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늙은 농부의 죽음⑤
열찬씨의 말에 모두 웃는데
“종제야, 이래 만사를 챙겨주이 고맙다. 역시 니가 우리 집안 큰 일꾼이다.”
컨디션이 돌아왔는지 띠엄띠엄 말을 하다 다시 한참이나 격렬하게 기침을 하다 수그러들자
“내 안주까지는 안 죽는다. 내가 누고? 신불산 보고 자란 깡아리로 한글도 잘 모르는 논산훈련소도 그렇고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리비아도 기 안 죽고 버팄다 아이가? 맨주먹으로 시작해 2층 집도 짓고 땅도 사고 아아도 너이나 놓고...”
“그래 맞심더. 신불산 보고 자란 언양사람들은 어데 가고 기 안 죽고 지 할 짓 다 하고 지 할 말 다 하고 산다 아입니까?”
추임새를 넣으니 기분이 좋은지 벌쭉 웃기까지 했다. 잠시 뜸을 들여
“형님, 저는 출근했다가 내일 저녁에 다시 오겠심더.”
하고 일어서다
“어서 일나소. 연산동초밥집에 한 번 더 가서 와사비덩어리를 묵어야 될 것 아잉교?”
열찬씨가 말하니
“우리 제수씨가 같이 가면 어디로 못 가겠노마는 초밥집하고 와사비는 사절이다.”
하면서 웃어보였다.

이튿날 오후 두 시경이었다. 당뇨가 심한 열찬씨는 아직도 점심 먹은 식곤증이 안 풀려 업무용컴퓨터는 켜놓고 그냥 멍청이 앉았는데 따르릉 전화가 오더니
“데름아, 데름형님이 이상하다.”
진장형수의 목소리였다. 깊고 먼 해저에서 울려오는 듯 가늘면서 침울한 음파에 섬찟해지며
“와요? 우째 이상항교?”
“아까부터 숨소리가 가늘어져 들리는 동 마는 동 온몸이 축 늘어졌다.”
“고개는 안 돌아가고?”
“응, 그냥 있다.”
“심장은 뛰고.”
“모르겠다. 내가 우째 다 아노?”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라
“예, 알겠심더. 내 금방 갈게요.”
하고 택시를 타고 구덕터널을 넘어가니 한 20분도 채 안 걸렸다. 허겁지겁 응급실을 찾아
“형님!”
부른다고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눈을 보니 유독 흰 창이 드러나고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다. 맥박도 호흡도 다 멈춘 것 같아 지나가는 간호사를 보고
“환자가 이상해요. 한번 봐 주세요.”
하나 흘낏 쳐다보고는 부리나케 간호사실로 뛰어가더니 이내 청진기를 손에 든 의사가 나타나 눈을 한번 뒤집어보고는
“부인하고 가족 분 되십니까?”
물어 고개를 끄덕이니
“73세 가종찬님께서는 2007. 10. 8일 15시 01분에 사망하였음을 확인합니다.”
판사가 선고하듯 하자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침대보를 덮어주고 돌아가 버렸다.
“우짜꼬?”
형수가 넋을 놓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형님, 고생했습니더. 편케 가시소.”
눈을 감겨주는 열찬씨 손을 잡고
“우짜꼬, 우짜꼬, 나는 우짜고 데름아!”
하염없이 우는 지라
“지금 울기만 해서 될 때가 아이지요? 아아들은 다 오고 있능교?”
“아까 데름하고 같이 연락했으니 오고 있을 끼다.”
하는데
“아부지!”
하고 장남이 들어와 망인의 얼굴을 쓸어보고 손을 잡아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이내 투다닥 다급한 걸음으로 장녀 강숙이가 들어왔는데 벌써 사십이 넘어 아이가 너덧은 되고 어쩜 사위라도 봤을 것 같은 촌부의 티가 완연했다. 그보다 더 기간 찬 건 마치 남의 일처럼 물끄러미 제 아비의 시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열찬씨도 영순씨에게 전화를 하는데
“가족대표가 어느 분입니까? 장례는 여기서 치를 겁니까? 언양으로 운구할 겁니까?”
원무과의 직원인 듯한 사내가 묻는지라
“언양 보람병원으로 운구했으면 합니다. 앰뷸런스 조치해주시고요. 순우야, 니는 보람병원원무과에 니 사촌형 홍근이한테 전화해라.”
“예.”
“형수, 관우하고 혜숙이는 안 오능교?”
“관우는 짐 싣고 장거리 나가서 못 오고 혜숙이는 짐승도 있고 해서 집을 못 비운다.”
“알았심더. 순우야, 니는 관우한테 연락해서 일마치고 바로 오고 강숙이 니는 혜숙이 보고 미리 소밥 주고 병원으로 오라 캐라.”
사무실에서 계장이나 직원을 불러서 일을 시키던 습관이 그대로 나오는데
“보소! 강숙이아부지, 강숙이아부지! 아아들하고 소하고 다 내보고 우짜라꼬, 우짜라꼬?”
