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늙은 농부의 죽음①
집안벌초를 갔는데 아무래도 사촌형 종찬씨가 수상했다. 평소 같으면 벌초꾼들이 모여 조를 짜서 헤어지기도 전에
“어이, 부산동생 왔구나? 오늘은 같이 음복할 술꾼이 있어서 좋겠다.”
하면서 굳이 열찬씨와 한 조가 되어
“인생살이 뭐 별거 있나? 그저 막걸리 한 잔, 소주 한 병에 시름을 풀어놓고 살다 가는 거지. 그러니까 인생이란 일장춘몽이 아니라 한 잔의 술이란 말이지.”
새까만 얼굴, 덩그런 콧대가 뿜어내는 바위처럼 완강한 옆얼굴이 이제 어느 산모롱이에 서 있는 이끼낀 바위나 어느 마을입구의 고목처럼 너무나 세월에 잘 녹아들어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된 것만 같아
“형님, 칠십이 넘어 인생의 완숙기를 맞이하니 말씀도 참 잘 하시고 외모도 그럴 듯 해 인생의 경륜이 팍팍 묻어나옵니다. 그렇지요. 그 인생이 한 잔의 술이란 말, 그러나 어디 인생만 한 잔의 술입니까? 사랑도 한 잔의 술, 눈물도 한 잔의 술, 후회도 한 잔의 술...”
“어이 부산동생 니는 너무 청산유수다. 죽은 일찬이 동생은 머리가 천재라 소침장이 침놓듯이 단칼에 조지는 한 마디고 인물 좋은 울산 백찬이 동생은 말 한마디 안 하고 그저 눈치껏 따라오는 착한 동생인데 열찬이 니는 너무 사실이 많다.” 하고는 서로가 머쓱해 잠자코 산을 오르다
“그라이 이 뭔가 하는 가시나 노래에 동생 니 말처럼 사랑이란 한 잔 술이련가 하는 구절이 있었구나?”
전에 없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신기해서
“아, 예. 형님 그건 이자연의 노래 <찰랑찰랑> 이라는 겁니다. 형님 라디오 많이 듣는가 베요.”
“그래 오토바이 타고 논에 가면서 늘 듣제.”
하면서 작동 뒷산의 산소 두 기(基)의 풀을 말끔히 베고 내려오면서 하얗게 익어가는 으름을 몇 가지 꺾어서 점심 때 모이기로 한 매운탕 집에 도착해
“아나, 너거 묵어봐라. 으름이 맛은 별로 없어도 여름 한 철 별미다.”
하고 자리에 앉아 매운탕이 끓기도 전에 소주를 한 잔 따라 열찬씨에게 건네며
“자, 동생 미리 한 잔 묵자. 매운탕 익어서 국물 먼저 먹고 소주를 마시나 소주를 먼저 마시고 한참 기다려 매운탕 국물을 먹으나 그 기 그 거다.”
하며 잔을 들더니
“에취!”
오만상을 찌푸리며 잔을 내려놓는지라
“형님, 천천히 마시소. 그 나이에 술 묵다가 새알 걸리면 아이들 보기도 멋쩍고.”
열찬씨가 걱정스레 바라보는데 얼굴 가득한 진땀을 훔치고 다시 잔을 입에 댄 종찬씨가
“안 되겠다. 이상하게도 잔만 입에 대면 속이 틀어 오르네. 아침에 뭐 잘못 묵고 얹친는가?”
하며 이제야 끓기 시작하는 국물을 떠 밥을 말더니
“허어, 그 참! 술꾼이 술 안 묵고 밥만 묵을라카이 참 안 넘어 가네.”
혀를 끌끌 차며
“아나, 동생 니나 많이 묵어라!”
열찬씨의 잔을 계속 채워주다 식사가 거의 끝날 때쯤 소주잔 밑바닥에 술을 한 방울 부어 간신히 마시며
“아이구, 인자 살 것 같다. 속이 다 시원하다.”
하더니 다시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한참이나 기침을 했다.
