱깨갱 치면서 말입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한두 번 본 것 같기도 하고.”

“예. 과장님은 그 <망부석>이라는 데뷔곡과 가수를 잘 아시는군요. 복장에서 창법까지 민요와 가요의 중간영역을 넘나드는 특이한 가수, 한민족 고유의 우수가 가득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아주 특이한 목소리지요.”

“그래요?”

비로소 김모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렇지만 교수님!”

불러놓고 구청장과 이일삼 교수를 번갈아 쳐다보던 고명석 계장이

“그 음색이나 창법이 어쩐지, 그 뭐랄까 대중과의 친화, 접근성 아니 일반 대중들의 호응을 받기가 좀 그렇지 않을까 말입니다.”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순간 열찬씨가

“맞습니다. 창법과 복장과 소품이 모두 특이하기는 하나 그게 좀 특이하구나, 그런 가수나 창법이 있구나 하는 정도지 예를 들어 이난영이나 배호, 이미자나 문주란처럼 단번에 남의 심금을 울려 대중의 선풍적 인기를 몰아올 그런 음색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아니, 과장님, 계장님.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요? 그 얼마나 우수에 가득 찬 우리 한민족의 고유의 정서를 잘 담아내는 음색인데요?”

“그렇지만 교수님. 그 뭐랄까, 우수에 가득 찬 것은 틀림없지만 어딘가 적막한 느낌, 그러면서도 사람의 간장을 끊어놓는 애달픔, 하다 못 해 못 견딜 정도의 외로움이나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보다는 어떤 강인한 슬픔, 참 그러고 보니 표현이 좀 이상하네요. 그러니까 웬만한 슬픔쯤은 능히 털어버릴 약간은 허탈하고 아니 마음을 비워버린 그런 느낌 뭐 좌우간 대중의 심금을 울릴, 머나먼 항해에 오른 남편을 떠나보내며 갈매기가 낄룩거리는 등대를 바라보며 눈물짓고 한숨짓는 여인의 마음, 그런 감성적이다 못 해 다소 신파적인 가사의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는 이야깁니다.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가정주부를 비롯한 트로트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뭔가 부족한 느낌, 그 뭐랄까...”

열찬씨가 답답한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 끙끙거리는데

“아니, 과장님! 뭔가 편견을 가지고 계신 모양인데 가수 김태곤씨는 우리 고유의 민족적 정서는 물론 국토를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하는데도 앞장서는 환경운동가로서도 훌륭할 뿐 아니라 전인권이 활동하는 그 유명한 그룹 <들국화>의 멤버이기도 하고.”

“교수님! 그건 가요의 영역, 우리가 추구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어 서구가 널리 알려지는 애조 띤 트로트의 음색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지요.”

“이런? 계장님까지도 편견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래서 예술가가 힘들다는 것, 특히 경직되고 폐쇄된 공무원들의 정서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 아니겠어요? 또 김태곤씨의 노래가 어디 <망부석> 한 곡 뿐인가요? 왜 <송학사>란 노래를 들어보지는 않았나요? 그 투명하고 건강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우수가 가득한 목소리에 뭔가 절망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그 유명한 히트곡을 말입니다.”

“아, 그렇구나!”

K. B. S <열린 음악회>에서 들어본 듯 노래, 특히 뭔가 의미심장한 울림이 있는 가사를 떠올리는데

“그렇지만 교수님! 제가 뭐 가요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건 <열린 음악회>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 또는 상당한 수준의 인텔리 층이 좋아할 분위기지 우리가 노리는 가정주부나 노년층을 포함할 국민 전 계층의 지지를 받을, 그러니까 심금을 울리고 눈물을 쥐어짤 그럴 분위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볼펜만 돌리면서 미간을 찌푸리던 정병진씨가 끼어들자

“허허, 이 사람들 좀 보게. 가수니 음색이니 미리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번 들어보기나 하세.”

구청장의 말에 따라 미리 이일삼교수가 들고 온 카세트로 테이프를 돌리는데

“...?”

구청장을 비롯한 참석자 넷의 표정이 하나같이 떨떠름했다. 뭔가 집어낼 수는 없어도 ‘이건 아니다. 뭔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치민 열찬씨가 고명석 계장을 바라봐도 정병진씨를 쳐다봐도 모두들 참으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김모구청장이

“이 과장, 그럴 게 아니라 방송실에 이야기해서 각 실, 과, 동은 물론 구청광장에도 음악을 틀어 직원들과 구민들의 반응을 들어보도록 하지. 자, 시간이 되었으니 우선 점심도 먹어야겠고. 어이, 김실장, 차량은 준비되었나?”

