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왜곡 언론, 기자 탓인가 언론 사주 탓인가 독자(시청자) 탓인가?
【조송원 칼럼】 왜곡 언론, 기자 탓인가 언론 사주 탓인가 독자(시청자) 탓인가?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3.04.24 10:50
  • 업데이트 2023.04.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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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보수언론 <폭스 뉴스>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과의 재판을 피하기 위해 7억8750만 달러(약 1조400억)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를 전하는 abc 방송.

미국 최대 보수언론 <폭스 뉴스>가 잘못된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소송을 제기한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에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7억8750만 달러(약 1조400억)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폭스 뉴스> 대 도미니언 명예훼손 소송은 한 달여 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다. 왜곡언론이 과연 처벌을 받게 될 것이지, 그 왜곡의 진정한 원인을 제공한 자가 기자인지, 언론 사주인지 아니면 독자나 시청자인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레기’(기자+쓰레기), 더 심하게는 ‘기데기’(기자+구더기)가 관용어로 정착된 현실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00일보가 신문이면, 우리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란 신랄한 풍자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자나 언론에 대한 저주스런 비난은 그들이 사회에서 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에 거는 기대가 높음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한정된 시·공간에서 개인사를 해결하며, 개인적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개인의 일이나 행복은 개인적 범위를 넘어선 밖의 세상사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크라이나는 대한민국과 지리적으로 약 7,600km 떨어져 있다. 지도책에서 한 번 볼까 말까한 그 나라에 러시아가 침공하자, 연료비가 폭등하고 당장에 우리 생활비에 영향을 끼쳤다.

정치와 경제 권력은 물론, 모든 사회적 권력은 이익을 독점하려 한다. 이 모든 권력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고,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행하는 게 언론의 존재이유이다. 거짓과 권력의 부당한 이익 독점은 음습한 음지에서 창궐한다. 햇볕에 드러나는 즉시 거짓은 진실에 길을 내어주고, 권력의 독점 이익은 제자리를 찾아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주사회에서 이 햇볕의 역할을 언론이 대부분 담당한다. 권력은 진실을 억누를 힘을 가지고 있다.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을 사랑하는 ‘선량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민주국가의 구성원리이다. 곧, 삼권분립과 법치의 대전제인 것이다. 권력은 속성상 진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분장한다. 그래야 이익이 생기니까. 하여 힘을 가진 권력에 맞서 진실을 드러내게 하는 언론은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그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남음이 있다.

한데 왜 언론은 왜곡·허위 보도를 일삼을까? 윤석열 정부 들어 좀 퇴보했긴 했지만 정치권력의 언론에 대한 압제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만큼 경제 권력의 언론 압박은 심해졌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언론사’의 정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사도 일종의 회사이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다만, 언론사는 진실 추구와 권력의 견제와 감시라는 중차대한 공공성을 지닌 회사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언론사의 구성원인 기자들도 불의에 삭발·단식하는 지사나 만주 벌판에서 풍찬노숙하는 독립투사가 아니다. 이들도 기본적으로 봉급으로 생활하는 생활인이다. 단, 직업적 소명이 공공성을 강하게 띤다는 점이 일반 봉급생활자와 다를 뿐이다.

투표기를 만드는 회사인 도미니언은 지난해 대선 직후인 2021년 3월 <폭스 뉴스>의 진행자와 출연진이 도미니언이 투표기 관련 기술이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당선시키도록 투표를 조작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허위 주장을 했다. 근거는 없었다. 도미니언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협박을 받고, 평판이 추락하고, 투표기 판매에 타격을 받자 약 2조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애당초 도미니언은 승소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폭스 뉴스>는 이 주장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고, 이런 보도 활동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옹호하는 미국에서는 언론사에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명예훼손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질적 악의를 증명하는 것은 사람의 머릿속들 들여다보는 것만큼 어려우니 처벌도 어렵다.

이런 ‘높은 벽’을 도미니언은 <폭스 뉴스>의 간부와 출연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등의 내용을 입수해 뛰어넘었다. 이에 따르면 회사 관계자들은 “투표기에 문제가 있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의 주장이 근거가 없는 ‘음모론’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책임한 보도를 이어갔다. 회사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 잘못임을 알면서도 미국 극우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쏟아낸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The Dominion lawsuit showed the limits of Fox's influence over its audience". 2023.4.17.)를 참조하여 왜곡 보도의 원인을 짚어보자.

