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1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6장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②
대하소설 「신불산」(41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6장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3.22 06:35
  • 업데이트 2023.03.22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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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국노래자랑과 문화주막②

 

바람도 셀 겸?”

고개를 갸웃거리던 고계장이

과장님, 한번 붙어봅시다. 까짓 것!”

, 소리 나게 술잔을 부딪혀왔다.

 

이튿날 송해씨의 전국노래자랑 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니 그 날 오후에 전라북도 정읍시의 공설체육관에서 녹화를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여차여차 출장을 가야한다는 한 장짜리 업무보고서를 만들어 허겁지겁 고계장과 둘이 결재를 받으러 나서는데

과장님!”

김권시 광고물계장이 불러놓고 머뭇거리자

, . 계장님!”

고명석 계장의 눈짓으로 정병진씨가 재빨리 출장인원에 김권시 계장의 이름을 추가로 적는 순간

과장님, 연말에 정년퇴직인데 졸업여행이나 같이 데리고 갑시다.”

고 계장의 말에 오케이 사인을 내고 국장실, 부구청장실, 구청장실을 차례로 도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니 모두들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고 결재를 받는 사이에 결재서류를 복사한 정병진씨가 예산계, 경리계를 돌아 출장비로 받아와서 바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관용차의 여유가 없어 고명석 계장의 승용차로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점심을 남강휴게소에서 먹고 오후 두 시쯤 정읍실내체육관에 도착하니 곧 있을 전국노래자랑정읍편의 녹화를 앞두고 여러분! 안녕하세요?”를 반복하며 사회자등장 리허설에 열중하는 송해씨의 작달막한 체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과장님, 김 계장님은 여기서 좀 쉬세요.”

하고 고 계장과 정병진씨가 실내체육관 안으로 들어가 한 30분 뒤에 돌아왔다.

겨우 담당PD를 만났는데 전국노래자랑이 아무데나 신청한다고 다 해주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 연말이라 새로운 자치단체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단숨에 거절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한마디에 물러설 것이라면 이렇게 허둥지둥 이렇게 왜 왔느냐, 기어이 무슨 성과물을 얻어야 구청에 돌아가 구청장에게 보고할 것이 아니냐는 열찬씨의 이야기에 둘은 한참이나 수군대더니

유일한 통로는 오로지 송해씨를 접근하는 방법뿐입니다. 리허설이 끝나고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다만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송해씨가 무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가로막고 통사정을 합시다.”

하는지라

그럽시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가지요.”

하고 넷이 실내체육관으로 내려가 무대 뒤쪽에서 하염없이 기다려도 이미 팔순에 가까운 노인이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목소리도 쩡쩡하게 두 시간을 넘게 끌고나가는 지라

저놈의 영감탱이는 오줌도 안 마렵나?”

예순한 살의 김권시계장이

나보다도 힘이 낫네. 천하장살세.”

하며 시계를 보는데 벌써 다섯 시 반이 넘었다. 이러고서 또 한참 시간이 지나 마침내 리허설이 끝났는지 잠깐 음악이 멎고 6시에 예정된 녹화를 보러온 관중들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실내체육관에 가득한데 무대 뒤쪽으로 작달막한 송해씨의 모습이 나타나자 열찬씨의 일행 넷이 황급히 다가가는데

오빠, 송해오빠!”

송해선생님!”

중년여성 여남은 명이 우르르 달려가 송해씨를 에워싸고 더러는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려하고 더러는 사인을 받으려고 종이와 볼펜을 들이밀고 그도 저도 못 한 나이든 할머니들이 비잉 둘러서 한숨을 푹푹 쉬는 판이라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젊은 스텝 몇이 간신히 사람들을 떼어내고 체육관복도 쪽 화장실을 찾아가는 모양인데

, 송해할아버지다!”

이번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과 아까 접근에 실패했던 노파들과 중년남성들까지 커다란 무리가 되어 우우 따라가는지라 도무지 열찬씨 일행이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남자화장실 밖에서 진을 치고 기다려도 아직도 흩어지지 않은 무리들이 다시 송해씨를 에워싸고 우르르 몰려가버렸다.