비서실장을 부르더니

“교수님, 좌우간 노래 잘 들었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어느 정도 히트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중요한 회합이 있어 먼저 나가야하니 점심은 우리 이 과장님과 하시고 안녕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하고 나가자 가뜩이나 머쓱한 분위기가 민망한지

“과장님, 일단 성과물이 납품된 것으로 알고 저는 가보겠습니다.”

가방을 챙긴 이일삼 교수가 단호히 일어서더니 열찬씨가 내미는 손을 마지 못 해 잡고 고계장, 정 주무와도 마뜩찮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어떻데? 노래 좋데?”

열찬씨의 질문에 비서실의 박양도

“글쎄요. 제가 뭘 알아야지요?”

애매한 대답이 돌아오더니 정문 경비실의 청원경찰도 식당에서 만난 직원들도 모두

“글쎄요.”

하고는 눈길을 슬슬 피했다. 점심시간 후에 만난 문화관광과 직원들도 하나같이 ‘글쎄요.’를 반복하는데 급히 달려온 듯 얼굴이 상기된 장수환 공보계장이

“과장님, 이거 분위기가 영 이상하게 돌아가는 데요. 아까 <남항등대>가 방송될 때 기자실에 기자가 두 명이 있었는데 영 표정이 마땅찮았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장 계장님, 그 노래에 예산이 얼마나 들었나요? 작곡은 누가 하고 가수는 누가 섭외했나요?’ 묻는 품이 심상찮았어요. 박기도씨를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혹시 기사를 낼지, 그냥 넘어갈지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이거 잘못하면 큰 일이 나겠습니다.”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요? 그 문제는 우짜든동 장 계장님 선에서 해결해보이소. 정 안 되면 이야기하고.”

가뜩이나 떨떠름하게 넘기는데

“과장님, 의회에서 전화 왔습니다.”

뜨악한 표정으로 진미덕씨가 전화를 돌려주는데

“과장님, 저 정봉석인데요.”

마침 의회사무국 의사계장으로 전보된 정봉석씨가 몰래 전화하니까 혼자 조용히 듣기만 하라면서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소곤거리는데 점심시간 직전 의장실에 모여 오늘 점심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의장과 의원 네 명이 <남항등대>를 들었는데 역시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니

“내 그럴 줄 알았지. 역시 이기율 의원의 말이 맞았구먼. 내 역시 구청에서 대중가요를 만든다는 것이 맘에 안 들었는데 가과장 고생한다 싶어 밀어준 것이 그만.”

그나마 가식 없이 솔직한 서수양 의원이 혀를 끌끌 차자

“이제 와서 어쩔 수가 있나? 우리 의원님들도 다들 찬성한 사안인데.”

이용수 의장이 얼굴이 붉어지며 수습해도

“내 아무래도 그냥은 못 넘어가지. <남항등대>가 구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었는지 방송에는 몇 회나 나가고 남항등대가 있는 남부민동이나 송도해수욕장에 방문객은 얼마나 늘었는지 단단히 따져보아야지.”

깐깐하기로 유명한 엄주정 의원이 벼르더란 이야기 끝에 다음 달 임시의회개원 전에 미리 찾아가 구정질문을 않도록 미리 로비를 하라는 이야기였다.

잘 알았다, 고맙다며 전화를 끊는 열찬씨에게

“과장님, 뭐라는데요.?”

고 계장과 정 주무가 동시에 물어

“망했네. 망했어!”

열찬씨가 장탄식을 하는데

“과장님!”

공보계장이 숨 가쁘게 다가오는지라 이제 언론의 비난까지 받겠구나, 도대체 어느 기자가 물고 늘어지는가 걱정하는데

“과장님, 보도 건은 안심하이소. 우리 박 주무가 최 기자를 만나 통사정을 했는데 잘 알겠답니다. 전에 기자간담회 하고 마지막으로 3차를 같이 간 효과를 보는 모양입니다.”

귓속말로 속삭이자

“그래요?”
밝아지는 열찬씨의 표정을 보며 고계장과 정주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