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8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3장 늙은 농부의 죽음③
대하소설 「신불산」(58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3장 늙은 농부의 죽음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9.17 05:30
  • 업데이트 2023.09.14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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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늙은 농부의 죽음③
“아들이 장가를 가더라도 가게는 손 떼면 안 되지. 그라면 우리 몽룡이형님, 열찬이형님이 무슨 재미로 대운산에 오겠노? 남창장 국밥집에 뚱띠아지매가 없는데.”
 
로구로 박사장도 끼어들고
 
“그래 내가 중신은 연구해보겠지만 며느리 보더라도 가게는 나오소. 나이나 몸피가 인자 한두 해만 더 지나면 딱 명물식당 욕쟁이할매로 어울릴 긴데. 국밥보다 아지매 욕 묵는 재미로 손님들이 몰려들 긴데. 어데 가서 욕하는 연습도 좀 하고.”
 
열찬씨가 나서자
 
“야야, 니 중신해 준단다. 어서 뜨신 국물하고 맥주 두 병 내 온너라.”
 
아줌마가 신명을 내었다.
 

그날은 열차시간이 되어 상세한 이야기를 못 하고 다음 주에 또 대운산코스로 등산을 하고 장터국밥집으로 와서 술판을 벌인 뒤 열찬씨가 따로 아주머니와 마주 앉아

“중신을 하자면 우선 사람을 믿어야 될 텐데 누부야는 장사 잘 하는 국밥집에 은행 다니는 장남에 차남 줄 아파트도 다 마련됐다고 하니 그만하면 됐고 자 이게 내 명함이요.”
 
하고 명함을 꺼내주니
 
“아이구 구청과장이면 되기 높은 사람이제? 면장보다도 높제? 암 믿고말고. 내 말만 들어보고도 그만한 사람인줄 알았지.”
 
하고
 
“그럼 처녀는?”
 
하고 바싹 다가앉아 목에 침을 꿀꺽 삼키며 쳐다보는지라
 
“사실 우리 고향 언양에 사촌형님 한 분이 계시는데...”
 
하면서 진장의 종찬이형님의 형편과 마흔이 넘은 큰 딸과 서른여덟쯤 되는 막내딸을 이야기하자
 
“나이가 비슷한 큰 딸도 좋고 나이가 좀 어린 막내딸도 다 좋지요. 아재 조카라하니 집안이나 사람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단 우리 집에 시집오면 우선 주방이나 홀에서 음식을 만들고 장사를 하는 걸 배워서 나중에 지가 차고 나가면 되는데 그것도 걱정을 하나도 할 것 없이 내가 일일이 가르쳐 줄 기고. 좌우간 맨몸으로 와도 사람하나만 오면 만사오케이니 그래 알고 한분 알아보소.”
“예. 언제 언양에 갈일이 생기면 슬쩍 한번 떠보지요.”
 
하니 그날은 기어이 음식 값조차도 받지 않고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가게명함을 주면서
 
“아재요, 지발 하고 사람하나 살리는 셈 치고 중신 좀 해주소.”
 
신신당부를 했고 2주 뒤엔가 다시 국밥집에 가니
 
“아재, 그래 이바구는 해 봤능교?”
 
득달같이 달려오는지라
 
“우짜노? 요새 우리 사무실이 바빠서. 지난주에는 바빠서 등산도 못 했다 아잉교?”
“그렁교? 다음 주에는 여게 오지 말고 꼭 언양에 갔다 오소. 안 되면 내가 차비랑 술값이랑 다 대주께요.”
“그럴 필요는 없고 내 안 되면 주중에라도 꼭 갔다 오께요.”
 
하고 목요일에 좀 일찍 일과를 끝내고 언양행 버스를 타고 진장에 갔지만
 
“동생 니가 우짠 일고?”
 