미망인이 된 형수 신정자여사가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어
“앰뷸런스 준비되었는데요.”
사내 둘이 들것을 들고 와 시신을 운반하자
“그래 수남, 언양, 구늪의 집안에도 알리고 우리 사촌 간 형제계에서 10만 원짜리 화환이나 하나 하도록 하지.”
문중총무 백찬씨에게 전화를 하던 열찬씨가
“순우야, 너거 외가는 니가 알아서 연락을 하고.”
마침내 다 챙겨진 것 같아
“순우야, 타라.”
앰뷸런스의 문을 여는데
“... 차를 가주왔는데요.”
“그래?”
“그라면 순우는 순우차로, 강숙이는 강숙이차로 엄마모시고 보람병원으로 가거라. 형님은 내가 모시고 가께.”
한 뒤
“형님! 갑시다. 우리 고향 언양땅으로 갑시다. 그라고 진장만디 공동묘지 조상들 옆에 터 잡으소!”
하고 앰뷸런스 기사 석 옆에 앉아
“형님, 인자 부산 빠져나갑니다. 인자 곧 양산, 석계, 신평통도사를 거치면 신불산이 우뚝한 우리고향 삼남면입니다.”
“형님, 여기는 영축산 앞 방터마을입니더. 삼성전관 뒤로 신불산 비능교? 형님이 귀한 산양 한 마리 잡았다고 신이 났던 그 신불산칼바우 말입니다.”
“인자 수남마을입니다. 작천정 사꾸라나무 보입니까? 덕천고개 넘어 언양여상지나면 바로 버든마을 웃각단이고 보람병원이란 말입니다.”
평소에 대화하듯 하나하나 읊어주다 앰뷸런스가 지하통로로 들어가 기다리던 홍근이와 직원들이 차에서 시신을 내리자
“아이구, 형님! 인자 같이 음복도 못 하고...”
마침내 눈물이 주르르 뺨을 타고 흘렀다.
저녁이 되자 동생 백찬씨와 조카 용우가 빈소로 나타나고 허겁지겁 빈소로 찾아온 관우가
“아부지!”
빼 고함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자 평소 말이 없는 막내 혜숙이도 영정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순우가 다니는 정비공장, 관우가 다니는 회사에 백찬씨가 주문한 형제계의 화환이 빈소 문밖에 세워지자 분위기가 조금 살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웃한 빈소의 자식들이 위세께나 부리는지 수십 개의 화환이 도열하고 문상객이 몰려 도떼기시장과 같아 우리도 화한이나 하나 더 있어 짝을 맞추면 좋을 것 같았지만 달리 올 데가 없는 모양이었다. 저녁 여덟 시경이 되니 마을친구 영관이, 종석이, 석주씨가 문상을 와 술상을 마주하고
“열찬이 자네가 욕을 보네. 하긴 그나마 집안일을 보던 상찬이형님도 나이가 들고 종찬이형님 당자가 죽었으니...”
“나는 우리 축사하고 형님 집이 붙어서 아침저녁 얼굴을 보던 형님이라 한동안 억수로 허전하고 생각이 나겠지.”
“우리 집이나 박인도, 김시준이 집에 삼겹살 굽고 술 한 잔 한다고만 해 봐라. 굴러가지도 않을 오토바이로 윙하면 고기 굽기도 전에 도착한다.”
“가실 때는 술이 남천장이 되어 오토바이는 재우고 사람만 차에 실려서도 가고.”
“제수씨들 참 내놓으라고 논두럼, 밭두럼 마다 돌아다니던 분이 안 보이면 우리들도 얼매나 섭섭하겠능교?”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틈에 영관씨의 부인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동안 술 한 잔 달라고 자주 성가시게 했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자리에 일어서 신발을 꿰고 나가다
“장조카 철우는 안 왔제?”
이장 일을 오래 보아 집안사정을 누구보다 훤하게 꿰는 영관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모양이네.”
“마을이 뜯기고 보상금이 나오면 제법 큰돈인데 사촌간이고 시집간 누나고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챙기라고 못 된 친구들이 들쑤시고 갸도 속에 바람이 든 모양이야.”
“그런가?”
하면서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찬씨와의 일로 언양의 유산이라면 생각도 하기 싫은 열찬씨가 고속철업무단지로 마을이 전체 수용되어 이사를 해야 될 입장에 놓인 아랫각단사람들이 붉은 페인트로
“일괄수용 결사반대!”
“내 고향을 지켜내자!”
