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이란 무엇인가? 과잉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면, ‘어떤 개인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영향을 미쳐서, 그들이 자신의 바람대로 움직이도록 강제하는 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권력자는 피권력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피권력자, 곧 너와 나 우리에게 이익이 될 수도,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서는 권력의 출처가 혈통이었다. 특정 집안인 왕가(王家)에서 왕이란 직위를 세습하며 권력을 독점했다. 하여 왕이 설령 독도를 팔아먹어도 ‘신민’(臣民·신하와 백성)은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나라와 백성이 왕의 소유이다. 제 것 제가 팔아먹었는데 누가 상관할 수 있으랴. 기껏 유생이나 선비들이 ‘지부궐복상소’(持斧闕伏上疏) 따위나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끼’(斧)를 ‘지니고’(持) 임금이 계신 ‘대궐’(闕)에 ‘꿇어 엎드려’(伏) ‘글을 올린다’(上疏)는 것이다. 곧,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도끼로 머리를 쳐 달라는, 죽기를 각오한 청원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왕이 받아들이지 않고, 진짜로 도끼를 휘두르면 어쩔 건데? 내리치는 도끼를 머리로 받을 뿐, 딱히 다른 도리는 없다. 왕은 도덕적 비난은 받거나 정치적 책임은 지더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 더구나 너와 나, 우리 대부분인 일반 백성은 이 상소마저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왕권에 대한 견제장치로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가 있었다. 조선 왕도 국시(國是)인 성리학 이념을 충실히 따라야 했다. “대저 군주는 백성에 의존한다”라는 『조선경국전』의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백성을 보호하는 데 소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권력 독점에 따른 폐해를 막고자 했을 뿐, 왕의 절대적 권위와 독재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폐위는 쿠데타 성격의 반정(反正)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조선을 이은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근원은 일반 국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굴욕 외교’에 대해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이 비판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욕설까지 한다. 탄핵까지 거론한다. ‘부산 횟집 뒤풀이’가 무슨 조폭 모임이냐며 야유를 보낸다. 무슨 권리로? 주인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에서다. 주인이 집사에게 5년 계약으로 일을 맡겼는데, 집안일을 경영하는 품새가 영 시원찮다. 그러면 주인으로서 마땅히 집사를 질책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중도에 해고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정치 지체 현상’이 심하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주인의식보다는 조선시대의 신민(臣民)의식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아직도 일반 국민 곧 너와 나 우리가 주인이라는 민주(民主)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지 못하다.
대기업 총수는 그 대기업의 ‘오너’(owner·주인)인가? 맞긴 맞는데, 3.7%만 맞다. 이 정도면 오답이나 마찬가지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보유 현황’에 따르면, 총수를 포함한 그 친족이 가진 지분은 3.7%에 그쳤다. 곧, 4% 미만의 적은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계열사 출자 등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오너라는 의미는 대체로 창업자와 그 일가를 지칭한다. 재벌이라고 부르는 삼성, 현대, SK, LG 등 대기업집단을 누구누구의 것이라고들 한다. 틀렸다. 그 누구누구는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controlling shareholder)일 뿐이다. 위의 주식보유 현황에서 보듯 회사 돈 3.7%만 자기 것이고, 나머지 96.3%가 남의 돈이다.
모 상장회사의 지배주주가 본인의 형사재판에서 회사 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검사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백’한 적이 있다. 본인이 하는 모든 일이 회사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회사 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이다.
꼴랑 3.7%의 지분을 가진 회사를 자기 것으로 오인한 결과다. 이는 우리 사회가 창업자를 오너라고 불러주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 아닐까? 등기부등본에 소유자 명의로 한 사람이 3,7%, 나머지 여러 사람 합쳐 96.3%로 분할 등기 되어 있는데, 누가 3.7% 지분 보유자를 주인이라 하는가.
‘손바닥의 王’자가 문제가 아니다. 왕과 대통령의 차이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다는 게 문제이다. 왕은 주식을 100% 소유한, 명실상부한 오너이다. 이에 반해 대통령은 전체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지분율은 나와 꼭 같이 1/약 5천1백만이다. 단지 선거를 통해 5년간 대한민국의 경영을 위임 받았을 뿐이다. 이 위임에 의해 대통령이란 권력을 행사한다. 그것도 한시적으로만.
회사야 주주가 아닌 다음에야 쥐꼬리 지분을 가진 창업자가 오너 노릇을 하든 말든 나와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다. 강 건너 남의 일이니 나에게 큰 낭패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의 일은 내 일이고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남의 일일 수가 없다.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얼굴이다. 하여 존중 받아 마땅하다. 마는, 국민 곧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를 할 때는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 민주시민은 일방적으로 왕에게 시혜를 받는 왕조시대의 신민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권력을 부여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 만큼 정치와 경제는 물론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민주적 제도가 대체로 완비되어 있다. 그런데 왜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enlightened citizen)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권력이나 정부 그리고 정치가 돌아가는 작동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중우정치’에 동원될 뿐이다. 민주주의를 아는 민주시민이 존재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국민이 정치를 외면하는 것이다. 정치 기득권 세력들은 정치 불신을 일부러 조장했다. 한마디로 정치는 자기들이 다 해먹겠으니, 일반 국민들은 생업에나 신경 쓰라며 꼬드긴 것이다. 이 꼬드김에 넘어가 우리 사회에는 정치 냉소주의자가 고매한 인품으로 대접 받는 기현상이 생겼다. 그 결과 정치의 피해는 누가 받는가?
따라서 권력과 정치에서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우선 조선시대의 신민의식에서 벗어나 민주공화국의 당당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는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정치에는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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