벌초를 마치고 영순씨의 차로 돌아오면서 점심때 일을 이야기하니
“큰 일 났네. 꼭 우리 아부지 말년 같네. 아주바님 인자 얼마 못 살지도 모르요.”
하는지라 안 그래도 내내 찜찜하던 느낌이 금방이라도 눈앞에 닥칠 것 같은 불안으로 다가오는 지라
“와? 그 정도면 많이 심한 거가?”
“술꾼이 술 안 넘어가면 알만 한 거 아잉교? 여북하면 그 좋은 술을 묵지는 못 하고 부어주기만 했겠능교?”
“안 되는데. 그라면 안 되지. 아직 아아 너이를 하나도 못 치우고 소복이 그냥 데리고 사는데.”
“어데 아 뿐잉교? 논이고 밭이고 소고 여지저기 벌리 놓고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 된 것도 없고...”
“설마 괜찮겠지. 한여름만 넘기고 산들바람 부는 추석도 넘기면 잇따라 겨울도 넘기고 그러다 보면 아아들도 한 둘 출가도 시키고 또 몇 년을 살 끼고.”
“그라문 얼마나 좋겠능교? 그러나 그건 당신의 희망사항이고 영주 아주바님 돌아가시는 것 안 봤소? 환갑도 안 되서 죽기도 하는 판에 칠십이 넘은 분이 몸에 병을 실고 살아날 재주가 있겠소?”
“야, 큰일이다. 내 위에 사람들이 자꾸 죽고 천장이 자꾸 얇아진다. 이라다가 금방 내 차례가 오는 기 아이가?”
“그래 걱정 되면 마 당신도 술 언간이 마시고 몸 좀 챙기소.”
하면서 돌아와 그해 추석에 진장에 성묘를 가면서 열찬씨를 부모처럼 따르는 어느 여직원이 몸보신하라고 사다 준 제법 그럴듯한 수삼세트를 들고 가
“형님, 요거 푹 고와 묵고 어서 낫아 설에는 내하고 음복 한 잔 하입시다.”
“그래. 고맙다.”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뒤 한밤중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데름가?”
난데없는 목소리에 한참이나 헷갈리다 마침내
“아, 진장형수! 형수, 이 늦은 밤에 우짠 일이요?”
“데름, 데름 새이가 시방 몸이 많이 안 좋다.”
“안 좋기는 얼마나, 어떻게 안 좋는 데요?”
“벌초하고 나서 언양 보람병원에 가서 기관지 나쁘다고 천식 약 타나 묵었는데 인자 너무 심해서 부산의 큰 병원에 가서 입원시키라 카더라.”
“그라면 낮에 입원시키지 와 이 한밤중에?”
“데름 새이가 입원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다 밤중에 영 죽을 판이 되서 말이다. 지금은 숨이 가빠 앉아있지도 못 하고 네 방구석을 매며 또골또골 구분다.”
“큰일 났네. 잘못 하면 일 당하는 수가 있심더. 어서 119 불러서 부산으로 내려오라 카소.”
옆에서 듣던 영순씨가 끼어드는 지라
“119는 와? 그 집 아아들 너이 중에 서이가 차 있다 안 카더나?”
“그래도 승용차로 싣고 간 환자는 응급실로 바로 안 받아주고 119를 타고가야 바로 받아준다 안 카덩교?”
하는 지라
“형수, 아아들 시켜서 119 불러서 바로 내려오소. 나도 나가께.”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한 10분 뒤에
“데름요, 부산에 병원은 어데로 가면 되겠능교?”
“병원이라?”
한참을 생각하던 열찬씨가
“기사 보고 개금 백병원으로 가자 카소. 거가 언양서 나들기도 좋겠네.”
하고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백병원응급실로 도착하니 벌써 응급실 밖 소파에 조카들이 보이는 지라
“형님!”
응급실의 병상으로 찾아가 눈을 맞추니
“동생, 미안테이. 나는 인자 안 될랑갑다.”