돌담마다 황칠을 한 걸 보고 지나쳐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보상금이나 많이 타려는 수작이구나 무심했는데 결국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안에도 영향이 미치는 것이었다. 철우 앞으로 된 그 논도 집안이 버든에 자리 잡던 시절 아버지 기출씨가 머슴살이를 한 돈으로 어렵게 장만한 것이고 중간에 넘어갈 판이 된 것을 상찬씨가 억지로 붙잡아 아무 능력도 없는 종손 동찬씨, 또 동찬씨 사후에는 아무 재주도 의욕도 없는 철우 몫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몸이 약한 아버지와 정신이 맑지 않은 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라 말이 없기는 해도 어깨도 쫙 벌어지고 힘이 좋은 그 아이는 울산의 회사에 잘 다녔는데 허리를 다쳐 산재환자로 입원을 한 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도무지 일을 하지 않고 산재환자의 보상으로 평생을 살기로 작정한 것처럼 아무 일도 않고 집안벌초와 묘사도 슬슬 거르더니 마침내 장손이라는 작자가 제사에 마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재처자리로 시집와서 아무 감흥도 없이 억지로 제사를 지내던 버든의 정찬씨 댁 임후분여사도
“종손도 안 오는 제사를 얼굴도 한 번 못 본 내가 더는 못 지내겠다. 나도 인자 칠십이 넘어 내 몸 건사하기도 힘이 든데.”
하고 제사를 울산의 용우에게 떠넘겼고
만사에 고분고분하던 용우내외도 이번 일엔 뜻밖에도 완강하게 거부하며 단 한마디의 반응이 없어 억지로 제사를 지낸 화야엄마 임여사가
“모르겠다. 나는 인자 제사를 지내든지 말든지.”
하자 그간 윗대조상은 버든에서, 부모제사는 언양에서로 나누어 시부모제사를 모시던 언양의 상찬씨댁 류길자여사도
“큰집에서 윗대제사를 안 지내는 판에 우리만 아랫대제사를 지내면 무슨 소용이 있노? 나도 벌써 나이 칠십이 내일 모랜데.”
하면서 반기를 들고는
“동새야, 인자 명절 때마다 언양에 제사를 지내러 안 와도 된다. 버든이고 언양이고 말키 파이하기로 했다.”
하고 전화가 와 놀란 열찬씨가 묘사가 끝난 날 상찬씨를 모시고 명촌에 금찬씨, 장촌에 순찬씨와 고서방까지 대동해 안간월의 매운탕 집으로 가서 울산의 용우씨는 물론 백찬씨와 영순씨까지 모인 자리에서 상찬씨에게 물어 의논하는 형태로
0. 찬자가 붙은 윗대는 이제 모두 나이가 7,80이니 제사를 모실 수가 없고
0. 원칙은 종손인 철우씨가 모든 제사와 집안일을 맡아야 하나 장가도 가지 않고 옳은 거처도 없이 떠도니 맡길 수도 없고 또 집 앞에 조상 답 네 마지기는 명의가 죽은 동찬씨앞으로 되어있을 뿐 아니라 당장은 철우씨의 생계가 막연한 만큼 손댈 수가 없고
0. 다음 순서인 용우씨가 맡아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도리인 것 같으니 제발 좀 맡아 달리고
결론을 내고 고모들까지 나서
“그래 용우야, 출가외인인 우리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여자는 암만 늙어도 친정이 든든해야 기를 펴고 산다는데 니가 그래 해주면 얼마나 좋겠노?
두 고모가 나서 부탁을 하고 고모부 고차대씨까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
쓰다달다 말이 없이 얼굴만 벌개진 용우씨를 보고
“이 사람아, 기다, 아이다 말을 좀 해 봐라. 그래야 제사를 지내든지 말든지 펴든지 오구리든지 할 거 아이가?”
열찬씨가 나서자
“상혁이엄마하고 저 하고는 친할아버지도 아닌 윗대제사를 장남도 아닌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을 진작부터 이해할 수가 없어...”
“그래서?”
“아부지 돌아가시면 윗대제사는 없애고 아부지만 지내든지 아니면 절에 붙이든지 할라꼬...”
“뭐라? 우야, 니가 시방 남의 후손이 되서 그라면 죄받지.”
화가 단단히 난 상찬씨가 나서는데
“남의 후손이라 뭐 덕본 기라도 있능교?”
“뭐라? 허허, 이, 이. 이...”
상찬씨가 부들부들 떠는데
“우야, 내말 들어봐라. 내 상세한 이야기는 안 하겠지만 지금 너거 집이고 논밭이고 모두 사실은 집안에서 내려오거나 너거 작은할배, 그러니까 우리 아부지나 너거 작은아부지 언양형님이 사준 거란다.”
“...”
“희한하게도 우리집안에는 옛날부터 장남이 잘 안 풀려 큰집이 맨날 묵는다 굶는다 애가 많아 대대로 밑에서 공구고 살았다 아이가?”
“하고 상찬씨와 눈을 맞추어 동의를 얻고
“버든에 너거 집도 또 탱주민디 두 마지기도 전부 남들이 사준 거란다. 그렇지만 니가 이번에 집안제사만 다 떠맡으면 버든에 집하고 논하고 니 다 준다 안 카나? 물론 찬우가 있지만 그건 니가 알아서 좀 띠 주고.”
“어쨌거나 저는 제사를 못 지냄더.”
용우가 단호하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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