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7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27장 딸의 남자②
대하소설 「신불산」(479)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27장 딸의 남자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5.26 06:20
  • 업데이트 2023.05.29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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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딸의 남자②

“어라! 이 친구 봐라! 아예 들이대는구먼. 들이대!”

남근씨의 감탄과 달리

건너 마을에 최진사 댁에 딸이 셋이 있는데
그중에서 셋 째 딸이 제일 예쁘다는데

열찬씨의 기대가 일순간에 무너졌다. 우선 음정이 흔들리더니 연이어 박자가 틀리고 화면에 뜨는 가사마저도 틀리는 것이었다. 긴장해서 그러려니 싶어도 평소 실력이 그 정도인 모양이었다. 노래 제목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아 연습도 꽤나 했을 텐데 그 정도라면 어쩜 수업시간에 음악시간이 제일 힘들던 학생인 것 만 같았다.

“아이구, 잘 했다!”

그래도 박수를 치며 마이크를 받은 열찬씨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한곡 하는데 공무원 30년에 화류계 30년이 이미 넘어선 열찬씨도 긴장이 되어 박자를 몇 번 놓친 뒤에

“아이고, 그 것도 노래라고? 장인사위 실력이 똑 같네.”

남근씨가 마이크를 잡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로 도우미의 탄성으로 홀을 가득  채우고 서야 끝이 났다.

“자, 이쯤서 헤어지지. 처남은 집이 괴정동이고 자네는 신평동이라하니 둘이 지하철을 타든지 택시로 가든지 하고 나는 연산동으로 가겠네.”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니 열한 시였다.

“아닙니다. 제가 택시로 아버님 모시지요.”

도연씨가 택시를 잡는데

“매제, 마 그래 하소. 나는 따로 만날 사람도 있고.”

새끼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남근씨가 먼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도 인파와 불빛과 소음으로 웅성거리는 이 거대한 도시, 아침까지 잠들지 않는 이 불야성의 거대한 항구가 평생 바다 위를 떠도는 마도로스인 그에게는 바로 고기 반 물 반인 어장, 수많은 여인들이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지느러미를 너울거리며 다가오는 요지경인 것 같았다. 방금 어느 여인에게 감미로운 저음으로 전화를 하는 것인지도 몰랐고 어쩌면 방금 전에 탄성을 지르며 안기던 예쁘장한 도우미를 만나러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버님, 저, 저는...”

연산동 행 택시 안에서 도연씨가 더듬거리며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영순씨에게 대충 들은 이야기로 같은 세원화학자재과에 다니는 직원인데 사람이 반듯하고 착해서 슬비하고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제 전무가 된 대경이아빠 김병우씨도 잘 되었다고 찬성을 했다는 것이었다. 세삼 훤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열찬씨에게

“저는 뭐 크게 가진 것도 없고, 우리 아버님이 몸도 약하시지만...”

그래도 회사에 다니는 어머니와 간호대학을 나와 동의의료원에 다니는 여동생과 셋이 똘똘 뭉쳐 조금씩 저축도 하고 있고 신평동 시장골목에 자그마한 집도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잘 알았고. 너무 조급히 서둘거나 진도를 내지 말고 차근차근 의논해 보세. 당사자들은 물론 가족과 주변사람들도 조금씩 알아가는 셈 치고.”

차가 아파트에 닿아 열찬씨만 내리고 도연씨는 도로 신평동을 향한 뒤

“어, 취한다.”

짧은 입구 길을 걷는 동안 과연 내가 벌써 사위를 볼 나이가 되었느냐, 그렇다면 벌써 나의 전성시대는 끝이 나는 것인가 기분이 묘한 열찬씨가 초인종을 누르니

“아빠!”

긴장한 눈빛의 슬비가 빤히 올려다보고

“어떻덩교?”

딸보다 더 긴장한 어미에게

“마 괜찮데.”