그 왕성한 기백이 다 어디 갔는지 사슴처럼 애잔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내가 괜히 니를 욕을 비제. 그래도 집안에 뭘 좀 알고 사람같이 사는 사람이 동생 니뿐이니 우짜겠노?”
하고는 눈을 감았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아이구, 상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미련을 부리다니. 아침 아홉시 일과가 시작되면 병실로 옮길 테니까 입원수속 밟으세요.”
하며 혀를 끌끌 찼는데
“선생님!”
애가 타서 묻는 형수에게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정도로 위험한 것은 아니니 우선 안정을 시키고 편안하게 해주면서 몸을 도우라고 했다.
이렇게 한숨을 돌리자
“형님. 인자 급한 불은 껐는데 지금부터가 문제겠지요. 조카들도 직장에 댕기는 사람들은 다 출근을 시키고 병원에는 저하고 형님이 남아서 입원절차를 밟읍시다. 그라고 당신도 옷 갈아입고 출근해야 되니 내캉 바로 집에 갑시다. 이 양반 출근 시키고 올 때까지 형님은 막내 혜숙이 하고 여기 기다리시고.”
하는데
“강숙이, 순우, 관우는 회사출근 해야 되고. 참 혜숙이도 집에 짐승이 있으니 소밥 주러 가야겠네.”
형수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택시타고 가께. 당신은 입원수속 끝나고 병실에 옮기고 나서 집에 가든지.”
하고 모두들 개금동 언덕길을 내려왔다.

종찬씨가 칠팔 살이 되면서 한창 골목길을 쏘다니며 병준이, 복만이 같은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며 삼촌 기출씨가
“세상도 참 희한하제? 우째 죽은 지 작은아부지들하고 똑 같이 빼닮은 아이가 다 태어났을꼬?”
하고 신기해하다가
여남은 살이 넘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보내면 한 달을 못 견디고 뭔가 안 맞는다고 집에 돌아와 죽치는 것을 보고
“희한하게도 닮았제? 저라다가 저 삼촌 또출이, 재출이형님처럼 장가도 못 갈 것 아이가? 저 우장바우처럼 부품하고 보릿집빼까리처럼 어설픈 사람한테 어느 집에서 딸을 줄꼬?”
비명에 간 형님들을 생각하며 걱정했는데 아닐까 다르랴 수물 두 살이 되어 군에 갈 때까지 여태껏 머슴을 살면서 무얼 했는지 모아둔 돈 한 푼도 없이 입대를 해 논산훈련소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어 날마다 밥을 굶고 두들겨 맞는다고 하소연을 하다 자대배치를 받고는 휴전선에 보초를 서면서 날마다 월북하라고 유혹하는 이북방송에 신물은 나지만 먹는 것은 넉넉해 배는 곯지 않는다고 읍내의 상찬씨에게 편지를 보낸 게 엊그제인데도 휴가를 나오자말자
“삼촌은 군대에서 매일 비행기만 탄다. 인자 삼촌보고 비행기삼촌이라 캐랴.”
일곱 살 사촌동생 백찬이와 다섯 살 조카 용우에게 건빵 한 봉지씩을 꺼내주고 얼마나 품을 잡는지 금방 두 아이는 물론 온 동네에 <비행기아재>, <뱅기아재>로 소문이 났다. 제대를 하고 얼마간 빈둥대다 다시 삼동의 출강이란 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 몇 해가 지난 뒤 설을 쐬러 온 걸 보고 기출씨가
“야야, 니 나이가 몇이고?”
“내년에 서른입니더.”
“그래 새경 받아 좀 모아놓은 것은 있고?”
“예. 그저 조금.”
하면서 얼굴이 벌개지는 게 대충 짐작이 가서
“머슴살이 고생만 해도 혼자 몸으로는 저축이 안 된다. 다문 자갈논 서마지기라도 징기고 살라카면 먼저 장개부터 가거라.”
“야.”
