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리 키신저(1923~)가 99세의 나이에 새 책을 냈다. 『Leadership』(Penguin Press; 528pages; $36. Allen Lane; £25). 키신저는 닉슨과 포드 행정부의 국무장관과 국가안전보좌관이었고, 미-중 대탕트의 주역이었다. 『거대한 체스판』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1928~2017.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와 ‘냉전 종식의 설계자’ 브렌트 스코크로프트(1925~2020. 포드 및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좌관)와 더불어 키신저는 미국의 외교 3대 거물로 꼽힌다.
키신저는 현실주의적 외교의 대표적 인물이고 보수주의 정치인이다. 판단의 기준은 특정 사상이나 이념 혹은 정의심이나 감정이 아니고, 오직 이익이다. 키신저는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질서 구축의 방향성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밝혔다.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 존재할 뿐이다.”
키신저는 197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의 현실주의적이고 반인도주의적 행적으로 인해 ‘노벨 평화상’ 취지에 가장 걸맞지 않은 수상자로 언급된다. 특히 노엄 촘스키, 움베르트 에코, 리처드 도킨스 반열의 지식인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는 “냉전 시기 미국이 개입된 온갖 더러운 일들의 배후에 있던 전쟁 범죄자”라고 하면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쨌건 키신저는 독재자의 친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민중의 편에는 설 수 없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키신저는 『Leadership』에서 20세기 후반 6명의 지도자(아데나워 서독 총리, 드골 프랑스 대통령, 닉슨 미국 대통령,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대처 영국 수상)가 어떻게 국가의 방향을 바꾸었고, 세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했다. 보수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의 서평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때때로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s)을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저자의 태도가 불쾌하다, 라고. 그래서 그의 연구는 ‘편파적’(partial)이지만 ‘깨우침을 주는’(enlightening) 것이라고 요약했다. 진심을 먼저 밝히고, 다음으로 의례적 찬사를 덧붙였다고 필자는 받아들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현 국제정세에 대해 키신저와 인터뷰를 했다. 키신저는, 세계는 1차대전 전과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인공지능(AI)이 양 대국의 전면전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곧,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가속화하면서 “세계는 어느 쪽도 정치적 양보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균형에 대한 어떤 식의 교란도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전형적으로 1차 세계대전 직전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지도자들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는 잘못을 바로잡는 데 달려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은 전례 없는 도전이자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키신저는 몇 주 뒤에 100세가 된다. 인터뷰가 네 시간째로 접어들 무렵에 키신저는 특유의 반짝임으로 덧붙여 말했다. “나는 어느 쪽이든 여기 없을 겁니다.”
긴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 키신저의 말이 가슴에 딱 와 닿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생각나는 바’가 있다.
今年花落顔色改(금년화락안색개) 올해 꽃 지면 낯빛도 바뀔 테니
明年花改復誰在(명년화개부수재) 내년 꽃 필 땐 뉘 얼굴 그대로일까
…………
年年歲歲花相似(연년세세화상사) 해가 가고 또 가도 꽃은 비슷하지만
歲歲年年人不同(세세년년인부동) 해가 가고 또 가면 사람은 같지 않다네
- 송지문/유소사(有所思·생각나는 바 있어)-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