어쩐다? 이러다가 만나서 통사정하기는커녕 손도 한 번 못 잡고 돌아가겠는 걸.”

열찬씨의 걱정에

하는 수 있습니까? 녹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요.”
그럴까?”

그럼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하니 어디 시내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올까요?”

여럿이 주고받는데

여러분! 안녕하세요?”

무대에서 울리는 송해씨의 짱짱한 목소리와 함께 전국노래자랑효과음과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이 실내체육관을 뚫고 나갈 듯 요란했다. 그렇게 서너 명의 노래가 끝나고 첫 번째 초청가수의 노래가 시작될 때쯤이었다.

 

안 돼. 이러다간 끝이 없어. 뭔가 작전을 바꿔보자.”

열찬씨가 운을 떼더니

녹화가 끝난다고 우리가 접근하고 예기하기는 힘들 거야. 극성팬들의 성화도 그렇고 주최 측에서 접대한다고 바로 모시고 갈 수도 있고 또 다른 스케줄로 바로 서울로 올라갈 수도 있고.”

그럼 어쩐단 말입니까?”

메모쪽지를 넣어보지. 부산 서구, 아니 송도에서 왔는데 우리가 이번에 노래자랑을 유치하지 못 하면 먹고살기에 지장이 생긴다고 말이야, 모가지가 떨어질 판이라고 말이야.”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또 전달이 되기는 할까요?”

멍청하게 기다리느니 좌우간 한 번 시도나 해 보세.”

정병진씨의 업무용수첩을 받아 뒤쪽의 백지에 열찬씨가

 

-존경하는 송해 선생님,

저는 부산 서구 그러니까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서구청의 문화관광과장 가열찬입니다. 저희 김형호 구청장님께서 6.25피난 시절에 송해 선생님이 송도해수욕장에서 생선회에 소주를 놓고 피난살이의 설움을 달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송해 선생님을 송도로 모시고자 전국노래자랑을 신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전 국민이 모두 좋아하는 전국노래자랑을 우리 구에 유치하지 못 하면 구청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기어이 유치하라는 명을 받고 저희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만약 유치하지 못 하고 부산에 돌아가면 저는 맞아죽습니다. 부탁합니다.-

 

급히 갈겨쓰다보니 무려 세 페이지나 되는 것을 북 찢어

“PD든 스텝이든 찾아서 부탁하게. 초청가수나 참가자가 노래하는 사이에 무대 옆에서 슬쩍 찔러주라고 말이야.”

고 계장이 뭐라 할까 싶어 정병진씨에게 건네주니 입술이 뾰로통해진 고 계장이 정병진씨를 데리고 무대 뒤로 가더니 근 30분이나 걸려 돌아와

간신히 부탁을 하고 왔습니다. 결과야 어떻든 전해는 줄 테니 무대 맞은 편, 잘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합디다.”

하는 지라 관중석 옆의 약간 높은 곳에 앉았는데

또 한 참이나 시간이 흘러 무슨 특산물을 들고 나온 한복 입은 아주머니들과 무어라 수작을 하고 시식까지 하고 아줌마 둘이 각설이타령을 하는 동안 무대 옆으로 나온 송해씨에게 누가 뭔가 전해주는 것을 보니 아마 열찬씨가 쓴 메모지 같았다.

과연 송해씨가 읽어나 줄까, 무슨 반응을 보일까 간이 콩알만 해진 넷이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데 아까 메모를 전해준 사람과 송해씨가 열찬씨 일행 쪽을 바라보더니 송해씨가 벌쭉 웃으며 손을 한번 흔들고는 다시 황급히 무대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 읽긴 읽었구나,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구나, 엷은 희망을 품고 아까 메모지를 준 사람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 희한하네. 송해 선생님이 이렇게 특정 지역을 생각해주는 일이 잘 없는데 허어, 그것 참!”

아까의 스텝이 감탄을 하며

잘 알았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시랍니다. 연말이라 올해 안에는 안 되고 구정 전후에 녹화를 하고 3월 안쪽에 방송이 되도록 하시겠답니다. 예비심사, 무대설치 등 구체적 협조사항은 나중에 방송국의 실무자가 따로 연락을 한답니다.”

하며 실무자인 정병진씨의 명함을 받아 돌아섰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