<폭스 뉴스>가 드러내지 않지만, 언론의 외양을 갖췄지만 진정한 보도준칙은 ‘돈벌이’이다. 러시 림보(2021년 사망)는 1990년대 초 보수적인 라디오 토크쇼를 성공한 방송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 비결을 청중의 말을 들어주고, 청중의 확신에 동감을 표시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시청률이 올라가고 훌륭한 사업적 성공을 거둔다고 자랑했다.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30년 전의 이 같은 사업적 전략이 현재의 <폭스 뉴스>의 보도에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폭스 뉴스>의 보도 범위는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도미니언과 손해배상 소송의 합의금 약 1조 원은 <폭스 뉴스>가 작년에 벌어들인 수익의 1/4에 불과하다. 앨라배마 대학교의 바우어 교수는 “폭스가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방식이 돈을 벌기 때문에 소송이 폭스가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다” 고 말했다. 도미니언 변호사는 “거짓말에는 결과가 따른다”고 논평했다. 이에 반해 <폭스 뉴스>는 이번 합의는 “가장 높은 보도 기준에 대한 지속적인 약속을 반영한다”고 했다. 가짜 뉴스도 돈벌이가 된다면, 무책임하게 방송하는 언론사의 또 다른 왜곡 성명이다.

몇몇 <폭스 뉴스> 기자들은 광범위한 유권자 사기가 있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불같이 화를 내고, 그의 자지자들에게 <폭스 뉴스>에서 비주류 신생언론인 <뉴스맥스>(Newsmax)와 <원아메리카뉴스>(One America News)로 갈아타도록 촉구했다. 그날 <폭스 뉴스>의 모회사 주가는 6%나 떨어졌다. 선거 2주 후 <뉴스맥스> 황금시간대 시청률은 세 배로 늘어나 41만2,000명이었고, <폭스 뉴스>는 37%나 떨어진 3백5십만 명이었다.

유권자 사기가 거짓말이므로, 바로잡으려 한 기자는 징계를 받았다. 다른 기자도 그의 보도가 “잘난 척”한다고 해서 징계를 받았다. <폭스 뉴스>의 수장 수잔 스콧은 “시청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계속 변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책임 편집자는 해고되었다. <폭스 뉴스>의 모회사인 언론제국 ‘폭스 코퍼레이션’ 회장 루퍼 머독의 지시였다. 머독은 책임 편집자의 해고가 “트럼프 사람들에게 큰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씨의 변호인인 시드니 파월과 루디 줄리아니는 한 인터뷰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도미니언은 우고 차베스의 선거를 조작하기 위해 설립된 베네수엘라 회사의 소유이며, 회사가 투표를 변경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돈을 지불했다.” 두 가지 주장 모두 날조된 이야기다.

<폭스 뉴스>의 사람들은 사적으로는 두 변호사를 “미친 내용”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한 프로듀서는 “저들과 함께하면 황금이 보장된다”고 동료에게 썼다. 시청률이 오르니까. 그래서 돈을 버니까.

<폭스 뉴스>가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폭스 시청자들은 소송과 합의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폭스 시청자들은 다른 곳에서 이에 관한 얘기를 들어도 기꺼이 폭스 편을 든다. <폭스 뉴스>는 도미니언에 대한 특정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철회나 정정을 방송할 필요는 없다.

<폭스 뉴스>는 2020년 선거 취재보도에 대해 더 많은 법적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투표기 기술 회사인 스마트매틱(Smartmatic)은 27억 달러 손해배상금 고소를 하고 있다. “도미니언의 소송은 <폭스 뉴스>의 허위 정보 보도로 인한 위법행위와 피해의 일부를 드러냈다”고 말하며, 스마트매틱은 “나머지를 폭로할” 것임을 약속했다.

쓰레기 허위·왜곡 정보를 보도하는 기자는 기레기라고 마땅히 비난해야 한다. 기레기를 통해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언론사와 언론사주는 외면으로 마땅히 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기레기와 쓰레기 언론사와 언론 사주의 숙주는 ‘듣고 싶은 것만 보도해 주길 바라는’ 쓰레기 독자(시청자)가 아닐까? ‘불편한 진실’에 감연히 다가가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