하고 두 내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더니
 
“글쎄. 우리는 아직 아아들 결혼이 그래 급하다고 생각을 안 해 봐서. 때가 되면 다 지 알아서 배필들을 만나겠지.”
“산다고 바빠서 돈이고 혼수고 시집갈 준비를 아무것도 해놓지를 않고 그런 마음을 묵어본 일이 없어서 말이요.”
꼭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형님, 형수 들어보소. 저 아들이 모두 나이가 마흔이 넘거나 다 됐는데 한집에 너이나 노총각, 노처녀가 들끓어서 우짜겠단 말잉교?”
“그 거사 당사자 저거가 가겠다 캐야 보내든지 오그리든지.”
“아니 지 입으로 시집장가간다고 말하고 가는 사람이 어데 흔하덩교? 특히 여자는 안 간다, 안 간다 하다가 부모에게 떠밀려 가서 아들딸 낳고 잘만 사는 기 태반이 아닝교?”
“...”
“그라고 형님형수 나이가 얼망교? 벌써 칠십이 넘어 언제 무슨 일이 있을 지도 모르는 판에 언제까지 내 물건이라고 안고 있을 낑교?”
“...”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내외는 니가 와 남의 집 이야기를 하느냐 오히려 기분이 나쁜 것처럼 띵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암만해도 장사하는 집에 내 딸을 줄 수는 없다. 옛날부터 선생하고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묵는다 안 카더나?”
 
조그만 형수가 이를 앙다물며 돌아앉았다.
 
다음 주 장터국밥집에 가니
 
“아재, 우째 됐노? 생각해보겠다 카덩교?”
“예. 그게...”
“와? 싫다카덩교?”
 
꼭 울 것만 같은 표정이라
 
“워낙 신중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라. 좌우간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고 다음 명절 때 우리 내외가 가서 또 한 번 졸라댈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보소.”
“야, 아재만 믿소.”
 
하면서 그저 열찬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고 설명을 하자 영순씨는
 
“얄궂네. 애가 타서 목을 맬 사람이 진장이지. 남창은 아니구먼. 그라고 총각이나 아지매가 사람도 좋고 살림도 넉넉하고 중학교도 안 나온 촌 가시나들이 그만한 자리가 어데라꼬.”
 
하더니
 
“보소. 큰 아 강숙이는 성질이 좀 괄괄하니 얌전하고 말 없는 막내 혜숙이하고 한 번 전자보소. 명절에 내가 아주버님하고 형님한테 그만한 자리가 없다고 이야기해볼 께요.”
 
하고 결론을 맺었다.
 
 
“보소. 당신 오늘은 종일 까뭉갤 끼요?
“와, 모처럼 내가 일요일 날 집에 있는 거 보니 신기하나?”
“그래요. 비오는 날 빼고 당신이 산에 안 가고 뭉개는 일요일은 올해에는 처음일 거요. 김몽룡씨가 당신 어데 아픈 줄 알겠다.”
“할 수 없지. 정승도 지 하기 싫으면 그 뿐이라고. 이상하게 몸이 찌부둥한 게 일어나기가 싫네.”
“보소. 혹시 오늘 대운산 간다 카덩교.”
“그래.”
“남창장터 국밥집에 가서 중신독촉 받을까 봐서 가기 싫은 기요?”
“그것도 꺼림칙하고.”
“희한할 일이네. 오늘 무슨 일이 있을라나? 옛날에 당신이 그 좋아하는 조기축구를 안 나가고 밍거적거리던 날 어무이가 돌아가시더니...”
“허, 그 참.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짜증스런 표정으로 일어난 열찬씨가
 
“몇 시고? 라면이나 하나 끓여먹고 둘이 아홉산이나 갈까?”
“아이구, 서산에서 해가 뜨겠다. 우째 마누라하고 같이 산에 갈 생각을 다 했을꼬?”
 
영순씨가 신이 나서 간식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더니
 
“점심시간이 어중간하니 간단하게 산을 타고 점심을 먹읍시다. 당신 하는 기 마음에만 들면 내가 석대다리집에서 당신 좋아하는 수백에 시원소주 한 병 쏘지.”
 
하면서 집을 나와 회동동 99번 종점을 지나 아홉산어귀에 자동차를 파킹하고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 무배추를 심은 울타리를 돌아 회동수원지를 내려다보며 한참이나 길을 오르다
 
“아이구, 안 하다가 하니 등산도 못 하겠다. 여서 한숨 돌립시다.”
 
영순씨가 100미터도 채 못 오른 지점의 철탑 밑에 주저앉아 한참을 쉬었다 겨우겨우 해발 210미터라는 표지석이 있는 첫 번째 산마루에 올라 커피를 타고 과일을 깎아 간식을 먹고
 
“자, 슬슬 출발해볼까? 오르락내리락 아홉 봉우리를 넘자면 땀께나 흘리겠는데." 하면서 부지런히 걸어 다섯 번째 봉우리에 올랐을 때였다.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