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78)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27장 딸의 남자①
대하소설 「신불산」(478)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27장 딸의 남자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5.25 06:40
  • 업데이트 2023.05.23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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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딸의 남자①

그날도 자갈치 제주 곰장어 집에 앉아 술을 마시며

“제매, 아프리카서해안에 아이보리코스트란 상아해안, 사실은 노예시장이던 곳에 아비장이란 큰 무역항이 있는 거 알지요?”
“알지. 알렉스 헤일리 원작 <뿌리>라는 소설의 첫 배경이 거기가 아닌가? 토미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쿤타킨테라는 검둥이소년이 잡혀 노예 선에 실린 곳이.”
“그렇지. 그러나 지금은 노예시장이 아니고 카사블랑카처럼 아주 서구화된 번화한 무역항이지. 어떤 면에서는 패션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하여간 그 쪽 여자들은 또 한 특별한 별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별미라니? 그 새까만 얼굴에 정구지처럼 짧은 머리카락이 기계 똥처럼 눌러 붙은?” “기계 똥이라니?”
“와, 우리 어릴 때 마른버짐, 소 버짐처럼 머리에 헌디가 나는 건데 그게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 바리캉기계에서 옮는다고 <기계 똥>이라는 헌디가 있었다 아이가?”
“그런 기 다 있었나? 좌우간 여자는 피부가 검을수록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또 부끄럼을 타거나 내숭을 뜨는 일도 없이 적극적, 정열적이고.”
“혹시 냄새는 안 나더나?”
“와? 마사이족 같은 유목민들이 집을 지을 때 바르는 소똥냄새라도 난단 말이가? 거기는 이미 도시라 향수냄새, 샴푸, 린스냄새는 나도 그런 냄새는 안 난다. 간혹 깨끗이 씻은 여인에게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싱그러운 냄새가 나는 것이 그게 아마 아프리카의 향기일 거야.”
“시방 믿거나 말거나 공갈 팡팡 치는 거제?”
“아니. 희망봉을 돌아 남아메리카공화국의 더반이나 케이프타운에서 만나는 흑백혼혈 보아족의 여성 역시 또 다른 남아프리카식의 향취가 있고 동부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의 여성은 마사이족의 기운이 느껴지고 외딴 섬 마다가스카르여자들은 바오밥나무 냄새가 나지.”
“어쭈, 거짓말도 할수록 는다더니 갈수록 태산이네.”

하는 순간 열찬씨의 전화벨이 울리더니

“아빠!”
“어이, 이기 누고? 우리 슬비공주아이가?”
“아빠, 지금 어덴데?”

어쩐지 흥분이 가득한 열띤 목소리라

“가시나. 니는?”
“아, 나는 엄마하고 시내에 쇼핑 왔는데. 아빠는 남근이 아저씨하고 자갈치서 곰장어 묵는다. 너거도 이리 오너라.”
“아빠, 그건 아닌 것 같고. 잠시 있어보소. 엄마랑 의논해보고.”

전화를 끊더니 한참 뒤

“아빠...” 

한층 은근한 목소리로

“엄마하고 나는 바로 집에 갈 끼다. 그런데 도연씨라고 어떤 총각이 찾아갈 기다. 너무 기죽이지 말고 단디 데꼬 노소.”
“뭐라꼬? 니가 사귄다는 총각 말이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이제 상당히 진도가 나간 총각이 있어 조만간 인사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그라면 단디 찾아오래 캐라. 길은 알란가?”
“아빠, <6시 내 고향>보고 다 안단다.”
“그래.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저 슬비친구 김도연입니다.”

십분도 채 안되어 깔끔한 차림의 청년하나가 곰장어집으로 들어와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서 와. 반갑구먼.”

열찬씨가 손을 내밀며 찬찬히 뜯어보니 하얀 피부에 맑고 큰 눈을 가진 말쑥한 얼굴이었다. 어깨도 딱 벌어지고 키도 적당히 컸지만 무엇보다도 방금 수염을 깎은 듯 귀밑에서 두 뺨을 흘러 턱에 이르는 파랗게 비치는 살갗이었다.

“야, 이 친구 봐라.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남근씨가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하하하. 자네가 바로 연산제일처녀 이슬비양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란 말이지? 잘 만났다. 너 같은 남의 집 딸 도둑놈은 오늘 혼 구멍이 좀 빠져야 되겠다.”

아이가 어릴 적 명절에 양정의 처가 쪽으로 놀러 가면 빙 둘러앉은 처 외사촌들이

“아이고, 조졌다. 어디도 안 빠지는 반듯한 지 엄마 다 놔두고 눈도 작고 코도 작은 저거 아부지는 우째 저래 빼 닮았노?”
“조져도 보통 조진 기 아이다. 완전히 불량씨앗이다!”

반듯한 어미를 닮은 구석은 전혀 없이 누가 봐도 증명사진이라고 할 제 아비 열찬씨를 빼닮은 것을 놀리면

“택도 없는 소리! 상놈의 자식은 반듯하고 예쁘게 낳아도 커면 클수록 풀 방구리가 되고 양반자식은 풀 방구리 같이 낳아도 커면 클수록 절세미인이나 영웅호걸로 자란다고 안 합디까? 쟈가 저래 봐도 경주 이씨 명문의 자손으로 연산동에서 제일가는 처녀, 연산제일처녀가 될 것입니다.”

무안해진 열찬씨가 얼버무리면

“택도 없는 소리!”

