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96 -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고?
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96 -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고?
  • 박기철 박기철
  • 승인 2023.09.15 06:45
  • 업데이트 2023.09.1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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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겁고 피곤하다고?

아마 비가 안 왔으면 낙동강변 옆 경작지 길로 쭈욱 부산까지 갔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날씨는 쨍쨍했는데 막판에 와서 비를 만났습니다. 비만 왔어도 괜찮았지요. 이 드넓은 경작지에서 걷는데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면 꼭 저한테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아서 간담이 서늘했지요. 그래서 어서 낙동강변 땅을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리고 비가 멎을 때까지, 아니 번개가 멎을 때까지 번개를 피할 공간에서 좀 쉬었다 가야하겠다고 생각해서 웬 다리 밑에서 좀 쉬었지요. 그러다가 비는 안 멎어도 번개는 좀 잠잠해졌길래, 다시 걸었습니다. 기찻길도 아니고 낙동강변 경작지 길도 아니고, 다시 산길이었지요.

산길을 꼬불꼬불 걷는데, 이렇게 깊은 산이 부산 가까운 기찻길 옆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요. 강원도 깊은 산 못지않은 깊은 산이었지요. 기찻길이 생기기 전에 뱃사공이 모는 배를 타지 않으면 모두 이 산길을 넘어 부산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새벽길에 차는 어쩌다 한 대씩 유령처럼 다니고, 비는 쏟아지고, 가끔 멧돼지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요. 적막한 산에서 듣는 멧돼지 울음소리는 마치 성난 귀신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끔찍하게 들렸지요. 그렇게 밤새워 산길을 넘어 드디어 물금읍이라는 표지판 아래 섰습니다. 비는 그치지 않았어도 부산에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사진을 한방 찍었지요. 사진 속의 저는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원망하는 듯합니다. 등산화인 신발은 이미 비에 다 젖어 질퍽거리며 무겁습니다.

비에 흠뻑 젖어 물금에 도착

그래도 물금에 오니 기분은 좋았지요. 오래전 이곳에는 배의 정거장인 나룻터(津)가 있어서 물금나루라고 했지요. 낙동강 하류와 상류를 잇는 요지였을 겁니다. 경부선 무궁화 열차를 타면 부산에 도착하기 직전에 물금에서 서지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등산으로 따지자면 고지가 바로 저기인 셈이지요. 천리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온 것이지요. 먼동이 터옵니다. 그제서야 비는 멈추었지요. 비갠 새벽녘 아침은 참으로 상쾌합니다. 바로 산 아래 사람 사는 동네가 보입니다. 비맞은 생쥐마냥 몸은 젖고 무거워도 기운이 납니다. 확실히 사람은 기분에 좌우되나 봅니다. 기분이 좋으니 기운이 생깁니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kaci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