무심하게 대답한 열찬씨가

“슬비 니는 인자 자러 가고.”

아이를 들어가게 하고

“물이나 한잔 도!”

저녁에 있었던 일을 되짚으며 천천히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신 우짤랑교?”
“우짜기는?”
“결혼시킬 거요, 말 거요?”
“결혼이라? 그래 속담에도 큰일 나면 큰일 치라는 말이 안 있나? 저거끼리 맘에 있으니까 데꼬 온 거 아이겠나?”
“거기 어데 꼭 조건이 맞고 합당한 자리라서 그라겠능교? 당신이 하도 말끝마다 니는 와 남자친구도 없고 시집갈 생각도 한하느냐고 재촉을 하니 마지 못 해 데꼬 온 기지.”
“거기 어데 재촉한다꼬 될 일이가? 저거 맘이 있으니 그렇지?”
“그래도 조건이 너무 빠져. 여보 나는 솔직히 반 맘에도 안 차요?”
“뭐가 그래 까달시럽노? 사대육신 멀쩡하고 눈코입귀 붙었으면 되지.”
“하여간 사람이 너무 수월해서 걱정이야. 아니 간이 작은 거지. 아아들 대학가는 거도 부산대 갈 놈은 동아대로, 서울대 갈 놈은 연세대로 보내더니 인자 아들 결혼까지 하향지원을 하고 난리야!”
“하향지원은 무슨 하향지원? 인물만 멀쩡하더구만. 솔직히 우리 슬비야 그래 잘난 인물이 아이다 아이가? 맨 날 내 닮았다고 구박하듯이.”
“그런 말 마소. 우리 슬비가 어때서? 키 크고 날씬하고 얼굴도 가름한데다가 피부도 희고 그라고 뭐보다도 아가 순하고 착하고 부지런하고 넘의 속도 잘 살피고 또 무엇보다도 맺고 끊고 사리도 분명하고 힘들 때는 견딜 심도 있고 강단도 강하고.”
“우리 새끼지만 가가 그래 잘난 아란 말이가? 암만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귀엽다하지만 당신 심해도 너무 심하네.”
“그기 어데 내가 지아낸 말잉교? 어릴 때부터 가를 아는 대경이엄마, 혜경이엄마는 물론 같이 자모회하던 엄마들, 애순이언니, 순기언니는 물론 조기회 병수엄마, 웅이엄마도 괜찮은 처녀라 했고 연천회 최순애씨 그 부잣집에서도 선 한 번만 보자꼬 통사정을 다 했다 아잉교?”

하긴 양산에서 탄탄한 중견기업을 경영해 재산이 몇 백억도 넘는다는 영순씨의 계원이 되든 말든 자기의 장남과 맞선이라도 한번 꼭 해보자는 것을 

“엄마, 인생이 꼭 돈만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잖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단지 부잣집아들이라고 선을 보러가는 것은 너무 이상한 것 아니야?”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친형제처럼 지내던 김청길씨가 자기 장남이 미국으로 유학을 할 때 제발 며느리로 좀 달라고 통사정을 하던 일도 생각나

“그라고 보이 우리 딸이 참 괜찮은 처녀기는 하네. 내가 어릴 적 연산제일처녀라고 한 말이 헛말이 아니네. 내 다른 것은 몰라도 착하고 깔끔한 성격하나는 그만하면 됐다싶어. 또 무엇보다 그 애는 특별히 잘 하는 것은 없지만 어디 하나 심하게 빠지는 부분도 없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이 늘 순탄하다는 것이지.”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기분이 좋아진 열찬씨가

“그라면 당신은 뭐가 그래 맘에 걸린단 말이고?”

“뭐 한 두 가지라면 말을 안 하지. 집안형편도 그렇고 장래비전도 그렇고 또 학력이나 기술, 하다 못해 머리도 그렇고...”

