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91)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1장 불안한 조짐①
대하소설 「신불산」(491) 제6부 배반의 계절 - 제1장 불안한 조짐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6.10 05:00
  • 업데이트 2023.06.11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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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안한 조짐①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수고했습니다!”
“그 동안 고생했습니다.”

발령장을 받으러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축하를 했다. 총무과장에서 의회사무국장으로 승진한 이무일국장는 물론 기획감사실장에서 총무과장이 된 이승암 과장과 열찬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석자가 승진이 아니면 영진을 한 셈이라 모두의 얼굴에는 기쁨과 생기가 넘쳤다. 몇몇은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오늘의 승진이나 영전이 있기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긴긴 인고의 세월에 대한 회상에 젖은 모양 같기도 했다.
 
이윽고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김형호 구청장이 들어오자 부구청장과 3명의 국장이 뒤를 이어 들어오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발령장을 받을 때마다 악수를 하며 축하를 하는데
 
“이 과장, 아니 이 실장님. 이제 우리 서구의 핵심보직을 맡았으니 아낌없이 열정을 불태울 기회가 왔습니다. 건투를 기대합니다.”
 
부구청장이 환하게 웃으며 축하했다. 16명이나 되는 과장들 중에 같이 술자리를 가지는 몇 안 되는 술친구의 영전이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사실 전에 술자리에서 한두 번 말하기를 ‘앞으로 기획감사실장이 되면 기획, 예산, 조직, 법무, 감사 등의 업무에 같이 손발을 맞추어 어느 구에 못지않은 성과를 내자고, 필요하면 자신이 본청의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많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일도 있었으니까.
 
“그 동안 수고 많았네.”
“열심히 해 보게.”
 
앞의 두 사람에게 웃으면서 발령장을 건네던 김모구청장이 열찬씨 차례가 되자 표정이 굳어지며
 
“잘 해야 된다이!”
 
이를 앙다물며 말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예에. 고맙습니다.”
 
하는 열찬씨의 가슴이 철렁했다.
 
발령장을 들고 세무과로 돌아오니
 
“축하합니다. 실장님!”
 
김동웅 주무계장을 필두로 차례로 축하의 악수를 건네고
 
“우리 세무과는 이제 잊어뿠다. 과장님이 감사실장이 됐는데 무슨 걱정이고?”
“근무평정 때 많이 좀 챙겨 주이소.”
 
공치사를 늘어놓고
 
“호랑이에 날개를 달았습니다.”
“욱일승천의 기세를 계속 이어가십시오.”
“조만간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축하전화가 답지 했는데 관할 서구는 물론 멀리 시청이나 사업소, 중구, 연제구, 동래구에서도 벌써 알려진 모양이었다. 정신없이 축하전화를 받으면서도 아까 김형호 청장의 싸늘한 표정, 뭔가 못 마땅해 입술을 깨물거나 인상이 찌푸려지면 좀체 푸는 법이 없이 오랫동안 못마땅하다 못해 노골적으로 미운 표시를 드러내기도 서슴지 않아 ‘한 번 찍히면 끝장이다.’라고 소문이 난 게 못내 마음에 걸려 화장실에 가는 척 민원실로 나와 창구를 한 바퀴 빙 돌아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아예 청사마당으로 나와 인근주민들의 산책로로 꾸민 숲길을 비잉 한 바퀴 돌아 사무실로 들어오다 멈춰 서서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 사무실이 아닌 2층 복도를 향했다. 감사인사를 겸해 청장의 눈치도 살피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보일 생각이었다.
 
“청장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뻑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그래. 열심히 하겠다고?”
 
노란 금테안경사이로 실눈을 뜨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뜨악해진 열찬씨가 숨을 죽이는데
 
“이 봐, 이열찬감사실장!”
 
정색을 한 김형호 구청장이
 
“세무과장, 묵고노는 자리에 가서 초심을 잃은 것이 아닌가? 들리는 이야기가 좋지 않아.”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초심을 잃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1월초 업무보고 때만 해도
 
“세무과는 이열찬과장만 믿고 있을 테니까 열심히들 해서 구민을 위한 사업비나 많이 확보해주세요.”
 
아주 흔쾌한 표정으로 신임을 표했는데 싶어 근래 자신이 무엇을 눈밖에 벗어났는지 곰곰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데
 
“시나 쓰고 시인행세를 하면 그게 훌륭한 공무원인가?”
 
