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에 이화여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가기 전에 이화여대에 지하 건물이 준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볼 지하 건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했지만 나름대로 상상했었습니다. “땅을 파고 땅 안에 지하건물이 들어 섰겠구나!” 하지만 이화여대 입구를 지나자마자 제 눈에 나타난 지하건물은 제 뻔한 상상을 완전히 빗겨나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땅을 파고 땅 안에 지하 건물이 들어 선 게 아니라 땅을 갈라 땅 좌우로 건물이 세워진 것이었지요. 지하 건물이더라도 지하 건물답지 않게 햇빛이 들어오는 지하건물었지요. 전 그런 건물을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저에게 미적 쾌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울을 지나기 전에 찍은 이 건물은 생각의 충격(think shock)이 아니라 생각의 짜증(think anger)을 불러 일으켰지요.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자세히 모르겠으나 건물의 모습은 미적 쾌감을 주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검정 하양 빨강 색깔의 조화도 맞지 않는 것같고, 형태의 조화도 없는 것같습니다. 그냥 건물의 용도에 맞게 대충 뚝딱 조립된 가건물같습니다. 하지만 저 썰렁한 대형 건물을 짓느라 얼마나 많은 설계도면이 만들어졌으며, 얼마나 많은 건축자재들이 들어갔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회의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노동을 했을까요? 그리고서 만든 게 고작 저 뻔한 거대 흉물이라니? 아마도 조만간 저 건물 앞에 보이는 비닐 하우스 땅도 저런 비슷한 건물들로 꽉 차지 않을까요?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깝깝해집니다. 생각이 안타까워집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걸으면서 가진 머릿속 생각들을 100여 회에 걸쳐 전시하려고 합니다. 어디를 갔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하였고가 아니라 무슨 생각을 했는지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부제목을 여행기가 아니라 생각기라고 했습니다. 원래 생각은 한자가 없는 순우리말이지만, 생각기(生覺記)란 제가 만든 한자어입니다. 「서울-부산 도보 생각기」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으면서 생긴(生) 깨달음(覺)의 적음(記)이지요. 걸어보니 낙관주의자인 제게 오늘 글처럼 즐거운 생각보다 아픈 생각들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kaci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