하고 삽작 앞을 나가다
“잔아부지, 그렇지만 자갈논 서마지기도 없는 사람한테 누가 딸을 줄라카겠능교?”
“하긴. 그래도 인연이 될라카면 되는 수가 다 있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누구는 배필을 내고 누구는 안 내고 할 택이사 있나? 멀리 말고 개작은 데서 잘 살펴봐라. 인연이 될라카면 어줍잖은 데서 배필이 생길 수가 있다.”
“야.”
하고 떠났는데 팔월추석에 만나 진장산소에 성묘까지 다 마치고
“저, 작은아부지!”
“와?”
“작은아부지 말대로 개죽은 데서 사람을 하나 찾았심더.”
“그래 잘 됐네. 머슴사는 출강사람이가?”
“야.”
“그래 처녀는 참하고 집안도 너르고.”
“그런데 그게...”
“와? 말 해봐라!”
“호불 어무이 밑에 남매뿐인데. 살림도 넉넉잖고.”
“장가는 내리 혼사를 하라고 처갓집 못 사는 것은 흠이 안 된다. 아직 젊은데 열심히 살아서 논밭 늘리고 살면 되지.”
“그런데 키도 작고 사람이...”
“어데 별 사람이 있나? 키 작은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좌우간 가실하고 집안 간에 선이라도 한번 보도록 해라.”
하고 돌아갔는데 추수가 끝난 동지 경에 어머니 상남댁 작은어머니 명촌댁동서가 출강까지 근 30리에 가까운 길을 걸어가 처녀를 보고 와서는
“사람이 작다작다캐도 그런 짱꽁 같은 처녀는 평생에 처음 봤네. 그라고 인물도 생기다 말았는지 어지간히 없더라.”
질정 없는 상남댁은 아무 말이 없고 찔뚝 없는 명촌댁이 한마디를 던지는 것을
“제대로 된 처녀가 우리조카에게 오겠나? 마 인연이니 하고 장개를 보냅시다.”
도무지 말이 없는 형수를 바라보니
“몰라. 작은 아부지가 알아서 하소.”
남의 말 하듯이 하는 지라 그 길로 종찬씨를 불러
“성이 신(辛)씨면 명색이 양반꼬랑대기라고 이것저것 따질 텐데 읍내 신근수씨한테 가서 사성을 쓰서 가져가거라.”
해서 혼사가 이루어졌는데 새 색씨가 처음 시가에 오던 날
“아이구, 신부가 와 저렇노? 작아도 너무 작다.”
“키 작은 사람이 얼굴은 야무지게 생기는 법인데 조막만 한 얼굴에 눈코도 다 작네.”
마을 아낙들이 혀를 내두르고 벌써 아이가 세 살이나 되는 사촌 제수씨 김해댁도
“아이구, 우리 아주바님 인물 아깝어라! 키도 어째도 덩치도 코도 얼마나 크고 사내다운데 쪽지비를 잡아도 오지기 잡았다.”
하면서 혀를 찼다.
소장사로 돈을 벌어 읍내로 이사 간 웃각단 박두용씨 집을 거저다 시피 헐케 사서 살림집을 차리고 온갖 잡일과 공사판을 기웃거리며 돈을 벌었지만 제 땅 한 평이 없으니 금방 살림이 불어나지도 않고 큰딸 강숙이와 장남 순우가 태어나자 때마침 일어난 중동 붐을 타고 별 기술이 필요 없는 비계공으로 리비아로 돈벌이를 떠났다. 그렇게 한 3년 고생을 하고 돌아온 종찬씨는 그 유명한 마비스안경으로 한 가닥 하고 다녔지만 중동에서 벌어온 돈으로 약간의 땅을 마련하면서 살림 맛을 알고 조금씩 착실해지기 시작해 아들딸 넷을 거느리고 작은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집안에서 내려오는 진장 밭에다 2층집을 짓고 아래채에 소를 먹이며 해마다 재산을 늘리며 이제 버든마실에서 제법 산다는 축에 들고 있었다.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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