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 홍연 날개 달다
최 영 순
프랑스에 모나리자가 있으면 함안에는 아라 홍련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꽃 그게 연꽃입니다. 아라 홍련은 가야시대 함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아라가야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장소는 별구늪인데 옛날에는 썩강이라 불렀고 함안 연꽃테마파크는 제가 태어난 집에서 가깝습니다. 그래서 홍련이를 불러내어 소문내고 자랑자랑 하고 싶습니다.
별구늪은 함안 가야읍 개애재 마을과 더그내 마을 사이에 있습니다. 강태공이 세월을 낚듯이 씨앗이 칠백 년의 세월을 낚아 싹을 틔웠습니다. 꽃망울이 톡톡 저 여기요 그윽한 연꽃 향기에 고운 자태를 뽐내며 아라 홍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칠월 화려한 몸짓에 이끌려 까만 나비잠자리 노란실잠자리 돌징금다리 넘나드니 홍련이가 사방에서 온통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뜨거움을 견디며 즐기며 진흙 속에서 흰 버선발 비비고 서서 밤이 되면 꽃잎을 살짝이 오므리고 꽃받침에는 미세한 열이 있어 곤충이 짝짓기 딱 좋은 온도입니다.
달달한 달빛이 연애세포를 깨워주고 곤충들은 꽃잠 찾아 러브호텔 홍실홍실로 날아드니 안온합니다. 정자는 난자를 깨우는 신호를 보냅니다. 물방울을 가득 머금은 연잎 위에서 사랑비가 노래하고 참개구리는 참방참방 물놀이 한창입니다. 썩강에 연방 새 생명의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라 홍련은 2009년 함안 무진정 쪽에 있는 선상산성 유적지 내 연못 진흙 속에서 발굴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때부터 묻혀 있던 것으로 추정된 연씨가 700년 동안 잠자다 깨어나 꽃을 피웠습니다. 개량종과는 달리 꽃잎이 크며 엷은 분홍바탕에 선홍색의 끝단이 특징입니다. 개화 1일 만개 2일 낙화 1일 4일 동안 피어 있고 오전 6시∼11시 사이에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저는 시집 한 권 읽을 시간도 없이 살다가 나이 오십에 뒤를 돌아보니 못다 한 공부가 우두커니 남아 있었습니다. 방송대에 입학했지만 허리통이 심해 낮과 밤을 쪼개고 누워서 책 읽는데 너무 행복해서 웃다가 울고 그러다가 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내 삶과 주변에 여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시로 쓴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안타까움도 많았지만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내가 웃고 있을 때 우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집을 낸 뒤 한 지인이 고맙게도 독후문을 보내왔습니다.
최 시인은 어릴 적 나의 친구다.
어느 날 친구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주었다.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세월이 많은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인이 되었단다. 최 시인의 깊은 내면을 속속들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 둘 사이에는 없었던 것 같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던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다는 나지 않지만 전화기를 잡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아라 홍연』 시집이 날아왔다. 단숨에 시집을 읽었다. 언뜻언뜻 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유년의 단상에서 성숙한 여인을 통한 인내를 거쳐 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면서도 성실한 자태를 그대로 보여 준 시들로 꽉 차 있었다. 가끔은 웃음을 주기도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 시어들이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최 시인의 시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안에서 승화시켜 알맞은 빛깔과 향기로 피어낸 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온 긴 시간 동안 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을 최 시인의 삶이 시를 통해 훤히 그려졌다. 어릴 적부터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이렇게 큰 일을 냈구나. 최영순 시인! 시를 쓰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최 시인의 시는 말해 주었다.
어떤 시는 좀 난해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어떤 시가 그렇더라고 꼭 집어서 말해 줘야 하는데, 그렇게 꼭 집기가 좀 그렇다. 왜냐면 많은 것을 논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에 우리가 만날 수 있을 때 은유와 역설에 대한 얘기도 나누어 봤음 좋겠다.
시인 친구가 있어 너무 좋다. 아름다운 시어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주기 바란다. 사랑한다. 건필하시길.
- 「최 영순 시인의 시집 『아라 홍연』을 읽고」
『아라 홍연』은 한글을 몰라 읽지 못한다며 시는 거짓말이라는 할아버지와 짤막짤막하니 이야기 소리가 스며 있어 가슴을 찔러 준다는 지인과 멕시코 출장길에도 데려가 주는 친구까지 만났다. 우야꼬. 아라 홍연이를 만나는 이웃과 친구들 마음 뜨락이 더욱 풍성해지길 바란다.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해 답답했을 아라 홍연에게 더 힘찬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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