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시의 독자
하 순 이
시로 집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재능은 없으면서 꿈은 크게 꾸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이 주는 희망과 생동감이 이루는 과정의 힘듦을 잊게 하는 것이리라.
존경하는 스님께서는 흔한 말 ‘인연’을 이렇게 법문하셨다.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내 소견으로는 말미암은 것은 인이고 그렇게 되는 것은 연으로 들렸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나에게 말미암은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졸업 후 줄곧 매달렸던 사교육의 언저리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사랑으로 연민으로 화로 원망으로 많은 감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이 말을 해서 무엇하나 양가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었다. 오롯이 쓰는 일에만 집중해도 모자라는 새내기는 생각까지 많아 시집으로 가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졌다.
생업에 몰두하며 보낸 시간들 싫기만 했다면 긴 시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가르치는 아이들 글쓰기 실력이 늘고 나도 함께 채워진다는 뿌듯함이 좋았다. 평생교육원 가까이서 오래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학우들은 시를 닦는 도반이었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수행이고 삶의 이유라고 했을 때 시를 써서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끄적거리는 일기는 나 혼자만의 것이라면 키우고 다듬어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생각들이 정확한 언어로 표현되었는지 자신이 없었다. 기껏 써 놓은 시를 통째로 바꿨다가 처음 어휘에 미련을 못 버리고 되돌리기도 한 시간들, 글을 쓴다는 욕심을 가지는 동시에 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시집이 출판되었다. 시는 발표되는 순간 내 것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아쉬움과 시원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내 시 소재의 특성이 있어 시집의 주인공이 되어준 아이들을 떠올리며 손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로 주소를 받고 안부도 물었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또래들이라 시를 읽고 나서 생각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을까 한 손 건너 시집을 전달해 준 제자가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을 받기 시작해 고등학교 진학해서도 나를 찾았던 아이였다. 긴 시간이 흘러 인사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얼른 축하해 주고 싶어 연락드렸다고. 타지역에 취업이 되어 시집을 늦게 받아 읽어 보게 되었고 궁금해서 읽어 본 시집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으며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며 이모티콘과 함께 썼다. 본인은 가끔가끔 선생님 생각이 났는데 선생님도 자신을 기억해 좋은 선물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스물아홉으로 아들 녀석과 나이가 같아 쉬는 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간식을 먹던 시간도 기억하고 있었다. 안부를 물으면서 잘 지내는 거 알았고 추억의 한편에 너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답장해 주었다.
제일 궁금한 안부는 보육원에서 자원봉사하며 만났던 ○○이었다. 시집의 제목 조금은 질투 주인공이다. 돌림병 유행으로 봉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내 궁금증만으로 소식을 묻기에는 망설여져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바람이 닿았을까, 근무하던 직원 분을 우연히 만나 안부를 들었다. 가까운 대학에 진학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벌며 열심히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감사했다. 항상 너를 생각하며 응원했다고 문자와 함께 시집을 보냈다. 시험치고 일찍 하교한 날 잘게 썰어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다들 잘 먹어서 식은 밥까지 다 볶아도 내 몫은 없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던 그 기억 나도 있었는데 반가웠다. 시는 잘 안 읽고 모르지만 천천히 두고 읽겠다고 문자 보내왔다.
산다는 것은 추억을 쌓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은 선택하고 집중해서 결과물을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앞에 놓여진 숙제를 빨리 하고 싶어 하는 학생처럼 쫓기며 생활했다. 나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허상을 보며 어리석었던 시간들은 돌아보면 늘 후회스럽고 만났던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시를 배우고 쓰면서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고 크게 위로 받은 사람은 나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감사하게도 내 시의 독자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추억으로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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