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99 - 술 취해 기분 좋다고?
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99 - 술 취해 기분 좋다고?
  • 박기철 박기철
  • 승인 2023.09.18 06:20
  • 업데이트 2023.09.16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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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해 기분 좋다고?

이른 아침에 마신 막걸리 기운은 은근히 올라오더군요. 한창 무더운 8월의 늦은 아침답게 햇볕은 쨍쨍거리니 몸 밖에도 불이고 몸 안에도 불이 났습니다. 술은 물의 성분을 가지고 있지만, 불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배가 알싸하더니 슬슬 머리가 알딸딸해집니다. 해롱거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군요. 그래서 잠시 주저앉아 이렇게 처량하게 한방 찍었습니다. 제 모습은 처량하고 뒤 배경은 황량합니다.

제 눈을 보니 풀려 있습니다. 왼쪽 눈은 웃고 있는데, 오른쪽 눈은 찡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보이네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술이 문제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술을 마시면 안 되었는데 호기로 술을 마시게 되어 거의 다 와서 이렇게 고장이 났습니다. 인간의 일이라는 것이 거의 막판에 와서 성공과 실패가 갈려진다지요. 가령 히말라야의 높은 산봉우리를 오르는데 있어서, 거의 정상에 다 오를 때쯤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지금 제가 바로 그 꼴입니다. 450여km 행진에서 마지막 15km를 남겨 놓고 이렇게 몰골이 퍼지고 말았습니다. 97%를 힘들게 와서 마지막 3%를 남겨 놓고 이렇게 두 얼굴의 이상한 모습이 되고 몸도 뭉개지고 마음도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고놈의 술 때문에…

술 때문에 망가진 몰골
술 때문에 망가진 몰골

막판에 활기차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이런 꼴을 보니 ‘낮술’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고작 1000만 원을 들여 만든 영화인데 제법 좋은 영화라고 소문났지요. 이 영화 포스터의 카피가 재미있습니다. “술과 여자의 공통점, 남자라면 거절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강원도로 혼자 여행을 떠나면서 술과 여자 때문에 낭패를 겪는다는 내용이라네요.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꼭 보고 싶은 영화이지요. 전설속의 동물인 낭(狼)과 패(狽)는 서로 몸과 맘이 틀리기 때문에 함께 붙어 있으면 딱한 처지가 되지요. 저도 지금 낭패를 겪고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15km 정도만 더 걸으면 되는데, 아침에 거절하기 힘들었던 고 맛난 막걸리 2병 때문에 이리 망가졌습니다. 저의 천리여정에서 가장 잘못하고 실수한 것이 바로 마지막 날의 술이었습니다. 낮술도 아니고 아침술! 만일 제가 그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밝게 웃는 사진으로 남았었을 텐데 좀 아쉽습니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kaciy@hanmail.net>