영순씨가 줄줄이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첫째 학력 면에서 슬비가 동아대학행정과라고 제법 센 과를 나온데 비해 도연씨는 경성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것으로 보아 수능점수는 물론 두뇌가 떨어진다는 것이며

둘째 신평시장 골목에 명색 3층 집을 가지고 있다지만 옛날 시내의 철거민들이 집단이주한 정책이주지라 대지가 열 평도 안 되는 부실한 건물로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니 경제력도 약하고

셋째 베트남에 기술자로 다녀온 아버지가 사고로 몸을 다쳐 걸음을 못 걸을 정도로 신경이 위축되고 머리도 맑지 못해 정상 활동이 어려우며 회사에 다닌 다는 어머니역시 어디 내세울 만큼의 사돈감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고향이 전라도인데다가 친척들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 가 한국에는 딱 도연씨 한 가족만이 외갓집에 기대어 살고 있으며 하나뿐인 시누이로서는 시집이 너무 외롭고 한미하다는 것이었다.

 

“그 참, 그렇구나!”

한참이나 곰곰 생각하던 열찬씨가

“자,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보자. 우선 집안이 한미하고 외가에 기대어 산다는 문제는 우선 당신과 꼭 같은 형편이니 아예 문제에서 제외하고.” 하는 순간

“뭐라 카요? 그래서 내가 더 집안 너른 신랑감을 찾는다 아잉교?”

“무슨 소리? 동병상련이면 서로 밑질 것 없는 본전이지? 우째 나는 <다람 풍(風)>해도 니는 <바람 풍>하라는 말이고? 또 집안 넓어봤자 행사 챙기고 밥상 차릴 일만 많지 뭐 특별히 존 기 있나?”
“그 기사 그렇지만...”

간신히 한 고비를 넘기고

“학력이나 지능은 따지지 말자. 무슨 복인지는 몰라도 우리아이들이 공부로 속 썩일 아이들이 아니니 2세들도 중간은 안 나오겠나? 대신 총각 인물도 훤하고 성격도 온순하니 그만하면 된 걸로 하고.”
“...”
“집안 살림이 넉넉잖다는 것도 우리 하고 우째 그래 똑 같은지 피차 바라지도 말고 무리하지도 말고 형편대로 하면 안 되겠나? 우리도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듯이 저거도 차츰 살림불리는 재미도 느끼도록 말이야.”
“말은 그래도 그 기 어데 쉽나? 우리가 고생했다고 아아들까지 일부러 고생하면서 갈 끼 뭐 있소?”
“허허,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 안 카나?”

억지로 넘어가면서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바깥사돈 될 사람이 월남에서 사고로 몸을 다쳤다는 점인데 그게 도연씨 태어나기 전인지 후인지, 또 교통사고 같은 원인이 분명한 사곤지 혹시...”
“혹시라니?”
“아, 아무 것도 아이다.”

고엽제후유증으로 조금만 지쳐도 맥을 못 추고 일과시간에도 가끔 침대에 누워 숨을 돌려하는 동료 이과장과 고엽제피해자라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던 참전전우회용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이 문제만은 확실히 해야 된다. 내일 슬비보고 사고시점하고 사고경위를 정확하게 알아오라 캐라!”
 하고 마무리를 하는데

“그라면 다 됐단 말잉교? 26년 키운 딸 거름 밭에 갖다 내삐리는 것도 아이고 딸 한 번 쉽게도 준다.”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영순씨가 혀를 끌끌 찼다.

“딱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지.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당사자들 마음이지.” 

물 컵을 비우고 일어서는 열찬씨에게

“마음이라니? 그 거사 저로 마음이 있으니 데꼬 온 거 아잉교?”
“그 기 아이라 그런 아쉬운 조건들이 있어도 모두 감수하고 시집을 갈 용의가 있는지, 후제 살기가 힘들고 후회가 되어도 부모원망은 않을지 그걸 물어보고 확답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