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86)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29장 딸을 보내며③
대하소설 「신불산」(486)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29장 딸을 보내며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6.05 06:50
  • 업데이트 2023.06.04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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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딸을 보내며③

한참이나 걸어 내려가 대구탕 집에 자리를 잡고 영순씨에게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해장하러 왔다. 당신도 슬비 데리고 오소.”
 
하고 대구탕 다섯을 시키니 음식이 나올 때쯤 도착해 나름대로 다들 속을 다스리느라 훌훌 국물을 떠 마시는 사이 차츰 영순씨와 슬비, 두 아낙도 얼굴이 풀리며 자연스레 이야기가 오고가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먼저 자신의 카드를 내민 영순씨가
 
“당신, 능력 있네. 멋져. 장인어른 될 자격이 충분하네.”
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결혼식 전날 밤이었다. 드디어 내 딸이 시집을 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허랑해
 
“당신은 괜찮나? 나는 꼭 뭘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침을 안 먹고 출근한 것처럼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열찬씨가 영순씨를 바라보는데
 
“내사 마 저 애물단지 하나를 내 보낸다 카이 속이 다 시원하다.”
 
애써 태연한척 하다가
 
“나는 딸이 하나라 그렇지만 우리 엄마처럼 딸이 넷이나 되는 사람은 힘도 많이 들었겠지만 맘이 서글퍼서 우쨌는지 모르겠네. 엄마가 되야 엄마 속을 안다 커디마는 딸을 치아보니 또 딸을 치아본 친정엄마 속을 알겠네.”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었다.
 
“큰일 앞두고 우는 것 아이다. 우리 어무이 딸 넷을 치워도 한 번도 우는 것 못 봤다. 마음 단단히 묵어라. 그라고 뭐 빠진 거 없는지 단디 챙겨봐라. 장모님 18번 맹키로 우짜든동 별탈이 없어야 될 거 아이가?”
 
하는데 영순씨가
 
“쉬이!”
 
신평과 김해에서 미리 온 두 누님이 이미 잠자리에 든 작은 방문을 가리키며
 
“내사 마 우짤지 모르겠다. 말을 하면 시끄럽겠고 안 할라캐도 그렇고.”
“와?”
“세상에. 영주 큰집에서 형님은 물론 아무도 안 온다고 전화가 왔다 아이가?”
“와?”
“형님은 몸이 찌부둥하고 우현이는 기분이 우울하고 숙현이는 직장이 바뿌다 안 카능교?”
“세상에나? 몸이 좀 찌부둥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직장이 바쁘다고 작은집조카나 사촌동생결혼식을 안 오면 우짜노??”
“글키 말임더. 나는 우리 큰 동서 속은 도대체 알 수가 없심더.”
 
하며 둘 다 키가 막히는데
 
“안자고 무슨 이야기가 그래 많노?”
 
화장실에 가려는지 둘째 순찬씨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혹시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싶어, 만약 그렇다면 이 밤중에 영주에 전화를 걸어 고함을 지르고 따지고 마지막엔 저 죄 많은 딸을 용서하라는 기도와 함께 찬송과 주기도문까지 해야 된 까봐 둘이 조마조마 하는데
 
“아따 호부 딸 하난 있는 거 가지고 무슨 걱정이고. 나는 아들딸 너이나 출가시키고 아직 막내딸 미옥이가 서른이 넘어도 눈도 깜짝 안 한다. 다 하느님이 정해준 배필이 있어 때가 되면 의례히 시집을 갈 끼라꼬.”
 
하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는지라
 
“우리도 인자 자러 갈까?”
 
부부가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마침내 결혼식아침이 밝았다. 거실에 나오자말자 마침 화장실에 가는 슬비에게
 
“우리 딸 잘 잤나? 친정에서 마지막 날 좋은 꿈은 꾸고?”
 
괜히 마음이 심란하던 열찬씨가 묻자
 
“아아, 신경 쓰이구로 그런 것 마로 묻소?”
 
새벽부터 일어나 식장에 가져갈 폐백음식이랑 식후에 일가친척들만 따로 식당에서 곰탕을 먹을 때 곁들일 떡이랑 홍어회를 챙기던 영순씨가
 
“목욕하고 머리하고 신부화장할라카면 바쁠 끼다. 어서 준비해서 나가자.”
 
하고
 
“자, 형님들도 어서 나오소. 다문 떡국이라도 아침이라고 한 술 뜹시다.”
 
하며 식탁을 훔치는데
 
“어제 밤에 회캉 과일캉 많이 묵어 넘어가겠나마는 그래도 한 숟가락 떠볼까?”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방을 나오던 순찬씨가
 
“새야, 니도 얼른 나오소. 슬비애미 비뿌다.”
 
거기까진 통상적인 대화로 잘 넘어갔는데
 
떡국에 참기름과 김 가루를 뿌려 잘 저어 첫 숟갈을 뜨려다 문득
 
“올케야, 영주에서는 연락이 없더나? 많고 많은 시간 중에 우리처럼 미리 오면 될 낀데. 늙은 기 방구석에 처박혀서 알을 깔 것도 아니면서 뭐 한다고 당일 날 바쁘게 올 끼고?”
 