또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문화관광과장이던 시절 온갖 예술가와 대학교수를 만나는 자리마다
 
“이 친구가 생기기는 촌놈 같아도 책도 열심히 보고 시도 곧잘 쓰는 시인으로 우기 구 살림밑천이지요.”
 
자랑사마 말하고 당시 시인협회장이던 정순영동명대총장과 셋이 술을 마시며 시적 감흥에 젖어 문학적 공감대를 나누기도 한 사람이 아닌가, 그 자신도 시는 물론 산문에도 상당한 문조예가 있어 문학적 자질과 관심이 상당한 구청장으로 소문이 날 만큼...
 
“술은 왜 그래 많이 마시고 담배는 왜 그래 골초라고 소문이 났는가? 이과장 옆에는 담배냄새가 나서 옆에 서기도 힘들다면서?”
 
순간 열찬씨의 뇌리에 얼핏 무엇인가가 떠오르며
 
“청장님, 제가 근간 세무과에서 조용하게 시간만 때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니고...”
 
말을 하면서도 ‘이게 도대체 왜 이럴까? 술이라면 서구청 직원 누구보다도 세고 또 즐겨 저녁마다 관내 유지나 구청간부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구청장, 아니 열찬씨를 비롯한 초대민선실패시의 <떠도는 주사>들과도 늦도록 술을 마시면서 어려울 땐 불운을 한탄하거나 성공했을 땐 호연지기를 자랑삼지 않았던가?’
 
뭔가가 잘 못 꼬였는데 그 원인이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해
 
“청장님, 누가 뭐랬는지 몰라도 오해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담배는 올해 2월말에 끊어 지금까지 반년 이상 입에 댄 일이 없습니다.”
 
조심스레 말하고 기색을 살피는데
 
“그럼 됐고!”
 
더럭 화를 내더니
 
“내 얼마나 잘 하는지 두고 볼 거야! 기획감사실장 앉고 싶은 사람이 어데 자네뿐인 줄 아나? 알아서 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억지로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오는 열찬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모함에 걸린 것 만 같은 불안, 어떻게든 자신을 젖히고 먼저 서기관이 되려는 몇 몇 동료들의 청탁이 먹히지 않자 마타도어작전으로 열찬씨를 헐뜯는 무리들이 입을 맞추고 온갖 비방과 밀고를 일삼았다는 불길한 짐작이 밀물처럼 눈앞에 밀려오는 것이었다.
ⓒ서상균

중책인 만큼 단 하루나 한 나절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튿날 오전 바로 사무용품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기획감사실로 부임했다.

 
“축하합니다. 실장님!”
 
대부분의 직원들이 반색을 하는데 비해
 
“...”
고개만 까딱한 김일환 기획계장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무엇이 못마땅한 건지 아니면 그동안 달리 밥 한 끼, 술 한 잔 나눈 일이 없이 소원하게 지낸 것이 미안해서 그런지 팔척장신의 거한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또 만났네. 김계장! 집안은 편하고 제수씨는 잘 있나? 대감이도 잘 커고?”
“...”
 
또 눈빛만 한 번 번쩍이고 대답이 없었다. 흔히 동작이 느리다는 충청도 사람은 사실은 느린 것이 아니라 은인자중 내심을 드러내지 않고 만사 심사숙고 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신중하다 못 해 무언가 못 마땅하고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것만 같아보였다.
 
그러나 그간 둘의 관계와 함께한 세월이 어떤 사이인가, 같은 감사계의 계장과 주무로 있으면서 자신이 운전하던 자동차가 잘못 되어 1년간의 긴 투병과 평생 다리를 저는 장애를 입은 사람. 어찌 보면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미안해서 보낸 위로금마저 같이 공무를 보다 우연하게 생긴 사고로 책임을 따질 처지가 아니라면 되돌려준 사이가 아닌가? 그런데 그 과묵한 사내는 달리 고맙다는 말도 없었고 그 이후 얼굴이 마주치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을 생명이 다시 살아난 재생동기라면서 친형제처럼 더 다정해 눈빛만 봐도 정이 뚝뚝 흐르는 김남규씨와 달리 그냥 고개만 까딱 할 뿐 달리 반갑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고 어떤 때는 일부러 마주치기를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직원들 계배치는 어떻게 하지?”
“...”
“기획감사실과 기획계가 구청의 종가와 장손 격인데 살림꾼인 기획계주무를 누구를 앉힐꼬?”
“살장님, 잘 안다 아닙니까?”
 
