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타작
박정은
곡기 끊은 지 엿새
물기 없는 깡마른 몸에
먼지 폴 폴 나도록 매질을 해댄다
신음 소리 앞산 굴참나무 흔들 때쯤
동글동글 땀방울 같은 깨알들이
후드득 투드득 발아래 쌓이고
자루 속 뒤져보다
꼬순 향에 취한 검붉은 해도
비틀비틀 제 갈 길 떠난다
화음 넣듯 두드리던 매 타작
다 털리고 나서야 진가를 발휘하는 존재의 가치
어머니 생의 길동무였던
- 『시향』, 2023년 20호
한여름 동안 햇살에 몸을 맡기고 익어 가던 깨를 잘라서 볏단처럼 얼기설기 깻단을 세워 놓았다. ‘곡기 끊은 지 엿새’가 되고 보니 수분과 바람과 햇살로만 살아온 깨가 뿌리로부터 받던 수분이 없으니 ‘물기 없는 깡마른 몸’이 되었다. 이런 몸에 ‘먼지 폴 폴 나도록 매질을 해댄다’. 깨를 털기 위해서.
툭툭 깨 타작하니 ‘신음 소리 앞산 굴참나무’를 흔든다. 뼈대가 굵어도 발 없는 굴참나무인들 무얼 해줄 수 있으려나. 이때 용을 쓴 깨알들이 깨깍지를 열고 ‘동글동글 땀방울’처럼 솟아올랐다가 회초리를 든 그분의 발아래에 모두 쌓인다. 그분은 바닥에 쌓인 검블과 깨를 분리하기 위해 고단한 키질도 하여 자루속에 담을 것이다.
지나가던 해도 궁금하여 ‘자루 속을 뒤져 보다’가 깨의 ‘꼬순 향에’ 취하여 검붉어진 얼굴로 익숙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비틀비틀 제 갈 길 떠난다’. 해는 내일 또 올 것이다.
어머니의 타작은 힘든 작업이라서 그 매 타작에 ‘화음’을 넣어 두드렸다. 깻단을 두드렸다기보다는 어머니 당신을 독려하셨고 깨깍지처럼 속을 모두 자식들에게 ‘다 털’어 주었다. 자식들은 그 ‘존재의 가치’를 느끼겠지. ‘어머니 생의 길동무‘ 같은 깨 사랑 농사, 깨알같이 곁에 적어 두면 더 일찍 알 수 있으려나,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chosr51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