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魏) 문후(文侯) 때였다. 자질이라는 사람이 벼슬을 하다가 죄를 얻어 그 곳을 떠나 북쪽 조나라 간주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부터는 내 다시는 사람에게 덕을 심지는 않겠소이다.” 간주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자질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당상의 벼슬(堂上官·고위공무원)의 반은 내가 심어준 것이요, 조정의 대부 중에서도 반은 내가 심어놓은 선비들이며, 변방에 있는 사람(장군) 중에도 반은 역시 내가 심어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당상의 선비들은 나를 법대로 하겠다고 겁을 주고, 변방의 사람들은 나를 무력으로 협박하고 있습니다. 이 까닭으로 나는 다시는 사람에게 덕을 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간주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 그대의 말은 잘못되었소. 무릇 봄에 복숭아와 자두나무를 심어두면, 여름에는 그 그늘의 혜택을 보고, 가을에는 그 과실을 따먹을 수 있소. 그러나 봄에 찔레를 심게 되면, 여름에 그 잎을 써먹을 데가 없을뿐더러 가을이 되어도 그 가시밖에 얻을 것이 없소.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무엇을 심느냐에 달린 것일 뿐이오. 지금 그대가 심은 것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선택한 후에 심는 법이라오.”
『시경詩經』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큰 수레 뒤는 따르지 마소. 無將大車
그 먼지 몽땅 뒤집어쓰니. 惟塵冥冥 -한시외전/文侯之時/찔레나무를 심어놓고-

작년 이맘 때, 무릎수술로 병원 신세를 지다가 한 달여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적의 풍경을 기억한다. 위채도, 서재인 아래채도, 시멘트로 포장한 마당도 의구히 떠날 때의 익숙한 그 모습이었다. 시간은 조화옹이다. ‘익숙함과 결별’의 시간은 본디 그대로의 것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눈에 번쩍 띄게 변한 것도 있었다. 잡초였다. 발목 높이로 땅에 붙어 있던 잡초가 허리께까지 껑충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삽짝에서 열다섯 걸음을 떼야 마당에 닿는다. 이 삽짝길(진입로)과 맞붙어 교실 한 칸 넓이의 텃밭이 있다. 교실 두 칸 넓이의 마당은 시멘트 포장을 했지만, 텃밭으로 활용하려 다섯 평 정도는 맨땅으로 남겨뒀다. 그래서 집 안 텃밭은 30여 평이 된다. 그 텃밭에서 잡초들이 따뜻한 봄날의 햇볕으로 향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풀은 경작지나 도로가,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을 총칭한다. 그러나 농가의 입장에서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작물 이외의 모든 풀은 잡초이고, 경작지 이외에서 자라는 풀은 야초(野草)이다. 쑥은 야초이나 내 텃밭에 들어오면 잡초가 된다.
잡초는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를 제공한다. 이뿐 아니라 작물이 차지할 공간을 점령하고 작물의 영양과 수분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농작물 수확에는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잡초는 작물에 비해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하며 종자의 수명도 길다. 그러므로 농민이 ‘잡초와의 전쟁’ 운운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잡초’라는 단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말이다. 야초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게 아니다. 인간이 야초의 영역을 침탈해, 경계를 짓고 본토박이를 잡초라고 낙인찍은 것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했던 짓과 꼭 같다.
잡초도 인간과 동등한 자격으로 자연의 한 구성체이다. 제 몫의 역할은 한다.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개선하는 생물 필터작용을 한다. 토양에 무기질을 공급하고 야생동물과 벌레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다. 산불로 헐벗은 산을 복원하는 일등공신도 그들이다. 인간을 포함, 살아남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지 않는 생명체는 없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절멸시킬 능력도 권리도 없다. 그러므로 생명 간에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 곧 공존의 지혜를 갖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퇴원 이튿날, 맘먹고 마당가 텃밭의 잡초를 손으로 뽑아내고, 호미로 파내 모두 제거했다. 몇 아름이 되었다. 고추, 상추, 토마토, 가지 모종을 사서 심었다. 포기 사이로 뽑은 잡초를 깔았다. 잡초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 작물의 거름이 된다. 삽짝길가 텃밭은 몇 년 그랬듯 그냥 묵혀두었다.
올해 들어 채소와 콩과 옥수수는 자급하기로 작심하고 텃밭을 가꾸기로 했다. 하루 종일 일할 수는 없다. 해야 할 다른 일이 많다. 틈틈이 하기로 했다. 산책 시간을 호미와 괭이와 낫을 드는 시간으로 바꾼 것이다. 먼저 겨우내 말라죽은 잡초를 낫으로 베어냈다. 땀 훔치는 모습을 안타까이 보다가, 이웃은 제초제를 권유했다. 씩 웃음으로 대답했다.
생계를 위해 농산물을 생산해서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영농인에게는 제초제가 필수다. 요즘 제초제는 저독성농약으로, 사용기준만 잘 지키면 일정기간 내에 분해가 되므로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농약만 치면 전부 건강에 해로운 농산물로 오해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친환경이든 뭐든, 상품으로 나오는 농산품은 정도의 차이일 뿐 전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맞다.
제초제는 영농인의 몫이다. 내가 먹을거리의 안전성 때문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다. 땀이 필요해서이다. 낫으로 베어낸 잡초의 뿌리를 호미와 괭이로 틈틈이 시나브로 캐냈다. 며칠이 지나니 텃밭이 말끔하다. 괭이로 대충 골을 질러 구획을 했다. 고추와 토마토와 오이는 모종을 사서 심었다. 상추와 들깨는 씨앗을 뿌렸다. 옥수수와 강낭콩과 완두콩은 종자를 사서 묻었다. 어느덧 일상에 이들의 생장을 살피는 즐거움이 보태졌다.
생각해 보면, ‘잡초와의 전쟁’이란 아무나 쓸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우리 식탁을 책임지는 영농인만이 입에 올릴 수 있는 무거운 말이다. 여유로이 전원생활을 즐기는 귀촌인들이 이 말을 쓴다면, 자기 정체를 폭로하는 일이 된다. 곧, 자신의 관리 능력을 넘어서는, 넓은 면적의 텃밭을 소유한 욕심쟁이이거나, 하루 20~30분도 몸수고를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라는 자기고백이니까.
자연에는 잡초와 야초가 있다. 사람에게는 잡인과 야인이 있는 듯하다. 마음에 잡초가 무성한 이가 잡인이고, 그 잡초를 뽑아낸 이는 야인이 아닐까.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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