7, 8명이나 되는 4촌 처남, 처제와 동서, 처남댁들이 웃었고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전방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 명절이나 방학 때 나타나는 얼굴이 하얗고 귀여운 영순씨를 제일 좋아했던 헌범이란 외사촌오빠는 

“젠장! 우리 사촌 중에 제일 예쁜 영순이가시나가 저 시커멓고 못 생긴 언양촌놈을 뭐 보고 시집을 갔는지 모르겠네.”

눈가에 찌질한 눈물까지 보이며 중얼거렸기도 했다. 그 때 마침 출항중이라 이미 슬비까지 태어난 뒤에 열찬씨를 처음 만난 남근씨는 

“제매!”

하고 손을 잡고 열찬씨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자, 한 잔 합시다!”

자신보다 더 황당한 표정으로 거대한 콧방울을 바라보는 열찬씨의 눈빛을 피했는데 열찬씨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보자아, 아는 지 애비 안 닮았는가?”

하고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에구머니나!”

기겁을 하면서

“조졌다, 조졌어. 완전히 증명사진이다!”

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그 많은 사촌들 중에 어려서 동급생으로 같이 학교에 다녔고 당시에만 해도 형편이 괜찮던 집의 영순씨가 하루하루 밥걱정을 하는 남근씨에게 빵이나 과자도 사주며 역시 동급생인 사촌 헌우씨와 3총사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친했기 때문에 하선만 하면 영순씨네와 만나 술추렴을 벌이고 때로는 누님인 남숙씨가족과 엄청나게 비싼 식당에서 거드름을 빼며 밥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가끔 두 아이들을 봐 오면서 어떤 때는

“야, 우리 이서방 말이 맞는 갚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면서 이목구비도 자리가 좀 잡히고 얼굴윤곽도 뚜렷해지네. 역시 양반집 새끼가 맞는 갚다.”

하며 웃다가 한번은 마침 방학 날이라 두 아이가 성적표를 받아보고

“아이구, 슬비가 공부를 꽤 하네. 수가 더러 있고 나머지는 전부 우네!”

하다가 정석이의 통신표를 보고

“아이구야! 이건 뭐 우 하나 찾기가 어렵네. 모조리 수수수수 아예 수수밭이구나!”

하며 아이들과 열찬씨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영순아, 니가 시집을 가기는 잘 간 모양이구나. 나중에 이 아이들이 연산제일처녀, 연산제일총각이 되면 니는 큰소리 탕탕 치겠다.”

하고 웃은 적이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어 셋이 둘러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자네, 술을 좀 하는가?”
“아, 예에...”

긴장이 안 풀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총각에게

“아니, 이 친구 좀 봐라? 남의 집 딸 도둑놈 주제에 인자 보자보자 카이 술잔까지 안 돌려주는 술 도둑놈이기도 하네!”

잔뜩 신이 난 남근씨가 그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안 되지. 신병 때 안 조지면 언제 길을 들이노? 야, 김도연인지 김서방인지 임마, 일어서!”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원산폭격을 시킬까, 한강철교를 시킬까, 낮은 포복, 높은 포복을 시킬까?”

잔뜩 신이 나서

“어이, 김도연이등병. 열중 쉬엇, 차렷! 열중 쉬엇, 차렷! 임마 내말 안 들리나? 열, 차, 열, 차!”

군에도 안 갔다온 사람이 어디서 본 논산훈련소 조교흉내를 내고 도연씨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쩔쩔 매는 것이었다.

“엔간히 좀 하소. 총각이고 사우고 내 사위지, 어데 이 핀 사우가?”

열찬씨가 가로막고

“자, 인자 술을 엔간하니 아지매 밥이나 뽂아 주소.”

분위기를 수습하는데

“저, 아버님! 노래방으로 모실까요?”

도연씨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슬비로부터 열찬씨가 노래방에 가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곰장어 집을 나와 자갈치 안길에 붙은 노래연습장을 가리키자

“아버님, 기왕이면 노래방에 가시지요. 마이크도 좋고 과일안주라도 나오는...”

도연씨가 머뭇거리자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신이 난 남근씨가

“자, 출발합니다.”

구덕로를 건너 피프광장을 지나 광복로까지 건너더니 부평동의 어느 노래방을 가리켰다. 단골집인 모양으로 

“어이, 마담! 술은 많이 묵었으니 맥주 몇 병에 안주 하나, 그라고 아가씨도 한 사라!”

호기롭게 소리치는 것이 단골집인 모양이었고 곰곰 생각해보니 자신도 언젠가 한번 와본 집인 것도 같았다. 막상 아가씨가 들어왔지만 열찬씨나 도연씨는 쳐다볼 형편도 아닌지라 소 닭 보듯이 일부러 눈길을 피하는데

“자, 딸 도둑놈 니부터 노래 한곡 해 봐라! 노래실력이 시원찮으면 바로 이거야! 알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이고

“아버님도 한곡 신청하시지요?”

하고 머뭇거리던 도연씨가 먼저 마이크를 잡는데 “푸후”

그만 열찬씨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반주소리를 들으니 조영남의 <최진사 댁 셋 째 딸>인 것이었다.

“어라! 이 친구 봐라! 아예 들이대는구먼. 들이대!”

남근씨의 감탄과 달리

 

건너 마을에 최진사 댁에 딸이 셋이 있는데
그중에서 셋 째 딸이 제일 예쁘다는데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