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축제와 길놀이⑫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투로 말하며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어 18개 실과와 15개동의 업무보고가 끝나고 구청장의 훈시가 있는데
“벌써 11월이라 올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12월 초에 의회사무감사가 시작되고 정기의회가 시작되어 내년도 업무보고인 구정연설을 하고 예산안 심의를 하게 되는 의회회기 중에는 사실상 행정업무를 볼 시간이 없어 이제 올해 업무를 마무리할 기간은 겨우 한 보름 남은 셈입니다.
올 한 해 늘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고 없는 살림을 산다고 고생이 많은 세무과와 기획감사실을 비롯해 송도해수욕장정비와 연안개발을 맡은 건설과, 산지정화와 녹화업무를 맡은 지역경제과 각종 축제활성화와 문화사업을 맡은 문화관광과 나날이 수요가 늘어가는 복지업무를 맡은 사회복지과, 가정복지과를 비롯해 다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어느 부서 할 것 없이 4/4분기 안에 완벽하게 끝내기에 힘든 사업도 많겠지만 어쨌든 전력을 다해 어렵게 마련한 예산이 내년도로 이월, 특히 사고이월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4/4분기면 의례히 나올 지시사항으로 회의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기획감사실에서 내년도 업무보고와 구정연설을 작성하는 초안을 대충 읽어보았는데 문제는 미사여구로 겉만 그럴 듯 이 포장해놓았지 송도연안개발과 해수욕장정비, 산지정비와 녹화사업, 각종 축제와 문화사업, 복지사업을 빼면 도로포장이나 건설사업, 청소나 방역 등은 예산이 부족해 겨우 시늉만 내는 정도이고 구민은 물론 남이 보더라도 아, 우리 서구 또는 부산서구에서 이런저런 대단한 사업을 하는구나 하고 감탄을 할 만큼, 그러니까 눈에 띄는 사업이 하나도 없단 말이지.
그런데 여러분도 우리 서구의 관내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신동에서 송도 암남동까지 길쭉한 구의 중심부는 거의 개발되고 지금 남은 쪽은 송도 암남공원쪽과 서대신동 꽃마을 일대인데 송도는 지금 연안정비사업, 해수욕장복원사업이 한창인데 서대신동 꽃마을은 그저 이제 화훼마저 쇠퇴하여 그저 등산객을 상대로 시락국이나 파는 얼치기 유원지로 변모하였단 말이지. 이런 꽃마을을 개발해서 시민들이 많이 찾을 문화시설, 복지시설을 유치하여 서구 또는 서대신동 꽃마을 하면 시민누구라도 아, 그 무슨 시설, 무슨 공원 하고 바로 연상할 수 있는 랜드마크화 할 필요가 있단 말이지.
그런데 내가 알기로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구덕령에서 기상관측대로 올라가는 임도 옆에 눈썰매장을 만든다고 임야를 매입, 수천 평, 아니 근 만평의 구유지 임야가 있다는데 그 좋은 재료, 아니 개발 잠재력을 그대로 방치해 둘 건가 말이지? 비단 구유지뿐 아니라 주변에 국유지 임야나 수도용지등도 연접해 관계부서와 협의해 지적정리만 잘 하면 엄청난 개발부지가 생기고 땅과 돈이 모두 부족한 우리 서구에서 외고 펴고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비단 자치구가 아니라 시나 중앙정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이나 행태가 시행착오라는 위험이 따르는 개발사업, 신규사업을 되도록이면 피해 어떻게든 신변에 위험이 없는 보신주의 무사안일이 보편화되어 이 좋은 일거리를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단 말이지.”
말을 끊고 좌중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아 긴장을 극대화시키고는
“우선 구정을 총괄하는 기획감사실에서는 막연하게 꽃마을 일대에 개발 잠재력이 있다고 큰 틀만 거론할 뿐 어느 과에서 어떤 사업, 즉 문화사업인지 복지사업인지 단순히 휴게공간이나 놀이공원을 만들지 하는 구체적 가닥을 잡지 못 하고 있는데 구청의 모든 과와 보건소, 동직원은 물론 전 부서, 전 직원의 개발계획과 아이디어를 수렴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재무과, 건설과 건축과, 지역경제과등과 협의해 공유재산관리, 도시계획, 공원법 등 관련 절차를 밟아야할 것이고 또 총무과, 문화관광과, 주민복지과와 가정복지과, 지역경제과를 비롯한 사업부서에서는 담담업무와 관련 부지가 없어서 착수하지 못 하던 구상사업들을 이참에 사업계획을 제출해야 할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특히...”
다시 뜸을 들이면서 가열찬 과장과 눈을 맞추고는 한참이나 시선을 고정시켜 죄지은 일도 없이 무단히 가슴이 뜨끔한 열찬씨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바라보는데
“어느 교수님이 말하기를 현대인의 생활패턴이랄까 패러다임에 문화가 대세라고 하더군. 문화 자를 붙여 안 되는 말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이야. 우리 구만해도 그렇지. 넓은 면적도 많은 인구도 특별한 산업시설도 없는 우리 구는 그나마 구덕산의 푸른 숲과 송도해수욕장을 낀 남항의 푸른 바다라는 환경과 그 속에 자리 잡은 구시가지의 임시수도기념관이 상징하는 옛 경남도청과 부산형무소, 법조단지, 공설운동장, 수많은 학교와 대학병원이 부산의 근현대문화를 선도한 문화의 향기가 그 나마의 재산인데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각 자치단체들이 문화사업에 눈을 뜨면서 우후죽순으로 문화회관을 짓고 축제를 여는 추세에 맞추어 우리 구도 나름대로 <송도바다축제>, <구덕골문화예술제>등 지역축제를 열어오다 근래 그 내용이 한층 발전했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모두 현 문화관광과 직원 일동의 열정과 노력덕분이라고 보는데 희한하게도 새로운 문화사업을 찾아 이런 좋은 재료인 부지와 숲에 목말라야 할 문화관광과에서 도무지 구덕산의 구유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열찬 과장 역시 새로운 사업에 겁을 내는 전형적인 수동적 공무원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엥, 잘 나가다 삼천포라더니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옆길로 새는지 열찬씨의 정신이 얼떨떨한데
“아무튼 이 이야기가 굳이 가열찬 과장 한 사람의 간부나 한 부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구의 모든 실과동장과 부서가 다시 한 번 반성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니까 가열찬 과장과 과원들은 오해가 없기 바라고 다른 부서 여러분들 모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기를 바라며 아무튼 문화관광과를 비롯한 모든 부서의 획기적이고 진취적인 사업계획이 많이 제출되기를 바랍니다. 이상.”