볼멘소리를 한마디를 던지고는 또 말이 없었다.
 
“그래. 특별한 의견은 없다 말이지?”
 
회의용 원탁에 앉아 기획, 예산, 조직법무, 감사계의 4개계별로 직원배치계획을 짜던 열찬씨가 다른 자리를 다 메꾸고 기획계, 감사계, 예산계의 주무 자리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 세 자리가 기획감사실내에는 물론 구청전체를 놓고도 상당히 비중이 있는 자리로 어디에 누굴 기용하고 그 자리가 잘 돌아가고 아니고 가 업무추진은 물론 청 내 직원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전문성이 강한 예산계주무는 8급시절 예산계에 근무했던 박성균씨가 적임이었고 남은 두 자리 중 기획계 역시 8급 때 기획업무를 보았던 이영수씨가 있었지만 그대로 하고 나면 감사계가 문제였다. 하나 남은 7급 김형탁씨가 주로 동사무소와 구청의 현업부서에 근무해 기획이나 감사 등의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기획이든 감사든 적어도 한두 달은 관계법규와 업무의 흐름과 당면사항 등을 열심히 익혀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계장이 직접 업무를 챙기거나 보충해주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었다.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러운 열찬씨가 직원배치를 보류하고 청 내를 한 바퀴 빙 돌아 들어오는데
 
“실장님!”
 
현관에 섰던 하용주 감사계장이
 
“실장님, 감사계주무가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오면 큰일 납니다. 선처해주십시오.”
 
낮은 목소리로 부탁하는 걸
 
“그렇제? 그런데 중요하기는 기획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여간 생각해 봅시다.”
“실장님만 믿습니다.”
 
그러고 점심시간이 지나가 한 시가 급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김 계장, 다른 의견 없제?”
 
하며 완성한 배치계획을 건네주며
 
“기획계는 김 계장이 배테랑이나 김형탁 주무를 당분간 살살 가르치며 일해보세.”
 
하며 표정을 살피는데 발개진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김계장이 메모지를 받아 책상위로 툭 던져버리고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열중했다. 오후일과가 끝나 퇴근시간이 되었는데도 직원배치가 되지 않자 실내 분위기가 웅성웅성 뭔가 심상찮은데
 
“실장님, 직원배치를 해주셔야 당장이라도 일을 할 것 아닙니까?”
 
하용주 감사계장이 불만을 나타내자
 
“자, 직원들은 퇴근하고 계장님들 회의 좀 합시다.”
 
원탁으로 사람을 모으고
 
“아시다시피 지금 기획계와 감사계주무의 배치가 업무경험유무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두 계장님 중 하나가 양보하고 한동안 주무를 가르쳐야 하는데 두 계장님들이 다 양보하지 않습니다. 또 내가 보기에도 각자 요직인 자기부서의 업무추진을 위해서는 당연한 욕심이기고 하고...”
 
운을 뗀 열찬씨가
 
“두 계장님, 할 말 없어요?”
 
둘러보니
 
“...”
 
눈만 한 번 번쩍한 김일환 기획계장은 말이 없고
 
“아니, 아까 실장님이 그래 하자고 안 했습니까?”
 
하용주 감사계장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내가 언제 그래 하자고 했나? 생각해보자고 했지?”
 
열찬씨가 다시 좌중을 훑어보며
 
“그럼 제 3자인 이종철 예산계장님 생각은?”
 
조언을 구하자 이종철 계장이
 
“기획, 감사 두 업무가 다 중요하지요. 그래서 부서명이 기획감사실 아닙니까? 그러나 업무의 중요도보다는 아무래도 우리 실의 상징이랄까 선임부서인...”
 
조심스레 이어오던 말을 하용주계장과 눈이 마주치자
 
“이는 전적으로 실장님 알아서 할 일이지, 제가 뭐...”
 
입을 다물었다.
 
“할 수 없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아무래도 구정 전체를 주도하는 기획계에 경험자 이영수씨를 배치하고 하용주 감사계장은 김형탁씨가 익숙해질 때까지 당분간 수고 좀 해주세요.”
 
하고 일어서는데
 
“나는 인자 실장님 하고 말도 안 할랍니다.”
 
화가 단단히 난 하용주 계장이 같이 소주나 한잔 하자고 붙잡는 예산계장을 뿌리치고 사무실을 튀어나갔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