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2호-수필】 간짓골 소녀가 별에게 - 차수민
【장소시학 2호-수필】 간짓골 소녀가 별에게 - 차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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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26 04:30
  • 업데이트 2023.05.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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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짓골 소녀가 별에게


차 수 민

 
마당 한 켠
간장독 된장독 눈을 감고
딸깍거리던 밥상 그릇 포개지면
그제서야 별들이 반짝입니다.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한여름 소녀가 서 있는 집 마당은 밤하늘 그늘막입니다. 하나, 둘, 세어가며 북두칠성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마당을 빙 돌았습니다. 

‘왜 우리 동네에는 휼륭하고 이름난 사람들이 없지? 내가 크면 알려지지 않은 그런 울 동네 사람들을 찾아 줄 거야. 별아. 근데 난 자신이 없다, 혼자서는, 이끌어 줄 니가 필요해.’

그날 이후 간짓골에선 낮에도 별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길에서 반짝였습니다.

 

4학년 가을 운동장 플라타너스 아래, 평교사의 적은 월급에서 빼내어 준 돈 봉투를 받던 날. 중학교 1학년 야윈 나에게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라고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내어준 보건소 선생님. 마산 자유수출지역 돌아가는 벨트 어지럽던 낮에는 뭔가 잘못될까 봐 겁먹은 새처럼 일하다가, 밤에는 학교에 앉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던 단발머리 교실 창가. 부산 친구 집에 얹혀 살며 아르바이트해 마련한 등록금을 잃어버린 내게 선뜻 등록금을 내준 방은이. 방은이는 그 며칠 전 아버지를 여의었었는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렇게 무수한 별들이 내 옆에 반짝였습니다. 내가 반짝인 게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어릴 때 각인된 간절한 꿈들은
아가씨의 구두 뒤를 따라다녔고
아줌마의 주걱 뒤에 매달렸습니다.

 

어른이 되어 무심히 하늘을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먹구름 가득하고 비 오는 하늘엔 별은 없을 것이라 단정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공부여서 마흔이 넘어 대학원 수업을 들었습니다.

‘저리도 많은 시인들이 있는데 궂이 내가 글을 써도 될까? 멋진 시도 아니고 더 잘 쓰지도 못하는데 나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활짝 피었다가 스스로 떨어지는 봄, 경남대 월영 연못에 앉아 벚꽃처럼 환히 피우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시를
왜 써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보이는 대로 말해 보라 했습니다.
찻잔은 하나인데
모두 답이 달랐습니다.

 

이제 삶을, 사랑을 묻지 않습니다. 지금 나를 묻습니다. 내게 길을 열어준 별들에게. 무엇보다 너머에서 너머를 보는 별에게 눈물 어린 진심으로, 사랑으로 미소로 답합니다.

빛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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