듣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더 이상 변명할 기회도 없이 회의가 끝나버렸다. 이어 벌어진 총무국장실의 과장회의에서
“가열찬 과장님이 여러 사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만큼 청장님께서 다시 주마가편 더 업그레이드 된 임무를 부과하는 모양인데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그걸 부담이기보다는 기회 또는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과장님, 축하합니다.”
이 역시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모를 묘한 이야기로 회의가 마감되고 말았다.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과장님, 이기 우째 된 일입니까? 우째 보면 칭찬 같고 우째 보면 힐책 같고 내사 마 통 알 수가 없네요.”
“우째 보면 욕 같고 우째 보면 쫑고 같고 꼭 종이 한 장 같은 거기 거기다 카는 게 다 인생살이 아닙니까?”
꽤 압축되고 상징적인 시를 잘 쓰는 문학도지만 평소 우수에 가득한 얼굴에 둥근 안경을 쓰고 말수가 적은 박기홍씨가 문득 한 마디를 던지는데
“자, 계장님들 차나 한 잔 하십시다.”
원탁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다들 간부회의 중계를 들어서 분위기는 잘 아실 테니 오늘 회의는 계별로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으면 차나 한 잔 하는 것으로 생략하고 대신 우리 진미덕 종부와 부군이 멀리 함안에서 직접 가져온 가보급 생활도구와 민속품구경이나 하도록 합시다.”
“그럼요. 속이 펄펄 끓어도 말을 못 해 답답할 때는 그렇게 관심을 돌리는 게 최고지요.”
나이 든 김권시 과장의 맞장구로 일행이 별실로 된 광고물계의 자투리공간에 쌓아둔 물건들을 구경하러 가는데
“야, 진짜 놋그릇과 옹추발이도 있고 놋숟가락, 제까치에 놋주개까지 다 있네!”
감탄사와 함께 옹추발이와 놋주걱을 만져보는 열찬씨에게
“여기 새끼 주걱도 다 있네.”
장수환 공보계장이 조그만 주걱하나를 들어 보이는 것을
“가만 보자. 그건 그냥 주걱이 아니고 놋화로에 재를 다지는 주걱이구나. 식은 재 밑에 불씨를 꼭꼭 다져 한밤중에 다시 뒤져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주걱 말이야.”
하고 다시 이것저것을 살피다
“이건, 오동나무장롱이구나! 비록 다 찌그러지고 먼지가 앉았지만 옛날 양반집 신부의 혼수품 1호지. 오죽하면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으라고 하던가? 아무튼 이렇게 다 찌그러져도 꽃잎이나 박쥐무늬의 놋이나 은으로 된 장석 하나만 해도 옛 장인들이 정성들여 만든 참으로 귀한 작품이지.”
열찬씨가 하나하나 설명하는데 찌그러진 문에 비뚜름하게 걸린 옛날씩 자물통과 한참이나 씨름하던 정병진씨가
“자, 열렸다. 봐라! 보물상자지!”
커다랗게 소리를 치는데 보얗게 먼지를 덮어쓴 동그란 함 하나가 나왔다.
“아! 당시기. 바늘당시기, 아니 꽃 당시기!‘
그 옛날 늘 먹고살기가 빠듯한 반농(半農), 반상(半商) 장돌뱅이마을 버든에서도 궁벽한 구시골골짜기의 기독교인 황씨집안, 그러니까 국민학교는 물론 군 입대와 제대까지 함께 한 황중권하사, 지금은 목사가 된 중권이 아버지가 만들어 팔던 가늘게 깎은 댓가지에 곱게 물을 들여 만든 뚜껑이 있는 둥근 함이었던 것이었다.
“과장님, 당시기, 당시기 카는데 당시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진기를 들이대고 촬영에 바쁜 김종현씨가 묻는데
“당시기는 대나무나 싸리, 갈대, 칡, 골풀 등으로 만든 덮개가 있는 둥근 소쿠리를 말한다고 할까, 농가나 가난한 집 아녀자들은 보통 싸리나 대로 만든 작은 소쿠리나 광주리에 칼, 가위, 바늘, 실, 헝겊, 골무 따위를 넣어두고 부잣집아씨들은 물을 들이거나 가죽이나 비단을 덧씌운 정교한 함에 비단, 명주, 옥양목은 물론 노리개와 옥비녀, 비취나 금반지, 옥으로 불리는 자수정이나 호박단추에 은장도까지 넣어두는 것이지. 물론 엽전이나 바느질, 수를 놓는 수본과 수틀도 들어있고. 또 간혹 떡을 담아 놓으면 떡당시기라 카는데 사람이 일을 하다 엉망진창이 되거나 얼굴에 여드름이나 뭐가 많이 나면 떡당시기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지.”
설명하는데
“야, 상평통보다!”
아까 열찬씨가 설명한 헝겊조각 몇 개와 엽전 몇 푼이 나왔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