하는 순간 영순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기어이 불통이 터진 것이다. 그런 걸 쉬이 넘어갈 순찬씨도 아닌 바에 미리 터진 것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며 열찬씨가 숨을 죽이는데
 
“저어, 영주서 전화가 왔는데 말입니다. 그게...”
“그래. 혹시 못 온다 카더나?”
“...”
눈을 내려 깐 영순씨가 한참이나 머뭇거리는데
“그 야시 같은 니 동서는 몸이 아파서 못 온다 카제?”
“예.”
“그라면 우현이, 숙현이는 온다 카더나?”
“아니예.”
“우현이는 마음이 안 편하고 숙현이는 일이 바빠서 못 온다 카제?”
“예.”
“거기다 지 에미가 시키서 그런 거다. 못 오는 기 아이고 안 오는 기다. 오가기 귀찮고 돈 들고 와봤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기 골치 아파서 그렇다.”
 
강원도 안 가도 삼척이라더니 귀신처럼 사태를 꿰뚫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부조는 얼마나 보낸다카더노?”
“형님이 20만원 보낸답니다.”
“아따, 너무 많아 배터지겠다. 너거는 얼매씩 했더노?”
“대름하고 우리는 50만원씩 두 번 했지요.”
“아이구, 맏이라는 기 잘도 한다. 그래서 장히 복을 받겠다.”
 
문득 한 마디 갑찬씨도 끼어드는데
 
“자, 큰일 치면서 그런 잔잔한 일 가지고 신경쓰지 맙시더. 마 그러려니 하지요.”
 
열찬씨가 수습해도 여전히 화를 못 이기던 순찬씨가
 
“주여!”
 
숟가락을 놓고 기도에 들어가려는데
 
“형님, 지금 기도 시작하면 미장원이고 결혼식이고 다 늦습니다. 신부화장하러 갈 때 형님들도 저하고 같이 가십시다.”
 
영순씨가 황급히 말을 끊는데
 
“할렐루야...”
 
여느 때와 달리 긴 한숨으로 마무리한 순찬씨가 비로소 얼굴을 펴며 일어났다. 미장원에 같이 가자고 한 말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미리 집안을 청소하고 잔치음식을 준비하고 당일 날에도 미장원에서 머리를 올리고 한복을 차려입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는 어미와 달리 자녀결혼식 날 아비는 그저 머리만 잠깐 손보면 아무 할 일이 없다더니 아침 숟갈을 놓고 머리를 감고 난 열찬씨는 더는 할일이 없어 무료히 TV를 보면서 반여동의 영신씨 부부가 자동차로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벌써 객지생활이 5년이 넘어 아침을 잘 안 먹는 것이 습관이 된 정석이가 일어날 기척이 없어 방문을 두드려 깨우고 정석이는 돈 만원씩이 든 답례봉투뭉치를 담은 가방을 챙기게 하고 자신은 각종 모임이나 멀리 서 온 손님들에게 줄 봉투를 챙겨 안 호주머니에 단단히 넣는데 자동차가 도착했다.
 
“보소!”
 
예식장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던 영순씨가 손짓을 해 복도 한 귀퉁이로 부르더니 능숙한 솜씨로 열찬씨의 머리를 빗어 스프레이를 푹 뿌리더니
 
“됐심더. 가서 손님들에게 인사합시다.”
 
하며 접수대 앞으로 향했다. 사무실의 김동웅 계장과 남기택 주무 오범용 서무가 미리 기다리고 있어 둘이 접수의자에 앉고 김동웅 계장이 주변을 살피기로 했다. 예식장의 부조봉투를 슬쩍하거나 신문지가 든 봉투를 여러 개 접수하고 답례봉투를 받아가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30분 전인데도 벌써 수십 명의 하객들이 웅성거리고 더러 인사를 하는지라
 
“자, 시작하지!”
 
영순씨와 정석이를 불러 한 줄로 서니
 
“아이고, 이 과장님 축하합니다!”
 
놀랍게도 시청의 김염훈 재무국장이 맨 선두에 서있었다.
 
“아이구, 국장님!”
 
평소 직접 마주 볼 기회조차 없는 한참이나 상관인데다 따로 청첩장도 보내지 않았는데 참석해서
 
“바쁘실 텐데 이래 직접 오시다니 감사합니다. 봐라, 시청에 재무국장님이시다.”
 
하고 황송하게 영순씨와 가족들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아이구, 우리 동장님!”
 
이번에는 부산일보 김상훈 사장이 손을 내밀었다.
 
“아이구, 사장님!”
 
손을 내밀자
 
“아이구, 가동장님! 요새도 시 많이 쓰시나? 사모님은 여전히 예쁘시네.”
 
하면서 정이 뚝뚝 흐르는 눈빛을 보냈다. 어느새 로비 가득히 사람이 차고 기다란 접수 줄이 이어져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간단간단하게 이어지던 대화가 간혹
 
“야, 이럴 때 아니면 못 보겠네!”
“형님, 오랜만입니다!”
 
연산동 3공구 신혼시절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던 세탁소의 진외6촌형 김원규씨 같은 손님과 잠깐 대화를 나누느라 점점 줄이 밀려 나중에는 웬만한 사람들은 그냥 눈인사와 함게 손만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접수대에서도 일손이 바빠 일일이 봉투를 열어보고 겉장에 액수를 표시하던 것을 그냥 번호만 매기고 서랍에 밀어 넣고 그걸 100매씩 묶어서 가방에 담고 있었다. 수필집 <달팽이와 부츠>를 배부하는 일은 박기도씨와 정병진씨 문화관광과 팀들이 자원해서 맡은 모양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